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은 어느새 문화 아이콘을 넘어 선지자적인 입지에 도달한 듯하다. [Channel Orange]와 [Blonde]의 성공 이후,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다시금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그는 마치 속세를 벗어난 성자를 연상케 했고, 소리와 언어로 세대를 관통하는 음악을 빚어온 그의 커리어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전설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지난 2018년 11월 16일,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공개 계정으로 전환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지난 1월, GQ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과 진짜 내 모습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다고 느꼈다(I feel like there was dissonance between how I was seen by the audience and where I was actually)’고 계정 공개의 이유를 밝힌 그는 더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만나서 자신의 이미지를 조정하고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음악계의 가장 신비로운 아이콘이 자신의 신비주의를 벗어던질 것을 예고하는, 퍽 인상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약한 흉터와 속살을 드러내는 그의 음악처럼, 당당히 커밍아웃(Coming out)하고 힙합, R&B 신(Scene)의 전통에 도전했던 순간처럼 그는 다시 한번 용감하게 자신의 보호막을 벗어던지며 새로운 시기에 돌입했다.
인스타그램을 공개한 뒤로 프랭크 오션은 실제 수많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공개해 왔다. GQ, 게이레터(Gayletter), W를 비롯한 수많은 잡지의 커버를 장식했으며(누가 프랭크 오션이 보습 크림에 관해서까지 말하리라 예상했을까?), 2019년 멧 갈라(Met Gala)에서는 행사장 직원을 방불케 하는 의상으로 다양한 밈(Meme)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사랑한 몇몇 팬은 레딧(Reddit) 커뮤니티에서 ‘탈덕’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이미 수면 위로 올라온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물론, 이런 대중친화적 활동이 그의 창작 활동에 악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공개하는 일에 신중을 기하지만, 올 한 해 그는 굶주린 팬들에게 꽤 여러 번 ‘먹을거리’를 던져줬다. 그는 새로 출간된 배리 젠킨스(Barry Jenkins)의 ‘문라이트(Moonlight)’ 책 서문을 썼고, 2016년에 발매한 ‘Boys Don’t Cry’ 매거진을 재출간했으며, 최근 W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클럽 사운드로부터 영감을 받은 앨범을 만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굴에서 걸어 나온 프랭크 오션은 언제나 대중을 만족시킬만한 결과물을 쥐고 있었고, 수많은 팬과 예술가의 칭송을 받았다. 신비주의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온전한 예술 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완벽한’ 아이콘이 되고 싶어 숨어든 피난처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실패를 모르던 프랭크 오션의 커리어에 최근 오점 하나 생긴 듯하다. 지난 10월 17일 프랭크 오션이 뉴욕에서 진행한 ‘블론디드(Blonded)’ 브랜드의 첫 클럽 파티, PrEP+에 관한 이야기다. ‘현존하는 가장 성공적인 에이즈(HIV-AIDS) 예방법인 프렙(PrEP)이 80년대 뉴욕의 클럽 신(Scene)에 이미 존재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PrEP+는 80년대의 레이브 및 퀴어 문화를 완벽하게 현대로 옮겨오는 야심 찬 시도였다. 잘 알려진 대로 에이즈는 80, 90년대에 수많은 퀴어 아티스트와 뮤지션의 목숨을 빼앗으며 뉴욕 문화예술계에 큰 공백을 만들었기에, 프랭크 오션이 밝힌 대로라면 그의 파티는 차별 없이 안전한, 퀴어 문화에 기반한 행사가 됐어야 할 터. 더욱이, 행사 시작 24시간 전, 초청받은 소수에게만 티켓링크가 주어진 이벤트는 ‘촬영 금지’, ‘동의 없는 신체접촉 금지’, ‘차별 금지’ 그리고 ‘댄스 플로어에서 춤만 출 것(Dancefloor is for dancing)’의 조항을 공지하고 진행되었다. 포스터부터 조항까지, 퍽 그럴싸했다. 심지어 프랭크 오션이 직접 퀴어 문화를 지지하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라는 점에서 진정성을 띤 듯했다. 요즘 핫하다는 행사라면 으레 그렇듯이 행사 장소와 라인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벤트는 삽시간에 SNS를 통해 확산되었고, 많은 이들이 성공적인 파티 브랜드의 탄생을 예견했다.
프랭크 오션의 초대를 받거나 어떻게든 초대장을 손에 쥔 이들의 후기에 따르자면 PrEP+ 파티는 퀸즈(Queens)의 문화공간 녹다운 센터(Knockdown Center) 지하에 위치한 베이스먼트(The Basement)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부판 부판(Bouffant Bouffant), 상고(Sango), 저스티스(Justice) 그리고 셰렐(Sherelle)이 음악을 틀었고, 프랭크 오션 본인도 잠시 스테이지에 올랐다고. 훌륭한 파티가 그려지는 라인업이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은 실패에 가깝다.
현재 SNS에 올라온 대부분의 후기 글은 파티에 실망했다는 요지의 글이며,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안전 요원의 입장 절차가 까다로웠다거나 초대 인원이 극히 소수였다는 등의 불평은 그나마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주된 비난은 퀴어 문화 이해 부족을 가리키고 있기에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공통적인 증언에 따르면, ‘퀴어 댄스파티’를 내세운 홍보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현장에는 퀴어가 많지 않았으며, 인종 비율 또한 썩 다양하지 않았다고. 또한 퀴어 댄스파티는 일상적인 환경에서 쉽게 성적 접촉을 할 수 없는 퀴어들을 위해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섹스를 비롯한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행사 공간에서 그러한 퀴어 댄스파티만의 분위기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퀴어 참석자들은 디제이 라인업에서 퀴어 디제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며, 행사의 헤드라이너 격인 저스티스가 많은 차별의 가해자인 백인 이성애자(Straight)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행사가 그 상징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셋리스트에서 퀴어 문화를 대표하거나 80, 90년대의 뉴욕 신을 상징하는 보그 비트(Vogue Beats) 혹은 하우스(House) 음악은 찾아 보기 힘든 데다가 행사 참석자들은 파티의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하입비스트(Hypebeast)’들이었다고. 행사의 참석자들은 심지어 이번 행사가 프렙에 사용되는 고가의 약물 트루바다(Truvada)를 만드는 제약 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시스(Gilead Sciences)의 후원을 받은 홍보 행사라는 가설을 확산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파티였지만, ‘퀴어 댄스파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과거의 영광과 광기를 재현하지 못한, 빈 껍데기 같은 행사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행사에서 공연한 아티스트의 처우에 있을지도 모른다. 뉴욕 디제이 섹시리크(SXYLK)는 행사 디제이 라인업으로 섭외되어 당일 플레이할 믹스셋을 사운드클라우드에 게시하는 등 높은 기대를 표했지만, 정작 행사장에서 깜짝 게스트였던 저스티스에 밀려 플레이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백인 이성애자 헤드라이너’에 밀려 퀴어 디제이가 제대로 공연을 하지 못한, 웃지 못할 사건이다. 저스티스 섭외는 음악적인 면에서 행사의 질을 높여주었겠지만, 행사 콘셉트와 의도를 고려했을 때 분명한 악수(惡手)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어느새 프랭크 오션이 그 이름만으로 기대감을 모으는 몇 안 되는 브랜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이름은 완벽주의와 작가주의가 상징하는 모든 것이었고, 최고의 영감과 철저한 자기 검열을 걸쳐 나온 그의 결과물은 실패를 몰랐다. 그렇기에 그의 실패는 더욱더 많은 팬을 실망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실패가 프랭크 오션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는 앞서 말했듯, 그저 대중이 보는 완벽주의적 이미지와 진짜 자신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중인 것이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으나 프랭크 오션의 파티 브랜드는 이제 갓 시작했을 뿐이며, 그야말로 충실한 퀴어 파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셀레브리티 중 한 명이다. 80, 90년대 뉴욕 클럽 신에 불어닥친 에이즈의 병마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이자 에이즈 행동주의자인 액트 아웃(ACT OUT)의 피터 스탤리(Peter Staley)는 프랭크 오션의 파티에 관해 묻는 페이퍼 매거진(PAPER Magazine)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결국, 메시지 전달 방식의 사소한 문제보다 프랭크 오션이 프렙과 HIV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더 집중하고 싶다. 그는 100명의 백인 동성애자 프렙 운동가들보다 훨씬 많은 젊은 흑인 동성애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음악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팬이라면 이번 행사에서 그의 다음 행보에 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촬영 금지 조항은 어기라고 있는 법. 행사 전경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한 이들 중 몇 명의 게시물에서 프랭크 오션의 다음 앨범 수록곡으로 보이는 트랙이 발견되었다. 한국 시각으로 10월 20일 정식 공개된 이 곡들은 차기작의 수록곡으로 예상되는 “Cayendo”와 “Dear April”. 파티의 라인업이었던 상고와 저스티스가 각각 리믹스로 참여했으며, “클럽에서 영향받았다”는 과거 발언과 일치하는 음악이다. 아직 공식 음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달아 송출된 블론디드 라디오 8번째 에피소드(Blonded Radio 008)에서 공개한 랩 싱글 “DHL”과 함께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서 이슈 몰이를 하는 중. 파티에서 공개한 “Cayendo”와 “Dear April”이 “DHL”과 다른 결을 가진 만큼, 프랭크 오션이 PrEP+ 파티를 블론디드 라디오와 같이 자신의 결과물을 공개하는 또 하나의 창구로 활용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겠다. 방이나 자동차 안에서 노래하는 새드 보이(Sad Boy) 프랭크와 클럽에서 관객과 함께 새 음악을 즐기는 프랭크는 예술관의 확장을 암시하는 완전히 다른 두 모습이다.
끝으로, 프랭크 오션이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행사 다음 날 자신의 텀블러(Tumblr) 계정에 올린 글을 하단에 소개한다. 혹자는 단순한 변명일 뿐이라고, 혹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언제나처럼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프랭크 오션은 어떤 형태로든 성 소수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낼 것이라는 점. 한 번의 실패로 주눅 들기엔, 프랭크 오션의 용기와 신념을 우린 계속해서 봐오지 않았나.
길리어드 사이언시스로부터 후원받지 않음.
오직 블론디드(Blonded)의 자체적인 지원으로 진행됨.
우선, 이 논란부터 치워두자(Let’s just get that out of the way).70년대 후반과 8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중심으로 한 클럽 문화는 글과 구전으로 수없이 자주 전해져 내려온 특별한 주제야. 스튜디오54(Studio 54)와 댄스테리아(Danceteria) 1호점처럼 스타로 가득 찼던 중심가의 클럽부터 머드(Mudd)와 파라다이스 개러지(Paradise Garage) 같은 다운타운 클럽까지. 방문한 사람들, 음악, 스타일 그리고 규제의 부재 같은 것 모두, 하하. 나는 당시의 뉴욕이라고 하면 레이저와 디스코 조명보단 수많은 범죄와 기아, 그리고 에이즈 발병으로 인한 클럽 문화의 큰 축, 즉 게이 커뮤니티의 말살을 떠올려. 오늘날, 그러니까 2019년에는 매일 한 알씩 먹으면 HIV 감염률이 90% 미만으로 떨어지는 약이 있어. 그리고 이 약은 2012년에 FDA로부터 승인도 받았지. 물론 내 생각에도 이 약의 말도 안 되는 가격에는 악랄한 전략이 존재하는 것 같고,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것 같아. 하지만 팩트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이 약의 접근성을 떨어트리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바로 ‘인식의 부족’이라는 점이야. 클러빙의 시대로부터 영감을 받은 빛과 음악의 밤을 PrEP+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퀸즈의 오래된 유리 공장 지하에 위치한 클럽을 디자인하면서 ─ 금요일마다 끝내주는 테크노 파티를 여는 더 베이스먼트에게 감사를! ─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는 이 약과 같은 것이 너무나 많은 생명과 기대가 사라진 그 시대에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기 때문이야. 나는 예술가고,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상상하는 것은 내 직업의 핵심이자 즐거움이야. 이 파티를 열기 며칠 전, 이 주제에 대해 내 팀과 함께 이야기를 해봤는데, 건축가 한 명이 프렙은 이미 대중한테 잘 알려진 약물이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해서 내 친구에게 ─ 이름은 거론 안 할게 하하 ─ 프렙이 뭔지 아냐고 물어봤는데, “그거 비아그라(Viagra) 비슷한 거 아니냐”라고 대답하더라고. 지난 몇 년간 사귀었던 내 전 애인도 LA의 게이클럽에서 처음 만났던 날 프렙을 모른다고 얘기했거든. 대중적인 인식이라는 건 항상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기 마련이야. 어쨌든, 뭐 이건 내 불만이고. 친구들이 이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뻐. 어젯밤 나와서 우리와 함께 춤췄던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너희 모두 아름다웠고 에너지가 완벽했어! 어젯밤에 공연해준 부판 부판, 상고, 저스티스 그리고 셰렐도 고마워. 걔네들 진짜 잘하더라. 아, 그리고 하나 더. 이게 단순한 홍보 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봤는데, 시끄러워 새꺄. 다음에 술이나 한잔 하러 나와, 내가 바(Bar)에다가 네가 원하는 만큼 자리 만들어줄 테니까. 모두에게 내 사랑을 전해. 다들 안전하고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