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마이 유튜브 라이브러리(MY YOUTUBE LIBRARY)’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시리즈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갑작스러운 변화가 다소 낯설 수도 있겠지만, 어느새 따뜻해진 봄 날씨처럼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환기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 편집자의 변이다.
이번 달의 라이브러리를 맡아준 이는 VISLA 매거진의 디자이너 박진우다. 매거진의 쿨한 디자인을 손수 만들어내는 인물인 만큼 그의 관심사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 하단은 박진우가 직접 적어준 그의 추천 목록에 대한 소개 글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글의 재미를 반감시킬 뿐이니, 어서 스크롤을 내려 그의 라이브러리를 훔쳐보도록 하자.
박진우의 ‘호기심’ 리스트
작년만 하더라도 나는 꽤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는 게임 강국 대한민국의 남자 중의 남자였다.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배틀그라운드와 오버워치에 투자하며 30대의 아름다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게임도 어느 순간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라. 사실 너무 많이 해서 지겨워졌다는 게 정설이다.
나의 심심 욕구를 채워줄 무언가를 찾다가 다들 하도 “유튜브~유튜브~” 하길래 내 성향에 맞는 유튜브 채널을 수집하기로 마음먹고 구독 리스트를 채워나갔다. 나는 지금껏 유튜브 라이브러리에 참여한 분들과 다르게 채널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채널 운영자의 지식, 태도, 무게감 등에 중점을 두고 업데이트 영상을 지속적으로 흥미롭게 시청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했다. 독자에게 소개하며 염려가 되는 부분은 예술적인 영상이 전혀 없다는 것.
소개할 채널의 교집합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보자면 ‘호기심’이다. 호기심이란 굉장히 순간적이다. 사냥개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그런 느낌… 깊이 있게 지식을 탐구하기보다는 순간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정보를 조금씩 쌓아 그게 지식이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정도의 마음가짐이다. 멋있는 척하면서 말하면 이렇지, 사실 그냥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은 게 기준이다.
1) “How to Make Soup for the Poor- The Victorian Way”
영상 길이: 7분 9초
채널: ENGLISH HERITAGE
한국 전통 채널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영국이다. 나는 영국에 전~혀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채널은 콘텐츠의 구성이나 퀄리티가 너무 훌륭하다. 이를테면 “빅토리아 시대의 방식으로 OO 만들기” 카테고리가 있다. 제목만 보면 “조선시대 방식으로 김치 담그기”처럼 국내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콘셉트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영상을 보면 배경부터 출연자까지 그 시대 분위기를 100% 재현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시절 메이크업 튜토리얼이라든가, 중세시대의 성을 드론으로 아름답게 촬영한 영상도 있다. 영어를 못 해서 10%도 즐기지 못하는 듯한 내가 밉다. 어쨌든 이 채널은 아이디어와 퀄리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야무지게 잡아 쥐고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나는 놀라면서 보기만 하면 된다. 중세시대물이나 판타지물의 배경과 흡사한 것도 호기심이 생기는 이유다.
2) “’정가은 전 남편’ 김유진은 15년 전부터 이런 사기꾼이었다”
영상 길이: 13분 12초
채널: King of journalist
둘째로 “기자왕 金기자” 채널이다. 가십 성격이 강한 이 채널은 일요신문의 김태현 기자가 운영한다. 대부분 사기꾼이나 자극적인 사건의 뒤를 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기꾼 이희진 이야기나, 신천지 이야기도 있고, 신종 직업으로 큰돈을 벌고 있는 아프리카 BJ들의 사건 · 사고도 자주 언급된다. 이 채널을 보다 보면 ‘나는 정말이지 착한 사람이고, 큰 돈을 벌려면 역시 불량해져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이 채널에서 가장 재밌었던 영상은 방송인 정가은의 전 남편인 사기꾼 김유진에 대한 영상 3부작이다. ‘사기꾼이란 직업은 대체 어떤 마인드와 태도로 지니고 있나?’, ‘혹시 내 주변에도 그런 타입이 있나?’, ‘나는 어떻게 다른가?’ 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가십이 당길 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럴 때 보면 된다.
3) 이탈리아에서 요리하는 요리사가 알려주는 24. 오리지널 까르보나라 Spaghetti alla carbonara
영상 길이: 17분 45초
채널: Kim milan
2020년대의 레시피… 레시피란 무엇일까. 네티즌 대부분은 특정 요리를 만들려고 할 때 네이버에 요리 이름을 검색하고 상위에 노출된 레시피를 따라 만들 확률이 높다. 이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기존의 각 가문(?)을 통해 전파되던 개성 있는 레시피나, 전통의 오리지널 레시피들은 점차 줄어들고, 순간적인 맛을 내기 위한 자극적인 레시피만이 남아 다 똑같아질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마치, 서울의 아파트들처럼… 기본이라는 기둥을 먼저 세우고, 변주나 끼부리기는 그다음이 돼야 근본을 베이스로 한 요리들이 멋지게 파생되지 않을까.
밥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엄밀히 말하면 흰쌀밥 소비와 메인 반찬 만들기에 피곤함이 너무 컸다. 그 고민에 대한 주변인의 추천은 ‘파스타’였다. 그리 시작된 나의 파스타 게임… 쿠팡에서 산 아무면 아무 소스로 만들어 몇 번 먹었다. 그러던 중 근본 탐지 센서 같은 게 발동되며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호기심이 밀려왔다. 나는 더 제대로 입문해야 한다고 느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알리오 이 올리오’가 파스타 입문에 적절한 듯하여 유튜브를 통해 레시피를 찾아봤다. 그 와중에 추천받은 ‘김밀란’의 요리 채널은 나의 근본에 대한 갈증을 말끔히 적셔주는 컨텐츠였다. 김밀란 셰프는 이탈리아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고, 주말에 틈틈이 요리 영상을 업데이트하는 듯했다. 탑 뷰(Top view)로 진행되는 그의 영상은 자잘한 편집 없이, 대부분 리얼타임으로, 목소리도 없이 중간중간 텍스트가 뜨는 게 전부다. 그는 요리를 말할 때 항상 기원이나, 지역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요리는 ‘레시피’이기 이전에 특정 지역의 전통적인 음식이자 역사를 간직했음을 강조한다. 크림 파스타(까르보나라로 잘못 알려진)를 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까르보나라에 크림 따윈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요리에 크림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등 차가운 벽을 치며 진정성을 유지하는 멋진 모습… 누군가에게는 꼰대처럼 보이겠지만, 이 세상은 그런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밸런스가 조화로울 때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김밀란의 까르보나라 영상의 플레이 버튼을 눌러본다.
4) “Meet Olly the Hilarious Jack Russell from Crufts 2017″
영상 길이: 1분 27초
채널: Crufts
긴말 필요 없고, 전문용어도 모르겠다. 개 대회 채널이다. 강아지들이 짜세(?)를 뽐내는 대회는 조금 지루하고,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애물 넘기 영상을 틀어놓고 휴식 시간을 가져 보자.
5) “진화론의 역사, 진화론에 대해 간략한 소개”
영상 길이: 12분 39초
채널: 이상희 인류진화
대망의 마지막.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다니 송구스럽다. 역시 최애는 최후에 공개하는 게 맞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채널은 요즘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이상희의 인류진화’ 채널이다. 아~이건 진짜 나만 알고 싶었는데~ 는 농담이고, 이상희 교수님(?)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라고 한다. 선사시대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시고, 인류학 신(Scene)에 새로운 논문 발표가 있으면 간혹 리뷰도 하신다.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인류의 먼 조상인 ‘루시’가 언제적 사람(?)인지 아는지… 무려 3,300,000년 전이란다. ‘0’이 너무 많아서 헷갈릴 정도다. 33만이 아니라 330만 년이다. 330만 년… 330만 년… 어디 가늠이나 되는 세월인가. 손가락, 발가락, 호흡기관, 뇌, 뼈 등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수백만, 수천만, 수억 년 전부터 아주 천천히 지금의 우리로 변화됐다는 사실을 찬찬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놀랍다. 직립보행도 그 시작이 아니라 과정의 극히 일부, 상징적인 부분일 뿐이다.
‘포유류 중 인간의 아기는 왜 이렇게 오랜 기간 연약한가’라든가, ‘6,000년 전 껌에 남아 있는 유전자 정보’라든가, ‘할머니 덕분에 무사히 크는 손주와 연관된 고래와 인간 진화의 비결’이라든가… 펭귄이 작아진 이유라든가… 제목만 봐도 클릭을 참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교수님답게 성실히 매주 수요일 아침에 업로드된다. 역시나 진정성 있는 채널이기에 디자인이나 편집이 후지다. 하지만 재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류의 과거를 탐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