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일요일, CFCF 내한 공연에서 살라만다(Salamanda)를 처음 만났다. 산발머리에 가부좌를 튼 두 명의 모습은 마치 도인 같았다. 비범한 손에서 비롯된 아르페지오가 켜켜이 쌓여 공기를 쥐락펴락했다. 조금 남은 여운에 공연이 끝나고 밴드캠프에 ‘Salamanda’를 검색했다. 살라만다의 소개 글에 따르면, 이들은 필드 레코딩으로 수집한 사운드를 자신의 음악에 녹여낸다고 했다. 그렇게 살라만다는 내 머릿속, 신선(神仙)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두 선인을 소개하며 작업기 또한 듣기 위해 그들의 거처가 있는 문래동을 찾아갔다. 문래동은 잘 꾸며진 상가 건물이나 매우 흔한 카페는 자취를 감춘 곳이다. 그저 비릿한 쇠 냄새와 진동하는 주변의 소음이 낡은 간판을 대신해 이곳이 공장 지대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세상 모든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살라만다. 작업실 주변 환경을 보니 그 이유를 얼핏 알 것만 같았다.
공장지대 주변에 부유하는 희뿌연 공기 사이로 살라만다를 찾아가 그들의 음악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작업기가 영업 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 했으나 주체할 수 없는 살라만다 특유의 텐션에 내가 듣고 싶은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영업 비밀을 하단에서 직접 확인하자.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살라(Sala), 만다(Manda)로 활동하는 살라만다다. 소위 엠비언트라 불리는 음악을 주 종목으로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서울에서 엠비언트를 공통분모로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둘은 어떻게 만났나?
만다: 작년, 파우스트(FAUST)의 라운지, 탄즈 바에서 팀원 3명 이상을 모아 플레이할 수 있는 오픈덱 기회가 생겼는데, 이때 동료 프로듀서 케이티아키(Keiiti Aki)와 오픈덱 동료를 꾸리며 알게 됐다. 살라의 음악 셀렉, 믹스가 너무 좋았고, 같이 음악 한번 해보고 싶어서 곱창을 자주 먹으며 음악 얘길 많이 나눴다.
살라: 나는 케이티아키와 함께 디제잉을 배웠다. 파우스트 탄즈 바 파티는 결국 못하게 됐지만, 그 기회를 통해 열린 퓸(FUME)이라는 기획에 함께 참여했고, 덕분에 지금 만다와 함께 살라만다로 활동하게 됐다.
퓸은 어떤 프로젝트였나?
살라: 그 당시에는 프로듀서, 디제이 크루이자 커뮤니티였다. 색깔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전개하는 프로젝트였다. 우린 그 안에서도 엠비언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분모를 찾았다.
살라는 ‘우만 써마(Uman Therma)’, 만다는 ‘예츠비(Yetsuby)’라는 다른 활동명을 가지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자아 같은 건가?
만다: 그렇다. 일단 음악 색깔이 다르다. 살라만다는 일단 살라와 함께하다 보니 우리가 즐기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개인 프로젝트는 듣는 이의 귀를 더 즐겁게 해주는…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살라: 내가 생각할 땐 살라만다는 함께하다 보니 서로 맞춰가는 느낌이 강하다. 원래 예츠비 또한 실험적인 음악을 전개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넣고 싶은 사운드 오브제를 다 넣는 느낌이 강한데, 살라만다에서는 뭔가 절제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만다: 생각해보니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살라: 사실 디제이 네임을 정할 때, 강해 보이는 이미지와 신나는 음악을 플레이한다는 의미를 담아 활동하고 싶어서 “킬빌(Kill Bill)” 시리즈의 우만 써먼(Uma Thurman)을 팔로우했고, 그 이름을 조금 바꿔서 우만 써마로 정했다. 그 이미지를 반영한 우만은 원하는 만큼, 혼자 신나게 플레이 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살라 만다고 함께할 때 조성하는 엠비언트가 개인적인 디제잉과 정반대라서 그 흐르는 듯한 느낌 역시 좋아한다. 나는 두 가지 각자의 벨런스를 두 개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만다: 내가 하고싶었던 말을 살라가 다 했다.
디제이, 프로듀서 포지션을 소화하는 일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계획된 건가?
살라: 디제잉을 먼저 배우며, 항상 프로듀싱을 겸하고 싶었다. 로컬 신(Scene)에 정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것 같아서,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음악을 공개하는 행위가 되게 벌거벗은 모습을 노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부담스러운 면 또한 있다. 처음 퓸에서 공개한 트랙 역시 큰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엠비언트를 만들게 될지도 몰랐다.
만다: 나는 음악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내 음악을 들려준 게 노다지 쇼(NODAJI SHOW)가 그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곡을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소개했고. 사실 처음엔 디제잉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전자음악 프로듀서로 오프라인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에 빠졌다. 왜 피아니스트는 건반에 자신의 감정과 원 작곡가의 감정을 함께 담아내지 않나. 나는 전자음악가로 그 답을 디제잉에서 찾은 거다. 프로듀서는 결국 자신의 음악을 디제잉을 통해 소개해야 한다. 그러다가 디제이 친구들을 만나 디제잉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다면 실제 디제잉에서 살라만다의 엠비언트를 들을 수도 있나?
만다: 실제로 틀기도 한다. 살라만다의 목표와 별개로 예츠비의 목표는 내 음악으로 1시간 셋을 채우는 게 우선 목표다. 난 할 수 있다!
살라: 엄청 패기롭게 이야기하네.
노다지 쇼에 어떻게 소개됐는지, 경위를 알려줄 수 있는가?
만다: 노다지 쇼는 언제나 로컬 아티스트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거기 메일을 보낸 것뿐이다. 너무 귀찮게 보내진 않았다. 아무튼 내 음악이 그런 미디어에 소개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또한 나와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사람이 로컬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노다지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라: 퓸 프로젝트 또한 VISLA에 소개됐다. 미디어의 서포트를 받는다는 게 부담이 됐던 반면, 공개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기회여서 좋았다. 좋지 못한 피드백을 받는다면 다음에 잘 만들면 될 거라고 쿨하게 생각했고, 만다 또한 용기를 많이 북돋아 주었다.
만다: You’re doing good…
엠비언트 뮤지션으로 다양한 공연을 서포트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루어봤을 때 요즘의 한국 엠비언트 신은 어떠한가?
만다: 일단은 엠비언트 뮤지션이 존재하긴 한다. 그런데 어디 계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요즘이 최고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엠비언트 기반의 파티를 개최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흐름이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론이나 노이즈 같은 지글지글한 엠비언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많이 알아줬으면 한다.
살라: 클럽을 춤추는 공간이 아닌 청취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에서 세계 각지, 엠비언트 파티가 일어나는 움직임은 분명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움직임에 엠비언트를 디제잉으로 큐레이팅하는 이들 또한 생기고 있다. 우리 또한 그러한 행사와 디제이를 더욱 서포트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답변이다.
만다: 전망은 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노력할 것이다.
토날 유니티(Tonal Unity) 소속으로 [Our Lair]가 발매됐고, 다가올 2020년 또한 함께할 듯한데.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만다: 인스타그램과 밴드캠프 등의 플랫폼에 우리 음악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 그걸 토날 유니티의 수장 아킴보가 들어봤고, 마음에 들어서 미팅하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또한 아킴보의 음악적인 시각이 재밌어 보여서 토날 유니티와 함께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토날 유니티 소속으로 큰 성공을 원한 건 아니다. 단지 즐겁게 활동하고 싶었다.
아킴보의 음악 또한 동양 특유의 소리를 채집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아를 포함한 그 이상의 순수한 사운드’를 모토로 삼은 점 역시 살라만다의 필드 레코딩과 통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살라: 아닌 것 같다. 아킴보는 밴드캠프와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한 곡을 접했다고 했다. 그 곡은 필드 레코딩보다는 프로듀싱에 더 초점이 맞춰진 트랙이다.
왜 필드 레코딩, 사운드 샘플 수집을 시작하게 됐나?
만다: EP를 만들기 전에 우리는 살라만다만 가질 수 있는 소리를 보유하고 싶었다. 온라인 혹은 에이블톤(Ableton)이 보유한 샘플 또한 좋은 게 너무 많지만, 이건 에이블톤 이용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리다. 또한 이를 변조해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직접 소리를 채집하기에 이르렀다.
문래동 공장지대 한복판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필드 레코딩을 고수하며, 앨범 소개엔 ‘모든 소음은 아름답다’라고 적혀있다. [Our Lair] 즉, ‘우리 집’이란 의미는 두 사람이 모이는 문래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담아낸다는 의도로 바라봤는데.
만다: 아! 그렇게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린 그런 의미에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단순 은신처, 집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로 사용했다. 우린 은둔, 은신한 상태로 음악을 공개한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첫 싱글 “Our Lair”는 은둔한 우리의 음악 그 자체의 뜻을 담고 있었다. 반면 앨범 타이틀로 [Our Lair]는 은둔한 거처에서 세상으로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래는 정말 재밌는 소리를 많이 담고 있는 공간이긴 하다. ‘쾅쾅’ 이라던지, ‘위익 착착’ 등등 괴상한 소리가 요란하게 반복된다.
살라: 그런 규칙적으로 나는 주변의 소리가 가끔, 라이브셋 연습과 맞물려 흐르기도 한다. 한번은 내가 실제 샘플 베이스를 틀어놓은 게 아니냐며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럼 문래에서 직접 샘플을 채집한 적이 있나?
살라: 만다는 문래를 수시로 들락날락해서 자주 채집하는데, 나는 여기서 채집한 적은 아직 없다.
수집한 샘플은 앨범 [Our Lair]에서 어떻게 활용됐나?
만다: 파도 소리나 자전거 벨 소리 등을 앨범에 다양하게 첨부하여 섞어냈다. 사실 살라만다가 많은 라이브 셋을 경험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중이라 아직은 대중적인 사운드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문래 작업실에서 녹음한 소리는 우리 목소리뿐이다. “Wind”에 첨부된 웅웅대는 바람 소리 같은 걸 살라의 목소리로 녹음한 건데, 그것도 필드 레코딩으로 치나?
이 글을 보기 전까진 필드 레코딩으로 생각할 것 같다. “Jenga”, “Always Cloudy Inside”에서 확인되는 차임 벨 같은 종소리는 수집을 위해 절을 직접 찾아간 건가?
만다: 그건 에이블톤 내장 샘플…
EP의 커버아트와 밴드캠프 계정에 올라온 싱글 커버아트, 살라만다의 시그니쳐 캐릭터 또한 모두 DIY로 직접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이 같이하나?
살라: 그건 내가 맡아서 한다. 게임을 좋아하며 서 낙서 또한 좋아해서 큰 생각 들이지 않고 그린 것들이다. 그림만 모아놓은 인스타그램 계정도 따로 하나 운영한 적이 있다.
만다: 나는 칭찬해주는 사람이다.
인디 쯔꾸르 게임이나 과거 2D 게임에서 볼법한 도트 픽셀 아트를 차용한 이유라면?
살라: 특별한 이유는 없다. 픽셀 아트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실 처음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릴 때 정말 넣을 만한 이미지가 없어서 내가 과거에 그린 몇 개를 올리는 식으로 시작했다. 요즘엔 만다가 음악의 느낌을 말해주면 내 느낌을 그냥 낙서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만다: 내 개인 트랙 “Spell on you” 같은 경우는 마법진 사진만 주고 편하게 그려달라고 했는데 아주 그냥 찰떡처럼 알아듣고 멋지게 그려줬다. 그리고 조현병이란 곡의 경우는 반대로 살라의 그림을 먼저 보고 떠오른 영감을 표현한 곡이다. 처음엔 낙서와 곡의 연결고리가 없었는데 최근엔 이런 방식으로 연결하려는 중이다.
내년엔 바이닐을 목표로 풀 렝스 앨범을 기획 중이라 들었다. 기존 EP 혹은 밴드캠프에 공개된 싱글은 수록되지 않나?
만다: 수록되지 않는다. 지금 라이브 셋을 통해 얻어진 음악들을 넣으면 좋겠다 해서 그런 곡으로 풀 렝스를 채울 것 같다. 그래서 라이브를 진행하며 녹음 또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살라: 이전에 만든 음악은 그냥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자고 해서 나온 곡이다. 반면 라이브셋을 준비하면서 살라만다가 지나가야 할 길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첫 번째 풀 렝스의 감회가 남다르다.
앞으로 지나가야 할 길이라면, 역시나 엠비언트인가?
만다: 이미 우리를 엠비언트 전자음악가로 소개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우리 또한 엠비언트로 소개하는데, 사실 살라는 레프트필드(Leftfield)에 더 적합하다고 언제나 말하고 있다. 나는 둘 다 현대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미니멀이라 소개하고 싶은데, 위대한 현대 음악가들과 함께 비벼지는 것 같아 죄송스러워서 그냥 미니멀을 좋아하는 레프트필드 뮤지션이라 생각해주면 될 것 같다.
미니멀리즘, 현대 음악가 누구에게 큰 감명을 받았나?
만다: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우린 그를 두고 현대음악을 종종 이야기한다. 살라만다의 시작이기도 했다.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을 들으며 이런 미니멀리즘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하면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가 나와서 살라만다를 결성했다.
두 사람의 라이브를 지난 CFCF 내한에서 직접 본 경험이 있다. 당시 두 사람은 준비된 흐름을 45분간 여지없이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레이어를 즉흥적으로 쌓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의견 충돌이 발생한 적은 없나?
만다: 내가 라이브할 때 충동적인 성향이 있다. 최근에는 채널 1969(Channel 1969)에서 라이브 플레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상황이 예정된 것과 바뀐 게 몇 가지 있어서 즉흥적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근데 그런 예기치 못한 환경을 싫어하지 않는다. 거기서 오는 긴장감이나 재미도 쏠쏠하다.
예기치 못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그 과제를 살라가 풀어가는 건가?
살라: 충동 범위의 허용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서 거슬리거나 한 적은 없다. 그리고 미니멀리즘 자체가 우연으로 일어나는 소리를 풀어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서 충동적으로 풀어놔도 대부분 허용되는 편이다. 또한 연습을 미리 하기에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충돌이라고 해봐야 연습 당시, 레이어링 하는 시점을 조율하는 정도? 이건 충돌도 아니다.
만다: 나는 그게 허용치인 사실을 이제 알았다.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2019년 계획이 있다면?
살라: 12월 21일에 문래동 작업실에서 라이브 셋을 펼칠 계획이다. 조율(Joyul), 휘(Hwi), 최영(Yeong Die)이 함께하는 기획 공연이니, 많이 참석해서 우리 라이브를 함께 들었으면 한다. 참고로 크리스마스 전야제다.
만다: 우리 라이브를 항상 주시해 줬으면 좋겠다. 다시 강조하자면, 라이브는 우리의 자아를 찾아가며, 또한 내년에 발매될 풀 렝스 앨범을 틈틈이 녹취하고 있는 거다.
진행 / 글 │ 황선웅
사진 │백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