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거의 노래 : Jesse You – ‘Efficient Space’

VISLA의 새로운 피처 시리즈, ‘디거의 노래’는 서울의 바이닐 디거를 좇아,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음악, 노래를 추천받는 시리즈다. 그 첫 회로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디제이로 활동하며 다양한 베뉴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제시 유(Jesse You)의 작업실을 찾아가, ‘단 하나의 레이블’을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호주의 레코드 레이블 ‘이피시언트 스페이스(Efficient Space 이하 ES)’에서 공개한 음반 여섯 장을 꺼냈다. 뭐든 금방 싫증 내서, 한 레이블을 진득하게 파고드는 게 익숙하진 않지만, ES만큼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행보를 쭉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며 덧붙여 말했다. 호주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과 레이블 ES를 두고 나눈 대화, 하단에 첨부하니 음악과 함께 찬찬히 살펴 보자.


많은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는데, 굳이 ES 레이블을 고른 이유가 있나?

ES는 기본적으로 리이슈 레이블이다. 요즘 과잉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나는 타 리이슈 레이블과 비교했을때, 리이슈의 관점에 확고한 방향성이 있다. 단순히 다시 화제가 되거나 가격이 치솟은 앨범을 리이슈하는 게 아니라 호주 로컬의 미발매 트랙을 엮어서 공개한다. 그리고 컴필레이션에 참여한 아티스트의 미공개 트랙을 음반으로 엮어 발표하는 등의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디자인 또한 여타 다른 레이블처럼 표지를 그대로 내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작업을 거친다. 이런 요소들은 지금의 레이블을 꾸려나가는 데 진보적이며 상징적인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단순 리이슈가 아니라 동시대성을 부여하는 거지.

그리고 음악에도 트렌드가 있는 것처럼 리스너 사이에서도 유행이 있다. 예를 들어 엠비언트에서 다크 웨이브, 벨지언 뉴 비트에서 브레이크 비트 그리고 지금 트랜스로 넘어온 것처럼, 시대의 유행이 리스너 사이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ES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걸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닐 듯하다. 컴필레이션이라는 게 한순간에 나오는 건 아니잖아. 이를 통해 또 한 번 동시대 타임라인을 자연스레 강조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흥미로우니까. 암스테르담이나 런던도 아닌, 호주의 레이블이라니.

리스너 사이에서 피어난 유행, 흥미로운 주제다.

메인스트림의 유행은 누군가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언더그라운드 리스너 사이로 부는 바람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어, 너도?” 같은 느낌이지. 파티의 영향도 클 것이다. 파티에 온 리스너가 음악을 듣고 좋으면 샤잠도 한번 켜보고, 비슷한 거 찾아 듣기도 하고, 믹스 셋도 들으며 라이브러리를 넓혀가는 거지. 그게 리스닝의 재미가 아닐까?

이제 라이브러리 중, ES의 디스코그라피를 시간 순서대로 추천받고 싶다. 소장한 ES의 첫 앨범 [On The Moon]은 어떤 앨범인가?

브레이든 슐라거(Braden Schlager)의 하우스, 발레아릭을 넣은 음반으로 일단 커버가 예쁘다. 수록곡 모두 실제로 모두 1990년에 만들어졌고, ES는 당시 미발매 곡인 “King of Comedy”를 묶어낸다. 그래서 [On The Moon]을 완전 리이슈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다.

[On The Moon]

호주의 유전자에 발레아릭이 기본으로 탑재된 건가. 후술할 안드라스(András)는 레이블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ad)’와 동명의 발레아릭 앨범 [House of Dad]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호주에게 발레아릭이란 뭔가 수맥 같은 존재 같다. 묘하게 현재 호주 전자음악 신과 맞닿아있다. 안드라스 같은 뮤지션의 음악 또한 [On The Moon]과 마찬가지로 하우스도 아니고 발레아릭도 아닌 어딘가 오묘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호주의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신이 컸던 것 같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대부분이 포스트 펑크를 배경으로 삼았고, 그래서 ES는 포스트 펑크와 신스 웨이브에 애정을 품은 것 같다. 발레아릭과 더불어 중요한 뿌리 같은 느낌이다.

다음으로는 컴필레이션 [Midnite Spares]을 소장하고 있다.

이건 아방가르드 팝을 골조로 삼은 컴필레이션인데 부기, 포스트 펑크, 하우스 등등 별별 트랙이 다 담겼다. 방금 말한 [On The Moon]은 한 명의 아티스트가 90년대 공개한 비공개 음악 하나를 묶은 거라, “그냥 재밌네”라고 넘긴 반면, 앨범 [Midnite Spares]에서는 ES가 진짜라고 느꼈다.

[Midnite Spares]은 80년대 당시, 호주의 엑기스를 푸짐하게 담은 앨범이다. 호주 언더그라운드를 가장 잘 알려주는 교보재랄까. 그래서 ES의 릴리즈 중 한 장만 고르라면 [Midnite Spares]를 고른다. 여기에 안드라스, 인스턴스 피터슨(Instant Peterson)의 시선이 일부 개입됐겠지. 이 둘이 이 앨범을 일구기 위해 수많은 로컬 아티스트와 대화하고 마스터 테잎을 구하러 발로 뛰는 모습을 상상하니, 되려 더 가치가 있다.

[Midnite Spares]

[Oz Waves]는 어떤 앨범인가?

이 또한 타인의 시선이 개입된 컴필레이션, 스틸 보너스(Steele Bonus)라는 디제이와 디자이너를 겸업하는 사람이 진행했다. [Midnite Spares]가 지하 1층이라면 [Oz Waves]는 포스트 펑크, 인더스트리얼로 좁혀져 조금 더 어둑한 지하 3층의 느낌을 준다. 덥의 요소로 베이시한 중저음이 부각되는 앨범. 나는 이걸 어둑한 밤에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Oz Waves

[Oz Waves] 앨범에서 추천하고 싶은 트랙이 있나?

“Jesus Krist Klap Rap”. 의도된 로파이(Lo-fi)가 아닌 자연스럽게 묻어난 레알 로파이, 진짜 DIY로 제작된 로파이인 거지. 최근 모과(Mogwaa)에게 이 트랙을 보내면서 이런 소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본 게 기억난다. 사운드 구성 같은 게 복잡한 게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에서 그냥 최선을 다한 느낌.

마이클을 비롯한 안드라스, 스틸 보너스는 과거의 뮤지션과 어떻게 협업할 수 있었을까.

마이클이 인터뷰에서 “전 세계를 다루는 컴필레이션을 만들려면 라이선스 따는 과정만 몇 년이 걸린다. 반면 한 음반을 위한 호주 로컬 라이센스를 따는 데는 몇 달정도가 소요될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마이클이 이미 호주에서 큰 노력을 들이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커뮤니티 라디오에서 방송을 했으니까. 그 라이브러리 안에서 미리 관계를 다져 놨다던가, 비슷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소개받았을 수도 있겠다. 그런 방식으로 컴필레이션을 빚어내지 않았을까? 물론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았을 거다.

호주의 음악. 뭔가 생소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영국의 펑크와 동시대 활동한 하드록 밴드 AC/DC가 시드니에서 발족한 것, 그리고 영어권 국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멀지 않은 신인 것 같다. 하지만 호주의 포스트 펑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영국의 포스트 펑크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 이게 재밌는 포인트다. 한국에서 발표된 디스코가 서로 공통점을 공유하듯, 호주의 포스트 펑크도 하나의 유전자처럼 일관된 결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래서 [Oz Waves]는 하나로 들린다. 그 시대에 클럽에서 공연이 펼쳐졌다고 예를 든다면, 그날 다 나왔을 것 같은 결이 있다.

다음 앨범 [1/66]은 어떤 앨범인가?

엔디 랜츤(Andy Rantzen)의 덥으로 채운 앨범. 앤디 랜츤의 경우에는 이치 이 엔 스크래치 이(Itch-E & Scratch-E)로 꽤나 릴리즈가 많더라. 댄스 음악 쪽에서는 명망이 있었던 사람인 것 같은데, ES를 통해 나오는 결과물은 이치 이 엔 스크래치 이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덥을 비롯하여 다른 결을 가진 음악을 엮어놓은 걸 보고 생각했다.

[1/66]

[1/66]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난 “Rock Steady”를 항상 레게 낫 레게(Reggae not Reggae) 파티에 가져가서 틀었다. 디스코 낫 디스코와 같은 맥락으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음악, 덥인데 포스트 펑크와 겹치기도 하니, 다른 장르로 넘기기 위한 교두보로 재생하기 딱 좋다. BPM이 100 정도라 틀기도 적당하고. 이런 베이스는 누구나 좋아할 것 같다.

엔디 랜츤, ES의 디스코그라피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어떤 인물인가?

하우스에 덥의 요소를 가미하여 레이브 트랙을 제작하는 인물이다. 지금보다 훨씬 뜨겁던 시절엔 하우스에 덥의 요소가 가미된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 지금은 ES의 총아 같은 존재랄까. 물론 호주 레이브 신에 중요한 대선배지만, ES는 엔디 랜츤을 데리고 앨범을 공개하며 존중을 표하는 거지. 뭔가 상상이 된다. 스틸 보너스나 안드라스가 한 곡 달라하고, 엔디 랜츤이 곡을 쿨하게 던져주면, “형님 좋은데요?”라면서 컴필레이션이나 EP에 수록하는 게 아닐까?

다음으로 소개할 앨범은 뭔가?

[3AM Spares]. 이 또한 안드라스와 인스턴스 피터슨이 진행한 하우스, 테크노 위주의 컴필레이션으로 3시라는 이름처럼 새벽의 레이브 풍경을 명확히 담았다고 생각한다. 역시 깔끔하게 다듬어졌다기보단 거친 면이 있는 앨범이다.

나는 1번, FSOM의 “Resist the Best”가 진짜 멋있는 트랙이라 생각한다. 일단 FSOM, ‘Future Sound of Melbourne’이라는 약자부터 간지잖아. 아마도 ‘Future Sound of London’을 위시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FSOM과 엔디 랜츤이 함께한 스피릿 싱글 [Track Six / Harmonic Eye]가 최근 발매됐다. ES는 컴필레이션을 통해 또다시 뮤지션을 재발견하게 된 거지. 멋진 선순환이다.

[3AM Spares]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ES가 공개한 앨범 스티브 하이트(Steve Hiett)의 [Down On The Road By The Beach]는 어떤 앨범인가.

사진가로 정점을 찍은 스티브 하이트의 1983년 유일한 디스코그라피. 너무 멋진 앨범이라 뭐라 운을 떼야할지 모르겠다. 시티팝이라 소개하긴 싫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발레아릭도 아닌 것 같고, 엠비언트 요소와 기타가 섞인 게 드림 팝 같기도 하다. 앨범은 해변을 그렸지만, 계절을 그리 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시티팝 같은 패션적인 이미지로 소비될 게 안타까울 정도로 멋진 앨범이니, 모두 한 번은 들어봤으면 좋겠다.

[Down On The Road By The Beach]

들어본 바로, 드림팝으로 소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축축한 공간계 이펙터가 돋보이더라.

드림팝 낫 드림팝?

스티브 하이트는 영국인이다. ES가 발매한 음반 중 호주 외 다른 신을 리이슈한 적이 또 있었나?

프랑스의 포스트 펑크와 아방가르드 재즈를 리이슈한 적이 있는 거로 안다. 스티브 하이트 또한 프랑스를 기반으로 둔 사진가다. 하지만 이건 프랑스가 아니라, 일본을 향한 관심에서 발전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이 앨범 자체가 일본에서 녹음, 발매한 음악이고 마이클이 일본 음악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니까.

앞서 공해 같은 리이슈 레이블이라고 했다. 작년 비카인드 오브 스핀(BE KIND RE-SPIN)에서도 같은 이야길 했는데, 리이슈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리이슈를 사는 행위를 멈췄다. 특히나 정당한 이유가 없는데 나온 앨범이라면 ‘이걸 왜 굳이’라고 느낀다. 바이닐을 과잉으로 찍고, 무작정 바이닐을 사는 행위에 큰 의미가 있나? 사실 지금 나오는 음반의 과반수 이상, 혹은 대부분이 디지털로 만들어지고 있다. 꼭 바이닐을 듣는다고 리스너로서 우월한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이 존재하는 음반은 웬만하면 바이닐을 구매하지 않고 후순위로 미뤄둔다. 베뉴에서 자주 트는 음악 또한 최근엔 디지털 릴리즈를 더 많이 산다.

사실 스티브 하이트 역시 구매를 망설였다. 일단 너무 패셔너블하게 소비되기 좋은 앨범이다. 일본, 패션 포토그래퍼, 해변 같은 요소들. 그런데 7인치 증정에 혹해서 다시 들어보니 그런 생각을 가진 게 너무 미안할 정도로 좋았다. 너무 훌륭한 앨범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괜히 의식한 것 같아.

[By the Pool (Demo)]

마지막으로 밴드캠프 구매자 증정 보너스 7인치는 무엇인가?

7인치에 수록된 음악은 “By the Pool”의 데모 버전이다. 완성된 곡과 달리 퍼커션도 보컬도 스트링도 없다. 뼈대에 가까운데, 느낌 탓인지 리버브가 훨씬 강하게 먹은 것 같다. 듣고 있자면 울림이 큰 방 안에서 스티브 하이트가 기타를 잡고 선율을 떠올리는 모습이 생각난다. 얼마 전 녹음한 ‘Boxout.fm’ 라디오 쇼의 첫 곡으로 선곡하기도 했다.

Efficient Space 공식 밴드캠프 계정
Jesse You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황선웅
사진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