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NETFLIX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돈 주고 영상 콘텐츠를 보면 바보 취급을 받았던 한국이지만, 이제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정당한 페이를 내고 넷플릭스(Netflix)나 왓챠(Watcha) 등의 비디오 콘텐츠 서비스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꽤 늘어난 듯하다. 술자리나 카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보는 타이틀을 소개하기도 하고 교집합도 찾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도 잦아졌다. 나 또한 작년 초만 해도 친구들 계정에 여기저기 기생했으나 내가 본 시리즈가 아카이빙되지 않는 게 왠지 짜증 나서 결제해버렸다. 내가 본 영상들의 목록이 남았을 때 좋은 이유는 넷플릭스가 알려주는내 취향과 98% 일치콘텐츠 이런 거 말고 실제로 내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죽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과 이 정보를 공유해보면 누구는 코미디 시트콤, 누구는 히어로 액션물, 누구는 특정 배우가 나온 작품을 선호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정리된다. VISLA 에디터들에게 삶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를 소개하는 시간, 에디터스 딜라이트(Editor’s Delight)의 첫 번째 주제는 넷플릭스다. 그들의 취향과 삶의 재미를 슬며시 추천받았다.


KKK와 친구 되기

어릴 때부터 나는 드라마나 예능 따위의 것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단한 약속이라도 한 듯 정해진 시간에 TV 앞을 지키는 일은 귀찮았다. 소위인싸들의 대화에 껴보고 싶어 억지로 챙겨보기도 했지만 도중에 포기하기를 여러 번,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영화나 다큐멘터리처럼 한 큐에 몰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열정적으로 찾아서 보는 편이냐고 물으면 사실 그것도 아니다. 뭐 좀 보려고 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파일 찾는 일도 만만찮게 귀찮거든. 결국 제일 만만한 대안책인 유튜브에 안주하던 중, 얼마 전 동생이 공유해준 계정을 통해 나도 넷플릭스 유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넷플릭스는 분명 모든 면에서 신세계였지만,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세상 오만 것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 유독 내 구미를 당긴 건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 특히 “KKK와 친구 되기는 최근 본 어떤 영상보다도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흑인 뮤지션 데릴 데이비스(Daryl Davis)는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Ku Klux Klan)의 친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인종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그는 1990, KKK 단원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증오의 배경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편견에 맞서는 그의 방법은 단순하다. 절대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이들과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교화의 과정에서 폭력의 자리는 경청과 이해의 노력이 대신한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만나 대화한 지 30년 정도 지난 지금, 그의 창고는 KKK단의 간부들이 단체를 탈퇴하면서 건네 준 로브들로 가득하다. 차별과 증오를 벗어버린 그들은 모두 데릴의 친구가 되었다. 물론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흑인 운동가에게서 동족의 배신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갖은 핍박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철학을 삶을 통해 증명해낸다. 두 집단의 뿌리 깊은 분노 속에서 화해자를 자처하는 그의 헌신은 작지만 숭고하다. 데릴이 주장하는 소통의 방법이 정말 최선의 해결책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리와 갈등으로 대변되는 트럼프의 시대에 그의 삶은 분명 일깨우는 바가 있다. 남과 여, 국민과 난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갈등이 극에 달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화면은 어서 다음 콘텐츠를 선택하라며 재촉했지만 내 손은 한동안 허공에 머물렀다.

김홍식(Contributing Writer) 



한니발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에 흥미가 있어 뒤늦게 전설의 미드브레이킹 배드를 시작으로기묘한 이야기”, “마인드 헌터”,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나르코스”, “다크”, “맨헌트: 유나바머”, “퍼니셔”, “죄인등 숨 쉴 틈 없이 달렸다. 그 후 살인과 피에 조금은 무뎌진 상태에서 만난 이 드라마 시리즈, 북유럽 미남처럼 생긴 아저씨가 커버로 등장하는한니발이 나와 마주했다. 영화양들의 침묵재탕 같은 제목이 왠지 꺼려졌지만 ─ 실제로 재탕이다 ─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자마자 나는 호로록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시즌3까지 마무리한 결과, 핵심 내용은 외과의사 경력이 있는 정신과 상담의인 주인공 한니발 렉터(메즈 메켈슨) 교수가 비밀스럽게 인간을 사냥해서 얻은 인육을 멋지게 요리해서 와구와구 먹는 게어쨌거나의 골자다. 이전에 본 다른 드라마의 잔인한 장면들은 오히려 캐주얼하게 느껴질 정도로 엽기적이고 고어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시도를 거듭하는 한니발 렉터 선생은 항상 쓰리피스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지성이 넘치는 멘트를 마구 날리며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지식과 센스를 겸비한 멘트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역사, 문화, 음악, 음식 등 어떤 카테고리든 초월적 지식을 자랑하며 심지어 그림도 잘 그린다. 지식을 쌓느라 육체 단련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드라마 중간에 등장하는 수영장 장면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남성호르몬이 철철 흐르는 역삼각형 몸매를 자랑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한니발 렉터 특유의 섹시미는 요리할 때 발산된다. 셔츠를 두세 번쯤 걷고, 레시피와 재료를 결정하고, 재료 손질을 거쳐 요리한 음식을 먹는 장면은 어떤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보지 못한 고급스러움이 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완성된 넥스트 레벨의 인간이니, 상대적으로 멍청하게 느껴지는 인간사회에 지루함과 미개함을 느끼고 결국엔 미쳐버려 비밀의 인육 사냥을 펼치는 그 심정을 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잔혹한 범죄 스릴러이지만 시즌별로 시즌 1은 프랑스 요리, 시즌 2는 일본 요리, 시즌 3은 이탈리아 요리의 이름으로 에피소드 제목이 정해져 있다. 손님을 초대해서 자신이 직접 조리한 인육 요리를 대접하며 이 요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소개할 때는 왠지 황교익이 생각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최고의 고어함을 자랑하기에 잔인하거나 출혈 장면을 잘 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잊지 마시길. 고어함도 최고지만, 주인공 한니발 렉터의 고상한 면모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캐릭터성을 자랑한다.

박진우(Graphic Designer)


파라다이스 PD

넷플릭스 콘텐츠를 훑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바로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영상, 이를테면 과하게 폭력적이고 성적이거나 약물과 관련된 콘텐츠들이다. 자극적인 영상이 마구 쏟아지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분명 제약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필터링 없이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실정이다. 학부모라면 다소 꺼릴 만하지만, 조금 더 빠르게 미국 본토의 콘텐츠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환영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시청했던파라다이스 피디(Paradise PD)”는 한국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약 빤 내용으로 채워졌다. 파라다이스 시티의 경찰서에서 일하는 ‘BAD’ 경찰들을 보여주는 이 시리즈는 2018 8, 첫 시즌을 개시했으며 현재 넷플릭스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지나는 뚱뚱한 경찰 더스티를 괴롭히는 여경이다. 치프 랜달은 경찰관 서장이며 같은 서에서 근무하는 케빈의 아버지다. 불렛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약물에 중독 강아지다. 제랄드 피츠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린 경찰관이다. 이 중에서 주인공급 캐릭터를 꼽으라면 경찰서장 랜달과 그의 아들 케빈이다. 케빈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총을 쏴서 그의 고환을 터트렸고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했다. 랜달은 이혼의 원인이 아들 케빈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 이 부분을 글로 작성하니 매우 드라마틱하고 진지한 내용 같지만 시즌1 1화 시작과 동시에 약 10초 만에 이 모든 내용이 나온다 ─. 이후 랜달은 남성 호르몬 패치를 온몸에 부착하는데, 패치를 붙이지 않으면 몸이 여성화된다. 이 간단한 설정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약을 빨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우스파크를 재밌게 본 이들이라면파라다이스 피디역시 취향에 잘 맞을 것. 병신미 하나는 확실히 사우스 파크를 능가한다 ─ 사우스 파크의 병신미를 넘기란 정말 쉽지 않다 ─.  깊은 고민 없이 이런 맛이 간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싶다면 바로 클릭해보자. 이 시리즈를 보고 나면 본인이 꽤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최장민(Director)



러브 라이브! School Idol Project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임엔 틀림없었다. 몇 년 전 일본 열도를 휩쓸고 한국에까지 본국의 광기를 전도한 메가 히트 시리즈러브 라이브! School Idol Project”.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본 만화영화를 제대로 살펴본 계기는 역시나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하는 지인의 침 튀기는 추천에 나란히 앉아 보았더니 방영된 지 5년이 지나도 여전히 전하는 울림이 크더라. 등쌀에 못 이겨 봤다고 말한 것 치고는 잘도 반나절을 내리 봤다. 폐교를 앞둔 학교의 여학생들이 스스로 아이돌 그룹을 결성해 결국 학교의 위상을 높여 위기를 극복한다는 몇 시간의 여정. 아이들이 유쾌히 웃고 노니 그저 예능 프로그램 보듯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으나 무시할 수 없는 신선한 이질감이 있었기에 첨언한다.

우선 작품을 통틀어 남자가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더라. 지나가는 인파의 실루엣 정도가 전부라 ─ 주인공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잠시 등장하나, 대사는커녕 얼굴조차 가려졌다 ─ 단언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 적나라한 남성향의 콘텐츠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흔한 연애선 하나 그어지는 일 없이, 공동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무리가 시청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응원뿐. 지지고 볶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그들을 보며 같이 긴장하고 안도하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커피 내리다 연애하고 수술하다 연애하는 모 드라마의 전개도 남녀노소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김용화 감독의국가대표가 일순 연상되는 이 만화영화의 전개에 홀랑 공략되었을 남녀 불문 팬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실제로 모 일본 대기업 3사가 힘을 합쳐 성공시킨 거대 프로젝트인 본 가상 아이돌 시리즈는 수년에 걸친 준비 기간 끝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나아가 연이은 속편의 성공으로 힘입은 본 허상의 캐릭터 그룹이 여타 아이돌의 성공 척도 돔 공연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으니, 이즈음이면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신화적인 성공이라 봐도 손색없을 것. 물론 정서가 다른 타국의 대중문화이니 기탄없이 이해하긴 무리가 있지만, 단기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일본의 응원 문화를 본 만화영화가 교묘히 공략한 게 분명하다. 한국 가요 절반이 슬프고 화나 죽겠다면 일본 가요 절반은 붕 떠서 서로를 응원하더라. 흥미로운 차이라고 생각한다. 되도록 그 중간에서 살아야지. 여생은 울릉도에서 보내야겠다.

홍석민(Editor)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