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소비 조장 콘텐츠, 1-800-8282-4949│제5화

오늘 하루만 해도 몇 개의 신상품이 나왔는지 당신은 아는가? 물론 우리도 모른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매력적인 물건에 눈이 휘둥그레지다가도 곧 정신을 차린다. 그러고는 꼭 필요한 필수 구매 목록을 작성한다. 다만, 한 가지만 알아두자. 사치에 가까운 물건일수록 그 감동은 배가 된다는 사실. 이번 1-800-8282-4949를 마지막으로 소비 조장 콘텐츠는 막을 내린다. 다시 새로운 VISLA x MUSINSA 기획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린다.

 

Nike Downshifter 7 

요즘 다이어트에 미쳐있다. ‘다이어트는 평생’이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지만, 장시간 한 자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며 쉴 새 없이 들이켠 일용한 양식들은 어느새 내 배에 귀여운 튜브를 선사했다. 그러나 근 한 달간의 처절한 몸부림 끝에 튜브의 바람을 어느 정도 빼는 데 성공했다. 틈만 나면 뛰고, 걸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이 험난한 여정을 함께할 친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최근에 마니아 사이에서 큰 화젯거리였던 줌 베이퍼플라이 4%에서부터 플라이니트 등 루나라는 명칭이 들어간 운동화는 그 이름에 걸맞은 훌륭한 스펙을 자랑하지만, 늘어진 티셔츠와 정체 모를 반바지를 입고 집 앞 공원을 활보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비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나이키 다운쉬프터 7(Nike Downshifter 7)’. 다운쉬프터 시리즈는 나이키 러닝 카테고리에 속한 중·저가형 러닝화다. 7만 원 정도만 투자하면 제법 쓸 만한 통기성과 안정성, 내구성을 기대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제품이다. 감히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남은 건 뭐다? 이 친구와 함께 다시 다이어트라는 여정에 뛰어드는 일만 남았다.

VISLA 에디터/포토그래퍼 백윤범

 

Tamagochi 4 U 

어머니를 모시고 운전하다 도로변에서 잡상인을 보았다. 때 비누, 전기 파리채, 고탄력 스타킹 따위를 누가 살까 생각하던 차에 옆에서 어머니가 말하길, 너희 아빠는 저런 거만 보면 꼭 사 온다고.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가끔 기이한 물건을 사 오곤 했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왠지 있으면 좋을 법한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은 금방 고장 나버렸지만 아버지는 끝내 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릴 적에 가난하게 자라서 사고 싶어도 못 산 물건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밀물과 썰물처럼 하루에도 수차례 마음속 위시리스트를 지우고 다시 새기지만, 유독 어릴 적에 가지고 싶던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유행한 다마고치(Tamagochi)를 가지고 싶었다. 당시 반일 감정과 경제 사정으로 결국, 구입하지 못했지만 조약돌만한 기계 속 생명체가 먹이를 먹고 똥을 싼다는 것은 당시 초등생에게 아이폰의 등장과 같은 센세이션이었다. 운 좋게 다마고치를 구매한 아이는 가방에 숨겨와 쉬는 시간마다 자랑했고, 반 아이들은 촌스럽게 우르르 모여서 부러워했다. 그러다 선생님에게 들켜서 압수당한 그 친구는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울었다. 귀여운 추억이다.

어느새 기억 속에서 사라진 다마고치를 다시 본 건 대학교 2학년 무렵이다. 학교 근처, 망해서인지 문을 열지 않는 문구점 진열대에 다마고치가 놓여있었다. 나는 다마고치가 가지고 싶어서 종종 강의가 끝나고 그곳에 들렀으나 항상 닫혀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는 본격 소비 조장 콘텐츠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나는 다마고치를 가져본 적이 없다. 오랜 시간 가지고 싶었지만 이런 불필요한 물건은 막상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사지 않게 된다. 도로변 잡상인이 다마고치를 팔고 있으면 모를까. 굳이 찾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쓰는 나이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 고민을 말하는 일도 버겁다. 그러나 완전한 고립은 두려운지 차마 놓지 못하는 소셜 미디어를 보면, 나는 이기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내가 스스로 내린 처방이 다마고치다.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먹여 달라, 치워 달라 요구하는 다마고치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상사의 시달림과 성취 결여로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느껴질 때, 나 없으면 똥에 갇혀 죽어버릴 다마고치를 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찾아보니 다마고치는 여전히 다양한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었다. 흑백 다마고치, 산리오, 믹스, 20주년, 만 원대부터 10만 원대까지 다양한 선택폭이 있으니 각자 지갑 사정에 맞게 구매하면 되겠다.

VISLA 컨트리뷰트 라이터 이찬우

 

Starcraft : Remastered

1998년 여름 어느 날, 중학생이던 나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베란다에 있던 컴퓨터로 친구가 내게 보여준 게임은 테란으로 일부 미션만 해볼 수 있던 데모 버전의 스타크래프트(Starcraft)였다. 그리고 그해 스타크래프트와 피시방은 대한민국 한 세대의 문화를 뿌리째 뒤흔들어 심지어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가 되었다.

2002년 봄.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교내에선 학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시청각실에서 학생회장이 생중계까지 해가며 체육대회의 한 종목으로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열렸다. 나는 친구와 함께 2대2 종목에 출전했는데, 당시 교내에서 축구 짱이나 싸움 짱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스타 짱들이 대거 참가 의사를 밝히며 스타 대회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리 팀은 월드컵으로 치면 한국이나 나이지리아 정도의 약체였다. 전통의 강호 사이에서 우리는 나름의 작전을 세웠는데, 복잡한 운영과 강력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초반의 단순한 조합의 러쉬로 끝장을 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단순한 조합의 러쉬만으로는 스타 짱들과의 승부가 어렵기에 정확한 타이밍과 추가적인 기교가 필요했는데, 나는 그 전략으로 버로우 저글링을 택했다. 모두가 32강 탈락을 예견할 때, 우리는 정확히 약속된 타이밍의 질럿 저글링 러쉬, 이동 경로에 저글링을 버로우해놓음으로써 마린들을 쌈 싸 먹으며 4강 신화를 이룩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2017년, 발전된 PC 환경에 맞춰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그래픽을 장착한 스타는 ‘스타크래프트 : 리마스터’ 라는 이름으로 귀환했고, 발매 전부터 이미 구식 배틀넷은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업데이트되었다. 과거 시절 피시방에서 밤을 지새웠던, 노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지금의 30~40대는 이 순간을 무척 기다려왔을 것이다. 8월 15일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지인들과 구매한 뒤, 함께 향상된 그래픽의 전장으로 향해야겠다.

VISLA 그래픽 디자이너 박진우

 

Schott NYC 740B Peacoat Black 

누군가 지금 내게 버킷리스트를 적으라면 아마도 고려해봄 직한 옷으로 피코트를 들 수 있겠다. 외투에도 수많은 종류의 이름이 붙고, 천양지차의 디테일이 있지만 이걸 모두 뭉뚱그려 ‘잠바’라고 부르는 내가 굳이 다르게 말하는 옷이 있다면 아마도 패딩과 코트 정도로 분류될 것이다. 값비싼 코트는 제값을 한다지만, 이름에서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편함 때문에 은근히 동경하면서도 살 엄두를 못 낸 나머지 기억 속 저편으로 치워둔 옷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 10년 전 우연히 만져본 피코트라는 녀석은 투박한 외관에 까끌까끌한 질감의 질긴 소재가 뭐랄까, 항구에 사는 한 남자의 옷장에 영광의 상처를 입은 채 걸려있다고 해야 하나. 어딘지 진한 남자의 향이 흐르는 이 옷은 첫 만남부터 굉장히 설렜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패션과 밀리터리는 서로 팔베개도 해주면서 동침하는 사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피코트 역시 그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해군 제복으로 익히 오래전부터 사용되며 군대와 농밀한 관계를 맺었다. 제복을 향한 남자의 열망은 그 근원을 똑똑한 글로 표현할 재능은 없지만, 뭔가 가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이라 해두자. 그래서 ‘로망’이라 부르는 게 아닌가.

한 아저씨가 ‘추리닝’ 바지에 넝마 같은 피코트를 걸친 모습에 반한 뒤로는 피코트의 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피코트의 이상이 뭔지는 막힘없이 말할 정도로 나름의 철학을 갖췄다. 첫째, 기장이 너무 짧지 않을 것. 둘째, 품이 넉넉할 것. 허리를 강조한 듯 쏙 들어간 실루엣, 칼로 똑 떨어지는 기장의 피코트를 입은 남자는 왠지 짜증을 유발한다. 셋째, 웬만큼 무겁고 억세다는 인상을 줄 것.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피코트는 사실 천지에 널렸다. 그러나 나는 쇼트(Schott NYC) 피코트여야만 한다. 첫눈에 반한 뒤 신상정보를 털어가며 마주할 날을 고대하던 당시의 설렘을 배반할 수 없으니까. 그때만 하더라도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아서 일부 중고만 온라인에서 돌아다닌 터라 희소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그냥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살 수 있다. 다행이다. 오랜 시간 그리워하다가 우연히 재회한 연인처럼 반가운 너의 이름 피코트. 두 치수쯤 늘어난 체형과 진짜 항구 아저씨로 바뀌어버린 내 외모가 쑥스럽지만 그래도 지금 손을 내밀지 않으면 다시는 그 순간이 오지 않을 테니까.

VISLA 편집장 권혁인

 

Charizma – [Red Light, Green Light] Tape

우리는 흔히 ‘천재’를 신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부여받은 자, 혹은 보통사람보다 극히 뛰어난 정신 능력을 타고난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천재를 ‘보통사람’으로부터 분류하는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다양한 자격 요건이 논의되는 만큼 그 절대성을 따진다는 것은 모순일지도 모르지만, ‘천재는 요절한다’는 운명론적인 해석보다 더욱 매혹적으로 그들의 천재성을 입증해주는 조건은 드물어 보인다. 질병이든, 자살이든, 타살이든 간에 그 양태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기에는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예를 들어 한국 대중 가요사에서 유재하는 26세, 김성재는 23세, 김광석은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해외로 시선을 돌려봤다. 요절한 아티스트가 여럿 있지만, 스톤즈 스로우 레코즈(Stones Throw Records) 소속 뮤지션 카리즈마(Charizma)의 죽음은 두 가지 이유로 흥미를 끌었다. 첫째는 그가 비교적 너무 어린 나이인 스무 살에 사망했다는 것, 두 번째는 그가 생전에 단 한 장의 완성된 앨범도 발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3년 초, 카리즈마가 총격으로 사망하기 전, 그는 미국 최대 규모의 영화사 할리우드(Hollywood) 산하에 창립된 할리우드 베이식(Hollywood Basic)이라는 음악 레이블에서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와 함께 활동하며 첫 앨범을 준비했지만,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레이블 입장에서 볼 때, 피넛 버터 울프가 피트 락(Pete Rock) 혹은 갱스타(Gangstarr)의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처럼 걸출한 프로듀서의 능력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에 반감을 느낀 피넛 버터 울프는 추후에 레이블을 탈퇴하여 스톤즈 스로우를 창립하고, 카리즈마의 첫 앨범 [Big Shots]은 결국 10년이 지난 2003년, 이 레이블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한편 1993년 당시 할리우드 베이식 레이블은, 카리즈마와 피넛 버터 울프의 정규 앨범에 수록 예정이던 “Red Light, Green Light”를 프로모션 카세트(홍보용 카세트)로 극소량 제작했는데, 판매 목적이 아닌 이 카세트의 A 면에는 라이퍼스 그룹(Lifer’s Group)의 “Short Life Of a Gangsta”가, B 면에는 카리즈마의 “Red Light, Green Light”가 녹음되어 있다. 카세트를 유일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은 유저 간 음반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디스콕스(Discogs)로, 44.83유로에 판매 중이다. 정규 머천다이즈가 아닌 만큼 익명의 한 유저가 내놓은 단 한 개 수량만 남아있으니, 요절한 천재의 걸작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간직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지금 바로 디스콕스로.

VISLA 에디터 이준용

*이 기사는 무신사 매거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글│VISLA Magazine
이미지 제작│박진우
제작│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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