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온갖 매체에서 패션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고, 우리는 패션과 패션을 둘러싼 무언가를 지독하리만큼 체감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능동적으로 패션에 관한 정보를 긁어모으고, 자신도 모르게 소셜 미디어 피드를 통해 패션의 동향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제는 쉬이 접하게 되는 패션 업계의 이야기 그리고 패션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 괜스레 가깝게 느껴지며, 그만큼 그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은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실제로 패션이라는 거대한 시장 안에 뛰어들어 무수한 브랜드의 별 중 하나로 남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는 그들이 토해낸 생산물을 조합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여러 패션 매거진을 거쳐 이제는 프리랜스 패션 에디터이자 비주얼 디렉터로 새로운 출발선을 끊은 정환욱 에디터와 작은 빈티지 스토어로 시작해 이제는 한국 유수의 패션 편집 스토어로 발돋움한 8디비전(8Division)의 허신구 디렉터,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 한국 패션 신(Scene)의 저변에서 자신만의 감각을 갈고닦은 권순환 스타일리스트까지. 실제 한국 패션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전하는 직업으로서의 패션 그리고 그 전망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략한 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권순환 스타일리스트 권순환입니다.
허신구 편집 스토어 8디비전과 패션 브랜드 가쿠로(Gakuro)를 운영하는 허신구라고 합니다.
정환욱 최근까지 W 매거진 코리아(W Magazine Korea) 패션 에디터였다가, 지금은 프리랜스 에디터로 비주얼 디렉팅 및 스타일링을 주로 하는 프리랜스 패션 에디터 정환욱입니다.
정환욱 에디터는 카시나(Kasina) 스태프를 거쳐 맵스(Maps) 그리 고 W 매거진까지 등 국내 패션 신에서 여러 일을 한 이력이 있는데요. 어떻게 패션 업계에 몸담게 되었나요?
정환욱 지금은 사라진 편집 스토어 휴먼트리(Humantree)의 전신인 ‘가라사대’라는 편집 스토어에서 일한 게 그 시작이에요. 가라사대가 있던 거평 프레야라는 쇼핑몰이 없어지면서, 카시나에 입사해 3년 동안 숍 스태프로 일했죠. 그때 스트리트 패션에 종사하는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카시나에서 나와 다시 대학교에 입학하려고 알아보는 도중 무신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어요. 그렇게 3개월 정도 일하다가 제 성향과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고민하던 중 맵스에서 연락이 왔죠. 그 당시에는 서브컬처를 다루는 매체가 많지 않았을 때라 주변 사람과 일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 같네요. 맵스에서도 처음부터 에디터로 일한 건 아니었죠. 마케팅 업무를 맡았는데, 3개월 뒤쯤 맵스 편집장이 회사 대표에게 저를 에디터로 추천했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에디터를 시작해 지금까지 그 직함을 달고 있네요.
허신구 디렉터의 이야기도 궁금한데, 숍 오너부터 브랜드 디렉터까지, 많은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허신구 단순히 음악과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본토 뮤지션의 고향인 미국이나 일본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뮤지션의 사진이나 인터뷰를 보려고 여러 매거진을 접하면서 그들이 입는 패션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어요. 숍을 열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이 지금도 정확히 기억납니다. 예전 논현동에 자리한 쿤스트할레(Kunsthalle)에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플리마켓을 진행했는데, 거기서 여러 사람이 셀러로 나와 옷을 파는 걸 보면서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우리도 의류를 판매해보자고 시작한 게 지금의 8디비전이에요.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기의 8디비전은 현재의 모습과 조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해요, 빈티지 의류를 주로 판매했던 것 같은데.
허신구 초기의 8디비전은 빈티지 스토어였죠. 제가 빈티지를 좋아해서 그런지 빈티지 중심의 구성으로 시작했어요. 처음 1년 동안은 월급으로 50만 원을 가져갈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어요. 다행히 8디비전의 옷을 좋아해 주는 손님이 늘면서 점차 규모가 커진 거죠.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편집 스토어로 운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러 패션 브랜드를 들여왔고, 지금은 자체 브랜드까지 진행 중입니다.
권순환 스타일리스트 또한 처음부터 스타일리스트를 목표로 일을 시작한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권순환 맞아요. 원래는 스타일리스트로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20대에 여러 회사에 다녔는데, 어느 순간 남 밑에서 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시간에 맞춰 출퇴근하는 일 자체가 너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자영업을 시작한 게 피자 가게였어요. 제가 옷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뮤지션이나 패션 종사자가 손님으로 많이 오다 보니 피자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패션에 관한 문의가 자주 들어왔죠. 특히 스타일링 도움을 받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서 처음에는 가벼운 프로젝트를 맡아 스타일링을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스타일리스트가 본업이 될 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했고, 마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과감히 피자 가게를 정리하고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게 되었죠.
모두 패션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거쳤는데,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환욱 나름 옷을 좋아했다면 좋아했지만,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까지 패션에 특출한 무언가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 몇 명이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강남은 힙합, 강북은 복고라는 지역별 트렌드가 존재했는데, 고등학교를 다니던 송파구에서 여러 친구를 만났어요. 그중에서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친구가 많았죠. 그렇게 친구들 따라다니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려고 노력해봤지만, 영 소질이 없더라고요. 대신 스케이트보드 룩에 관심이 생겨서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대학교를 자퇴하고 일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막연히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하니까 이런 쪽에서 일하면 어떨까 싶었죠. 그렇게 가라사대라는 숍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권순환 패션에 관심을 두는 계기는 누구나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저에게는 중학교 때 나이키 에어 포스 1(Nike Air Force 1)을 구매한 게 그 시작이에요. 그전까지는 브랜드 스니커를 사본 일이 없었으니까 더 감흥이 컸죠. 신발 한 켤레가 저를 바꿔준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이키라는 브랜드에 빠지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나이키 SB(Nike SB)라는 라인이 생겼는데, 그게 또 너무 멋졌어요. 그때는 그 스니커가 유명 스케이터의 이름을 딴 모델이라거나 어떤 브랜드와 협업을 한 모델인지 전혀 몰랐죠. 스니커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나 매체 또한 없었으니까요. 대학교 휴학 후 우연히 쯔보(ZZUBO)라는 편집 스토어에서 일하며, 슈프림(Supreme)이나 베이프(A Bathing Ape)와 같은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알게 되었죠. 그전까지는 겉핥기로 스트리트 패션을 알았다면, 숍에서 일하며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당시 매장에서 처음으로 누자베스(Nujabes) 음악을 들었는데, 그런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허신구 초등학교 6학년 때 조PD 1집이 나왔는데, 트랙 중 “Real Love 2”라는 곡이 있었어요. 그 노래의 반주가 확 꽂히더라고요. 곡에 관해 조금 더 찾아보니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이라는 노래의 샘플링이라는 걸 알았죠. 그때부터 아메리칸 록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엄청나게 심취했어요. 공부도 안 하고 오타쿠처럼 빠져들다 보니 일본 음악을 접하고, 매거진을 찾아봤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일본 잡지 맨즈 논노(Men’s NON-NO)에서 기무라 타쿠야(Takuya Kimura)가 넘버나인(Number (N)ine)을 입고 촬영한 화보입니다. 국내 매거진에서는 보지 못한 비주얼 쇼크를 느끼고 일본 패션에 매료됐죠. 그때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는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꿈을 결국 이룬 것 같은데, 디자인은 어떤 경로로 배웠나요.
허신구 21살 때 입대해 군 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죠. 디자인 관련 학과를 가지 않았지만, 제대하고 나서 패션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 편입을 준비했어요. 디자인 기관을 통해 공부하는데, 가르쳐 주시는 분이 이럴 거면 그냥 예술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느껴서 잠시 꿈을 접었죠. 그러다가 비슷한 관심사의 친구를 만났고, 우리가 좋아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게 8디비전입니다.
한국 패션 업계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워낙 유행이 빠르기도 하고,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정환욱 국내 에디터는 해외의 에디터와 그 역할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외국 패션 매거진 에디터는 한국만큼 다양한 일을 하지 않아요. 국내 패션지 에디터는 그야말로 별의별 일을 다 합니다. 화보 하나를 찍는다고 하면, 기획하고, 촬영에 필요한 스태프를 꾸리고, 스타일링하고 장소까지 정해야 하죠. 촬영이 끝나면, 이에 관한 기사를 써야 한 꼭지를 끝냅니다. 반면에, 해외 매거진은 이런 일 하나하나가 굉장히 세분화되어있어요. 해외에서 외국 스태프와 함께 화보를 촬영하면, 백이면 백 모두 놀라요. 패션 에디터가 스타일링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죠. 스타일 링은 스타일리스트가, 기획은 포토그래퍼가 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문화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획일화된 한국 패션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유행에 쉽게 휩쓸리는 점? 결국에는 패션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적은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넓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만일 예전처럼 계속 패션의 반경이 좁았다면, 제가 W 매거진에서 일할 수 없었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스트리트 패션을 거쳐 하이패션 매거진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그 과정은 어땠습니까.
정환욱 이건 제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트리트 신에서 시작해 하이패션 매거진까지 간 에디터는 저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잘나서 하이패션 매거진으로 갈 수 있었다기보다는 시기적인 운이 잘 따랐죠.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슈프림이 협업을 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을까요. 이런 배경에는 여러 럭셔리 브랜드가 디렉터로 젊은 사람을 기용하는 새로운 흐름이 있었죠. 지금 루이비통의 디렉터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잖아요. 그들 모두 스트리트웨어와 서브컬처를 즐겼던 세대죠. 그런 스트리트 키드가 성장해 이런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고, 이런 세계적인 흐름이 제게도 좋은 기회를 가져다줬어요. 당연히 준비도 되어있어야겠죠. 애초에 전 하이패션을 꿈꾸던 패션 학도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여러 패션 관련 서적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허신구 디렉터는 지금 한국의 패션 마켓에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영역에 있는 듯합니다. 관련한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허신구 외국에서 한국 브랜드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매년 해외에 나가 브랜드 혹은 패션 관계자를 만나는데, 한국 브랜드에 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어요. 한국의 여러 브랜드나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으니까요. 실질적으로 한국 브랜드의 수요도 늘었어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한국 브랜드와 패션에 대한 호기심이 큽니다. 편집 스토어에서도 서로 한국 브랜드를 바잉하려고 달려들고 있죠. 이번 파리에서 일본 쪽 바이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한국 브랜드를 진행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 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네요.
그렇다면, 국내 패션 마켓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허신구 과거에 획일화된 유행이 눈에 띄었다면, 지금은 소셜 미디어 발달과 동시에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브랜드의 폐쇄적인 성향도 많이 오픈됐죠. 예전에는 폐쇄적인 분위기를 고수한 브랜드가 이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가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통칭 밀레니얼 세대가 이런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권순환 스타일리스트가 느끼는 한국 패션 신의 변화가 있을까요?
권순환 글쎄요.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국내 패션 신의 변화에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도드라지는 것 같은데, 저는 예전부터 이런 현상 이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했어요. 타 분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패션 영역에서 온라인 쇼핑이나 웹 매거진, 커뮤니티가 강화하는 모습이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거든요. 웹이나 소셜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패션이 손쉽게 보고 알아볼 수 있는 재화의 성격에 가깝게 변했죠. 그런 게 지금 20대의 행보와 태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 모인 사람 대부분은 실물 잡지로 정보를 알아가고 매장에 방문해서 옷을 보던 세대니 조금 더 자주 사람을 만나고 그런 만남이 개인과 집단에 좋은 영향을 미쳤죠. 지금 10대 그리고 20대가 오프라인에서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보니까 너무 꼰대 같은데…….
반대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세대가 서로 소통하며,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이 모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현상이 많이 보이는데요. 다른 분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허신구 순환 씨가 이야기한 부분에도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흐름을 개인이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빠르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영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일도 좋겠죠. 소비 주기가 굉장히 빨라진 점도 눈에 띕니다. 스파 브랜드뿐만 아니라 이제는 하이패션까지 패스트 패션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정환욱 저 역시 숍 스태프로 일하며, 직접 보고 느낀 세대입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고, 그런 실재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느끼죠. 가끔 에디터 관련한 강의를 하는데, 직접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는 일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합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인데, 전 아직 도 온라인 쇼핑에 익숙하지 않아요.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입어봐야만 하는 타입이죠. 뭐, 모든 일에 장단이 있으니 이런 흐름을 그렇게까지 나쁘게만 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어울림이 좋았던 사람이기에 향수가 있지만, 지금 세대는 애초에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그곳에서 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조금 분위기를 환기해서, 자신이 하는 일에 관련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요.
정환욱 주변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저도 뮤지션이나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받는다고 멋지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저 일하면서 접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보고, 배우고 있어요.
허신구 지금 부인과 관심사가 되게 비슷해요.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이 많이 겹치는데, 그렇게 부인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죠.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을 유독 좋아합니다.
권순환 주로 스타일링이나 비주얼 디렉팅을 하는 스타일리스트는 특정한 ‘대상’을 위해 일한다고 볼 수 있어요. 결국 일에 관한 영감은 그 대상에서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브랜드가 될 수도 있겠죠. 스타일리스트는 단순히 멋을 내는 것보다는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영감을 얻으려 하고, 그 속에서 그동안 내가 살아가며 얻은 경험을 접목하려 합니다.
남이 아닌 자신을 스타일링할 때는 어떤 기분입니까?
권순환 그건 순전히 제가 좋아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죠. 오랜 시간 솔로이스트(TAKAHIROMIYASHITATheSoloist.)라는 브랜드를 전개하는 타카히로 미야시타(Miyashita Takahiro)라는 디자이너에게 빠져있어요. 마치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처럼 인터뷰를 찾아보고 핸드폰 사진첩에 그가 나온 사진만 모은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단순히 타카히로 미야시타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다기보다는 한 명의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어요. 무엇보다 패션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멋진 분이거든요.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서로 영향을 주는 지점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정환욱 전 되게 널뛰는 스타일이라. 순환 씨만큼 어떤 브랜드에 깊게 빠지지 못해요. 뭔가에 잘 안 빠지는 성향이랄까요. 그런 성향이 제 스타일에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스펙트럼이 넓다기에는 조금 거창하고, 좋아하는 게 많다고도 할 수 있겠죠. 스트리트 스타일로 입거나 록 뮤지션처럼 스타일링할 때도 있고, 단정하게 입을 때도 있습니다.
허신구 무엇보다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선호하는 아티스트의 티셔츠를 자주 입는 것 같네요. 제가 조금 단순한 면이 있어서 복잡한 스타일링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에요.
패션 업계에 종사하면서 느끼는 보람 혹은 회의감이라면요.
정환욱 제가 촬영한 화보나 작성한 기사에 좋은 피드백이 올 때 기분 좋죠. 이런 1차원적인 것에서 보람을 느껴요. 엄청 심오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회의를 느낀 적은 거의 없어요. 워낙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라. 가끔 누군가를 해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고……. 하하. 회의감이라기보다는 싫은 건 있죠. 이 영역에 가짜가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브랜드일 수도 있고, 매체일 수도 있고, 인플루언서일 수도 있겠죠. 아까 소셜 미디어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수치만으로 많은 걸 판단하는 세상이니까.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별거 없는 사람이 멋있게 포장되는 걸 보면 너무 싫어요. 가짜들이 활개 치고 버젓이 일하는 모습은 최악이죠.
권순환 사실 아직 그렇다 할 큰 보람은 못 느껴봤어요. 본격적으로 스타일링을 시작한 게 1년이 채 안 되었고, 심지어 어시스턴트나 에디터를 거쳐 스타일리스트가 된 게 아니니까요. 피자 가게를 운영하다가 갑자기 실장이 된 거죠.
허신구 편집 스토어로 말하자면, 제가 존경하는 디자이너의 브랜드를 핸들링할 때고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보람찰 때는 좋은 취향을 지닌 숍이 함께 일하자고 연락했을 때죠.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그런 성취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어떤 숍에서 협업 문의가 왔나요?
허신구 ‘GR8’이라는 숍이었는데, 거기서 일하자고 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싫은 걸 이야기하자면, 아까 정환욱 에디터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어요. 제가 멋지다고 느끼는 사람은 엄청 열심히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혼자 응원하기도 하고. 근데 세상은 녹록지 않더라고요. 그런 사람들만 굶어 죽고 막…….
정환욱 진짜 죽었어요?
허신구 하하. 죽은 건 아니지만, 힘들게 살아가고 있죠. 그리고 아까 가짜라고 말씀하셨는데, 상업적인 태도만을 견지하는 사람이나 그러한 방향성을 지닌 브랜드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편집 스토어를 운영하며, 대기업과도 자주 부딪히거든요. 특정 브랜드를 수입하려고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고요. 해외에서는 하이패션 브랜드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편집 매장에서 전개하는 경우도 잦거든요. 한국 패션 마켓은 그런 브랜드를 대기업이 모두 잡고 있으니 비슷한 급의 회사가 운영하는 숍이 아닌 이상 일하기 힘들어요.
조금 전에 정환욱 에디터는 에디터 관련 강의도 진행한다고 언급했 는데, 본인의 직업에 필요한 소양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정환욱 에디터가 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방법이 공채, 두 번째 방법으로는 어시스턴트가 있을 거고 세 번째가 저처럼 특정 소규모 매거진에서 출발선을 끊는 거죠. 어시스턴트를 거친다고 바로 에디터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정원이 생겨야 하는데, 누구는 반년 만에 정식 에디터가 될 수도 있고, 길면 3년씩도 해요 그 분기가 중요하죠. 에디터라는 직업은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일이지만, 그만큼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래서 갖춰야 할 소양으로 ‘끈기’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도 작은 매거진에서 시작했고, 점차 큰 회사로 옮겨 왔는데, 유명한 잡지사에 입사해도 에디터는 결국 박봉이에요. 대신 얻는 것도 매우 많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감각’이 필요합니다. 워낙 여러 분야에서 일하기에 모두 어느 정도 잘해야 해요. 어떤 한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야 하고요.
허신구 패션 감각은 필수 요소이고요. 시장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죠. 요새 어떤 게 멋진 건지, 뭐가 구린 건지 판단할 줄 아는 기준 이 확실해야죠. 외골수처럼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적인 두뇌 회전도 빨라야죠.
권순환 일단, 스타일리스트를 하고 싶은 이라면 당연히 자기의 스타일이나 감각을 기본적으로 갖춘 사람이니까. 그 두 가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뻔한 이야기일 것 같네요. 그냥 유명해지세요. 단적으로 소셜 미디어 팔로워가 많아야겠죠.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브랜딩이 잘 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단순히 팔로워가 많고, 인플루언서라고 해서 모두가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잖아요. 다만, 자기 브랜딩이 확실하고 포트폴리오가 꾸준히 쌓여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스타일리스트란 선택받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본인을 공작새처럼 뽐내야 해요. 자신을 잘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나 외향적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엄청 내향적인 사람인데, 그 부분을 바꾸려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 분 모두 전 세계 패션 동향을 빠르게 읽어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흐름을 체크하고 있나요.
정환욱 에디터라는 직업이 뻔할 수밖에 없는데, 매번 패션 컬렉션을 가잖아요. 기사를 쓸 때도 그 컬렉션을 기반으로 써야 해요. 실제로 본 것을 기반으로 글을 써야죠. 해외 컬렉션을 보고 느낀 것을 다음 시즌 트렌드에 옮겨낸다고 봐야죠. 단순히 제 생각과 예측만으로 글을 쓸 수는 없잖아요. 명백한 자료가 기반이 되어야죠. 그래야 독자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허신구 어렸을 때는 일부러라도 다양한 걸 찾아보기 위해 노력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걸 안 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보고 싶지도 않아요. 제가 보고 싶은 걸 주력해서 찾습니다.
지금 국내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패션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는데, 최근 주의 깊게 보는 브랜드가 있나요?
허신구 제가 작년에 협업한 라즈 나뜰리에(Raj Natelier)라는 브랜드 가 있어요. 어린 친구 혼자서 전개하는 소규모 브랜드인데, 그 친구와 같이 작업하며 보고 느낀 게 많아요, 패션을 예술적으로 풀어낼 줄 알고 올해는 혼자 SS 컬렉션을 준비하는데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요. 그 외에는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 제가 비상업적인 의류를 좋아하는데, 그 이미지에 걸맞은 옷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비상업적인 의류가 국내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권순환 티슈클럽 밴드(Tissue Clubband)라고, 벨기에 엔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출신 동문 셋이 진행하는 브랜드가 있어요. 단순히 디자인을 통한 옷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뮤지션이나 아트워크 등 다양한 영역에 서 영감을 많이 받더라고요.
현재 여러 패션 하우스에서 스트리트 패션, 서브컬처에서 많은 요소를 차용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허신구 이 현상이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아요. 하이패션이 패스트 패션화한 지금에 이르러 더 빼먹을 요소가 있을까요? 곧 다른 문화에 눈을 돌리고, 대체되겠죠. 뭐 더 오래 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3년 정도 예상해요.
권순환 요새 스트리트 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죠. 근데 저는 패션 하우스가 내놓는 옷이 스트리트 패션이나 서브컬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패션 브랜드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걸 스트리트웨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슈프림이 아직도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스트리트웨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 또한 스케이터를 계속 숍 스태프로 채용하거나 그들을 계속해서 서포트하고, 스케이트보드 필름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걸 더 근본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환욱 초반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트리트 키즈가 성장해서 이제 글로벌 패션 마켓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가 되었죠.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했던 젊은 디자이너가 하이패션의 성향을 바꾸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중이 극단적으로 열광하는 상황이 된 것 같네요. 디올 (Dior)의 킴 존스(Kim Jones)와 버질 아블로. 항상 몰려다니는 그들을 보면 이미 단단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있어요. 이런 유행이 얼마나 더 번질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다양한 문화가 넓은 곳에 안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좋아한 스트리트 브랜드 고유의 성격이 변했을 수도 있지만, 신의 중심이 되는 브랜드가 그 명맥을 지키면 되는 거니까.
더불어, 다양한 브랜드가 자사의 컬렉션, 캠페인을 통해 사회, 문화적인 이슈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근래 흥미롭게 본 행보가 있다면요?
권순환 EBS 채널에서 방영하는 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보다는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80살이 다된 할머니가 갑자기 거리에 나와 반전에 관해 연설하고, 실제로 자신의 패션쇼에서도 그러한 사상을 녹인 걸 인상 깊게 봤어요. 역시 젊은 시절 아나키즘의 중심에 있던 록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함께 저항 정신을 안고 한 시대를 살아왔기에 여전히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그녀의 안주하지 않는 용기에 저 역시 아나키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신구 어릴 때 슈프림을 좋아한 이유가 ‘퍽 부시(Fuck Bush)’라든지, 그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옷에 담아내는 모습 때문이었어요. 패션이라 는 영역에서 메시지를 담는 건 정말 멋진 일이죠. 넘버나인에서도 부시 관련 티셔츠를 발매했죠. 그중 하나 기억나는 게 데드 케네디스 (Dead Kennedys) 앨범 커버 중 사람 얼굴에 철조망을 감아놓은 그래픽이 있는데, 여기에 부시 얼굴을 넣었을 때 엄청나게 감명했죠.
정환욱 저도 작년 2월 런던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 패션쇼를 직접 봤는데, 한 편의 연극 같았어요.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나오고 환경 단체의 대표가 연설하고, 정치적인 메시지도 던지고 여러 주제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정말 인상 깊었죠. 개인적으로 환경 그리고 동물에 관심이 많아요. LVMH(LVMH Moët Hennessy • Louis Vuitton S.A.)도 더는 모피를 만들지 않고, 발렌시아가(Balenciaga)도 가짜 모피로 소재를 대 체한다고 발표했다고 알고 있어요. 이런 브랜드의 행보가 정말 멋지다고 느낍니다.
요새는 90년대 생을 필두로 한 패션 업계 내 셀레브리티, 콜렉티브, 커뮤니티, 브랜드 등 활발할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조금 더 윗세대로서 그들의 결과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권순환 긍정적으로 보고 있죠. 국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있잖아요. 벨기에는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나 라프 시몬스(Raf Simons) 일본은 요지 야마모토(Yamamoto Yohji)를 들 수 있겠죠. 이제 패션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나올 시기가 되지 않았나. 디자이너뿐 아니라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 같은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될 수도 있고요. 그게 이제 젊은 세대에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요. 이제는 뭔가를 시작하기가 수월해졌거든요.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를 전개한다거나 유튜브(Youtube)를 통해 재미있는 프로그램 을 방송할 수도 있는 거고.
허신구 맞아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도 쉬워졌죠. 그로 인해 다양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면서 저희와 다르다고 느껴요.
정환욱 저는 밀레니얼 세대 뭐 이런 거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굳이 세대를 나눌 필요 있나요. 다만, 예전보다 뭔가를 이루기 쉬워졌고 접근 도 용이해졌으니 본인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다양한 게 계속 생겨나고 점점 급진적으로 변하잖아요. 사실 그중에는 이상한 것도 많이 보이는데, 꼴 보기 싫은 것도 있고.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 영역이 확장되는 동시에 패션 브랜드의 오프라인 스토어 폐점 소식이 종종 들려옵니다. 앞으로 오프라인 스토어가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할까요? 혹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실재적인 브랜드 경험은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요.
허신구 여러 패션 스토어가 폐점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저희도 긴장하거든요. 저도 패션 스토어를 운영하며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예전에는 단순히 옷을 좋아했으니까 숍을 연 건데, 지금은 식구가 늘어나고 이 친구들을 제가 책임져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수익을 내야하고. 그러면서 상업적인 요소를 고민해야죠. 요즘 사람은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게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오프라인에 발길이 뜸해지고, 여러 숍 이 폐점하고. 오프라인 숍이 지속하려면,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하는 것 같고, 상업적인 부분과 비상업적인 부분의 균형을 잘 맞춰야죠.
정환욱 지난 1월에 LA를 방문했어요. 미국 유명 백화점 체인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이 망했다고 해서 가봤는데, 그냥 시장통이더라고요. 베트멍(Vetements), 프라다(Prada), 질 샌더(Jil Sander) 같은 브랜드가 바닥에 막 널브러져 있고, 80%까지 세일을 하고. 근데 제가 아는 누군가 그런 말을 했어요. 바니스 뉴욕이 30% 세일을 진행해도 매치스 패션(Matchesfashion)에서 사는 게 더 싸다고. 이제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오프라인이 망하는 이유가 다 있다고 생각해요. 과도하게 매장을 늘린다거나. 오프닝 세리머니(Opening Ceremony) 스토어에 가도 막상 살 게 없잖아요. 콜레트(Colette)도 마찬가지로 매 장에 손님은 엄청 많은데 사는 건 몇 유로짜리 기념품 하나에요.
권순환 저는 순수한 옷가게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문화 공간의 개념으로 자릴 잡아야죠.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지는 건 결국 기술의 발전 때문이거든요. 일본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 조조타 운(ZOZO TOWN)에서 얼마 전 조조 슈트(ZOZO SUITE)라는 걸 선보였어요. 입으면 신체 사이즈를 측정해서 자신의 몸에 최적화한 의류 사이즈를 제안하는 시스템이죠. 아직 상용화하진 않았지만, VR을 통해 관심 있는 옷을 클릭하면 자기 몸에 홀로그램처럼 옷이 생겨나기도 해요. 과거에는 직접 옷을 입어보고 이게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보기 위해 가는 건데,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굳이 오프라인 숍을 방문해서 시간과 금액을 할애할 이유가 없겠죠.
마지막으로 상투적이지만, 한국 패션의 앞날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허신구 한국 패션이요? 사실 저는 유행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 그저 앞으로 한국 시장이 더 커지면서 세분화한 스타일, 개인적인 스타일 양식이 좀 더 단단해지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권순환 예측보다는 제 바람을 얘기하고 싶은데요. 한국 브랜드만의 마니아가 생겼으면 해요. 그게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이 될 수도 있고, 가쿠로가 될 수도 있고, LMC가 될 수도 있어요. 여러 브랜드에서 컬렉션을 내놓고, 많은 이들이 이를 꾸준히 사 입는, 그런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죠. 먼저 브랜드가 멋진 옷을 만들어야 하고, 매체에서 그 결과물을 자주 노출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이를 소비하는 사람이 생겨야죠. 이렇게 순환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게 한국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요즘에는 한국적인 것이 해외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많잖아요. 지금 봉준호, BTS, 페기 구(Peggy Gou), 예지(Yaeji)도 그렇고. 패션에서도 이렇게 보여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죠.
정환욱 패션은 저에게 너무 광범위해요. 어떻게 변화할지는 잘 모르겠고, 좋은 말도 안 나올 것 같아서. 지금 한국 브랜드나 한국에서 보여주는 마케팅이 좋게 보이지는 않아서요. 바뀌었으면 하는 건 있죠. 각자가 자기 스타일, 자기 개성을 갖는 것. 개성이라는 게 특이한 것만 개성이 아니잖아요. 자기 스타일을 갖고, 자기와 다른 걸 색안경 끼지 않고 보는 시각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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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오욱석 한지은
포토그래퍼 │ 강동우
장소 협조 │MODECi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