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는 국내를 넘어 해외 페스티벌 러버들에게도 주목받는 아시아 대표 음악영화제이자, 뜨거운 여름에만 만나볼 수 있는 독특한 영화제다. 올해 행사에서는 개막작 “자메이카의 소울: 이나 데 야드(Inna de Yard – The Soul of Jamaica)”를 비롯해 재즈 팬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영화 “블루노트 레코드(Blue Note Records: Beyond the Notes)” 등 다양한 음악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를 빛낸 많은 작품 중 특히 주목할만한 100% 다큐멘터리 필름을 소개한다.
파괴된 사회, 지키고 싶은 정체성 – “펑크족의 꿈(A Punk Daydream)”
영화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사는 주인공 에까(Eka)와 길 위에서 사는 10대 펑크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인도네시아 펑크 신(Scene)은 원주민 부족인 다약(Dayak)족의 문신과 그들의 영적 신념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영향받은 독특한 삶의 방식이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그들의 삶은 32년간 인도네시아의 군부 독재를 이끈 수하르토(Haji Mohammad Soeharto) 정권의 부패와 환경파괴, 자본주의의 여파로 파괴된 부족사회 등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통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 중 대부분은 총에 맞아 죽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펑크가 되었다. 군부 독재정권은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문신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인으로 억압했고, 따라서 하나의 문화로 문신을 받아들였던 원주민 사회까지 파괴하고 말았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펑크와 원시 부족의 연결고리는 타투다. 타투는 두 집단의 상징이자 그들이 믿고 따르는 신념이지만,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이는 아웃사이더의 낙인으로 치부된다.
영화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엮어 보여준다. 과격한 펑크 공연장과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펑크들을 배경으로 숲속의 고요한 부족 사회를 비출 때는 두 상반된 분위기가 연결되어 오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교차된 장면과 음악의 부조화는 이들이 처한 현실이 절대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적 장치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억압받는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정체성과 이루고 싶지만 너무 ‘머나먼 꿈(Daydream)’을 덤덤하게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오른 덕에 영화의 연출을 담당한 지미 헨드릭스(Jimmi Handrixx) 감독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서 영화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한국은 처음인가? 흥미롭게도 이름이 지미 헨드릭스(Jimmi Handrcixx)다. 본명인가.
지미 헨드릭스: 한국은 처음이다. 내 이름에 관해 설명하자면 일단 나는 벨기에 사람이다. 벨기에에서는 헨드릭스라는 이름이 상당히 흔하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건너온 이민자인데, 어쩌면 그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에서 따온 걸 수도 있겠다. 그 지미 헨드릭스도 알고 보면 벨기에 사람일지도 모르지. 하하.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스말루(Semalu)”, “홍콩 오페라(A Hong Kong Opera)” 등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인도네시아의 펑크 신(Scene)과 그 사회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미 헨드릭스: 나는 아시아를 좋아한다. 벨기에에서 멀리 떨어진 만큼 이국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 여행을 즐겼는데, 당시 주로 여행한 곳이 동남아 지역이었다. 여행하다 오래 머문 곳에서 단편영화를 찍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에서 영화를 찍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찍은 작품 “스말루(Semalu)”는 꽤 성공했다. 5일 동안 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찍었는데, 영화가 잘 되면서 새 작품을 찍을 예산이 생겼고, 이번에는 인도네시아의 길거리 아이들(Street Kid)을 조명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오래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어서 문화적, 언어적으로 친근감이 있었기에 더욱더 빠르게 매료되었다. 영화를 찍기 위해 인도네시아어를 배우는데 고작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펑크 신과 인도네시아 부족 간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는 타투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는데 특별한 연출 의도가 있었나.
지미 헨드릭스: 인도네시아 부족에게 타투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그런데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들어오며 인도네시아의 군부정권이 자본주의화, 도시화를 진행하면서 도시 사람들과 숲속 부족을 통제하기 위해 타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조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타투를 범죄와 연결해 무차별적으로 탄압했다. 따라서 타투는 하나의 사회적 트라우마가 됐고, 사람들은 타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서브컬처에서 타투는 자유를 위한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아나키즘, 자연주의로의 회귀에 대한 의도가 담기기 시작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위험하거나 힘들었던 점이라면.
지미 헨드릭스: 단 한 가지도 허가된 것이 없었기에 사실 모든 촬영 자체가 굉장히 위험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신이 함께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고가도로에서 버스 지붕 위에 올라간 장면은 경찰이 없는 점심 시간이라 가능했던 촬영이다.
영화를 완성하고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지미 헨드릭스: 없다. 물론 실수를 통해 배운 점도 있는데, 굳이 실수라고 한다면 영화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감동적인 부분을 조금 더 다듬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PD는 예산적인 부분에서 아쉬웠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궁금하다.
지미 헨드릭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건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정체성을 말하고 싶었다. 정체성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즉 본성적인 인간성과 사회적인 정체성이다. 특히 국가주의가 만들어내는 정체성이 가장 흥미로웠다. 우리의 정체성이 얼마나 복합적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최근 자신에게 영감을 주거나 관심이 가는 이슈가 있다면?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가?
지미 헨드릭스: 다음에 제작할 영화의 주제는 현대판 노예, 즉 노동자다. 왜 인간 사회는 언제나 계급사회여야 하는지 알고 싶다. 사실 노예제도는 현대에 와서 가장 심각해졌다. 옛날 식민지 제도의 플랜테이션이 지금도 존재한다. 현대적인 플랜테이션의 극심한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는 노예와 소비하는 인간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의 구조에 갇혀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현상을 담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 “샤이닝 그라운드(Shining Ground)”
“샤이닝 그라운드”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현실을 살아가는 래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제목이자, 매주 이들이 이어온 공연 브랜드이기도 하다. 래퍼 1세대를 대표하는 래퍼 원썬(One Sun)을 필두로 다양한 곳에서 모인 래퍼들은 철거, 영어 교사, 서빙, 공사장 등에서 일하며 마이크를 쥐기보다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이 영화는 이들과 함께 생활한 약 1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여느 음악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지는 현실과 음악과의 괴리를 과장 없이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냈고, 무엇보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래퍼들의 뮤직비디오는 참신한 시도로,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영화는 무명 래퍼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MC 메타, MC 스나이퍼, 딥플로우 등 성공을 거머쥔 래퍼들의 지난 에피소드를 직접 들을 수 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하지만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이들은 계속해서 힙합 신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지난해 단편 “원썬”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은 장동주 감독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영화 제작 지원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다시 한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방문했다. 이번 작품은 후배들의 삶을 담아보자는 래퍼 원썬의 의견으로 제작되었으며, 실제로 원썬은 작품의 아이디어와 총괄 프로듀서를 담당하기도 했다. 원썬과 장동주 감독에게서 이번 작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작년 영화 “원썬”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참석했는데 이번이 벌써 2번째다. 소감이 어떤가?
장동주: 감회가 새롭고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준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썬: 20년간 랩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영화배우가 되어 배우로서 무대인사를 하는… 다소 황당하지만, 역시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JIMFF2018 음악영화 제작 지원 프로젝트 지원작에 뽑혔는데, 당시 소감이 궁금하다.
장동주: 기뻤다.
원썬: 내가 볼 땐 별 감흥이 없었어. 이 새끼 지가 될 거 알고 있었어. 처음에 수많은 경쟁작 뚫고 본선에 올라갔을 때는 엄청나게 고무됐는데, 그 이후에는 뭐 이 영화가 이 정도인가 싶은 뉘앙스를 풍겼다고.
장동주: 저 무대 공포증 아시잖아요. 형님 98년 돕 보이즈(Dope Boyz) 때처럼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습니다.
원썬: 그래? 보는 사람도 없는데 떨었어?
장동주: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위해 문항을 1번부터 24번까지 준비했는데 1번부터 말 안 하고 5번부터 말해서 순서가 다 꼬였다. 다들 ‘뭐지?’ 싶었을 거다.
영화 “원썬”의 평이 상당히 괜찮았다.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
원썬: 별 반응 없었다. “원썬”도 그렇고 “샤이닝 그라운드”도 그렇고 다 미완성작이다. 우리가 원했던 꽉 짜인 느낌이 아니다. 영화제 상영본은 그야말로 날것의 느낌이라면, 뭐 그것도 그것만의 느낌이 있겠지만 잘라내고 싶은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여하튼 딱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봤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기에 계속 시도해보려 한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이번에는 원썬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후배 래퍼, 즉 샤이닝 그라운드의 래퍼들을 찍었는데 감독과 원썬 모두 동의한 건가?
장동주: 원썬이 아닌 다른 래퍼들을 담았던 이유는 이들의 삶과 나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류가 다를 뿐 우리 모두 계속해서 뛰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 같아 제작하게 되었다.
원썬: “샤이닝 그라운드”는 2011년에 런칭한 공연 브랜드다. 올해 초까지 거의 4~5년간 한주도 쉬지 않고 공연했다. 비록 유명하진 않지만, 아마추어 공연이 아닌 제대로 된 언더그라운드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한국의 유일무이한 정기공연이다. 처음 후배들의 공연을 봤을 때는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 갈 길이 멀고 쌓아야 할 짬이 무지하게 많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들을 보는데 속에서 우러나오는 멋이 제법 보이기 시작해서 장 감독에게 이들을 찍을 것을 제안했고, 장 감독은 의심의 여지 없이 촬영하겠노라 결정했다.
감독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 래퍼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나?
장동주: 생각보다 래퍼들과 빨리 친해졌다. 우여곡절도 매우 많았지만 이내 마음을 열고 단단해졌다. 살다 보면 대부분 비슷한 사람들과 사귀기 마련인데, 그런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들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막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하게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이 배웠다.
촬영 중 위험하거나 힘든 점이 있었다면?
장동주: 촬영 당시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많았다. 한번은 앞이 1미터도 보이지 않는 안개 때문에 도저히 운전할 수가 없었다. 사실 딱히 힘들었던 점은 없다. 원썬 형이 많이 도와주었다. 나는 사람을 다루는 점에서 많이 부족했는데, 그 부분에서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원썬형이 힘이 됐다. 내 표정을 보면 모를 수가 없다. 또 멤버들과 크게 싸운 적도 있었는데, 형이 다시 모아줬다.
원썬: 그랬냐? 다들 힘들었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안 힘드니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안 힘드니까 사는 게 아닌가? 지나고 나서야 이런 일 저런 일 있었네 하는 거지, 그때그때 뭐 예측하겠어? 힘들었네, 고생했네, 좆까고 할 수 있으니까 했잖아. 뭘 그렇게 울어. 그렇게 얘기해도 알 새끼들은 다 알아. 해본 새끼하고 안 해본 새끼의 차이점이 있지.
그나저나 왜 싸운 건가?
장동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친구들도 싸우는 것처럼.
연출 과정에서 부딪힌 점은 없나.
촬영감독 이윤성: 진행은 원썬 형과 장동주 감독이 했다. 간혹 카메라가 꺼진 뒤 더 좋은 스토리가 나와 아쉬웠고, 매번 집에 있다가 원썬 형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갑자기 하던 일을 접고 촬영하러 간 적이 많았다. 이외에는 없었다.
원썬: 연출이 없는 상황을 그냥 가져다 담아낸 건데, 아마 실제 촬영 과정에서는 임기응변이 많이 필요하니까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리얼 다큐멘터리임에도 뮤직비디오가 들어가 있다. 래퍼들의 영상은 이번 영화를 위해 직접 찍었나?
장동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무명 래퍼라고 해서 멋지게 보이고 싶지 않겠는가? 이건 사회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철저히 중립을 지킬 필요도 없다. 연출하더라도 내용에 손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연출했다. 뮤직비디오 외에도 중간에 카메라를 더 많이 써서 다양한 구도에서 촬영했다.
MC 메타, MC 스나이퍼, 딥플로우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어떻게 섭외했는가?
장동주: 나는 직접 섭외할 방도가 없었는데 원썬 형이 각 래퍼에게 직접 연락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설득했기에 섭외할 수 있었다.
원썬: 그냥 전화해서 “한번 해줘”라고 했다.
장동주: 모든 이들이 정말 진지하게 촬영에 임해줘서 눈물이 날뻔했다. 이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래퍼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관객이 많이 좋아해 주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촬영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
원썬: 촬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태프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갈등이 없었다. 방향성에 관해서 의견을 구하면 같이 논의하고,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내 타이틀은 프로듀서로 달고 있는데 애초부터 프로듀서를 해야지, 생각하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원썬은 앞으로 샤이닝그라운드에서 어떤 지향점을 목표로 활동할 것인가?
원썬: 1차적인 목표는 계속 지금처럼 해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거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을 벌려면 더 좋은 음악을 후배들과 함께 만들어 내야 한다. 개개인이 잘되면 당연히 공연도 잘 될 것이고.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고군분투한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고 싶은데. 일하고 뭐 고생도 하고. 근데 뭐 고생 안 하고 사는 놈이 어딨나. MC 메타 말대로 이런 즐거운 취미 생활 계속하고 싶다 이거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장동주 감독은 앞으로도 다큐멘터리를 계속 찍을 계획인가? 그렇다면 어떤 이슈를 다루고 싶은가?
장동주: 내가 힙합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는 힙합을 좋아하고, 미력하게나마 건강한 힙합 신에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일단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의 목표는 넷플릭스(Netflix)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 만들다 보면 되지 않을까? 원썬 형처럼 오래 하고 싶다.
원썬: 연출하려면 어려울 것 같은데?
장동주: 다큐보다는 쉬울 것 같습니다. 형님.
원썬: 임마, 나 같은 새끼는 그냥 찍으면 스토리가 되는 거야. 나 같은 새끼가 근데 없잖아. 나 같은 새끼를 억지로 만들려면 어렵잖아?
장동주: 다음에는 “원썬”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재편집해서 시리즈로 연재할 예정이다. 원썬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유튜브로 재밌게 그려낼 것이다.
원썬: 그니까 이 새끼가 영상 찍어서 돈 벌고 싶다 이거네.
장동주: 지금은 원썬 형이 좋고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다. 좋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원썬: 너는 그냥 네 식구들 잘 챙겨. 넌 가진 것 없어도 애들 챙겨주고. 그게 공평한 거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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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최승원
통역 │ 이우림
사진 │ 한선택, 윤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