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소비 조장 콘텐츠, 1-800-8282-4949ㅣ 3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물건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희소성, 그것은 물건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자 많은 이들의 지갑을 털어가는 주범.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고? 뭘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당신, 오늘 소개할 녀석들이 마음에 든다면 인터넷부터 켜라. 2화까지 너무 구하기 힘든 것투성이라는 말에 이번 3화에서는 희소가치가 있으나 노력한다면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골라보았다. 단, 하나만 빼고.

 

STUSSY Livin’ GS Coffee Mill

여윳돈이 생기면,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는 물건에 관심이 간다. 고가 브랜드의 우산이라든지, 몽블랑 만년필 혹은 아트토이나 값비싼 성인용품까지,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법도 하지만, 지인의 집 혹은 사무실에 놀러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도 바로 이렇게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공간을 밝게 만드는 물건’ 아닌가.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가장 부러웠던 건 아무래도 그윽한 커피 향이 감도는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줄게”라고 말하는 친구, 그의 손아귀에서 열심히 작동 중인 커피 그라인더였다. 그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려면 그라인더 역시 주인과 함께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하는 법. ‘아 언젠간 나도 독립해서 저렇게 커피를 직접 내려 마셔야지’라는 야망이 바로 그때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또 우리가 느낌 하나는 챙기고 사는 사람들 아닌가? 이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그런 흔한 물건은 싫고, 뭔가 좀 멋들어진 게 없나 둘러보던 차에 내 눈에 들어온 이 스투시 리빙 커피 그라인더. 갑자기 캘리포니아 어느 바닷가 오두막집에서 커피콩을 정성껏 갈아 마시며 노년을 보내는 숀 스투시가 떠오름과 동시에 기계문명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서, 어리숙한 잡동사니와 오래된 가구, 필요한 만큼의 집기가 듬성듬성 놓인 집에서 살아가는 나의 미래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커피와 담배는 내 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함께할 것 같으니 이 커피 그라인더야말로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아니다. 정정하겠다. 꼭 필요하지만, 아직은 바라만 보는 물건이라 해두겠다. 그렇다. “지금은 함께할 때가 아니야”라고 담배를 꼬나물며 고개 숙인 채 묵묵히 뒤돌아서는 차창 밖 남자의 로맨스처럼 나는 이 녀석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겠다. 언젠가 복잡한 일을 내려두고, 적당한 소일거리를 하며 정신과 육체가 합치되는 건강한 하루를 보낼 나의 황혼을 위해, 그때 어김없이 나를 찾아올 덜떨어진 친구들을 위해 나는 숀 스투시의 영혼이 깃든 이 커피 밀로 흔쾌히 커피 한 잔을 내려주겠다. 그러고 나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어지러운 술판을 벌이는 거지.

VISLA 매거진 편집장 권혁인

 

OK Computer 20th Anniversary Reissue [OKNOTOK]

고등학교 1학년, 소위 말하는 ‘락부심’에 심취해있을 때, 라디오헤드(Radiohead)는 나에게 거의 신 같은 존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고 민망하지만, 그땐 라디오헤드보다 더 뛰어난 밴드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 당시 찾아 들었던 밴드의 음악을 지금은 듣지 않지만, 라디오헤드만큼은 성인이 된 지금도 꾸준히 재생한다. 그들의 기념비적인 앨범 [OK Computer]가 올해, 20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라디오헤드는 5월 2일, 티저 영상과 포스터를 공개하며 [OKNOTOK] 라는 제목으로 이 상징적인 앨범을 재발매할 것을 예고했다.

라디오헤드가 영국의 전설적인 음악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서는 6월 23일에 맞춰 발매되는 박스셋은 기존 12곡은 물론, 미공개곡 3곡, 여태껏 공개되지 않은 아트워크, 카세트 믹스테잎, 프론트맨 톰 요크가 앨범 제작 당시 갖고 있던 104페이지의 수첩 복사본 등 팬심을 자극하는 구성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레지만, 아쉽게도 배송은 7월부터 시작된다니 그들의 디스코그래피를 복습하며 기다릴 수밖에.

VISLA 매거진 컨트리뷰터 주가은

 

TOTO Washlet S350E

오래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글을 올린 그 친구는 피부에 대변이 묻었는데, 고작 휴지로 닦고 말거냐며 나머지 모두를 더러운 사람으로 취급했다. 대변을 볼 때마다 샤워를 해야 한다면서. 나중에 비데가 보급되고 나서는 그 친구의 샤워 횟수도 조금 줄어들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부모님은 비데의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해서 구매를 강요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혹 고급 호텔이나 식당에서 비데를 만나면 굉장히 설렌다. 60~70년대에는 바나나가 부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 세대 중에는 그때의 기억으로 아직도 바나나를 고급 음식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나 어릴 적에는 정수기가 붙어있는 수입 냉장고라던가, 지금 비데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양변기를 체험했다. 내 체형이 둔부가 만만하지 않은 스타일이라 국내의 변기는 항상 아귀가 조금씩 안 맞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미국여행 당시 한 호텔에서 사용한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변기는 한국에서 느꼈던, ‘변기는 항상 뭔가 작거나 불편하다’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없애버렸는데, 확실히 기본적으로 체구가 큰 미국이라 그런지 엉덩이를 마주했을 때, 마치 내가 작고 약한 소년이 된 느낌이었다. 거인들의 나라에 간 느낌이랄까. 심지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 퀸사이즈의 최고급 침대에서 혼자 자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 비데에 대한 니즈가 강렬하게 생겨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당시 내게 안락한 이미지로 인식된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양변기 – 심지어 비데 일체형으로 된 –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안락한 착좌감에 아랫도리를 미국식으로 씻겨주기까지 한다니 정말 꿈같은 대변 생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들었다. 미국은 비데 불모지로 유명한데, 어째서 ‘아메리칸’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기업이 비데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미국 오피셜 웹사이트에는 정작 비데가 없고, 거의 국내에서만 아메리칸 스탠다드 ‘비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진정성이 떨어진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양변기 일체형 비데는 패스하기로 했다.

다시 나는 비데의 고향으로 불리는 일본. 비데의 초 격전지 일본에서 비데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며 자신의 퀄리티를 증명하고 있는 토토 비데가 눈에 들어왔다. 장시간의 검색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면 아메리칸 스탠다드의 변기와 일본 토토 비데를 조합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언젠가 드넓은 화장실의 한가운데 저 조합의 비데-양변기를 설치하고 나서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는 내 생활을 상상해본다.

VISLA 매거진 그래픽 디자이너 박진우

 

Breakfastclub Tokyo T-Shirts

평소 아침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눈도 안 떠지는데, 식탁 앞에 앉아있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반작용인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고 뭐고 아침 식사를 주로 내걸고 하는 음식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몇 주 전, 뉴욕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스테이션 노우 웨이브(Know Wave)의 여러 프로그램을 둘러보다 브렉퍼스트클럽 도쿄(Breakfastclub Tokyo)를 발견했다.

가게 이름부터 ‘아침 식사 모임’인 브렉퍼스트클럽 도쿄는 와코 마리아(Wacko Maria)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도쿄 메구로의 작은 규모의 카페 겸 음식점인데, 동네가 그런지는 몰라도 도쿄의 멋을 담당하는 형들은 한 번쯤 드나드는 공간 같아 보인다. 커피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파는 것 같고, 음식 메뉴는 고등어 샌드위치부터 재스민으로 향을 듬뿍 낸 밥 종류와 라자냐까지, 여하튼 흔한 아침 기사 식당 느낌은 아니다.

내 구미를 당긴 건 역시 음식보다 티셔츠였다. 브렉퍼스트클럽 도쿄는 초창기에 리처드슨(Richardson)과 협업하여 존나 레어한 콜라보 티셔츠를 발매한 뒤, 자체적으로 알렉시스 로스(Alexis Ross)라는 아티스트의 아트워크를 입힌 티셔츠를 예고 없이 산발적으로 발매하곤 했다. 오프라인에서만 구매 가능하며, 이때 가게 음식을 꼭 먹어야만 한다. 참으로 인간적인 소비 조장 판매 양식이 아닐까 싶다. 꿩 먹고 알 먹고…

지난주에는 다양한 색상의 롱슬리브도 나왔지만 이제는 겨드랑이가 숨쉬기에는 다소 버겁다. 반면 동일한 그래픽의 반팔 티셔츠는 브렉퍼스트 클럽 도쿄의 멋을 입을 수 있는 적시 적기다. 등판에는 크게 장미 한 송이가 박혀있고, 그 아래에는 폰트부터 간지를 뿜으면서 ‘breakfastclub, tastes so good’이 차례로 적혀있으며, 마지막으로 가게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완벽하다. 아침 시간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귀에는 노우 웨이브가 흐르는 간지를 느끼고 싶다면 이 티셔츠는 바로 당신을 위한 것…

VISLA 매거진 컨트리뷰터 이준용

 

Brain-Art Interface Machine

마감 날짜는 다가오는데, 작업은 하기 싫고 딴짓만 하는 날이 허다하다. 매일이 학교 시험 기간 같다. 매번 마감하고 나서 ‘다음에는 일이 밀리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작업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별로 나아지는 건 없다. 나는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상상하는 과정이 제일 즐겁다. 내가 원하는 건 이미 머릿속에 다 있는데 그냥 그게 알아서 제 발로 걸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수만 번이다. 따라서 내 간절한 소망을 생각한다면, 임의로 명명한 이 물건, ‘Brain-Art Interface Machine’은 엄청난 축복이다.

하지만 이게 나오는 순간 이미 간당간당한 내 커리어는 끝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어찌어찌 살아 숨 쉬는 내 자리가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100세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 구글 인공지능 드로잉도 나온 마당에 사람들은 더 쉽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각 표현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아이디어까지는 가져갈 수 없을 터. 만약 이 기계가 진짜 등장한다면 상용화 초창기에는 지금의 구글 통번역기와 인간 번역가와 같은 구도를 형성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이 기기가 해리포터의 망토 급의 희소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법처럼 나의 손에 들어오길.

앤디 워홀이나 무라카미 다카시도 자기 작품의 모든 과정에 일일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앤디 워홀도 자신의 팩토리가 있었고, 무라카미 다카시도 히로폰 팩토리(Hiropon Factory)라는 스튜디오에 이어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라는 이름의 회사를 운영하며 작업 방식에서 앤디 워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스케치만 하면 그의 직원들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복잡한 작업 과정을 생각해 보았을 때 실크 스크린 작업을 하던 앤디 워홀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잭슨 폴록 같은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니니 말이다. ‘개념미술’이라는 사조도 있는 이 시점에,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작가의 생각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미술이 뭔지 잘 모르겠다. 19세기, 20세기의 사람들도 미술이 이런 모습으로까지 발전할 줄 알았을까. 나중에 이 기기가 정말 발명되어서 21세기 중후반 이후의 몇 작가들은 이 기기로 작업하는 것이 필수였다고 미술사에 기록된다면,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이용해 만든 작품, ’샘(Fountain)’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 같다.

VISLA 매거진 컨트리뷰터 정혜인

 

강우진 1집 앨범 [Always]

퇴근이 늦어 부득이하게 심야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날이었다. 이럴 때는 평소 휴대전화에 저장된 음악 말고 라디오를 들으며 집에 가곤 하는데 그때 강우진의 “Always”가 흘러나왔다. 2001년 발매한 그의 1집 앨범 [Always]의 두 번째 트랙이자 싸이월드 시절 꽤 오랫동안 내 감정을 쥐락펴락했던 음악이기도 하다.

앨범 발매는 2001년이지만,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다. 당시 기숙사에서 한 방을 같이 쓰던 4학년 생물학과 형은 종종 이 앨범을 틀어놓고 카트라이더를 했다. 형이 자리를 비울 때도 오토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던 카트와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던 [Always]는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부득이하게 내 자리에 컴퓨터를 둘 수 없어서 선배의 컴퓨터를 빌려 쓸 때면 나 역시 그 앨범을 자주 들었다. 어느 날은 방에 모두가 잠든 것을 틈타 몰래 컴퓨터를 켜고 앨범을 들은 적도 있었다.

“Always”로 글을 시작하긴 했지만, [Always]는 앨범에 수록된 열 개의 트랙 중 어느 하나 흠잡을 게 없는 명반이다. 지금도 이 앨범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기도 하고. 워낙에 스트리밍이 대세인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CD 한 장 정도 가지고 있으면 책장을 열어볼 때마다 흐뭇하지 않을까.

VISLA 매거진 에디터/포토그래퍼 백윤범

*이 기사는 무신사 매거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글ㅣVISLA Magazine
이미지 제작ㅣ박진우
제작ㅣ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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