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2020년 3월호

2019년에서 2020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은 좀 이상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잔뜩 사놨던 마스크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그 존재 이유를 빼앗겼고, 봉준호의 “기생충”은 아카데미를 휩쓸었다. 큰 맘먹고 비싼 아우터를 샀는데 아쉽게도 겨울은 별로 춥지도 길지도 않았다. 또 호주에서는 어마어마한 산불이 몇 개월간 꺼지지 않았다고. 우리들은 그 이상한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나. 비즐라 매거진 11호에 실린 이번 월간 영감에는 뮤지션 ‘수민’과 아티스트 ‘강은교’가 함께했다.


이미지 출처: Howto Ikunaga(Flickr)

클럽 트랜스

20살 때부터 클럽 트랜스(Trance)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 당시 이태원 클럽 퀸(Queen)의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했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나나(NANA)가 주는 술을 마시다 취해 바로 옆 클럽 트랜스에 갈 때면 항상 미치도록 설렜다. 예전에는 드랙 아티스트들이 지금처럼 많을 때도 아니었기에 그곳에서 공연을 보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고 귀했다. 이후 트랜스 말고도 드랙 아티스트가 쇼를 할 수 있는 몇 군데의 베뉴가 생기긴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트랜스에 갈 때마다 나는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 단순히 음악에 관한 영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 애티튜드와 연기 등 많은 걸 연구할 수 있었다. 트랜스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MORE’인데, 그의 공연은 나에게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선 감동을 준다. 발레를 전공한 그의 공연은 다른 아티스트의 쇼보다 유난히 섬세하다. 나는 ‘MORE’의 선과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연기력을 사랑한다. 또 그가 선곡하는 음악, 그가 만들어가는 ‘MORE’의 세계관을 사랑한다. 그뿐만 아니라 트랜스에서 활동하는 유자, 랑이 등 모든 아티스트는 내가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내가 박수민에서 ‘SUMIN’으로 변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아이디어를 줬을지도 모른다.

수민(뮤지션)


이미지 출처: Apple Inc.

아이폰 11

핸드폰을 바꿨다. 무려 7년 만에. 많은 사람이 아이폰 SE로 오해하던 내 핸드폰은 사실 아이폰 5S였다. 아무튼 기계를 3년 이상 쓰는 게 비상식이 되어버린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퍽 세련되지 못한 짓이었다. 왜 그랬느냐고? 솔직히 아무 이유도, 사연도 없다. 멀쩡히 작동하는 기계를 굳이 바꿀 만큼 스마트폰에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나, 그냥 7년 정도 쓰다 보니까 ‘이게 언제까지 가나 보자’라는 이상한 오기가 생기더라. 귀찮음, 무관심 그리고 ‘기계가 뭐가 중요해’ 따위의 왜곡된 근본주의가 아마 그 오기의 정체였을 테다. 그동안 지인들이 핸드폰 좀 바꾸라며 사정하면 자잘한 농담으로 상황을 모면하며 핸드폰을 지켜냈지만, 5년 이상 넘어가니 아무리 둔한 나라도 이게 더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궁상이 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바꿔야지, 바꿔야지, 바꿀게, 응 나 진짜 바꿀 거야. 말만 늘어놓다가 최근 드디어 아이폰 11로 바꿨다. 7년간 정들었던 5S의 전원을 끄고 책상 서랍에 넣는 과정이 괜스레 엄숙한 의식처럼 느껴졌던 건 자랑은 아니지만 오버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쯤 돼서 고작 핸드폰 바꾼 일이 뭐가 ‘영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저히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핸드폰을 정기적으로 바꾸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하루 만에 5에서 11로, 무려 6단계나 진보한 핸드폰은 영감 그 자체니까. 부끄럽지만 새 핸드폰은 그동안의 고집이 무색하게 내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핸드폰과 함께 요금제까지 LTE 무제한으로 변경한 나는 이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출퇴근 지옥철 안에서 여유롭게 넷플릭스(Netflix)를 즐길 수 있으며, 파티에서 멋있는 트랙이 들리면 공중으로 근사하게 팔을 뻗어 샤잠(Shazam)할 수 있다. 너무 사소한 일들이라고? 미안하지만 5S 쓰던 사람한텐 이 정도면 스웩 그 이상이다. 고물 같은 핸드폰을 끙끙대며 사용해 온 지난 세월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부드럽고 민첩하게 작동하는 스마트폰에 감동하며, 디지털 시대에 노후한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새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핸드폰을 바꾸는 친구들을 속물이라 비꼬며 은근슬쩍 근본충 코스프레를 시도하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역시 좋은 게 좋은 거다.

사족과 호들갑으로 점철된 이 글에 교훈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면 대충 ‘남의 말도 좀 듣고 살자’ 정도가 되겠다. 모름지기 나이를 먹고 경험치가 쌓이면 똥고집과 신념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지혜는 자연스럽게 생기리라 생각했으나, 그마저도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케바케, 사바사인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0년을 갓 시작하는 시점에 이런 교훈을 얻었다는 사실. 덕분에 올해는 귀를 열고 더욱더 날카롭게 자신을 객관화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 삶을 불행하고 쪽팔리고 미개하게 만드는 원인은 대부분의 경우 나 자신이기 마련이니까.

김용식(VISLA Editor)


이미지 출처: Google maps

구글 스트리트 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러시아워를 피해 해가 온전히 다 뜨기도 전에 차에 올라, 고속도로 위에서 시속 80~ 90km 정도로 지나가는 풍경을 하염없이 보는 일을 9년간 반복한 셈이다. 그것이 지루했느냐 하면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고속도로 옆으로는 거의 논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드문드문 소가 서 있기도 하고 바나나 나무가 무리 지어 있기도 했다. 종종 나는 저 논밭 한가운데 서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혹은 그 옆에 덩그러니 지어져 있는 저 집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곤 했다. 그랬을 때 생기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13년 전 구글은 스트리트 뷰(Google Street View)를 발표했다. 같은 해 말 나는 시카고로 떠났는데, 그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2G폰을 사용하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지도 앱을 보며 새로운 곳에 길을 잃지 않고 즉흥적으로 찾아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여행 ─ 그것이 국경을 건너는 일이든, 동네 밖을 나서는 일이든 ─ 에 있어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 탓에 나는 구글 맵에서 목적지까지 루트를 검색하고 중간중간 어떤 풍경이 나오는지 스트리트 뷰를 통해 눈에 익힌 후 집을 나서곤 했다. 타지에서 특별히 적응하기 어렵다고 느끼지 않은 데는 아마 스트리트 뷰의 역할이 한몫했을 것이다. 초행길의 어리바리함은 이제 일부러 길을 잃는 재미를 원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감각이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스트리트 뷰 서비스 지역은 늘어나, 2019년 말 기사에 따르면 스트리트 뷰가 커버한 구간의 합은 천육백만 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스트리트 뷰가 얼마나 실용적인지를 논하려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달 한두 번씩 스트리트 뷰를 들여다보며 통째로 날려버린 새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유년기를 보낸 집, Prada Marfa, 태평양에 덩그러니 떠 있는 작은 섬들, 무서워 가보지 못했던 시카고의 South Side, 케이프타운의 쨍한 길거리를 지나 여기도 사람이 사는가 싶은 강원도의 산골짜기까지. 스트리트 뷰의 시선은 인간의 눈높이보다는 높고 감시 카메라보다는 낮아서, 적당히 부유한 상태로 온갖 세계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그만 잠자리에 드는 편이 좋을 시간에 도달하고 만다. 스트리트 뷰는 누군가 공들여 근사하게 촬영한 풍경 사진에 비하면 그저 건조하게 기록된 이미지의 엮음일 수 있다. 그러나 시선과 위치의 이동이 전적으로 본인의 컨트롤에 달려 있기에 풍경으로 뛰어 들어가는 일이 실제로 여행하는 것만큼 감흥적이다. 어릴 적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본 풍경에 나를 세워보는 상상을 했다면, 스트리트 뷰는 그 몽롱한 상상을 좀 더 선명하고 실제적인 것으로 전환시켜주는 장치인 것이다. 이미지의 의도 없음 또한 여기서는 본인 고유의 감상을 허락하는 요소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삶이 허락한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장소에 직접 가볼 수 있을까. 잠옷 차림으로 말도 안 되는 곳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을 발견하면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서서 응시하는 것마저 가능한 이런 경험은 특별하다. 또한 각각 다른 시간에 수집된 이미지를 엮어 한날한시인 척하는 세계는 시공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볼 때에도 괜찮은 힌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원체 전자 세계의 해프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트리트 뷰의 허술함 또한 재미난 지점으로 여긴다. 알고리즘으로 이미지를 이어 붙인 데서 발생하는 뒤틀림이나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은 촬영 차량 또는 촬영자의 신체 일부, 배의 갑판 위로 합성되어버린 바닷물, 블러 처리된 강아지 얼굴, 가지가 늘어진 나무 아래를 지나가느라 나뭇잎에 가려진 카메라 같은 것들. 이런 오류들은 전자 세계의 백미이자 유머나 마찬가지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의도된 바는 더욱 매끈하게 구축되겠지만 그럼에도 오류는 언제나 기술의 한편에 남아 있을 것이다. 스트리트 뷰의 환영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자기 고발적 텍스처는 결국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이야기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나 거대하고 한편으로 폭력적이기까지 한 데이터의 덩어리를 들여다보며 어쩔 수 없는 낭만을 느끼고 영감을 얻기도 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런 까닭인가 싶다. 글을 맺으며 중요한 풍경을 하나 남겨본다.
https://goo.gl/maps/PU5dySGkCxsP3xuX9

강은교(아티스트)


이미지 출처: Barney Bankhead

디깅

디깅(Digging), 디거. 내 고향 경북 포항에 25년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인데 작년 유독 많이 듣고 썼다. 나부터 ‘디거의 노래’라는 인터뷰 기사를 진행하고 있고. 2년 전, 에디터 홍석민이 VISLA 음악 카테고리에 재발매 기사를 한창 작성할 즈음, 그의 글에서 본 게 아마도 처음이다. 당시엔 무척 생소했던 단어라 어원을 알고 싶어 검색한 적도 있다. ‘땅을 파는 사람’. 이는 디제이, 셀렉터뿐만이 아닌 조금 더 넓은 의미, 그러니까 멜론 TOP 100 차트 따위는 듣지 않는, 팝 음악보다는 조금 더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소위 말해 ‘힙스터’의 범주까지 디거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왜 자칭 힙스터, 얼리어답터 등의 멋진 수식어를 스스로 붙이고 다니는 이들은 새로운 음악을 남들보다 발 빠르게 찾아다니지 않나. 그냥 새로운 음악을 찾는 행위를 ‘디깅’ 단 두 글자로 퉁치니 그 의미 또한 무척이나 가볍게 다가왔다.

서울 친구 대부분 음악을 통해 만났기에 그들과의 대화에서 화두는 언제나 음악이다. 가끔 친구들은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디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스포티파이로 새로운 음악을 찾는 행위는 디깅이라 납득할 수 없었다.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라이브러리에 넣는 건 디지털 특성상 어쩔 수 없으니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2억 명의 스포티파이 이용자가 무심코 쌓아 올린 데이터베이스를 인공지능이 정밀하게 분석한다는 것. 디깅에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스포티파이를 직접 사용하고 생각한 후부터다. 이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비슷한 음악을 연속으로 재생, 추천하며 플레이리스트 또한 생성한다. 그리고 이들은 무서울 만큼 취향을 정확히 알아맞힌다. 아마도 친구는 스포티파이 알고리즘의 플레이리스트, 또는 자동 재생 등을 적당히 들으며, 취향 따라 +버튼과 >>버튼으로 음악을 여과할 거다. 이게 디깅이며, 스스로 쌓아간 라이브러리인가? 석연치 않았다. 너무 꼰대 같다고? 그렇다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 이를 빗대어 보자. 대국에서 승리한 건 알파고다. 알파고를 대리하여 바둑판에 돌을 둔 아자 황의 승리라고 하진 않잖아.

나 역시 스포티파이와 유튜브로 음악을 듣지만 알고리즘의 추천은 절대로 피한다. 그러니 나는 디거가 된 걸까?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들은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나도 디거겠지. 허나 이는 오늘날 디거가 힙스터와 동의어로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힙’ 따위로 포장되는 게 정말 싫다.

‘디깅한다’라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와중에 내 수납장 가득한 바이닐이 생각났다. 스포티파이, 유튜브, 밴드캠프 등의 플랫폼으로 음악을 들은 후 주노, 포니카, 클론 등의 해외 음반 숍을 통해 구한 바이닐이다. 이는 디깅보다는 수납장을 채우기 위한, 자기만족을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했던 행위에 더 가까운 듯하다. 그렇다고 동묘 어느 좁은 레코드 숍에 눌러앉아 ‘지구’, ‘신나라’ 등의 라이선스 판때기를 뒤적이고 이를 불합리한 돈을 주고 사는 것은 더더욱 디깅이 아니다. 그나마 디제이를 겸하는 레코드 숍 주인장의 셀렉션을 직접 찾아서 보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좁아터진 서울 어딘가 한 차례쯤은 재생된 판임을 의미하기에 어째선지 멋이 없는 것 같더라.

다시 ‘디깅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디거란 어떤 사람인가?’를 파헤쳤다. 그리고 “디깅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물음이 담긴 인터뷰를 찾았다. 인터뷰에서 혹자는 귀한 판을 단돈 5달러에 수납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디깅이라 했다. 여기서 귀한 판이란 타이틀조차도 모르는 핸드 스탬프 싱글, 화이트 라벨, 또는 오래전부터 구하고 싶었는데 절판돼서 구하지 못한 판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과거 디스콕스 시세를 훨씬 웃고는 가격에 라이선스 반을 구매한 이력이 있다(지난 매거진 8호에서 ‘동묘산보’를 참고하자). 호갱이라 해도 좋다. 또한 서울의 레코드 숍에는 내가 즐겨 듣는 레이블의 판이 절대로 없을 것이며, 까다롭게 이리저리 재며 판을 구하고 있으니 한국에서는 평생 디깅이란 것을 못 하겠다는 생각 하던 찰나, 작년 여름 레어 실크(Rare Silk)의 트랙 “Storm”에 한창 빠져 있던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 공교롭게도 “Storm” 재발매 기사를 작성한 홍석민이 사무실을 방문하여 나에게 어떤 음악을 듣는지 물었다. 수줍게 레어 실크의 “Storm”을 듣고 있다 말하며, “Storm” 재발매 판을 구매했는지 되물었다. 홍석민은 재발매가 아닌, 귀하다는 첫 번째 프레스, 85년도 판을 인터넷 어딘가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절판되어 가격이 치솟은 판을 조금 저렴한 가격에 주문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정말 그냥 얻어걸린 판이다. 판보다 더 비싼, 배보다 배꼽 같은 해외 배송료를 한 장에 지불하는 게 아까워 이것저것 끼워 넣다 보니 얻어걸린 거다. 이게 내 수납장으로 들어갈 때는 평소 구하고 싶었던 판만큼이나 큰 희열이 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뷰의 어느 혹자가 말한 디깅이란, 어쩌면 홍석민이 인터넷에서 구한 레어 실크 판, 혹은 얻어걸리는 판을 의미하는 걸지도. 2020년 새로운 형태의 디깅이 아닐까 싶다.

황선웅(VISLA Editor)


에디터│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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