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우여곡절 끝에 2020년을 맞이했다. 굳이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는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각종 사회면을 장식한 뉴스 및 가짜 찌라시가 판을 쳤고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늘 그렇듯 요동쳤다.
특히 고위층 자제들의 마약 투약, 밀반입 시도, 연예인 마약 사건이 빈번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의 판결이 마약에 관대하지 않은 한국의 사법체계치고는 의외로 가벼웠다는 것. 모처럼 마약 사건이 많았던 지난해를 돌이켜보니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넷플릭스(Netflix)에서도 마약 관련 콘텐츠를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유독 넷플릭스가 다른 플랫폼에 비해 마약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으며,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넷플릭스 중독 현상도 궁금해졌다. 높은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가지고 넷플릭스가 왜 약국이 되었는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Amazing Korea
마약 사건이 국내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은 더는 놀랍지 않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마약 범죄를 일으킨 이들을 향한 법원의 판결이다. 대기업 자제들과 일부 연예인 등은 대부분 집행 유예 정도로 끝났고, 모 연예인도 천재가 되고 싶다며 환각제인 ‘LSD’를 투약했음에도 역시나 집행유예를 받았다. 물론 가장 죄질이 안 좋은 클럽 버닝썬의 물뽕(GHB) 및 집단 강간 사건은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킨 바, 관련자들에게 다소 무거운 형을 부과하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엔터테인먼트업계의 공룡, 모 그룹의 자제가 상당한 양의 마약을 밀반입하고, 그 스스로도 즐겼다는 것. 그는 그 대가로 추징금 ‘2만7천원’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을 뱉어내야 했는데, 그런데도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이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건 아마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한국의 사법부는 고위층 자제를 수사 대상에서 제외할 뿐만 아니라 정작 적발해도 반성의 의지만 있다면 가벼운 형량으로 놀라운 기적을 선사한다. 어메이징 코리아. 한국인의 정(情) 때문인지 고위층의 2세들은 꽤 대담하게도 마약을 반입하고 있다.
한국의 마약 유통
관세청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적발한 마약류는 249건, 86.8 Kg으로 2018년보다 41% 감소하였으나 지난 10년을 놓고 볼 때 중량은 200% 증가할 정도로 꽤 많은 양의 마약이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가장 큰 쾌락을 맛볼 수 있다고 알려져 세계적으로 많은 마약 러버들이 찾게 된 마약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과 코카인(Cocaine), 대마류가 강세를 보였다.
한국의 마약 밀매도 여느 외국 못지않게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만큼이나 마약 조직이 진출하는 시장이 한국이다. 2018년에 엄청난 물량이 밀반입된 것을 보면 분명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대만, 동남아시아 일대의 중국계 마약 조직이 꾸준히 한국 마약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미얀마 황금 삼각지대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과 태국에서 제조한 야바(YABA)류를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듯하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합법이 아닌 대마류는 대체로 북미 지역에서 밀반입되고 있는데, 대마가 합법화된 지역이 있기에 밀반입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판로로 마약이 한국에 들어온다. 다크웹(Dark Web), 국제 우편, 일반 수입 화물에 섞여 들어오기도 하는데, 항공 여행자들이 밀반입하는 방식은 아주 기상천외하고 다양하다. 특히 액젓이 담긴 패트병에 숨겨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들여온 마약의 가격은 현재도 치솟고 있으며 소셜과 채팅 앱 등 판매 루트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결제를 가상화폐로 대체할 수 있기에 이제는 마약을 더욱더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다. ‘마약 청정국’이라는 말은 옛말에 불과하다. 즉 이미 할 사람은 다 하고 있다는 말. 마약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물론 이것 역시 철저한 자본주의 룰을 따르고 있지만.
마약과의 전쟁 – 마약을 다룬 한국 영화
범죄 영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마약이다. 마약을 다루는 범죄 조직과 그를 뒤쫓는 경찰을 다룬 이야기이 또는 마약 중독자를 다룬 영화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 영화를 다루기 전에 마약을 다룬 작품 중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은 작품, 1997년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의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을 언급하고 싶다. 마약에 빠진 우울한 청춘을 그려낸 이 영화는 마약을 투약하는 과정과 금단 현상에 빠진 상황을 제법 극적으로 연출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마약을 어떻게 다뤘나. 애국이 별 게 아니라며 마약을 팔자는 최민식의 놀라운 설득력이 돋보이는 작품 “범죄와의 전쟁”도 조직과 마약이 등장했고, “극한직업”은 마약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치킨집으로 위장한 잠입 수사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영화 “마약왕”은 70년대, 마약으로 시대를 거머쥔 이두삼과 그를 뒤쫓는 검사 이인구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한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나르코스(Narcos)를 연상케 하는 매우 유사한 지점도 보였다.
한편 앞서 언급한 고위층 자제의 마약 사건과 똑닮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 또한 마약을 다루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사이다성 오락 영화지만, 실제로도 벌어진 일명 ‘맷값 폭행’을 중심 소재로 묵직한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늘 그렇듯 류승완 감독의 영화답게 명대사가 판을 쳤고, 아트박스 사장(a.k.a 마동석)의 등장은 관객에게 숨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 속 마약은 단순히 범죄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도구로써 극에 활용된다고는 하지만 결국 마약을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고 있으며, 관객 역시 이를 친숙한 소재로 받아들인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문법이 오락이 되었든 다큐가 되었든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한국 사회에서 마약은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NETFLIX AND DRUGS
마약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어둠에서 잠시 한 발 떼고 영화계로 눈을 돌려 보자. 갖가지 기록을 경신 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 최근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Awards)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총 4관왕을 달성했다. 한편 작품상 후보로 “기생충”과 경합을 벌인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의 “아이리시 맨 (The Irish Man)”은 넷플릭스(Netflix)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조커(Joker)”,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등 쟁쟁한 작품들과 함께 2019년을 빛냈다.
이렇게 넷플릭스 작품이 세계 영화계의 각종 시상식에서 활약하는 작금의 경향은 세계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은 수준의 작품을 직접 제작해 독점으로 제공하는 방식은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은 영화계의 판도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도 20~30대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을 정도로 짧은 시간 내 구독자수가 증가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다. 개인의 취향대로 자유롭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서비스는 극강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콘텐츠 소비에 소극적이었던 사람들도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한번 맛을 들인 넷플릭스는 결국 중독을 야기하게 되는데…
약국
즐겁게 넷플릭스를 시청하던 어느 날,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유독 넷플릭스가 집착하는 특정한 방향성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마약’이다. 마약을 다룬 범죄 장르물은 이미 차고 넘치지만, 넷플릭스가 마약을 다루는 문법은 조금 다르다. 이쯤 되면 넷플릭스는 단순한 플랫폼을 벗어나 이른바 ‘약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넷플릭스가 약국인가 아닌가를 정의하기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약국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처방전에 따른 약을 사기 위한 약국의 의미가 아니다. 연예인 마약 사건 중 가장 많은 연예인이 관련된 YG 엔터테인먼트에 약쟁이가 많다는 이유로 ‘YG=약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붙으며 대중에게도 ‘약국’의 또 다른 의미가 알려졌지만,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Uneducated Kid)의 노래 “Amazing (Feat. Paul Blanco & Jvcki Wai)”의 훅에서도 약국은 은유적으로 등장하였다.
My 9 is amazing so I call it 짱구
– Uneducated Kid – Amazing (Feat. Paul Blanco & Jvcki Wai) 가사 중에서
난 가루를 팔구 이름 바꿔 약국
네 여잔 날 빨구 형들은 눈 깔구
약으로 번 Money 헌금으로 내구
한편 광장시장에서는 김밥의 수식어로 마약을 붙이기도 하며 마약 바지, 마약 베개 등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마약을 수식어로써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높은 중독성을 비유한 것인데, “핵(Nuclear)” 만큼이나 우리는 꽤 강렬한 단어를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말.
극장에 가고 싶지 않다
극장이 선사하는 대형 화면과 사운드만 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굳이 일일이 디테일을 챙기면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라는 공식을 철저히 지킬 정도의 시네필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타인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선사하지 않는가. 또한 주말 내내 편안하게 칩거하여 밤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 아닌 부작용. 가벼운 마음으로 1화를 눌렀다가 어느새 아침을 맞이하면서 출근을 준비하는 내 신세를 한탄한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팅스 (Reed Hastings)가 “우리는 스토리에 투자한다”라고 했던 말에 나는 완벽히 놀아난 것이다. 심지어 브래드 피트(Brad Pitt)도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와 이혼 후 술과 마약 그리고 넷플릭스에 빠져 살았다고 고백했다.
넷플릭스의 가공할 만한 중독성은 특정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문화 현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극적이고 신선한 소재의 오리지널 시리즈는 물론, 스탠드업 코미디, 다양한 국가의 차별화된 콘텐츠, 차고 넘치는 콘텐츠의 물량 등 우리를 유혹하는 것투성이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드럭 (Drug)으로 자리매김했고, 나라에서 허용한 유일한 마약으로 음악을 대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의 중독성 때문에 넷플릭스를 마약으로 비유할 수 있지만, 단순히 비유만으로 끝낼 수 없다. 넷플릭스는 유독 진짜 마약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넷플릭스가 약국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