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친 2020년, 우리는 봄을 잃어버렸다. 모처럼 찾아온 따뜻한 날씨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으며, 혹시라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몸에 달라붙을까 타인과의 거리를 벌린다. 모든 사람이 감염 의심자고, 모든 사람이 사이비 신도다. 천지가 들썩이는 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죽어있다.
이번 달 자신의 유튜브 라이브러리를 공개할 이는 최영(Yeong Die)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빌 에반스(Bill Evans)와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에 빠져 24세에 재즈에 발을 들였으나 이후 DJ 威力의 믹스테잎을 통해 디제잉과 전자음악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다양한 행보를 선보인 최영은 지난 2019년 반스 뮤지션원티드 한국 Top5에 포함되기도 했다.
Yeong Die의 “10 Pieces”
이번 달 무려 10편의 영상을 추천한 최영. 리스트를 보내며 직접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 우스꽝스럽고도 씁쓸한 것, 무섭지만 끝까지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양가감정을 자아내는 영상을 천천히 감상해보자.
1) “Chet Baker- Rome 1956”
영상 길이: 2분 42초
채널: Karel Cuelenaere ROIO Archive
쳇 베이커(Chet Baker)가 1956년 로마 공연에서 “You Don’t Know What Love Is”를 부르는 짧은 영상이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쳇 베이커의 그림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치 3D 기술로 만든 캐릭터나 최신 기술로 굉장히 잘 만든 로봇과도 같은,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그러나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얼굴. 나는 그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2) “Yuja Wang: Debussy Arabesque No 1 in E major 1996”
영상 길이: 4분 10초
채널: Peter 2.0
나는 왜 영재 음악가들의 영상에 매료되는가? 그들의 모습이 즐거움과 순수한 기쁨, 미래에 대한 감각을 상기시키기 때문일까? 웅장하고 화려한 연주 홀과 자칫 과할 수 있는 드레스, 짧은 헤어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9세 유자 왕(Yuja Wang)의 영상을 보며 평소 잊고 지내던 감각들을 되살려보자! 소름 주의.
3) “Debussy “Clair de Lune” on Piano for 80 Year Old Elephant”
영상 길이: 3분 22초
채널: Paul Barton
연주자 폴 바튼(Paul Barton)은 사고와 벌목산업으로부터 구조한 코끼리들과 함께 태국에서 지내며 일련의 시리즈물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 영상은 유일한 관객인 코끼리 람 두안(Lam Duan)이 앞을 보지 못한다거나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관객과 연주자가 있는 익숙한 그림으로도 읽힌다. 좋은 관객, 좋은 연주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머리 아파해 보자! 화려한 기교와 섬세한 터치 없이도 ‘틀림없이 좋은 연주’와 함께.
4) “32 Metronome Synchronization”
영상 길이: 4분
채널: jrmins
명상과 리듬 공부를 위한 32개의 메트로놈 비디오. 리듬은 돌아오는 거야, 지구는 둥그니까. 이 현상은 ‘공명’이라는 물리학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메트로놈들이 서로 동기화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상판이 움직이면서 형성된 ‘Swing Frequency’에 자연스럽게 맞춰진다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이 영상은 꽤 오래전에 알게 되었음에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종종 꺼내 보게 된다. 부메랑처럼.
5) “Rowan Atkinson Live – Funny invisible drum”
영상 길이: 5분 14초
채널: Rowan Atkinson Live
최근 드럼 시퀀싱을 연구하며 골머리를 앓던 중에 발견한 영상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 있게 시청을 권합니다. 고양이가 특별출연합니다. 놓치지 마세요.
6) “Yeong Choi – PIZZAPI (2018) FULL ALBUM”
영상 길이: 46분 45초
채널: Emma Zoia
2018년 2월에 정리해 비공식 셀프 릴리즈한 디지털 앨범. 작업에는 개러지밴드와 마스터 키보드만이 사용되었고, 어느 해 여름 몇 주 만에 만들어낸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젝트 파일도 없고 WAV 파일도 가지고 있지 않다.
7) “Giant Tuna Cutting Sashimi / Korean street food/ 거대한 참치 헤체쇼 참치회”
영상 길이: 29분 59초
채널: Eatnow
무수히 많은 ‘Tuna Break’ 영상 중 하나를 골라보았다. 참치의 크기(무게), 연장의 장르와 다양성, 화질과 편집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유튜브에서 스시와 사시미에 관해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우리 아버지는 왜 스시 장인이 아닌가 하는 불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시미를 다루는 여자 셰프 10명 찾기를 목표로 서칭을 한 적도 있다. 참치는 정말 비싼 생선이고, 이 영상은 참치가 먹고 싶어지는 영상은 아니다.
8) “Live Train 24/7 Train Driver’s View. Cab Ride Winter Norway Train Live View. Front Window View”
영상 길이: 24/7 Live Streaming
채널: RailWay
1년 365일 언제라도 세계 각지의 기차에 올라탈 수 있다. 이 채널에서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적게는 2개에서 6개까지 동시에 돌아가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뷰를 찾아 감상하면 된다. 각각의 기차가 지금 어떤 곳을 지나고 있는지는 링크를 열어야만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 번씩은 다 열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9) “SsingSsing: NPR Music Tiny Desk Concert”
영상 길이: 15분 1초
채널: NPR Music
본인은 이미 너무 많이 돌려보았으나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영상이기에 비즐라를 통해 언급하고자 한다. 2017년 신도시 라이브를 보고 팬이 됐다. 그들은 음원을 씹어먹는 라이브를 구사한다(라이브 보고 나서 음원을 들으면 심심해서 못 듣는다). NPR 채널의 라이브 영상은 언제나 좋은데, 슬프지만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씽씽을 고르겠다. 리조(Lizzo)와 에리카 바두(Erykah Badu) 영상을 이어서 보고 싶다.
10) “Bill Evans Live at Molde Jazz Festival (1980 Live Video)”
영상 길이: 42분 34초
채널: BillEvansArchive
빌 에반스의 생전 마지막 공연이라고 한다. 나는 빌 에반스와 브래드 멜다우 때문에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을 정도로 그들의 팬인데, 과거엔 술을 마시고 귀가해 꼭 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한잔을 더 하다가 기어이 울곤 했다. 이제는 자주 찾아보지도 않고, 끝까지 볼 자신도 없지만,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