클로그에 부치는 러브레터

한국의 나막신, 베트남의 구옥 몹(Guốc Mộc), 일본의 게타(下駄), 칸타브리아의 알바르카(Albarca) 등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값싼 재료인 나무를 사용해 실용적인 신발을 만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유럽과 북미, 그리고 서양의 문화가 흔히 퍼져있는 한국, 일본 같은 동양권 나라에서는 네덜란드의 나무 신발 클롬펜(Klompen)과 스웨덴의 트라스코르(Träskor) 모양의 클로그가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 왔는데,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들이 거쳐온 변형 역시 흥미롭다.

클로그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르면 13~14세기 유럽,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신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세기 네덜란드에서 고된 노동으로 발에 생긴 골연골염을 딱딱한 클로그가 악화시킨 사실이 발견됐지만, 값도 싼 데다가 진흙으로부터 발을 뽀송하게 보호해 주고 추운 날씨에는 짚을 더해 따뜻함까지 갖췄던 클로그는 농부들에게는 고마운 도구였다. 비슷한 형태에 가죽이 더해진 클로그는 영국에서 산업화와 함께 공장에서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 신발이었는데, 신발을 소장할 형편조차 없었던 일하는 아이들에게 공장용 클로그를 대여해 준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시대 농장에서 산업 시대 공장까지,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의 발을 든든히 지지해 주던 클로그. 이 신발이 20세기에 들어서 어떤 전성기를 보내고 오늘의 보편화에 이르렀는지, 그 역사를 들여다보자.

트레톤의 아바 클로그 광고 사진

1970년대 아바(Abba)가 인기의 절정을 찍고 있을 무렵, 스웨덴 브랜드 트레톤(Tretorn)은 아바와 함께 아바의 이름을 건 클로그 라인을 선보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트레톤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였던 또 다른 스웨덴 브랜드 트로엔트로프(Troentorp), 미국 브랜드인 미아(MIA)스벤(Sven)과 같은 클로그 브랜드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아이콘이 이름을 걸고 광고하는 신발이라면, 말 다 한 게 아닐까? 패션 학자이자 작가인 엘렌 삼손(Ellen Sampson)은 클로그가 1930년대에는 아웃도어 신발로, 1960-70년대에는 히피의 신발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청춘 패션의 표식으로 인식되었다고 요약한다. 1990년대에는 덴마크 여행에서 영감받아 시작된 미국의 클로그 브랜드 단스코(Dansko)가 오래 서 있어야 하는 간호사나 교사 등의 신발로 자리매김했고, 2000년대 초반 크록스(Crocs)의 등장으로 클로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신발로 거듭났다. 하지만 못생긴 신발이라는 꼬리표를 지울 수는 없었고, 클로그의 황금기였던 20세기에 비해서는 여전히 컬트 페이버릿에 그쳐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협업을 통해 크록스는 메인스트림 패션 신(Scene)에 발을 디뎠고, 그 후 본격적으로 이어진 클로그 자체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클로그를 내놓는 브랜드의 숫자를 보며 확인할 수 있다. 에르메스(Hermès), 디올(Dior),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와 같은 거대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부터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에크하우스 라타(Eckhaus Latta), 제이더블유엔더슨(J.W.ANDERSON)과 같은 비교적 어린 브랜드까지 이제 모두 한 번쯤은 클로그를 만들어냈다. 유행이라면 바로 찍어내는 패스트패션 레이블인 자라(Zara) 매장에서 찾을 수 있다면 클로그는 이제 대중이 찾는 신발이 된 것이다.

털이 달린 아크네 스튜디오의 클로그

필자는 2014년쯤 처음으로 단스코 클로그를 손에 넣었다. 약간 멍청한 모양을 한 데다 처음엔 딱딱하고 무겁기까지 해 불편한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하고 오랜 시간 서 있어도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다. 친구들은 신발이 너무 못생겼다며 소란을 피웠고 엄마는 이 신발을 버리지 못해서 안달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그의 동그랗고 무해한 모양이 좋았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했던 나의 첫 직장에서 클로그는 필자의 발바닥과 발목에 튼튼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빨간 립스틱이 여성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강요되었던 괴로운 환경 속에서 상사는 필자의 단스코 클로그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곤 했지만, 그동안에도 발만큼은 평안을 취했다.

어린 시절 동경심을 가지고 ‘멋진 여자 어른’을 상상할 때면 그 주인공의 신발은 늘 하이힐이었는데, 이는 결코 아무 맥락 없이 피어오르는 상상은 아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 식당 벽면에 붙어있는 소주 광고 포스터 속 여가수, 잡지 속 모델은 모두 뾰족구두를 신고 있었다. 하이힐의 이미지가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와 겹쳐온 사실은 따분할 정도로 분명한 양식이지만 2000년대의 한국에서 자라던 소녀가 그 사실에 대해 인식하고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머릿속에 그려진 멋진 여성이 신고 있던 신발은 생각이 나는데 그녀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무슨 표정이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만큼 어린 필자에게 멋진 여성이은 사방팔방에 붙어있는 뾰족구두를 신고 웃고 있는 여자 어른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만큼 납작했던 것이다.

하이힐에 새겨진 성차별적인 이미지를 전복한 사례는 이제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차별은 여전히 편재하며, 편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신발이 편안한 클로그라는 점이 우리 사회의 여성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 보그의 편집장 중 한 명이자 작가, 그리고 클로그에 바치는 오마주 인스타그램 계정 @thecloglife를 운영하는 로렌 메클링(Lauren Mechling)은 이런 클로그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 여성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여성성의 상징과도 같았던 하이힐을 거부하고 못생겼지만(?) 편안한 클로그를 신는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자들의 유의미한 선택이라고 말이다.

20세기에 들어 클로그를 즐겨 신었던 대표적인 남성 아이콘들이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처럼 전형적인 남성성의 표현을 거부했던 퀴어 아티스트들이었던 것도 우연은 아닐 테다. 그들은 아마 클로그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10대를 통과하고 있는 소녀가 멋진 여성을 떠올릴 때 그녀는 클로그를 신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소녀의 상상 속 여성이 클로그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성품과 활동으로 많은 것을 하고 있는 입체적인 여성의 모습이길 바란다.

무디고 두루뭉술하지만 한결같은 튼튼함으로 내 발바닥을 넘어 정신까지 붙잡아주곤 했던 클로그에게 이 글을 보낸다.


이미지 출처│국립민속박물관, dantri.com.vn, 50objects.org, Wikipedia, Wikimedia Commons, Digital Museum, Tretorn, Christopher Kane, HYPEBEAST (for Balenciaga), Acne Studios, Patrick Yang MacDonald, Twitter, L’OFFICIEL, V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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