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 : ‘모방’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낱말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를 뜻하는 'Gene"를 합친 말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에 펴낸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라는 뜻이다. 유전자와 유사하나, 고정된 단위를 갖지 않고, 유전자와 다른 방향으로 숙주의 행동을 조절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위는 밈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요약한 것이지만 이러한 정의와는 별개로 밈은 영미권의 인터넷 용어로도 사용된다.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준에 머물던 인터넷 문화는 웹 2.0(Web 2.0)으로 진입하면서부터 이용자들의 참여가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블로그나 커뮤니티 역시 함께 성장했고,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사람들은 이제 직접 정보를 게시하고 소통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온라인에 서식하는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었다. 그중 하나로 기존에 있던 콘텐츠에 몇 가지를 덧붙여 재생산하는 문화를 들 수 있는데 이 현상은 특히 문화 콘텐츠, 즉 음악이나 미술, 혹은 게임 이용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앞서 서술한 목록 외에도 이 개념이 끌어안을 수 있는 테두리는 무한히 넓었고 결국, 인터넷 서브 컬처의 중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름하야 ‘밈’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여러분이 익숙할 만한 사건과 관련한 밈을 하나 첨부한다. 위의 사진은 힙합 신을 크게 뒤흔들었던 빅 션(Big Sean)의 “Control”이 공개된 뒤에 인터넷을 떠돌던 밈이다. 위와 같이 기존에 존재하던 미디어에 새로운 컨텐츠가 삽입되어 새로운 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구조는 ‘변이-결합-복합체-복제’의 4단계로, 바이러스와 매우 흡사하다. 전파를 위해 매개체가 모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고, 그들이 바이러스(또는 밈)를 공유해야 한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전파를 위해 필수적으로 사회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밈은 바이러스와 구별된다. 웹 2.0 시대에 생긴 커뮤니티들은 이러한 조건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중 2000년대 초반에 생긴 ‘4채널(4chan)’은 이용자들에게 접근성과 편리성을 제공했고, 이곳에서 밈이란 개념이 탄생했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유행하면 곧 비즈니스가 개입된다. 밈을 이용하여 돈을 벌기 위한 9개그(9gag)나 핫 토픽(Hot Topic)과 같은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나중에는 이러한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밈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밈이 본격적으로 비즈니스에 이용된 것은 역시 유튜브(Youtube)와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등의 SNS가 등장한 이후다. 이들이 집중한 요소는 ‘복제’, 즉 공유성이었다. 밈의 특징 중 하나는 콘텐츠 제작자가 바로 아마추어이며, 그들 대부분이 실제 커뮤니티의 이용자라는 점이다. 이들은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혹은 주목받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밈을 제작했다. 제작이 쉬운 만큼 유행을 따라가는 속도 역시 빨랐다. 무료로 콘텐츠를 제작해주고 유행의 전환이 빠른 만큼, 제작자들은 이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싸이(PSY)의 “강남스타일”과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Anaconda”를 들 수 있다.
“여기까지 와서 강남스타일을 봐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밈의 홍보 효과에 있어 “강남스타일”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곡인 만큼, 그 요인을 분석하는 글 역시 다양하다. B급 정서, 말 춤, 중독성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줄줄이 언급되지만, 그 처음은 뮤직비디오의 ‘밈화’였다. (여기서의 ‘밈화’라는 단어는 어떠한 컨텐츠가 밈으로 사용됨을 말한다.) 이해가 어렵다면, 노홍철이 ‘엘리베이터 가이’라고 불리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싸이가 요가 팬츠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를 쳐다보며 열광하는 저 사진 한 장은 ‘DAT ASS’란 글이 삽입되어 순식간에 웹으로 퍼졌고, 사람들이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클릭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그 안에서 ‘말춤’을 밈으로 만들었고, 결국 뮤직비디오와 싸이 자체가 밈이 되어 수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양산했다. 양산된 패러디 동영상은 또 원본으로 마우스를 이끌었고, 같은 현상이 반복되며 ‘유튜브 최다 조회’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이러니 최상위 콘텐츠 제작자들이 밈의 홍보효과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밈화’가 우연의 산물이었다면, “Anaconda”에서 니키 미나즈는 밈이 되기를 자처했다. 캐시 머니 레코즈(Cash Money Records)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악과는 별개로 C등급을 주기도 아까웠던 앨범 커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로 돌아간 듯한 노골적이고 촌스러운 아트워크,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채우는 수많은 엉덩이를 보고 나면 머리에 남는 것은 오로지 엉덩이뿐이다. “Anaconda”의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의 엉덩이를 이용해 사람들은 또 수많은 밈을 만들어냈다. 아나콘다의 밈은 대부분 조롱의 의미를 담았고, 니키 미나즈는 생산된 밈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후 백인 여성의 비키니 사진을 올리며, “이건 아름답고, 나는 더러워?”라는 글을 쓰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엉덩이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식과 밈을 남겼지만, 이 사건을 통해 “Anaconda”와 니키 미나즈는 각종 매체에 오르내렸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하나의 싱글로 여러 번을, 그것도 최근 추세에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홍보한 것이다.
인터넷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알만한 이 사진들 역시 ‘밈’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대와 방식이 바뀔 때마다 밈이 완벽히 적응했다는 점이다. 4chan과 9gag의 이미지, 유튜브의 동영상부터 바인(Vine)과 인스타그램의 10초 내외의 짧은 동영상까지 밈은 전혀 위화감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래의 정의에서 유전자와의 차이점이 반영된 결과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발전되면서 밈은 콘텐츠로서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Web 2.0의 산물에서 하나의 문화로.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생명체로 밈은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 안에서 인간보다도 거대해진 밈이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어떠한 즐거움을 줄 것인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때의 밈은 지금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이 글조차 무의미한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커버 아트워크 ㅣ Rarebi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