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의 두 번째 여행. 이번 2월호는 올해부터 VISLA와 뜻을 함께하게 된 컨트리뷰트 라이터 다섯 명의 영감으로 꾸렸다. 앞으로 이들은 VISLA에서 음악, 패션,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각자의 스타일을 마음껏 뽐낼 예정이다. 독자들도 새롭게 합류한 5인조를 환영함과 동시에 그들의 취향을 확인해보자. 2월, 당신의 영감은?
침대 ㅣ 가구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들지 못한 밤, 침대는 나를 미적지근하게 괴롭힌다. 내게 허락된 잔여 수면시간을 계산해보니 내일은 분명 피곤할 거란 예감이 든다. 제발 잠들길 바라며 등이 뜨거워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노라면, 이런 멍청한 모습이 또 있을까 싶다. 침대가 미워서 버럭 화를 내봐도 잠은 오질 않는다. 잠 대신 남은 시간을 밀린 고민과 함께 보낼 때면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남들은 꿈꾸고 있을 시간에 혼자 미래를 걱정하고 있으니 좋을 리가 있나. 잠들지 못한 나에게 침대는 목적 없이 해를 기다리는 고통의 장소였다.
2주 정도 잠을 못 자니 ‘꿀잠’이 그립다. 억울한 마음에 ‘나는 언제 행복하게 잠들었는가’ 자문해보니, 여행 첫날 숙소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눅눅한 내 방 침대 말고 깨끗한 숙소의 침대보. 불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새벽에 짐을 싸서 떠났다. 바닷가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놓고 양말 틈새에 모래가 스밀 만큼 바닷가를 걸어 다녔다. 종아리가 저릴 만큼 걷다가 맥주 한 캔 마시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오늘은 고민 없이 잠들 것 같단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난다. 이불 속에 다리를 휘저으며 사락사락 소리를 내고, 자고 일어나서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생각하니 좋기만 하다.
그날 밤은 덕분에 우울하지 않았다. 바다의 일출도 보았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잠인데 침대는 이렇게 다른 공간이 된다. 내일을 기대하며 잠드는 것이 행복한 수면의 비법이 아닐까. 평생을 침대에 누우면서도 몰랐던 것을 남의 침대에서 깨닫는다. 이번 달 내게 영감을 준 것, 바로 침대다. 말마따나 사람들이 꿈을 꾸는 장소 아닌가. 내게 침대는 과학, 과학을 넘어선 영감이다.
Isaiah Thomas | 농구선수
지난 19일에 열린 2017 NBA 올스타 게임은 르브론의 원 핸드 백 덩크, 드로잔의 에어워크 ㅡ 마이클 조단 날아가는 모양 ㅡ, 폴 조지의 원 맨 앨리웁, 올스타전 역대 최다 득점(52점)을 달성하며 러셀 웨스트브룩의 3연속 MVP 등극을 저지한 데이비스 등 양 팀 모두 합쳐 374점에 달하는 점수만큼 볼거리가 풍성한 경기였다. 아무래도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의 서부 올스타팀에 관심이 집중됐겠지만, 개인적으로는 1쿼터 후반부에 동부팀 아이제아 토마스(Isaiah Thomas)가 원 맨 앨리웁을 미스한 뒤 3점 슛으로 연결하던 장면을 이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작은 거인’ 토마스의 프로필 키는 NBA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175cm다. 농구선수의 프로필 스탯이 농구화를 착용한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170cm가 조금 넘는 신장이라는 뜻이다. 2m를 훌쩍 넘는 선수들이 즐비한 NBA에서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이 될까 말까 한 선수가 올스타 멤버로 선정되어 원 맨 앨리웁을 날리는 모습은 토마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는 나에게 ‘SWAG’, 우리말로 하면 ‘멋’ 그 자체로 느껴졌다.
NBA 역사에 단신 선수들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 심지어 스퍼드 웹(167cm)이나 네이트 로빈슨(175cm)처럼 작은 키로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토마스가 특별한 이유는 2011년 드래프트 마지막 순위로 지정되며 턱걸이로 입성한 꿈의 리그 NBA에서 신체조건과 역경을 이겨내고 MVP 후보까지 거론될 만큼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아이버슨 은퇴 이후 희망을 잃은 동족에게 토마스는 영웅이다. NBA 2k17 게임에서 워리어스를 상대할 때, 나보다 못하는 상대와 영혼의 ‘맞다이’를 뜨는 한이 있더라도 캐벌리어스가 아닌 셀틱스를 고르고 싶을 만큼.
박쥐란 ㅣ 관엽식물
오래전 아버지는 난을 가꾸셨다. 매일 잎이 상한 곳은 없는지 수분이 부족한지를 확인하셨고 몇 시간 동안이고 뻗어 있는 난의 이파리를 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난 어떤 취미를 가지게 될까 생각해보았던 적이 있다. 아마도 난은 키우지 않을 것이고 더 젊고 세련된 취미를 가지고 살아가겠지. 어느덧 새로 출시되는 옷이나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큼 적극적이지 않을 나이가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난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나도 ‘박쥐란’이라는 이름의 관상용 식물에 빠지게 되었다.
식물에 조예가 없어도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위로 솟은 잎의 모양은 박쥐가 날개를 편 듯한 모습과 흡사하며, 사슴뿔을 닮아 박쥐란은 외국에서 ‘Staghorn Fer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열대 지역에서 나고 자라는 이 기이하면서 괴이한 형태를 한 식물은 동경하는 일본의 편집스토어 네펜데스(Nepenthes)의 식물 프로젝트 네페티카(Nepethica)를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독특한 해외 식물을 취급,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 공기 정화의 효과도 뛰어나 미세먼지나 황사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식물이라고 한다.
녹음을 구경하기 힘든 추운 겨울, 헌팅트로피 ㅡ 사냥을 오락의 형태로 여겨 야생 동물을 선택적으로 사냥하는 행위. ‘밀렵’과 구분된다 ㅡ 형태로 입양한 박쥐란은 칙칙한 방안을 생기 있게 빛내주었다. 덕분에 하루 몇 분이라도 잘 자라는지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보고 있으면 바쁜 일상으로 지친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어 감상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다. 아버지가 난을 좋아하는 이유를 아직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성장하고 변하는 난의 모습을 보며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Bromance Records l 음반 레이블
2월 10일, 브로딘스키(Brodinski)가 설립한 브로맨스 레코드(Bromance Records)가 해체되었다.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생하다. 2013년, 두 번째로 열린 홀리 쉽 페스티벌(Holy Ship Festival)에서 ‘테크노 펑크’ 보이즈 노이즈(Boys Noize) 그리고 브로딘스키는 백투백 셋을 선보였다. 여기서 브로딘스키는 힙합, 올드스쿨, 테크노를 한 셋에 함께 묶어버렸고, 그의 미친 도박이 내 정신줄을 놓게 했다.
브로맨스 레코드는 2011년 11월, 브로딘스키와 그의 매니저 마누 바론(Manu Barron)에 의해 탄생했다. 장장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로맨스는 50개의 릴리즈, 300개가 넘는 파티와 페스티벌 등의 이벤트를 열었다. 마누는 공식 해체문을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파리에서 시작한 자신들의 이 작은 무브먼트, 힙합과 테크노의 조합은 소위 ‘Mad Gamble’이었고, 이게 곧 자신들의 욕망이었다고 소개한다. 이들의 장르를 뭐라 불러야 하나. 브로맨스의 음악적 특색을 적합한 용어로 묘사하기 어렵다. 작년 발매한 [Homieland]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곡 중 샘 팀바(Sam Timba)가 리믹스한 코(Kohh)의 “Paris” 리믹스는 거진 힙합이지만, 게샤펠슈타인(Gesaffelstein)의 “Depravity”는 심해의 테크노에 가깝다.
서로간의 융합을 쉽게 상상하거나 수용하기 힘들 법한 힙합과 테크노의 경계에서 브로맨스는 뛰어 놀았다. 이러한 ‘경계 음악’이 결국 잠들어있던 음악을 세상에 드러내고, 숨어있던 리스너의 내면을 울린 게 아닐까. 그들의 여정은 올드스쿨 테크노 셋에서 시작하여 더티 사우스(Dirty South),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레이브를 탐험한 뒤 80년대 EBM(Electronic Body Music)과 인더스(Indus)에 도착했다. 브로맨스 레코드의 행보는 일관적이지 않은 장르를 가지고 직관적인 다양성을 선보인 성공적인 표본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자유를 말할 때, 우리는 사실상 무제한적인 스펙트럼을 탐험하는 예술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고, 특정한 음악 스타일에 우리 자신을 가두는 것을 멀리했다 – When we’re talking about liberty, we’re in fact focusing on the artistic liberty to explore an unlimited spectrum, far from restraining ourselves to a certain musical style – ”
브로맨스가 추구한 자유, 브로맨스가 음악에서 선보인 탐험가 정신은 이들의 음악을 들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계속해서 기억해낼 것이다. 본인조차도 브로맨스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을 분명 당분간은 들락날락할 테니까. 브로맨스의 해체는 그저 자신들을 규정하던 여러 명칭 중 하나를 과감하게 뜯어낸 것에 불과하다.
Manchester by the Sea ㅣ 영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죽이는 것들이 있다. 특정한 사람, 어떤 기억, 혼자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장소까지. 이들은 대부분 상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독하게 긴 시간 동안 우리를 괴롭힌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에 무게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가볍게 그 무게를 짐작하려고 한다. 그 주체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누구나 으레 통과하는 성장통으로 치부하는 것. 나의 고통이 상대방의 우둔함과 함께 희석되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아닌 타인과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는 누군가의 상실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함부로 공감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그저 지켜보는 것. 즉, 관망의 태도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의 부재 혹은 죽음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낸다. 시간과 함께 고통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다만 잊혔다고 생각하는 – 그러길 희망하는 – 슬픔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온다. 냉동 닭을 보며 시체냉동고에 안치된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 우연한 전화 한 통으로 아픔을 떠올리듯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기억은 예고도 없이 일상에 뛰어든다. 오랜만에 집어 든 책에 책갈피로 끼어 있는 그의 사진이, 욕실에 남아 있는 칫솔 하나가, 항공권을 사기 위해 들어간 티켓 예매 사이트에 기록된 여행 일정이 그렇게 우리를 무너지게 한다. 누구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상실에서 회복하는 최선의 방법을 고통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얼마나 더 큰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아물어가는 흉터의 딱지를 떼고 다시 피가 솟구치는 걸 확인했다. 그 시간은 반복되기만 할 뿐 정작 아무것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실은, 잔인하게도,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렬한 원동력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짧은 대본을 쓰고, 그 대본으로 연기했고, 열심히 말했다. 나의 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상실의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면 고통의 기억에 작별 인사를 고하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잊을 수 있는 게 결코 상처가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상영관의 불이 켜지는 순간, 나는 비로소 많은 기억과 습관으로부터 떠나야 할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억지로 글을 쓰고 감정을 토해가며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도 그만두기로 했다. 마치 리의 대사처럼, “I can’t beat it.” 도저히 버틸 수 없으니까.
글 ㅣ VISLA MAGAZINE
커버 이미지 ㅣ 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