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해외 브랜드

저물해

유행이란 것이 그렇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주구장창 입었던 후디임에도 지금와서 입으려니 꺼려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옷을 샀는지 구입 시점으로 돌아가 나 자신에게 묻고 싶을 정도로 납득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수거함에 옷들을 넣기 전 찬찬히 로고를 들여다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옷을 입었던 사람들을 한두 명 쯤 마주쳤었는데. 이제 와서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지금껏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옷을 수거함에 넣었는지 생각해보자. 헤지고 찢어져서가 아니라 단순히 더는 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는지. 특히 한국은 XX룩 같은 의복문화가 아직 깊이 뿌리박지 못했기 때문에 그 유행의 변화폭 또한 심한 나라다. 자신의 확고한 의식 없이는 유행을 좇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아래 소개하는 다섯 브랜드들은 한때 누구의 옷장 속에나 있을 정도로 당시 스트리트 브랜드의 중심에 있었던 브랜드다. 하지만 최근 이 브랜드들의 옷을 입은 사람을 본 일이 전혀 없었던, 흐린 기억의 브랜드들을 모아보았다. 과거의 영광만이 기억되는 이 다섯 브랜드들에 대해 알아보자.

1.     J-Money

제이머니

제이머니(J-Money)는 슈프림의 초창기 디자이너였던 제이미 스토리(Jamie Story)가 슈프림을 나와 2004년 자신 있게 런칭했던 브랜드다. 슈프림의 디자이너였다는 자체로도 큰 이슈를 받았지만, 실제 의류의 그래픽 또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뉴욕을 기반으로 다양한 그래픽을 선보였지만, 그중 가장 큰 임팩트를 남겼던 건 큼지막한 왕관이 그려진 ‘King of New York’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즈음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끌며 여러 편집숍에서 판매를 했었고, 없어서 못 살 정도의 수요에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서서히 제이머니를 찾는 이들이 줄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거리에서 왕관을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현지에서는 2008년, 5주년을 맞이해 크룩스 앤 캐슬(Crooks & Castles), SSUR, UXA 등 주변의  스트리트 브랜드와 협업을 펼치기도 했으나 미국 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2010년 홀리데이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제이머니의 도메인은 남아있지만 웹사이트 안에서 아무런 콘텐츠를 찾아볼 수 없고, 단지 비기(Notorious B.I.G)의 사진 한 장만이 쓸쓸히 걸려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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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주년을 기념한 Crooks & Castles, UXA, King Stampede, Team Works, SSUR 과의 협업물

2.     FreshJive

프자

캘리포니아의 예술가 릭 클로츠(Rick Klotz)는 거리의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고 그 결과, 프레쉬자이브(FreshJive)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졌다. 서핑과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뿌리 삼아 티셔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 프레쉬자이브의 출발이었다. 릭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프레쉬자이브의 그래픽과 직결되었다. 팔레스타인 분쟁에서부터 동물실험, 가정폭력 등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티셔츠에 담아내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그 내용에 따라 굉장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그래픽 역시 많았지만 스트리트 웨어 시장에서 이런 주제들을 건드렸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나름 두터운 팬층이 존재했으며 여러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에서 다루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허나 어떤 이유에선지 릭 클로츠는 돌연 2009년부터 프레쉬자이브의 모든 제품에서 브랜드의 로고를 제거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 2009년 이후 모든 시즌에서 로고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 때문이었을까, 프레쉬자이브는 예전의 명성을 점차 잃어가기 시작했고 현재 매 시즌 발매는 되고 있지만, 만년 세일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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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반응을 얻었던 프레쉬자이브의 Tide 패러디 티셔츠

3.     A New york Thing (Anything)

애니

어 뉴욕 씽(A new york Thing), 흔히 애니씽(Anything) 이라 불리우는 이 브랜드의 시작은 꽤나 거창했다. 앞서 말한 제이머니와 마찬가지로 슈프림의 초기 디자이너였던 A-Aron으로부터 시작되었다. A-Aron은 거창한 계획과 함께 2009년부터 넥페이스(Neckface)와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을 대거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anything’이라고 적혀진 단순한 로고의 티셔츠와 모자가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조합으로 독특한 그래픽 디자인을 뽑아내며 인기를 끌었지만 어느 순간 로고에 편향한 단순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며 점차 쇠퇴해갔다. 역사와 아카이브가 빈약한 브랜드의 로고 남용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컬렉션이 진행되고 있지만 트래셔(Thrasher)의 로고를 패러디한 그래픽 따위가 나오는 등, 브랜드의 개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작부터 제이머니와 가장 닮아있으며 마지막까지 비슷한 길을 걷는 브랜드가 아마 애니씽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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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페이스가 함께한 애니띵의 모자

4.     The Hundreds

헌드

이 카테고리에 넣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브랜드가 바로 더 헌드레즈(The Hundreds)였다. 매거진과 안경 등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으며, 지금은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기에 선뜻 불명예의 왕관을 씌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헌드레즈의 행보를 봤을 때,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외면을 받고 있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에 결국 이 불운의 시상식에 함께 서게 되었다. 2003년을 기점으로 Bobby Kim과 Ben Shenassafar에 의해 시작된 헌드레즈는 LA 에서 처음 그 시작을 알렸다. 헌드레즈가 다른 스트리트 브랜드들과 차별점을 둔 것은 그 판매방식에 있었는데, 스트리트 브랜드 쪽에서는 처음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판매했다. 이후 4년이 지난 2007년 그들의 모처인 LA에 첫 플래그쉽 스토어를 열었고 스케이트보드, 힙합, 펑크 등의 라이프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의류를 제작, 판매했다. 헌드레즈의 귀여운 폭탄 로고는 LA를 넘어 샌프란시스코, 뉴욕, 산타모니카까지 퍼져나가며 덩치를 키워나갔다. 접근하기 쉬운 팬시한 로고 덕분이었는지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까지 그 인기가 계속 되었는데, 이에 우리나라의 여러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샵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헌드레즈를 판매했다. 2008년경 스트리트 패션을 추구하던 이들에게 큰 각광을 받았지만 채 3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이 폭탄 로고를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고 느꼈고, 동시에 많은 가품이 양산되며 뜨거웠던 인기가 점차 식어갔다. 영화는 주인공을 따라가고 브랜드는 로고를 따라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언젠가 펑- 하고 터질 거라는 예상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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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많은 인기를 얻었던 더 헌드레즈의 데님

5. Zoo york

주욕

위 네 브랜드들에 비하면 주욕(Zooyork)은 그 흥망성쇠의 갭이 가장 큰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허나 그 역사 덕분에 여전히 뉴욕의 큰 형님 브랜드로 인식되는 주욕은 1971년 뉴욕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래퍼인 알리(ALI)가 창시했다. 그와 그래피티 집단의 구성원들은 뉴욕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철창 속에 같힌 동물 같다고, 그래서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꼈고, 더 이상 새롭지( New)않은 동물원(Zoo)이 자신들의 도시에 더욱 적합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주욕은 이런 비판적 사고들이 더해져 탄생했고 이들의 냉소적이고 재치있는 사상은 디자인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주욕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그 열풍은 슈프림까지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2005년도 당시 카시나에서 주욕 정식 매장을 오픈했으며 오픈 당일의 인파 역시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록했다. 이후 몇 년간은 정말 주욕의 시대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디서나 주욕의 이니셜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기에 따라 수 많은 가품 역시 만들어지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또한 주욕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자본이었다. 2009년 미국의 브랜드 그룹 아이코닉스(Iconix)에 흡수되며 주욕은 거대 자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이전의 아이덴티티를 모두 잃어버렸다. 주욕의 긴 역사는 이어지지 못했고,  현재로서는 전혀 포커스를 받지 못하는 브랜드로 전락해버렸다. 최근 주욕의 스케이트보드 팀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나 의류에 있어서는 아직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

▶ 2014년 주욕의 스케이트보드 영상

앞의 다섯 브랜드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물론 유행은 돌고 돌며 어쩌면 저 다섯 브랜드 중 어느 하나가 다시 한 번 거리를 물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슈프림이나 스투시와 같이 롱런하는 브랜드와 위 소개된 브랜드의 차이점이 무엇일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예로 슈프림의 박스로고 티셔츠는 발매할 때마다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굉장히 빠른 품절 사태를 일으키지만 결코 수요에 비례하는 공급을 하지는 않는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브랜드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인드가 브랜드의 앞날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위의 다섯 브랜드는 옷을 선택하는 소비자와 옷을 만드는 공급자들 모두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반대로 단순히 유행을 흐름을 좇지 않고 독자적인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탐구해나가는 브랜드는 분명 수거함에서 단기간에 운명을 마감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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