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사베츠의 영화가 2020년에 묻는 것들

“뉴욕 인디의 두 사람: 존 카사베츠와 셜리 클라크” 공식 포스터
이미지 출처: 서울 아트시네마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4월 15일부터 5월 10일까지 ‘뉴욕 인디의 두 사람: 존 카사베츠와 셜리 클라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미국 영화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거장 존 카사베츠(John Cassavetes)와 셜리 클라크(Shirley Clarke)의 작품들이 2020년의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두 사람은 할리우드로 귀결되는 미국 영화사에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인물들이다. 작업을 진행한 공간도 서부의 할리우드가 아닌 동부의 뉴욕이었으며, 제작 역시 거대 영화사의 지원 없이 독립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기 시작한 60년대엔 2차 대전의 종결이 실감 나기도 전에 베트남 전쟁이 있었고, 냉전은 더욱 가속화됐다. 미국에선 케네디(John F. Kennedy), 말콤 X(Malcolm X),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이 암살됐고, 흑인들의 인권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히피들은 거대한 문화를 만들었으며, 여성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한때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프랑스는 ‘누벨바그’란 이름으로, 독일에선 ‘뉴저먼 시네마’, 영국은 ‘프리 시네마’란 이름으로 영화의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존 카사베츠와 셜리 클라크가 뉴욕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존 카사베츠
이미지 출처: Steve Reisch

본격적으로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주말을 통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냈지만, 상영 일정이 맞지 않아 셜리 클라크의 영화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셜리 클라크가 출연한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의 “라이온의 사랑”은 관람했지만, 그것으로 셜리 클라크의 영화에 관하여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아쉬움이 남지만, 셜리 클라크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글에선 존 카사베츠의 영화에 집중하겠다.

존 카사베츠의 영화 “오프닝 나이트(OPENING NIGHT)” 중 한 장면

나는 ‘뭐라 말하기 힘든’,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따위의 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은 쉽게 행해져서는 안 되며, 정확히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는 일’에 닿기 위해 ‘힘들게’ 꺼낸 것들이 가치를 부여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존 카사베츠의 영화 다섯 편을 이틀간 연달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은 ‘이 영화들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 것인가’였다.

작은 것 하나라도 붙잡아 보려 꺼냈던 수첩엔 ‘얼굴에 밀착하는 카메라’, ‘다소 과하게도 느껴지는 연기’, ‘영화를 멈춰 세우는 음악의 삽입’, ‘느껴지지 않는 폭력성’ 따위가 적혀있지만, 이런 말들로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수첩에 적힌 글씨보다 내게 더욱 강하게 남아 있는 건, 그의 영화를 보며 몇 번이고 웃었다는 것과 그 웃음은 유머에 대한 반응이거나 따뜻함에 절로 짓는 미소, 끝내 품는 희망의 증거였다는 사실이다.

존 카사베츠의 영화 “영향 아래의 여자(A WOMAN UNDER THE INFLUENCE)” 중 한 장면

존 카사베츠의 영화엔 비정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설정된 인물이 늘 등장한다. ‘이상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저 다른 거지’ 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인물들을 바라보기 시작해도, 영화 속에서 그 인물들은 어김없이 곤란한 상황을 야기하기에 ‘진짜 문제가 있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그러나 영화를 좀 더 면밀히 살피다 보면, 그 인물들로 인해 곤란해진 건 이들을 비정상 혹은 문제가 있다고 호명한 몇몇일 뿐이다. 그 몇몇을 제외한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은 오히려 이들의 비정상 덕분에 행복해하며 웃는다.

정상과 비정상, 평범함 것과 낯선 것, 유쾌함과 불쾌함,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까. 수많은 스피커가 코로나19 이후로 새로운 기준이 제시될 거라 예상했고, 이에 반응하여 ‘뉴 노멀(New Normal)’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뉴 노멀, 무엇이 새로운 것이고 무엇이 평범한 것인가. 규정하고 답을 내리는 일은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우리를 구속하고 게으르게 한다. 2020년에 도착한 존 카사베츠는 그가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든다.

“평생 나는 명료함에 대항해 싸웠다. 그 모든 바보 같은 명확한 정답에 대항하면서 말이다. 도식적인 삶, 매끈한 해결책들은 꺼져버려라. 삶이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 존 카사베츠


얼굴들 FACES/1968/131min/15세 관람가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지나 롤랜즈와(Gena Rowlands)의 첫 협업 작품이다. “얼굴들”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카사베츠의 그 어느 영화보다 얼굴에 집착한다. 그 얼굴은 대부분 정말 재미없는 농담과 함께 격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 얼굴들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THE KILLING OF A CHINESE BOOKIE/1976/109min/청소년 관람 불가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와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 것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갱스터 무비의 또 다른 결을 만들어 낸다. 흔한 갱스터 무비에서 경험했던 쏜살같은 카체이싱, 숨막히는 추격전, 배신과 협잡, 화려한 총성 등은 이 영화에 없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 영화를 본 뒤 극장 밖으로 나오면 도시와 그 속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오프닝 나이트 OPENING NIGHT/1977/144min/15세 관람가

지나 롤랜즈의 연기가 폭발하는 이 작품은 연극과 영화, 젊음과 늙음을 오가며 규정될 수 없는 인간에 관하여 집요하게 파고든다. 확신에 찬 명료함만이 설득력을 얻는 이 시대, 우리는 제대로 반문해왔는가. 정말 그러하냐고. 그것만이 정답이냐고. 매끄러움과 명료함에 가려 얘기되지 못했던 혼란스러운 진실들을 이제라도 꺼내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뉴욕 인디의 두 사람: 존 카사베츠와 셜리 클라크”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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