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컷(@Solecuts) 혹은 짹선생. 본명 김준희보다는 앞선 두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세계적인 스니커 컬렉터와 어깨를 견주는 운동화광이다. 매일같이 새로운 스니커의 발매 소식이 전해지고, 협업, 한정판이라는 타이틀로 꾸며진 값비싼 스니커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의 관심은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 20년,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버텨낸 빈티지 나이키 에어 포스 1(Nike Air Force 1)을 주력으로 수집하는 그는 처음 에어 포스를 만났던 10대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스니커를 모으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나고 지는 요즘, 자신이 염원하는 물건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소장하는 것이야말로 수집가의 진정한 즐거움 아닐까. 무려 200족이 넘는 에어 포스 1 컬렉션 중 어렵게 꼽아낸 다섯 족은 과연 무엇일까. 각 스니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덤이니 재미나게 구경하시라.
언제부터 스니커를 수집했나.
학창 시절 농구를 정말 좋아했다. 그때 한국에서 농구라는 스포츠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시기라 친구들과 많은 시간 농구를 하며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사주시는 신발을 신었다. 그러던 중 NBA 스포츠 카드나 마이클 조던(Mi- chael Jordan)이 나오는 비디오를 접하면서 내가 원하는 농구화를 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 교 졸업 선물로 부모님을 졸라 나이키에서 나온 에어 레이드(Air Raid)라는 농구화를 산 게 나이키 와의 첫 인연이다. 6만 원쯤 주고 구매한 것 같은데,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꽤 고가의 신발이었지. 그때부 터 한 켤레 두 켤레 좋아하는 스니커를 수집했다.
농구가 스니커 수집의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맞다. 처음에는 스포츠용품으로써 농구화를 구매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주위에 춤을 추는 친구들이 몇 생겼다. 나도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리며 춤을 추곤 했는데, 그때가 ‘듀스(DEUX)’나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댄스 가수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그즈음 신발 취향도 농구화가 아닌 패션화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에어 포스 1을 샀는데, 그때부터는 운동이 아닌 패션의 성격으로 운동화 수집을 시작했다.
다양한 종류의 스니커를 수집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이키 에어 포스 1 컬렉팅은 세계적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어 포스 1 모델을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나에게 나이키 에어 포스 1은 ‘가지고 싶은’ 스니커 였다. 학창 시절 댄서 형들이 신던 에어 포스1을 향한 막연한 동경과 가질 수 없던 좌절 등의 감정이 모두 응집된 결과물이다. 이상하게도 이 감정이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않는다
보유한 에어 포스 1 모델은 모두 몇 켤레인가.
200켤레 정도 될까. 스니커 대부분 연식이 오래되 어 빈티지 모델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아직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극소량만 남아있는 상황인데, 많은 에어 포스 1 컬렉터가 이렇게 한 번 구매하면 다시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 나 또한 특정 모델을 구매할 때 소장용과 실착용 두 켤레를 사려고 노력하 는 편이다. 적어도 한 켤레는 오래 소장하고 싶거든. 에어 포스 1 캔버스 시리즈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시리즈의 에어 포스 1을 구하는 중이다. 현재 정식 발매된 캔버스 모델은 전부 수집했다. 실물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한 족 빼고는 전부 가지고 있다. 캔버스 컬렉션을 완성하 고 나서는 그 범주를 레더로 넓혀 가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수집하고 있다.
워낙 희귀한 스니커가 많은데, 혹시 해외에서 구매를 문의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나.
여기저기서 판매하라는 문의가 많이 오긴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내 계정을 보는 사람 중 대다수 는 오래전부터 내가 알던 사람이다. 예전에는 특정 스니커 커뮤니티에서 그들과 교류했다면, 이제는 그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졌다. 이전부터 나를 알았던 친구와는 서로 디깅(Digging)한 에어 포스 1 정보를 꾸준히 나눌 뿐 판매에 관한 이야기 를 나누지는 않는다. 다만, 잘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판매하라고 하지. 요즘은 하입한 스니커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나. 빈티지 에어 포스 1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는 한정 스니커 모델을 ‘별주’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렀는데, 스니커 발매 시스템도 지금과 달랐다.
내가 한창 스니커를 좋아하던 90년대 후반에는 스포츠 유통 업체에서 별도로 컬러를 주문해서 자신의 업체에서만 판매했다. 일종의 한정판 시스템이고, 그걸 ‘별도 주문’이라고 불렀다. 풋락커 (Footlocker)나 풋액션(Footaction) 같은 곳이 타 스포츠 브랜드 유통 업체와 차별화하기 위해 나이키에 특별한 컬러웨이와 디자인을 요청했다. 과거 유통구조 시스템은 신발 가게 사장이 나이키에 주문하면 나이키가 생산한 제품을 배송하는 방식이 었다. 지금은 판매 스토어 파악이 수월하기에 미리 생산한 제품을 넘기고 있지만, 예전에는 운동화 가게가 많지 않았을 테니 운동화 가게 사장이 특정한 컬러의 에어 포스가 필요하다고 하면, 주문 제작 후에 판매하는 형태였다. 디자인까지 전부 관여하며 상세히 주문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전까 지 협업이라는 개념은 생소했다.
지금에 와 스니커 발매 시스템 역시 많은 변화 를 겪었다, 가장 최근에 응모한 에어 포스 1 모 델이라면?
오늘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에어 포스 1을 응모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떨어졌다. 하하. 지금껏 나이키 드로우에서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이제 는 그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다.
스니커뿐 아니라 90년대의 향수가 느껴지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많은데, 실제 본인의 90년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
외국에서도 ‘90s’, 특히 ‘Mid90s’라는 말을 하지 않나. 실제로 많은 이들이 90년대를 이르러 문화적인 전성기였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요즘 세대보다 학창 시절에 오프라인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듣고 느 끼며 살았다. 지금 세대는 온라인이 중심이 된 수많은 정보와 문화적인 혜택을 받으며 풍요로운 조건에서 살고 있지만, 내가 한창 좋아했던 농구와 같은 스포츠와 더불어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힙합이라는 음악을 수입 음반점에서 접하고, 댄서 형들에게 외국 댄스 비디오 복사본을 빌려 보던, 자연스럽게 옷과 신발이라는 패션을 알아가던 그 시절만큼 낭만적이진 않다고 생각한다.
1. AIR FORCE 1 MID CVS SC WHITE/DARK SPRUCE (1995)
이건 내가 처음으로 산 캔버스 포스 미드 모델이다. 심지어 어릴 때 구매한 동일한 모델의 스니커가 아직 집에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덕분에 에어 포스 1이 크게 유행했지만, 사실 그전부터 에어 포스 1은 댄서가 즐겨 신는 신발로 유명했다. 동네 댄서 형들 이 한창 에어 포스 1 캔버스 하이를 신고 다녔는데, 그때는 그게 매장에서 파는 신발이 아니었거든. 그렇게 형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이태원까지 왔지만, 거기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신발이 아니었다. 실제로 정품보다는 짝퉁을 더 많이 팔았으니까. 심지어 당시 이태원에서 고등학생은 강매당하기 딱 쉬운 표적이었다. 하하. 그렇게 힘겹게 정품 나이키 스니 커를 판다는 곳에 갔는데, 캔버스 하이는 다 팔리고 재고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점원이 캔버스로 미드가 나왔다며 나를 꼬드겼지.
하이 모델이 없어 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산 스니커가 이 캔버스 미드 모델이다. 그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잘 신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 나쁘지 않은 상태로 집에 있는 거다. 즐겨 신었다면 진작 헤져서 버렸겠지. 지금은 하이보다 미드 모델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실제 희소가치도 더 높아진 상황이다. 그때 미드 모델은 그렇게 종류가 많지도 않았다. 누가 신어서 노출된 경우도 드물었지. 96년 즈음해서 나이키는 캔버스 보다 레더 제품을 더 많이 발매한 걸로 기억한다.
이와 같은 에어 포스 1 빈티지 모델을 가지고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북미에 나이키 토크(Nike Talk)라는 스니커 커뮤니 티가 있다. 커뮤니티 내 여러 카테고리가 있는데, 그 중 에어 포스 1 스레드(Thread)에 모여 에어 포스 1 이야기를 나눴다. ‘TEAMAF1’이라는 말 역시 그들과의 공동체 같은 느낌으로 사용한 단어였다. 나이키 토크에서 이 단어로 스레드가 운영됐고, 그때 활동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TEAMAF1’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했다. 현재 는 단어 그대로 ‘TEAM’이라는 소속감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해시태그 중 하나지만 나는 그 스레드를 추억하며 에어 포스 1 관련 게시물에 이 해시태그를 붙인다.
실제로 ‘TEAMAF1’의 일원을 만나본 적도 있 는지.
내가 ‘TEAMAF1’ 스레드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사람 중 하와이에 거주하는 친구가 있었다. 마침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 DM으로 한번 만나자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같이 저녁을 한 번 먹은 적이 있다. 이외에도 샌프란시스코 컬렉터가 부인과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이태원에서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보냈다.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사람들을 그렇게 만나니까 신기하긴 하더라.
2. AIR FORCE 1 HIGH CVS SC BLACK/WHITE (1994)
캔버스 모델로는 서태지 포스가 유명하지만, 그보다 먼저 붐업된 모델이 이 스니커다. 국내 춤 좀 춘다는 사람이라면 항상 신었던 스니커가 바로 이 모델이다. 스니커헤드가 많지 않던 시절, 멋을 아는 소수만 신던 신발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검은색에 은색 스우시가 새겨진 모델을 착용하기 전, 조금 더 상징적인 에어 포스 1 하이 캔버스 모델이 지 않을까. 오히려 서태지와 아이들이 유명해지고 나서는 검/흰 모델보다는 검/은 컬러웨이에 꽂혔으 니까. 게다가 이 컬러웨이는 이태원에 파는 가품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이태원에 일본 나이키를 사러 가면 대부분의 점원이 이 모델의 가품을 보여줬다. 가품은 정품보다 목의 높이가 조금 더 낮았다. 발목 스트랩 역시 이태원에서 생산되었지. 목이 낮은 가품을 받아 한국에서 스트랩을 달아 판매한 거다.
그때는 가품 구별에 관한 인사이트가 널리 퍼지지 않아서 정말 많은 짝퉁이 성행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품과 진품을 구분했는데, 가장 흔한 게 스니커 앞코의 모양이었다. 이게 한눈에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이었고, 또 하나는 스트랩의 디테일이었다. 정품 스트랩은 뒤편에 스우시와 동일한 소재의 조그만 가죽이 붙어있었는데, 그걸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냥 가품을 샀다. 가품도 점점 품질이 개선되며, 목 높이도 맞춰서 나오고 정품과 유사한 외형으로 발전했지만, 방금 언급한 두 가지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나 역시 이 제품을 사기 전에 정품 에어 포스 1 을 산 적이 있는데도 가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 하하. “이게 일본 나이키야, 이거 실제로 본 적 있어?” 점원이 이렇게 말하면, 그 말에 혹해 15만 원을 주고 가짜를 사는 거지.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캔버스 모델이 한창 인기였을 때는 ‘일본 나이키‘라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하더라.
맞다. 그 당시에 이태원에서는 전부 일본 나이키라고 불렀다.
3. AIR FORCE 1 HIGH CVS SC DARK CONCORD/WHITE (1993)
이건 샘플 제품이다. 보통 나이키에서 제작하는 스니커의 샘플 사이즈가 270이다. 신발 깔창에는 샘플 탭이 붙어있는데, 탭에는 컬러웨이와 전개할 신발 사이즈 정보가 적혀 있다. 보통 일반적인 캔버스 하이 모델은 스트랩의 나이키 앰블럼 컬러가 어퍼 또는 스우시의 컬러와 동일한데, 이 제품은 주황색이다. 이렇게만 보면 다른 캔버스 하이의 스트랩을 잘못 끼운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베로에 있는 나이키 탭의 로고 컬러도 주황색이다. 나이키에서 이렇게 변칙을 주는 모델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캔버스에서는 기본적으로 적용해야 할 컬러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건 이 모델 단 한 족뿐이다.
오래전 일본에서 발간한 에어 포스 1 관련 특집 잡지에 이 스니커의 사진이 수록됐다. 나는 책으로 먼저 이 제품을 본 셈이다. 처음 이 모델을 보고 ‘어, 이런 모델도 있구나, 신기하다’라고 생각한 뒤 넘겼지. 그러다 우연히 일본 야후 옥션에서 이 스니커를 발견 했다. 입찰에 입찰을 거듭하는 긴 사투 끝에 겨우 낙찰받을 수 있었다. 정말 비싼 가격이지만, 책에서만 보던 걸 결국 구했다고 위안했지. 그러고 나서 나이키 토크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무도 이 모델의 실물을 본 사람이 없더라. 지금까지 여러 스니커 채널을 통해 알아봤는데, 지금 이 스니커를 가진 컬렉터는 내가 유일하다.
잡지에서 촬영된 모델일 수도 있겠다.
그걸 모르겠다. 넝마가 된 스니커라도 또 다른 실물이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노출이 되었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까. 여전히 같은 모델의 또 다른 스니커를 확인하는 중이지만, 지금까지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샘플만 제작한 뒤 양산하지 않은 제품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는 가장 희귀한 제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제품이 한번 복각된 적이 있다. 이전 나이키가 한창 OG를 리마 스터한다는 개념으로 캔버스 하이 모델 몇 가지를 발매했다. 그중 이것과 똑같은 컬러 베이스로 레트로 제품이 나왔다. 하지만, 색깔만 똑같지 전혀 다른 모델이 나와 속으로 조금 안심했다. 하하.
4. AIR FORCE 1 SJ MID WHITE/METALLIC SILVER (1998)
모두가 잘 아는 모델이다.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고, 정말 많은 사람이 신었고, 그만큼 많은 수량이 공급된 신발 중 하나다. 이 신발 끈에 달린 AF-1 탭이 풋락커 제품에만 들어가는 탭이다. 별주 모델이라는 증표인 셈이다. 이렇게 어퍼의 토박스와 바디를 다른 컬러로 배치한 모델이 이 시기 처음 나오기 시작했다. 마요네즈, 고추장이 98년에 나왔고, 이 제품은 99년에 나왔다. 앞선 두 모델과의 차이점이라면, 메탈 주얼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메탈 주얼과 토박스의 색이 같은 모델은 이것 하나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마요네즈나 고추장보다 희소성이 높다.
82년 첫 등장 이후 지금까지 에어 포스 1의 실루엣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베스트 실루엣은?
흔히 630 라인으로 불리는 90년대 제품이 가장 볼륨감 있는 외관을 가지고 있다. 재료비 절감, 생산 공정 혁신 등을 통한 제품 원가 절감이 라는 끝없는 도전 과제를 받는 제조업체 입장을 따져봤을 때 현재까지 유지하기 어려운 최고의 제품 외관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가장 아쉬운 디테일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에어 포스 1은 디자인 플랫폼화가 굉장히 잘 되어 있는 대표적인 스니커다. 로우와 미드, 하이까지 단 세 가지의 기본 디자인으로 신제품 이 매년 발매되는 스테디셀러에서 아쉬움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다만 최근 들어 90년대 OG 제품을 레트로해 발매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는데 90년대 제품의 외관의 디테일에 조금 더 가깝게 발매하면 좋지 않을까.
5. AIR FORCE 1 CVS SC CANYON GOLD/NIGHT BLUE (1995)
이 제품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양현석이 신어서 일명 ‘양군 포스’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스니커다. 95년에 등장한 모델로 대부분의 로우 모델의 발매연도가 94, 95년인데 이건 95년 초반에 발매한 제품이다. 당시 나이키가 캔버스 로우 모델에는 특별한 컬러웨이를 주지 않았는데, 이 제품은 유일하게 독특한 컬러 배합을 보여줬지. 지금은 그냥 LA 레이 커스(LA Lakers) 컬러웨이라고 생각할 텐데, 양현석이 착용하며 유명해진 신발이었고, 컬러 또한 가장 튀었다. 그 당시 로우 모델은 댄서의 연습용 신발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게 로우 모델이 큰 인기를 끌지 않았는데도 이 신발을 신고 거리를 걸으면 많은 사람이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에어 포스 1의 긴 역사만큼 스니커의 연식 또한 적지 않은데, 특별한 관리 노하우가 있다면?
특별히 신경 써서 관리하지 않는다. 사실 일일이 관리할 수 있는 수량의 한계를 넘어버려 이제는 그냥 방치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비닐 지퍼백에 넣어서 보관하는 수준이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방습제를 사서 신발 박스마다 하나씩 넣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결국 귀찮아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더 구하고 싶은 모델이 남았나?
10년을 넘게 찾고 있던 캔버스 미드 모델을 작년 초에 결국 구매했다. 이제 90년대에 발매한 캔버스 모델은 모두 수집한 상태다. 유일하게 잡지에 실린 이미지 외엔 실물조차 본 적이 없는 캔버스 로우 모델이 하나 있는데 구하고 싶은 욕심은 이젠 사치가 되었고 그냥 다른 컬렉터의 것을 실물이라도 봤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진행 / 글 │ 오욱석
사진 │ 오세린
*해당 기사는 지난 12월에 발행한 VISLA Paper 10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