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십 갤러리(Worship Gallery)를 찾는 이들은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몇 걸음 걷지 않아 이내 눈동자가 그려진 로고를 만나게 된다. 몇 평 되지 않는 작고 간결한 공간. 마치 텅 빈 흰 캔버스 같지만, 대다수의 갤러리가 표방하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와는 어딘지 결이 다르다. 작품은 액자나 설명 없이 갤러리 벽에 캐주얼하게 붙어 있고, 관람객들은 마치 하우스 파티에 놀러 온 이들처럼 느슨하다. 친구, 친지들만 초대하는 조촐한 대학생 전시 같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벽을 장식한 작가들이 서울과 뉴욕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아티스트와 최고의 유망주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갤러리와 “예술”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곳에 열광하거나 불편함을 느끼거나, 두 가지 반응 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무로에 워십 갤러리를 열며 언더그라운드 예술 신(Scene)에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디렉터 노엘 리(Noelle Lee)를 만났다.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및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그녀는 지난 9월에 충무로에 갤러리를 열고,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의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을 서울로 불러모았다. 오로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서만 만나보던 스케이트보드 포토그래퍼들과 실험적인 밴드가 서울을 찾은 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 더욱 우리를 즐겁게 하는 사실은 워십 갤러리가 문을 연 지 고작 3달밖에 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소개한 프로그램들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워십 갤러리와 당신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나는 지난 9월에 문을 연 워십 갤러리의 디렉터, 노엘 리라고 한다. 워십 갤러리는 여러 서브컬처(Subculture)의 유명 아티스트 및 젊은 유망주를 소개하기 위해 충무로에 문을 연 작은 공간이다.
갤러리를 혼자 운영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운영과 기획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나?
모든 운영과 기획은 나 혼자 진행한다. 작은 공간이기에 혼자 운영하는 데 부담은 없지만, 내 시간의 대부분을 이 일에 쏟고 있다.
주변에서 당신이 누군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것인가 아니면 어렸을 때 건너간 것인가? 그리고 서브컬쳐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다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종류의 서브컬쳐를 접할 수 있었지. 가장 먼저 음악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서 어릴 때부터 여러 공연에 다녔고, 동시에 그림에 소질 있다는 것을 발견해 자연스럽게 음악과 연결된 아트 신에 이끌렸다.
뉴욕에서 활동했다고 알고 있는데, 외려 서울에서 갤러리를 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미국에 있을 때도 한국 쪽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는지?
약 4년 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처음으로 다시 서울에 왔고, 정말 운 좋게도 친절하고 나와 닮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친구 한 명과 같이 서울에서 노우웨이브(Know Wave) 라디오 쇼를 진행했는데, 그 이벤트를 주최한 웝트(Warped.)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웝트의 현일과 SJ 그리고 코스트 퍼 킬로(Cost Per Kilo)의 민현은 내가 속한 뉴욕 신에서 일어나는 일에 많은 관심을 표했고, 내가 계획 중인 일을 지지해 줬다. 그때부터 일 년에 한 번씩 서울에 왔고, 몇 년 전 콘트라 커피(Contra Coffee)에서 개최한 진(Zine) 쇼에 내 작품을 소개한 걸 시작으로 모데시(MODECi) 아트페어에 서울의 여러 아티스트 및 뉴욕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젊은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닌 충무로에 갤러리를 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사진과 영화의 메카라는 과거의 특징 때문인가? 아니면 을지로와 근접해서?
사진과 영화의 역사가 깊은 흥미로운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지의 땅’이기에 충무로로 정했다. 홍대나 한남동이 더 쉬운 선택이었지만, 방문객이 독특한 지역을 방문함으로써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지역은 아니더라도 방문하고자 하면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름대로 도시 중심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을지로에 가깝다 보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걸어가서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갤러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간단하고 멋 부리지 않은 인테리어와 매장 앞에 놓인 스케이트보드까지, 마치 작은 스케이트 숍을 연상케 한다. 잔뜩 힘을 준 서울의 갤러리와 비교했을 때 쿨한 태도가 느껴진다. 공간을 기획하며 의도한 부분이 있다면?
갤러리를 기획할 때 품었던 목표는 뉴욕의 DIY 스타일의 문화 공간을 서울에 옮겨오자는 것이었다. 서울에 몇 번 방문하면서 ‘DIY’를 표방하는 갤러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갤러리가 완벽히 기획되고 디자인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뉴욕에도 물론 깔끔하고 고상한 갤러리가 많지만, 새로운 예술 사조와 움직임이 시작되는 서브컬처 신의 작고 개인적인 예술 공간 또한 무수히 많다. 뉴욕은 임대료가 비싸고 공간이 작다 보니, 그런 공간이 생기면 아티스트에게 많은 도움이 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친구 집 지붕 위, 차이나타운 지하 쇼핑몰의 점포, 그리고 버려진 건물 지하에서 하는 전시회도 가 본 적이 있다. 서울에도 이처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아티스트가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편하고 가공되지 않은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매장 앞에 놓인 스케이트보드는 딱히 의도한 건 아니고, 그냥 내 친구가 놀러 왔다가 깜빡하고 두고 간 것이다.
길거리, 언더그라운드 예술은 때로 갤러리라는 공간 혹은 개념과 잘 섞이지 않는다. 둘 사이의 간격을 성공적으로 좁힌 사례가 적진 않지만, 갤러리의 운영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거리다. 당신의 생각은?
언더그라운드 환경과 거리야말로 최고의 예술이 탄생하기에 가장 좋은 보금자리라고 생각한다. 퓨츄라(Futura), 바스키아(Basquiat), 람엘지(Rammellzee) 같은 아티스트가 스타일을 완성해 나가면서 부정적인 편견을 부수고, 언더그라운드 예술이 기성 갤러리에 전시되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만들며 이미 증명하지 않았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거리와 세상에 대한 독특한 시야를 얻게 되면서 유명 사진가가 된 이들도 마찬가지고,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도 세계적인 감독이 되기 전에는 열성적인 스케이터였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 내 꽤 많은 전시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Exhibition’이라는 단어보다 ‘Show’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데, 똑같은 전시를 서너 달씩 지속하는 타 갤러리와 달리 당신에게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듯 하다. 이는 전략인가, 아니면 전시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자연스레 비롯된 결과인가?
그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능한 한 꾸준하게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3달씩이나 진행하는 전시는 내게는 상당히 불필요한 일 같다. 우리가 소개하는 아티스트 중 대부분이 막 떠오르는 신인이다 보니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아티스트를 새로운 시장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뉴욕과 서울의 스트리트 신이 다르듯, 전시를 보는 두 나라의 관객도 조금은 다를 것 같다. 어떤 차이를 느끼나?
뉴욕과 서울의 신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서울의 관객은 정말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 와서 작품에 집중하는 반면, 뉴욕에서는 전시회 오프닝이 종종 파티에 더 가깝게 변해버려서 작품이 뒷전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뉴욕은 신의 연령대가 어려서 십 대와 젊은이들이 중심이지만 서울의 관객은 비교적 더 많은 나이에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고 종사하게 되는 것 같다.
워십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과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가장 쿨한 이들을 발 빠르게 섭외했다. 마이아 루스 리(Maia Ruth Lee)나 아티바 제퍼슨(Atiba Jefferson)처럼 이미 일가를 이룬 이들부터 신예 아티스트까지 그 섭외력이 놀라운데, 어떻게 그들과 연이 닿았으며 섭외까지 이어졌는지?
지금까지 워십 갤러리 전시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내 친구이거나 전시 큐레이션을 도와주는 아티스트의 친구였다. 내 생각에는 서울이 도쿄보다 비교적 덜 알려졌기에 상당수의 아티스트가 새로운 도시에 작품을 전시하는 기회를 반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나 또는 큐레이터가 개인적으로 아는 아티스트 위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 커뮤니티와 신의 느낌을 유지하고 싶다.
전시회의 주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 시의성이나 세계적인 트렌드도 기준 중 하나인가?
내게 가장 큰 기준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다. 현재 진행 중인 여성 아티스트 9명의 ‘핑크 문(Pink Moon)’ 전시가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그램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아티스트 각자의 스타일이 모두 독보적이고 서로 다르다. 다른 사람이 이미 한 걸 베끼기보다는 전 세계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이 도시의 문화를 지탱하고 진보시키는 공간으로 느껴지게끔 워십 갤러리를 꾸려나가고 싶다.
갤러리 디렉터에 앞서 직접 예술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이기에 개인적인 취향이나 예술관이 갤러리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 같다. 이를 조심하려고 하는 편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하는 편인가?
내 취향과 가치관이 적정선에서 조심스럽게 갤러리의 태도와 방향성에 스며드는 것 같다. ‘워십’이라는 이름과 지금까지 전시된 작품 모두 내가 아티스트로서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금기시되는 무드와 동일 선상에 있다. 내 개인 작업과 복제품처럼 똑같이 보이는 것은 원치 않지만,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운영하다 보면 다른 공간보다 더 독특한 곳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워십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미국, 더 자세하게는 뉴욕의 서브컬쳐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뉴욕에서의 삶이 전시 주제 선정과 기획에 큰 영향을 끼치나?
내가 자라 온 환경과 관여해 온 모든 일이 내 취향을 형성했고, 최종적으로 갤러리와 전시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화와 신에 속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고 이곳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일에 영향을 줬다.
최근 종료한 사진전 ‘Close To Home’의 경우, 전시된 작품 중 상당수가 판매된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한국에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문화인데, 이를 지지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신이 소개하는 문화를 향한 대중의 욕구와 수요가 존재한다고 느끼는지?
‘Close to Home’이 스케이트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조명하는 사진전이기에 한국 시장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쉬우리라 생각했다. 참여 포토그래퍼의 대다수가 전설적인 아티스트일 뿐 아니라 그들이 찍은 대상도 유명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내세우는 스타일의 예술에 수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성장할 여지가 크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이곳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일이 즐겁다. 서울의 신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고 싶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예술가에게 이런 분야의 예술이 그들의 진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같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워십 갤러리가 최근 주최한 밴드 델리걸즈(Deli Girls)의 내한 공연은 을지로의 복합예술공간 신도시에서 열렸다. 앞으로도 서울의 다양한 예술 공간과 협력 및 협업을 진행할 예정인가?
한국의 다양한 예술공간 및 회사와의 협업은 당연히 기대해도 좋다. 특히 신도시는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서울의 음악 신을 진보시키는 멋진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이버 스케이트 샵(Savour Skateshop)과 함께 호주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패스포트(Pass~Port)의 새 스케이트 필름 “Kitsch” 시사회를 워십에서 열기도 했다. 웝트와도 오랜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니 당연히 재밌는 일을 같이하고 싶고. 이 도시에서 비슷한 문화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함께 문화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워십 갤러리에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
내년에 그래피티부터 페인팅, 스케이트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독특한 삶을 사는 아티스트들이라 뉴욕과 서울을 넘어 유럽, 남미 등 다양한 곳의 예술 신과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번 신도시에서 진행한 델리걸즈와 나(Nah)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을 보며 더욱더 많은 뮤지션을 초대할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
Worship Gallery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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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김용식
사진 │ 오세린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