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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와 마약의 관계를 중심으로 일련의 사건과 작품들로 돌이켜보았고, ‘약국’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든 넷플릭스(Netflix)의 높은 중독성과 별개로 유독 마약/범죄 장르물이 자주 공개되는 상황에 의문점을 제기했다. 이번 회에서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 마약/범죄물을 중심으로 넷플릭스가 약국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INTRO
마약을 소재로 다룬 미국 드라마 중에서도 걸작을 뽑으라고 한다면 수준 높은 작품성과 평단의 높은 평점을 받은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다.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큰 성공을 거두어 시즌 5까지 제작된 이 작품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최근 미국인들이 직면한 사회문제가 배경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큰 공감을 얻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 외에도 이미 수많은 마약/범죄 장르물은 넷플릭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유독 마약/범죄 장르를 다룬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는데, 단순히 ‘약국’이라는 비유로 끝낼 수 없는 무언가 있어 보인다.
1. 약국 개업으로 성공의 냄새를 맡다 – 나르코스 (Narcos)
“나르코스”는 마약을 다룬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서도 마약을 주제로 하는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NBC의 프로그램 조회 수에 따르면 시즌 1은 회당 평균 320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이 열광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의 생애를 다뤘는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인물의 생애는 시선을 끌 만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넷플릭스는 이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마약 관련 소재의 콘텐츠를 만들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말해서 ‘넷플릭스 약국’의 개업을 알리는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카르텔
“나르코스”는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 카르텔의 우두머리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와 그를 뒤쫓는 미국의 마약수사대(DEA) 요원 하비에르 페냐(Javier Peña)와 스티브 머피(Steve Murphy)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냈다. “나르코스”의 흥행 덕분에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다룬 “나르코스 멕시코(Narcos: Mexico)” 또한 시즌 2까지 공개되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다룬 시즌 1~3에서는 파블로를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전형적인 빌런인 동시에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며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했다. 그는 가족에게 충실하고 따뜻한 가장이며, 가난한 자를 도와 서민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그를 뒤쫓는 마약수사대 요원 스티브 머피는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가 눈에 띄게 변화한다. 스티븐 머피는 열정 넘치는 형사지만, 끊임없는 위협으로 점점 비정한 인물로 변화해 간다. 또 다른 주인공 하비에르 페냐는 비교적 느슨하지만 확고한 신념이 있는 인물로, 파블로를 잡기 위해 각 계층의 정보원을 두고 있으며 정보원을 지키려는 의리 또한 돋보이며 회가 거듭될수록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파블로가 사망한 후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새롭게 떠오른 칼리 카르텔을 잡기 위한 총 책임자로 발탁되어 그들의 뒤를 쫓는다.
픽션과 실화의 경계가 모호해진 마술적 사실주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나르코스”는 시작부터 ‘실화에 기초했지만, 우연이며 의도하지 않았다’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강한 몰입감에 빠지도록 최면을 걸었다.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실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사진과 당시 방영되었던 뉴스를 드라마 활용하며 픽션과 실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무엇보다도 물리적인 인과 관계로 상상하기 어려운 파블로의 인생을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문학사조를 대입해 묘사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콜롬비아 마약의 역사와 유통, 청부살인 문화와 굵직한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콜롬비아 출신 배우를 기용한 건 당연한 일. 그러나 중심인물인 파블로 에스코바르 역을 맡은 배우는 브라질의 국민 배우 와그너 모라(Wagner Moura)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스페인어를 익혔고, 뛰어난 연기로 몰입감을 이끌어내면서 우려를 잠식했다.
씁쓸한 엔딩
파블로가 승승장구하는 과정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를 쫓는 마약수사대는 항상 아쉽게 그를 놓친다. 하지만 끝내 파블로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죽었다는 해소감보다는 영웅의 죽음을 목도하듯, 안타까움이 앞선다. 이유인즉슨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파블로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설득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분명 사회에 해가 되는 철저한 범죄자지만, 그가 말하는 정부의 타락, 빈부격차 문제 등은 현재 진행 중이며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았기 때문.
그러나 당시 콜롬비아 정부는 마약 밀매를 신경 쓰지 않고 극심한 좌우대립 속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끝내 파블로 같은 괴물을 키웠다. 결국 정부는 괴물이 되고 나서야 파블로에게 끌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괴물로 변한 파블로 역시 돈으로 정치인과 공무원을 매수했고 겉으로는 약자의 편이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 대중을 속였다. 파블로의 죽음으로 마약과의 전쟁도 막을 내린 듯했지만,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수사관 하비에르 페냐의 씁쓸한 표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약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2. 검증된 약국 넷플릭스 – 탑 보이(Top Boy)
채널4(Channel 4 Television Corporation)
“탑 보이(Top Boy)”를 이야기하기 전에 영국의 지상파 방송국인 채널 4(Channel 4 Television Corporation)를 먼저 짚고자 한다. 채널 4는 넷플릭스만큼 자극적인 소재에 집중하고 있는 방송국이다. “미스핏츠(Misfits)”, “스킨스(Skins)”처럼 꽤 강렬한 드라마를 제작한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해되는 대목.
이 방송국은 개국 당시부터 영국의 다른 방송사와 달리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영국의 높은 실업률과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감독 및 프로듀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속해서 받아들였으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힘쓴 방송국이다.
그래서일까, 넷플릭스와 유사한 방향성 덕분에 채널4와 넷플릭스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함께 제작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블랙 미러(Black Mirror)”다. 채널 4에서 시즌 1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도 허를 찌르는 기발함으로 어딘가를 ‘탁’ 칠만한 감상이었는데 넷플릭스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인기 블랙코미디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xxxing World)”의 제작도 채널 4와 넷플릭스가 공동제작하고 있을 만큼 이들은 꾸준히 협업 중이다.
묻힐 뻔한 런던 마약상의 이야기
채널 4에서 제작한 마약 장르물 중, 2011년 제작한 “탑 보이: 써머하우스(Top Boy: Summerhouse)”는 영국 런던의 마약 갱단을 다룬 작품으로 시즌 2까지 제작했다. 시즌 2까지 제작한 “탑 보이: 써머하우스”는 마약 딜러 두 셰인(Dushane)과 설리(Sully)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써머하우스 시장에서 마약 판매의 운영권을 놓고 벌이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점점 격화되는 영역 싸움과 배신으로 점철되는 하드보일드한 작품이다.
여하튼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후속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던 중, 제작 취소라는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9년 시즌 3으로 넷플릭스와 함께 돌아왔다. “탑 보이”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즌 1로 나와 있지만, “탑 보이: 써머하우스” 시리즈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즌 3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이 드라마는 어떤 한 사람의 의지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누구인가?
약국의 문을 두드린 래퍼 드레이크 (Drake)
“탑 보이”가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누군가로부터 촉발된 이 사건의 내막에는 래퍼 드레이크가 있다. 첫 시즌부터 팬임을 자처한 그는 “탑 보이”의 작가 로난 베넷(Ronan Bennett)에게 연락을 취했고, 넷플릭스에 자신이 직접 제작과 관련된 제안을 넣었다. 이윽고 그는 이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로서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드레이크가 총괄 프로듀서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배경과 인간적인 요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물론 그가 제작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그가 넷플릭스의 팬이라는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날것의 길거리를 대변하는 작품
시즌 3은 보다 더 느와르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런던 마약 딜러의 최고의 자리를 거머쥐기 위한 영역 다툼은 거세지고, 약을 팔기 위해 아파트 단지의 학생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갱단에 영입시킨다. 새롭게 등장한 젊은 갱단에 맞서기 위해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주요 인물 두셰인과 설리는 재결합하지만, 마약 공급부터 유통까지 편안한 날이 없다. 또한 사랑과 배신, 친구의 죽음, 이주민의 문제까지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실제 마약 딜러의 판매 장소를 합의 끝에 촬영 장소로 사용했고,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신인 배우를 대거 캐스팅하며 작품의 사실성을 높였다. 시즌 1 마지막화에서 탑 보이, 즉 써머하우스의 마약 갱단 중 누가 넘버 원 (No. 1)인지 밝혀진다. 그리고 이후 전개에 영향을 미칠 몇 가지 떡밥을 남기고 그렇게 시즌 1은 막을 내렸다.
두셰인 역의 배우 애슐리 월터스(Ashly Walters)는 “탑 보이는 날것의 진짜 스트리트 컬처(Street Culture)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언급하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이는 길거리 문화가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도시를 살아가는 젊은 연령대가 향유하는 문화이며, 넷플릭스 사용자의 주요 연령층 역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연령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넷플릭스에서 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콘텐츠인 셈이다.
사실 이 드라마가 거리의 문화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캐스팅에 있다. 중심인물인 애슐리 월터스와 케인 로빈슨(Kane Robinson)은 각자 ‘Asher D’, ‘KANO’라는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래퍼로 활동해왔다. 또한 이번 시즌에서 영국 여성 래퍼 리틀 심즈(Little Simz)와 위협적인 마약상을 연기한 데이브(Dave) 역시 인지도 있는 래퍼로, 이들은 OST에도 역시 참여했다. 길거리의 실상을 더욱 생동감 있게 연출하기 위해 실제 삶에서 경험으로 체득한 배우나 래퍼를 선호한 것 같다.
“탑 보이”의 OST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영국을 대변하는 장르 그라임(Grime), 이른바 UK 드릴(UK Drill)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드레이크를 비롯해 AJ 트레이시(AJ Tracey), 네이프 스몰즈(Nafe Smallz), 프레도(FREDO) 등 다양한 래퍼가 참여했다.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묘하게 힙합 뮤직비디오 연출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총괄 프로듀서가 드레이크인 이유도 있겠지만, 드라마 제작 의도 자체가 영국의 주류 사회보다는 길거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혼란스러운 범죄 드라마
“탑 보이”는 범죄 드라마다. 등장인물의 목적은 플렉스(Flex)가 되었든, 안정적인 삶이든 결국 돈으로 귀결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단순히 물질 만능주의를 지적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영국 사회의 백인 저소득층, 이주민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그려낸 것이며 그들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을 판매하는 것 외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또한 그들은 지키고자 하는 가족과 사랑,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로 택한 범죄에 죄책감을 느낄 여유도 없다. 범죄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손을 대는 현실의 부조리에 공감을 느낀다.
화려한 복귀
드레이크의 전폭적인 지지로 돌아온 “탑 보이”는 로튼 토마토 지수 90%을 받았고, 영국과 아일랜드 지역에서 주간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위에서도 언급했 듯이 채널4의 프로그램 제작 경향은 넷플릭스가 집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향과 매우 유사한 지점이 있다. 방송국 차원에서 취소된 이 드라마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환경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터. 그렇다면 역시 넷플릭스가 가장 적합하다. 넷플릭스는 이미 다수의 마약 콘텐츠로 성과를 낸 경험이 있고, 폭발적인 성장세로 소위 잘나가는 플랫폼인 것에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안정적인 드럭 유통 수단이 된 셈이다.
3. 약국의 영역 확장 – 나르코 월드: 중독된 도시 (Narcoworld Dope Stories)
이젠 진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약/범죄 시리즈의 성공 덕분일까? 이런 상황을 감지한 넷플릭스는 마약상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하기에 이른다. 최근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중독된 도시: DOPE”, “나르코 월드: 중독된 도시(Narcoworld Dope Stories)”, “리얼 나르코스 리포트(Inside the Real Narcos)” 등이 있는데 “나르코스”를 시청한 넷플릭스 사용자들에게는 유튜브의 기묘한 알고리즘처럼 추천 콘텐츠로 뜨기도 했다.
각국 마약상의 현재 – “나르코 월드: 중독된 도시”
“나르코 월드: 중독된 도시”는 미국, 프랑스, 브라질, 영국 마약상의 일상과 그들을 추격하는 마약 수사대를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마약상을 꽤 상세하게 담아낸 이 다큐멘터리는 국가별로 소비되는 마약의 종류와 마약을 소비하는 이들의 의식을 인터뷰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마약 경제 역시 강대국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리즈 중 가장 위험한 에피소드는 브라질 편이다. 공권력과 마약 갱단의 사투를 그려냈는데, 도시의 많은 곳에서 마약 갱단이 판을 치고, 공권력은 거의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아비규환 상태. 실제 상황이라는 점을 망각하게 할 만큼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약상을 조명한 새로운 다큐멘터리
그동안 마약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중독자의 망가진 모습을 비추며 마약은 곧 패가망신이라는 교훈을 설파하기 바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마약 다큐멘터리는 마약상과 그들을 뒤쫓는 전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결과적으로 마약 딜러들은 언젠가 손을 씻고 조용히 사라지겠다고 하지만, 평생을 마약상으로 살아온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사라지면 또 누군가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성공이 없었다면, 마약 다큐멘터리 역시 제작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제작진은 상당한 위협을 무릅쓰고 마약상에게 다가갔고, 다양한 국가에 파고들었다. 이쯤 되면 넷플릭스가 제작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외에도 그들의 목숨에까지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쏟아붓는 노력과 자금은 결국 시청률로 되돌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목숨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으로 마약의 실태를 침대 위에서 소비하고 있다.
마치며 – 넷플릭스라는 약국을 통해서
마약에서 돈 냄새를 맡다 – 브랜드 약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 “나르코스”의 성공은 넷플릭스가 다른 마약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했다. 이후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How to Sell Drugs Online: Fast)” “언더커버(Undercover)”, “브레이킹 배드 무비 엘 카미노(El Camino: A Breaking Bad Movie)” 등 다양한 마약 장르물이 쏟아졌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마약을 다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은 상승 중이다. 마약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마약 중독에 취약한 국가이기도 하다. 사회 곳곳에 마약은 고루 퍼져있으며 약물 과다로 인한 사망 소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약/장르물이 인기가 높은 것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마약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사회적 관심과 다양성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자신들의 경쟁력을 키웠다. 그동안 영화와 방송계에서는 마약 중독으로 인한 금단현상과 사회적 병리 현상에만 집중했지 넷플릭스처럼 마약을 판매하는 과정을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마약을 판매하는 집단과 그들을 뒤쫓는 집단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았고 오히려 각자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결국 마약/범죄 콘텐츠의 성공이 추후 콘텐츠 제작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약/범죄물은 더이상 비주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더욱더 집중함으로써 마약/범죄물에 있어서만큼은 높은 퀄리티를 보장하는 ‘약국’으로 탄생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약물을 소비하는 대신에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통해 마약을 향한 관심을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월트 디즈니의 OTT 서비스 런칭 – 콘텐츠 갱(Gang), 디즈니의 위협
넷플릭스가 왜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착하는지 최근의 업계 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가장 큰 이슈는 디즈니(The Walt Disney Company)의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 런칭이다. 따라서 현재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중인 디즈니 콘텐츠를 도로 뱉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미 “프렌즈(Friends)”와 “오피스(The Office)”는 넷플릭스에서 빠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더는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겠다는 사용자도 발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미 자신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곧 경쟁력임을 알게 된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더 많은 금액을 콘텐츠에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점차 과열 양상으로 가는 업계 동향상 마약과 섹스 같은 자극적인 장르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중독의 중독의 중독
우리는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번 빠지면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마약부터 디지털 중독, 스마트폰 중독, 섹스 중독 등 우리는 갖가지 중독에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수능을 앞둔 수험생에게 중독성 높은 훅(Hook)이 들어간 노래는 반드시 피해야 할 정도로 중독의 영역은 매우 심오하고 넓다.
넷플릭스는 치명적인 편리함과 매력적인 콘텐츠로 우리를 중독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넷플릭스의 독점으로 전편을 공개하는 서비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 중독을 야기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언젠가 넷플릭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길을 잃고 재미가 시들해진다면 우리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중독을 갈망하게 될지 모른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영화 “트레인스포팅 2(T2: Trainspotting 2)”의 렌튼(이완 맥그리거)은 헤로인에 중독된 스퍼드(이완 그렘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Be Addicted. Be Addicted Something Else(다른 것에 중독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