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알리타(Alita)”를 보았다. 2019년 첫 영화인 것은 물론, 2016년 여의도 CGV에서 혼자 봤던 “곡성”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그 전에는 언제 극장에 갔나 생각해보니 2013년 합정 롯데시네마에서 ‘위대한 개츠비’였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3년에 한 번씩 극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요샌 넷플릭스니 와챠니 쿡티비니 어둠의 경로니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영화를 볼 방법은 많으니 왠지 아싸가 된듯한 기분을 합리화했다. 이처럼 영화는 내게 필수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가끔 생각나면 보고, 보고 싶은 게 있을 때 보는 콘텐츠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영화들은 분명 존재하고, 대다수의 친구 역시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VISLA 멤버들이 꼽은 영화가 궁금해졌다. 단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해야 한다면 어떤 영화를 추천하겠냐고.
트래인스포팅(Trainspotting)
생각 없이 살아도 너무 생각 없이 살았다. 남들이 휴학까지 하며 어학연수, 인턴 등으로 미래를 계획할 때, 나는 어두운 방에 혼자 박혀서, 어두운 음악과 디스토피아 영화만 찾았다. 미래를 안일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것일까? 지도교수는 나를 불러, 5년 후 나의 모습을 한번 그려보라고 말했다. 나는 미래를 열심히 설계한 듯 거창하게 말했다. 사실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한 다음 평범한 회사원 혹은 연구원으로, 여전히 음악 감상을 취미 삼아 유유히 살아가리라고 혼자 생각했다. 취업난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니냐고? 나는 소위, ‘취업 깡패‘라고 불리는 ‘전자 공학‘을 전공했다. 매일 불경기라는 기사 속에도 반도체 시장만큼은 꾸준히 상승세였단 말이다. 그리고 4학년 기말고사 종료와 동시에, 교수의 우려에 보란 듯이 취업했다. 내 예상보다 과분하게 컸던 회사에 어깨도 조금 펼 수 있었다. 하지만 모텔 생활을 전전하는 출장 라이프와 매일 10시까지 할 일이 없이 눈치만 보는 야근과 주말 특근은 내 계획에 절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으론 확인도 불가능한 반도체 절연막이 얼마만큼 증착됐는지 지긋지긋하게 지켜봐야 하던 시점에서,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 내 머릿속을 맴돌더라. 절박하게 자유를 갈구하던 터라, 섹스와 마약에 찌들어 꼬이고 꼬인 이들의 인생을 ‘자유‘라는 한 단어로 퉁치고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또 언더월드(Underworld)의 음악 “Born Slippy(Nuxx)”가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에 나를 한번 대입해 보았다. 정신이 핑 돌 정도로 흰색만 보이던 각박한 반도체 팹(FAB)에서 자유를 향해 나가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 영화 주인공 마크 랜턴(이완 맥그리거)이 나에게 다시 속삭이더라. “Choose Life.” 나는 이를 3달간 끝없이 되뇌다 결국 퇴사로 돌진했다. 옳은 선택이었다며 정신 승리하던 와중, “트레인스포팅 2″가 개봉했다. 20년 후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 속 마크 랜턴은 그 속에서 여전히 막장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유쾌하게만 즐길 수 없었다.
황선웅(Editor)
삼공일 삼공이(301 302)
영화를 잘 알진 못하지만, 관심이 있어서 관련 수업을 종종 듣는다. 영화 수업은 대개 강의자가 선택한 작품을 감상한 후 해석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하는데, 이때 ‘영잘알’ 강의자들의 훌륭한 큐레이션을 손쉽게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내가 느낀 영화 수업의 최대 장점이다.
박철수 감독의 1995년 작품 “삼공일 삼공이(301 302)”는 이렇게 알게 된 영화 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1990년대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기존의 가치들이 무너지던 시기였다. 물질적으로 좀 더 풍요로워졌지만 도시 생활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로 도시 속 사람들에게는 각종 정신 장애가 발생했다. 사회 패러다임이 변하며 한국 영화계에도 다양한 담론이 등장했다.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등장했지만 이들 중 현실 여성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영화는 드물었으며, 대중의 관심도 적었다. 이와 같은 시대에 발표된 “삼공일 삼공이”는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모습을 조명했다. 대인 기피증과 거식증을 겪는 송희(방은진)는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강요받으며 상처 받은 여성의 전형이며, 지나치게 사랑을 갈구한 대가로 남편과 이혼한 윤희(황신혜)는 90년대 한국 사회가 원하던 ‘요리하는 여성성’의 표본이다. 영화 초반에 서로의 상처를 숨기며 대립하던 두 인물은 이후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 속에서 상처 받은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되고,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교감을 얻는다.
작품 말미에 윤희는 자신의 트라우마의 궁극적인 해결법으로써 자신을 요리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송희가 이를 받아들이며 그들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합일을 이룬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 도전하는 작품의 충격적인 결말이 며칠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작품이 흔히 남성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수사극의 형식을 취함에도 영화의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것은 두 여성 주인공이다. 또한, 영화 속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성적인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아픔과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결정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당대 여성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는 점에서 ”삼공일 삼공이”는 나에게 여성 영화의 훌륭한 예시를 제시한 작품이었다. 본 작품에서 두 주인공이 각자의 이름이 아닌 301호, 302호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송희, 윤희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 어떤 여성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게 아닐까. “마누라 죽이기”(강우석, 1994)가 대중적으로 흥행한 바로 이듬해, 한국 영화계에는 이런 영화도 나왔더랬다.
김홍식(Editor)
베어풋 인 더 파크(Barefoot in the park)
요즘은 언젠가 느닷없이 찾아올 그 시점을 위해 자신만의 영화 라이브러리를 작성하는 중이다. 보석점에서 아침을 먹거나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다소 엉뚱한 제목의 그때 그 시절 미합중국 코미디 영화를 믿고 보는 편이다. 지극히 개인의 기쁨을 고백하는 본 코너에 닐 사이먼(Nill Simone) 동명의 극작에 기반한 67년도 영화 “맨발로 공원을(Barefoot in the Park)”을 소개한다.
색 바랜 음반 표지 같은 포스터가 매력 만점. 저렇게 사이좋게 거니는 두 선남선녀가 누군고 하니, 바로 60년대 미모로 날렸던 여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와 브로드웨이 극장의 스타였던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되시겠다. 이 둘의 열연으로 “맨발로 공원을”은 여성의 포니테일 머리의 매듭이 정수리에 가깝게 올라갔던 시절, 할리우드가 제시한 로맨스 코미디의 교본이 되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시내의 호텔에서 며칠간 나오지 않던 잉꼬부부가 이혼의 위기를 겪고 이를 극복하는 2시간의 여정. 맨발로 공원을 걷는 바보짓으로 모든 갈등이 풀리는 시트콤 같은 전개에 겪어보지도 않는 시절의 향수에 빠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나 어릴 적 내가 흠모한 이들은 60년대 패션 잡지의 여인들이었고 처음 모았던 음반도 60년대 여성 팝 가수의 것이었다. 레이지–보이 의자에 파묻혀 흘러간 미국 영화를 연짱으로 보고 싶다. 그 옆엔 코스트코 감자 칩이 4 봉지 정도 있으면 더 좋겠지.
홍석민(Editor)
타인의 취향(Le Goût des Autres)
집중력이 낮아서인지 몰라도 평소에 영화를 볼 때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잔인한 범죄, 스릴러, 갱스터 무비만을 찾았던 거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인생에 느긋한 영화 한두 편쯤은 있었다.
아마 2000년대 초였을까. 지금 추천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3학년 혹은 재수생 시절에 본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어떤 귀인이 나한테 추천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에 와 무척 고맙다. 아마도 그 당시 내가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웹사이트 일원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내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 세상을 내 나름대로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이 영화가 무엇이냐? 1999년 제작되어 2001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아그네스 자우이(Agnes Jaoui) 감독의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Le Goût des Autres)”이다.
영화 속 다양한 인물 간 갈등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사장님과 예술혼에 청춘이 다 연소된 연극배우의 만남, 연극배우에게 빠진 사장님. 사장님은 그녀를 알아가며 그녀 주변 작가들의 그림을 구입하고, 일을 준다. 하지만 그녀는 사장님을 쉽게 말해 ‘무시‘한다. 이유는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친구들에게 ‘투자‘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겠다.
나와 맞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뭘 좀 아는 사람, 뭘 모르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며, 취향을 등급으로 나눠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겨지는 이들을 무시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변했고, 낯선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나는 이런 게 좋아, 저런 게 좋아. 네가 좋아하는 건 이런 게 구려, 저런 게 구려,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깨닫게 해줬지만, 나는 여전히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취향‘과 ‘마음‘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을 제공하고 이 세상엔 ‘다양성‘이라는 단어도 있다고 귀띔해준 영화 “타인의 취향”을 추천한다.
박진우(Graphic Desig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