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fashion: 1화 Anti Fashion

과거 우리 지식의 보고가 네이버 초록창이었다면, 2020년에는 그 역할을 다양한 플랫폼들이 나눠 감당하고 있다. 때로 중고등학생 조카들이 각종 플랫폼을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감탄사가 나올 정도. 특정 이슈에 관한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때는 유튜브(Youtube), 해외 여론을 알고 싶으면 트위터(Twitter)에 접속하는 등 말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의 패션 영감이 모여있는 곳은 어딜까? 아마 십중팔구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이라고 대답할 것.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니 적어도 10억 가지가 넘는 스타일이 혼재하는 셈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 보면 가장 일반적인 20대 새내기 패션부터 “남친카지(남친+아메카지)”, “캐트릿(캐주얼+스트릿)”, “힙니멀(힙합+미니멀)” 등 오만 가지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패션에 대한 조예가 깊진 않지만, 스스로 헤비 인스타그래머라고 자부하는 필자 역시 인스타그램 세상에서 참 많은 패션 계정들을 마주했더랬다. 이번 달부터 연재될 “Instafashion”에서는 그동안 필자가 발견한 기괴하고도 매력적인 패션 트렌드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도대체 왜 이런 걸 좋아하지?’라거나 ‘이게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인가?’ 따위의 생각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현실 세계의 기준을 인스타그램 세상에 적용하려 하다간 ‘틀딱’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르니까.


안티 패션(Anti Fashion)– “종래 패션에서 부정되던 요소를 채용한 패션”

네이버 지식백과

“#Instafashion”의 첫 화에서 다룰 주제는 안티 패션이다. 네이버 지식백과가 친절히 설명하고 있듯이 안티 패션이란 전통적인 패션의 성역을 벗어난 패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패션’은 단순히 보여지는 부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언제나 내적인 가치들을 투영하는 것이기에, 이를 통해 표현되는 문화적, 예술적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가치를 좇는 것이 바로 안티 패션인 것이다.

안티 패션은 1940년대 서구 사회에서 다양한 서브컬처(Sub-Culture)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주목받았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서 나타나기 시작한 안티 패션은 하위문화 집단의 욕구와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사례들이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피, 모즈, 펑크 스타일 같은 것들이다.

근래 ‘히피+네이처’ 스타일링으로 컴백한 트와이스(TWICE). 히피에 대한 낭만만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안티 패션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 중 한 가지는 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류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위 언급했던 모즈 스타일을 예로 들어보자. 과연 오늘날 모즈 룩이 본래의 반항적인 의미로 소비되고 있는가? 과거 젊은이들의 개성과 욕구를 담아냈던 안티 패션은 수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그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귀여운 걸그룹이 컴백 콘셉트로 내세우는 ‘히피 스타일’이 과연 ‘히피’일까? 옆 반 힙스터 친구 따라 산 슈프림이 과연 ‘스트리트 패션’일까? 아쉽게도 이들이 안티 패션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수명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각종 미디어와 패션 기업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안티 패션의 주류화’는 자본주의적 생태계 안에서 벌어지는 필연적인 순환의 일부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변화하는 패션 생태계에서 지금의 안티 패션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해답을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과거 주류 유행을 거부한 이들이 은밀히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듯, 지금의 안티 패션은 알고리즘의 손길이 쉬이 닿지 않는 인스타그램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과거의 안티 패션이 그랬듯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기존 패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젊은 세대만의 재치와 유머가 돋보인다. 이들은 인터넷 문화와 일상 속 요소들을 맛깔나게 버무리며, 오히려 밈(Meme)화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38191613162016135195209451435- 패션의 밈화, 밈의 패션화

©®3819161316201613519520945143는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 R.G.B가 전개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웨어러블한 아트 오브젝트의 미학적 잠재력을 탐구하는것’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이는 대량 생산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작품’보다는 ‘제품’으로 인식되는 현대 패션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안티 패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공식 웹사이트 내 설명에 따르면 ©®38191613162016135195209451435는 ‘자아실현의 방편으로 이해되며, 제품의 착용자는 걸어 다니는 예술 작품이 된다’.

이 브랜드가 더욱 흥미로운 점은 스스로 밈이 되기를 자처한다는 점. R.G.B는 의류를 공개함과 동시에 구글에서 가져온 일련의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혼합하여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들 대부분은 굉장히 혼란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웃긴 인터넷 밈의 특성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많은 패션 계정에서 ‘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패션’으로 소개되어 R.G.B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기성 패션 산업 시스템과 이윤 추구에 대한 반항 그리고 현 젊은 세대만의 인터넷 문화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3819161316201613519520945143는 이 세대의 안티 패션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Brandanjosh- 거리에서 비롯된 실험적 패션

위 소개한 브랜드에 비해선 오히려 다소 평범한(?) 편이다. ‘Brandanjosh’는 스트리트 감성이 돋보이는 팬츠 제품을 주로 선보이는데, 기존 데님 의류를 오려 붙여 리빌드하는 작업물이 많다.

하지만 리빌드 만으로 ‘저세상 패션’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나카무라 키미노리(Kiminori Nakamura)의 올드파크(Oldpark) 같은 브랜드에서 주구장창 보여주는 것이 리빌드니까. 실제로 리빌드 작업은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이 브랜드의 백미는 상상치도 못한 소재들을 팬츠에 더한다는 것.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은 유희왕 카드를 덕지덕지 붙여 완성한 팬츠다. 일상적으로 입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듀얼이 없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피스다. 현 젊은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개성 표현으로써 안티 패션인 셈이다. 0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린이들은 자라서 말도 안 되는 바지를 만드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Eqeqpe – 디지털 세대를 위한 장신구

모델 박다솜(@313103)이 운영하는 국내 주얼리 브랜드. 이 브랜드를 처음 발견하고 필자가 받은 인상은 ‘외계인 히피가 차고 다닐 법한 주얼리’같다는 것. 그 정도로 강렬했고, 적어도 이 행성에 속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주얼리는 우리 피부에 보다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는 특징 때문에 유독 감성적인 애착이 강조되는 아이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부터 연인 간의 선물로, 혹은 신과 소통하는 신비로운 의식을 위해 사용되어 왔다. 이 같은 특성을 가진 주얼리에 오래된 전자기기들이 오브제로서 더해졌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 무드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겪은 현 젊은 세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장신구가 아닐까. 하단은 다원성 표현으로써 안티 패션을 보여주고 있는 eqeqpe의 디렉터, 박다솜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Mini Interview

브랜드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eqeqpe는 상업적인 패션 브랜드가 아닌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선상에 존재하는 ‘Artistic creature made brand’다.

어릴 적부터 미술과 패션에 관심이 있어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던 차 2019년 4월 즈음에 예술을 향한 강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상과 가치를 위해 다소 충동적으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디자인을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주로 받는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들이나 다양한 매체에서 접하는 시각적인 요소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내 작업의 큰 뿌리가 되는 가장 중요한 영감은 내 자신이다. eqeqpe의 모든 작업물은 쓸모없고 버려진 것들에 즉흥적인 작업이 더해져 탄생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아카이브들을 되새김질하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서 영감을 받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사용되는 재료들이 하나같이 독특하다. 재료를 따로 구하는 곳이 있는지?

따로 정해 놓은 출처는 없다. 본능적인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오브제라면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구한다. 오브제 간의 상충된 느낌에서 발현되는 아이러니한 조화를 즐기기 때문에 빈티지한 질감부터 미래적인 무드까지 다양한 특성을 지닌 오브제들을 구하고 있다.

브랜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1. 자존감
2. 사랑
3. 포용

이 세 가지가 eqeqpe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키워드다. 나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자존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 필요하다.

간혹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입견이나 사회적 유행에 갇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시각적인 부분만을 놓고 보더라도 폐쇄적인 논리에 갇혀 아름다운 것들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eqeqpe를 통해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세상을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더욱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다양한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행복을 성취하길 바란다.

전통적인 패션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있다면?

나는 최대한 ‘패션’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옷은 단순히 인간이 껍데기로 두르고 있는 어떠한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패션의 전통적인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38191613162016135195209451435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Brandanjosh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qepqe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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