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관한 짧은 노트 #1 켄이 데려간 신주쿠 골든가이

타인을 특정한 유형에 맞춰 셈하는 버릇. 그것이 운 좋게 들어맞았다 한들,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설득은 어떠한 결실도 맺지 못한다.

켄이라는 남자를 소개하겠다. 그는 일본에서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음악 파티를 열고 그 자신은 디지털 그래픽을 기반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예술가 타입에 가까운 인물이다. 첫 만남은 일본이 아닌 한국의 내 사무실에서였다. 2018년 즈음부터 일본의 미디어, 아티스트들과 조금씩 왕래가 늘어가던 차에 켄을 포함한 그의 친구들이 작년 가을쯤 사무실에 들렀다. 특별히 서울에서 만나는 이들과 눈에 띄는 차이는 없었다. 으레 그러한 일을 꾸미는 혈기왕성한 남자들의 외양은 뭐로 보나 스타일이 독특할 거라고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켄이 다른 이들보다도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 흥미로워서다.

장민과 일본 친구들이 소파에서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사무실은 한남동 길목 좋은 곳에 있었기에 좁고 지하인데도 주변 친구들이 아지트처럼 부담 없이 드나들던 곳이라 나는 외려 그런 네트워크에 조금 피곤하다고 느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들어온 켄은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방금 노래 란도머(Randomer) 아니었어?”
“맞아”.
“나도 좋아하는 곡이라서”.

간단하게 몇 마디를 더 나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그의 이름과 옷차림, 들고 있던 필름 카메라 그리고 란도머를 기억한 채로 나는 도쿄 신주쿠에서 다시 켄과 만났다.

일본에는 기분 좋은 기억이 많다. 머리 크고 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 곳이 바로 일본인 셈인데, 당시의 출국은 홀가분한 여행이자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간 첫 출장이었으니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오랜 친구, 이제는 VISLA의 파트너로 더 익숙한 장민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진 기분이다. 그는 7년 전 처음 내게 제안했듯, 이때도 역시 도쿄로 떠나자며 말을 꺼냈다.

그 뒤로 약 5년간 일본의 다양한 도시를 여행했다.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외국에 한 번 나가기가 어려웠던 내게 일본은 묘한 감상에 젖게 한다. 낡은 커피숍, 골목 사이 즐비한 작은 야키토리 가게, 강가의 한적한 정취, 나를 스쳐 간 여러 인연까지. 가끔 한 번씩 올릴 글은 이들에 관한 가벼운 잡문이다. 이것은 실화거나 상상 또는 억측일 수도 있다.

나와 장민, 켄은 신주쿠 돈키호테 앞에서 다시 만났다. 긴 머리는 여전했지만 단정한 니트와 청바지 차림이 다소 낯설어 아마도 우리가 인사를 나눈 직후 장민이 그에게 말했다.

“켄, 오늘 스타일이 꽤 단정한데”.
“할머니 49제여서 본가에 다녀오느라. 좀 이상하지. 지금 막 도쿄에 왔어”.

그때 일본인도 49제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켄의 가족사로 이어졌다. 그는 양부와 함께 산다고 했다. 부모의 간섭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유달리 가족 이야기에 조심스러워하는 켄의 모습을 보니 일본에 사는 젊은 세대도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함께 신주쿠 길거리를 걸었다. 아홉 시쯤 됐을까. 신주쿠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웠다. 네온사인이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인만큼 후미진 골목은 캄캄했다. 나는 한때 외딴 어둠만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얼어붙은 뒷골목의 밤을 밟는 소리가 좋았다.

나를 이끄는 것은 환상.

켄이 데려간 골든가이는 작은 주점, 바가 빽빽이 늘어선 흥미로운 거리였다.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골든가이의 입구에서 흑인들이 일본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호객하고 있었다. 그들의 저질 농담을 들으며 수상한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니 어쩐지 혼란스러웠다. 켄은 허름하지만 술값이 싸지는 않다는 말과 함께 마치 터줏대감처럼 자연스러운 손길로 바 간판을 가리키며 간단한 소개를 덧붙였다. 노이즈 음악만 틀어준다는 바, SM 콘셉트의 바 등 온갖 종류의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간판은 형형색색이었지만 촌스럽지 않았고 디자인이 퍽 개성 있었다. 나와 장민은 한국에서 도무지 볼 수 없던 묘한 마성을 지닌 골든가이에 홀린 채 골목을 두 세 번씩 훑으면서도 쉽사리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골든가이를 모두 눈에 담고 싶었다. 사람 한명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샛길에는 그래피티와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간판들이 되게 낡았는데”. 내가 말했다.
“우리보다 더 늙은 바가 많을 거야. 어떤 느낌을 원해?”
“모르겠어. 죄다 멋진 것 같아”.

우리는 좀 전에 둘러본 노이즈 바에 들어갔다. 만석이어서 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켄이 즐겨 간다는 몇 군데의 바를 지나쳤지만 모두 휴무였다. 일요일에는 더러 안 여는 곳이 있다고 했다.

“여긴 어때. 타치바나 클리닉이라는 곳인데, 깜짝 놀랄 거야”.
“왜?” 내가 물었다.
“가보면 알아. 특이한 곳을 원한다고 했으니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결국 타치바나 클리닉에 들어갔다. 오래된 시골 병원 같은 간판을 걸어둔 이곳은 말 그대로 병원을 표방한 곳이었다. 180cm가 넘어가는 신장이라면 퍽 들어가기 불편해 보이는 입구 계단을 겨우 비집고 올라가니 클리닉의 전모가 보였다. 그릇, 술잔 등 모든 가재도구는 수술실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었다. 내부는 작았다. 계단을 올라 오른편의 입구로 들어가면 곧바로 보이는 곳에 바가 자리 잡았고, 그 옆에는 둘러앉아 마실 수 있도록 낮은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었다. 이곳에 오는 손님은 모두 서로 잘 모르더라도 결국 지척인 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은 단정한 백색 간호사 복장에 곤색 가디건을 걸친 채 한 남자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술을 홀짝대고 있었다. 주황색 후드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더 작게 보이게 하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고구마 소주를 음미했다. 남자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인사했다. 습관적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는 모습은 그가 변태일지도 모른다는 내 추측에 무게를 실었다.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눈썹을 죽 치켜올리는 이 남자의 이름은 다이스케였다. 그는 직업을 잃었고, 경마장에서 돈도 잃었다.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켄은 미소를 잃는 법이 없었다. 짧은 시간에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을 가진 것 같았다. 직장을 잃은 다이스케도 켄에게서 묘한 편안함을 느꼈는지, 우리는 곧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그의 신상정보는 켄이 하나씩 벗겨냈다.

다이스케는 시종일관 축 늘어진 채 자신의 유일한 장기는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이라는 듯 그저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마치 깡통 안에 얌전히 담긴 스팸처럼 그는 권태를 탐닉했다. 내년에 다시 와도 소파에 반쯤 누워있는 다이스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술을 마실 때 계속해서 다음 대화 주제라든지, 내일 일정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다이스케는 오직 자신의 앞에 놓인 고구마 소주를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주정뱅이는 순간에 몰두하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이다. 우리는 함께 케이팝이나 서로의 직업 같은 간단한 대화를 이어갔지만, 대부분의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간호사 ─ 그녀는 실제 간호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 는 술과 함께 감자 스낵, 양념에 무친 연어회를 조금씩 내주었다. 물컹한 연어살이 병원 용기에 담겨 있으니 거북했다. 왠지 소화도 잘 안 되는 기분이었다. 장민은 과자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연어를 먹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위스키와 소주 온더록을 번갈아 시켰고 켄은 맥주를 마셨다. 메뉴에는 타치바나 클리닉표 시그니처 칵테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모두 징그러운 이름이었다. 켄은 일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 한번 시도해보라고 권유했다. 장민이 흥미를 보였다. 그는 가장 괴상한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했다. 족히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길게 늘어진 이름의 푸른색 술은 비커에 담겨 나왔다. 비커 안에는 정체 모를 술과 진득한 갈색 덩어리가 있었다. 마치 실험 액체에 살점 하나를 집어넣은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장민이 말했다.
“안에 들어있는 건 대체 뭘까”.
켄이 사뭇 궁금한 눈치였다.
“일단 마셔볼게. 음…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켄, 너도 마셔봐.”

켄은 냄새를 맡고 잔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그 안에 담긴 갈색 덩어리를 조금 떼어먹었다. 그는 이게 아마도 단맛이 나는 일본 과자의 한 종류일 거라고 말했다. 마치 독극물이 있는지 확인이라도 한 듯 능숙하게 검수를 마친 켄이 안심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게도 권했다.

“권도 한번 도전하는 게 어때? 나쁘지 않다고”.
“아니, 괜찮아. 위스키 말고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거든”.
그들은 모두 웃었다.

켄의 시선이 다이스케에 머무는 동안 나는 켄을 봤다. 그는 줄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그것은 셔츠 포켓에 담뱃갑을 꽂고 늘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중년 골초의 인상은 아니었다. 켄은 어렸고, 찌들지 않았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젊은 예술가에게서 담배를 빼놓을 수 없는 풍경 같은 것이었다. 켄은 Hi-Lite라는 담배를 피웠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팩 담배로, 앙증맞은 녹색 디자인이 시선을 끌었다. 유독 일본 클럽에서 이 담배를 피우는 일본인을 자주 마주쳤던 기억이 있다.

“요즘 인기 있는 담배인가?” 내가 물었다.
“혹시 American Spirit이라는 담배 알아? 그게 한때 인기 많았는데 이건 American Spirit의 일본 버전 같은 거야”. 켄이 대답했다.
“왠지 힙스터들이 많이 피우는 것 같던데”.
“하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을 닮으려고 부단히도 애쓴 일본인은 그들의 꿈까지 움켜쥐려 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술이 떨어지고, 대화보다 담배가 더 오랜 시간 입에 머물 즈음 계단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올라온 그들은 직원과 잘 아는 사이, 아마도 단골일 터였다. 할리 데이비슨을 즐겨 탈 법한 행색을 한 두 남자가 계단 위로 올라왔고, 우리는 4~5명만 되어도 꽉 차는 이 공간에서 다음 손님이 오면 자연스레 비켜주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 장민, 켄 그리고 다이스케는 특별히 약속하지 않았지만 거의 동시에 일어나 계산했다. 켄이 보태라며 5천엔을 주었고, 우리는 다음 자리의 술값을 내겠노라 약속했다.

우리는 커버차지가 없고 평범한 바를 원했다. 다시 비슷한 크기, 제각기 다른 모양의 골든가이 골목을 기웃댔다. 간판부터 실내 장식, 음악까지 누가 봐도 스페인을 닮은 바라든지 가라오케 바 등 처음 골목에 들어왔을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붉은색 간판을 걸어 놓은 바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켄은 이곳이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모리야마 다이도가 즐겨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서성이던 두 명의 관광객이 켄에게 정말 이곳이 다이도가 오는 바가 맞냐고 물었다. 켄은 그렇다고 했다. 그들은 빛이 바랜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가방끈이 몹시 닳아 있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모리야마 다이도를 만나지는 못했다.

골든가이 탐색에 지쳐갈 때쯤 ‘No cover charge’라는 팻말이 입구에 걸린 바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창문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분위기가 사뭇 가정적이었다. 조명도 은은하고 마침 손님도 없었다. 안경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왜소한 체구의 여자가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큼지막한 나무 테이블 하나가 가게의 중심을 차지했다. 테이블 끝에 연결된 바에서 간단한 칵테일이나 안주를 내는 모양새였다. 그 뒤로 사람 한 명 겨우 지나다닐 만한 공간이 있었다. 나와 장민이 나란히 앉고 켄이 반대편에 앉았다. 이곳은 술값이 저렴했다. 좀 전에 속이 거북했던 이유는 병원 용기에 담긴 연어가 아니라 만 원이 넘는 위스키 한 잔 때문인 듯했다. 나는 타치바나 클리닉의 절반 가격인 똑같은 메이커스 마크 위스키를, 장민은 진토닉을, 켄은 레몬사와를 주문했다. 레몬사와 잔 주변에 흰 가루가 묻어있었다. 소금이었다. 켄에게 부탁해 한 모금 마셔보았다. 소금 덕에 더욱 감칠맛이 돌았다. 이제 좀 술맛이 살아났다. 우리는 주로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도쿄 커뮤니티 라디오 작업실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장민이 운을 뗐다.
“아, 사정이 좀 있어서. 괜찮아. 다시 구하면 되니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가?”
“집주인의 말이 좀 달라졌어. 뭐 어쩔 수 없지. 신경 쓰지 않아”.

나는 평소 각국의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콘텐츠를 들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세계가 가깝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국내 뮤지션들이 외국에 나가 그 지역의 로컬 라디오 플랫폼에서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 모든 상황은 인터넷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성과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잠시 한국을 떠올렸다.

Le-Bateau Lavoir. 여기랑 닮은 것 같지 않아?

켄은 이곳의 주인과도 금방 친해졌다. ─ 공교롭게도 두 군데 가게 모두 바텐더가 여성이었지만, 켄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성질의 사교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 가게 주인은 커다란 보울에 담긴 얼음 덩어리를 작은 방망이로 계속해서 치고 있었다. 대화에 크게 방해되는 소음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주 오랜 시간 해왔던 일처럼 능숙하고 무심하게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작은 각얼음으로 조각냈다. 보석을 다루는 세공사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켄이 왜 그런 방식으로 얼음을 만드냐고 물었다. 그녀는 골든가이에서 운영 중인 대부분의 바가 얼음덩어리를 직접 으깨서 칵테일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타치바나 클리닉의 비커 안에 담긴 위스키도 얼음 알갱이가 제각각이었다. 그저 전문적이지 않은 바의 특징 정도로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수작업을 고수해온 골든가이 바의 전통 같은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골든가이에 관해 물었다. 200개가 넘는 바가 이곳에서 영업 중이고 대부분 역사가 오래됐으며 하나의 길드처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한다, 오랜 관습에서 이어진 서로 간의 규칙과 배려로 운영되는 자치단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골든가이는 몇 년 전부터 불법으로 운영 중이라고 했다. 법이 바뀌었는데 적발 대상에 부합하게 된 모양이었다. 어찌 이렇게 태연하냐고 묻자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곳이니 별문제 없을 거라 했다. 우리는 다시 대수롭지 않게 다른 화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골든가이가 없어지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 듯했다. 나는 문득 골든가이 골목이 사라진다면 이곳을 좋아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골든가이를 찾는 이들도, 우리도 곧 그 사실을 잊어버릴 것이다.

대화가 지루해질 때쯤 우리는 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유튜브로 골라 문가에 걸린 TV로 감상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를 고르며 취향을 공유하는 일은 만국 공통인 듯했고, 가게 주인과 켄 역시 기꺼이 이 놀이에 동참했다. 서로 각자 좋아하는 로컬 뮤지션, 주로 록 밴드를 소개했다. 켄이 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하고 베이스를 쳤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물도둑의 “바닥”을 골랐다.
“나는 이 곡이 가장 좋아. 내 친구가 이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지.”
“물도둑이 무슨 뜻이야?” 켄이 물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온갖 술도 거덜내고, 여자도… 조금 위험한 이름이지”.
“하하. 알겠어. 재밌는데”.
“보컬이 특별해. 목소리를 들으면 왜 이 곡의 제목이 “바닥”인지 느껴져”.
“그러네. 거칠고 묵직해. 한국에 가면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자주 모이지는 않는 것 같던데? 운이 좋다면”.

그때 막 홀로 바를 찾은 남자가 널찍한 테이블의 지분을 차지하며 대화에 스며들었다. 그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했다. 벽에 걸린 TV를 통해 유튜브를 보면서 우리는 각자 곡을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유튜브 릴레이는 영화나 다른 주제로까지 넓어지기도 했다가 잠시의 침묵을 가져오기도 했다.

켄은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꼽았다. 최근 내가 본 일본 영화는 두 편인데, 모두 히로카즈의 것이었다. 새로 온 중년 남성이 말을 거들었다. 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모두 봤다고 했다.

“그는 원래 방송작가였어. 다큐멘터리 부류의 필름을 만들었지”.
내가 물었다.
“‘만비키 가족’도 보셨겠네요”.
“물론 봤지. 좋은 작품이야”.

술기운 때문인지 뭐라도 떠들고 싶었다. 낯선 관계일수록 상대에게 귀를 더 기울인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어눌한 영어에 집중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모르는 것에 관해서는 아는 척하지 않으려고 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예술이 마치 자신의 주머니 속 소지품인 양 떠드는 사진가가 있었다. 그는 술이 깼을 때는 왠지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가장 큰 패배는 결국 망각하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간을 관찰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풀어내죠”.
“‘가족’의 의미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

타지에서 국적이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퍽 재미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왔는지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말에서 굳이 권위나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흐르는 이야기가 자신에게 흥미롭길 바랄 뿐.

골든가이의 영업이 끝나는 세 시, 우리는 빠져나왔다. 이 거리의 예술적인 마력만큼 내 시선을 끈 건 시간을 주무르는 켄의 화술이었다. 골목 입구로 나오니 여전히 흑인들이 호객 행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켄보다도 더 강한 친화력을 가진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은 꽤 오랜 시간 따라오면서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 켄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와쿠라 ─ Wakura, 가부키초 근처에서 24시간 영업하는 라멘 가게 ─ 에 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않느냐고 친절히 답했다. 다시 흑인이 라멘 부티 ─ Ramen Booty ─ 는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는 웃으며 라멘집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림 │ 이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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