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fashion: 3화 Bootleg Sneakers

며칠 전, 넷플릭스(Netflix)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를 봤다.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다큐멘터리였지만, 유독 필자의 흥미를 끌었던 내용은 SNS의 발달로 불거진 ‘가짜 뉴스’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가짜 뉴스의 시대에 도달한 지금, SNS는 우리에게 진실만큼, 때로는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들을 물어다 준다. 확증 편향의 덫에 걸린 우리는 진실의 가치를 무시한 채 자극을 좇아 정보의 바다를 헤엄친다. 거짓보다 사랑받지 못한 진실은 결국 그 의미를 잃고 만다.

코로나19(COVID-19)는 그동안 인류가 숨겨왔던 이기적이고 연약한 모습들을 하나둘씩 들추고 있다. 덕분에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불분명해진 요즘이다. 온갖 매체를 장식한 진실공방에 머리가 복잡해진 탓이었을까, “Instafashion”의 마지막의 주제로 “부틀렉(Bootleg) 스니커즈”를 선택해보았다.


부틀렉(Bootleg)- “(제작판매가) 불법의, 해적판의”

네이버 지식백과

몇 년 전부터 패션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한 키워드 부틀렉(Bootleg). 원작자의 동의 없이 제작된 불법 복제품, 즉 해적판을 뜻하는 부틀렉은 패션계의 오랜 금기 중 하나였지만, 최근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타고 가장 영향력 있는 하나의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부틀렉 문화의 유행은 최근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부틀렉 문화는 거대 패션 기업이 주무르는 전통적인 패션계에서 배척되어 왔다. 자존심 강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디자인이 도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이들에게 2차 창작을 일삼는 부틀렉 디자이너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은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성역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카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거리에서 부틀렉 문화를 꽃피우기로 한다.

자본과 시스템으로는 결코 기성 브랜드에 맞설 수 없었던 부틀렉 디자이너들은 자신들만의 재치와 기발함을 내세워 대중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 럭셔리 부틀렉의 기초를 다진 대퍼 댄(Dapper Dan)은 1980년대 초반 할렘의 작은 부티끄에서 부틀렉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런 디엠씨(Rund DMC), 솔트 앤 페파(Salt-N-Pepa),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후 그의 정신은 SSUR의 꼼데퍽다운(Comme des Fuckdown), 알렉산드라 해켓(Alexandra Hackett), 그리고 임란 무스비(Imran Moosvi) 등을 거치며 메이저의 영역으로 발돋움했다. 2020년 현재, 부틀렉 문화는 전통 럭셔리 브랜드들과 영감을 주고받을 정도로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프로-조그스와 아너스 스포츠의 부틀렉 스니커즈
프로-조그스의 부틀렉에서 영감을 얻은 도니 1

그렇다면 스니커즈 신(Scene)에서의 부틀렉 문화는 과연 모습일까? 위에서 언급한 임란 무스비나 알렉산드라 해켓의 부틀렉이 작가의 예술적인 가치가 더해진 것들이라면, 초기 부틀렉 스니커즈들은 그저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의 인기에 무임승차하려는 불법 카피 제품들이었다. 특히 부틀렉 메이커들의 집중 타겟이 되었던 제품은 나이키의 “에어 조던 1(Air Jordan 1)”. 마이클 조던의 팬덤을 등에 업고 떡상해버린 이 스니커즈가 다른 브랜드들에게는 성공으로 가는 황금 티켓 같아 보였으리라.

조던 1의 흥행에 숟가락이라도 얹어보고자 아너스 스포츠(Honors Sports), 생(Sang), 프로-조그스(Pro-joggs) 등 많은 회사들이 앞다퉈 부틀렉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에어 조던 1이 스니커즈 시장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 시간이 흐른 후 조악한 생김새와 우스꽝스러운 로고의 이 부틀렉 스니커즈들은 스니커헤드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나, 이들 역시 최근에는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6월 한 브랜드에서는 “도니 1(Donny 1s)”라는 이름으로 프로-조그스의 부틀렉 스니커즈를 재발매했는데, “부틀렉의 부틀렉”인 이 제품은 200달러의 높은 가격에도 금세 동이 났다.

그렇다면 부틀렉 스니커즈에 자신만의 영감을 더한 ‘디자이너’들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부틀렉 스니커즈에 대한 우호적인 무드가 형성된 데는 많은 제품과 브랜드의 힘이 작용했는데, 특히 그 중 베이프스타(Bapesta)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큰 인기를 얻은 베이프스타는 나이키 에어포스 1의 실루엣을 그대로 흉내 내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베이프스타의 퀄리티가 실제 나이키 제품보다 낫다는 평도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시 나이키는 베이프를 고소하지 않았고 이는 많은 부틀렉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베이프스타가 낳은 스니커즈 신의 큰 사건이 바로 아리 사알 포먼(Ari Saal Forman)의 문제적 스니커즈, “멘솔 10(Menthol 10)”의 등장이다. 베이프스타의 성공에 용기를 얻은 아리는 멘솔 담배 브랜드 뉴포트(Newport)의 로고를 덧입힌 자신만의 제품을 제작했고, 총 252족만 생산된 이 스니커즈는 빠른 속도로 팔려나갔다. 당시 아리는 “멘솔 10” 때문에 나이키와 뉴포트 양사의 경고 및 법적 제재를 받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실은 제품의 명성을 뻥튀기시킬 뿐이었다. 이후 “멘솔 10″은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부틀렉 스니커즈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며 전설로 남게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틀렉 스니커즈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서 그 인기가 더욱 뜨거운데, 일부 인스타그램 계정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섞어 자신만의 부틀렉 콜라버레이션을 성사시키고, ‘Shoe Surgeon’, ‘Ceeze’ 등의 아티스트들은 그런 상상 속 스니커즈들을 현실 세계로 불러온다. 많은 부틀렉 디자이너 중 이번 피처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은 보다 작은 규모로 움직이는 제작자들로, 주로 나이키 제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아티스트들이다.


Jimivain- loved 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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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tom made air v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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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저 로맨틱한 “Loved 1’s”를 제작하는 지미 베인(Jimi Vain). 플레이보이 카르티(Playboi Carti)가 즐겨 신어 화제가 된 이 스니커즈는 조던 1을 베이스로 하며, 하트 모양이 달린 스우시가 돋보인다. 스트리트 무드를 즐기는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이는 귀여운 부틀렉 스니커즈다.


Warrenlotas- Hidden NY가 사랑하는 부틀렉 스니커즈 제작자

인스타그램 패션 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Hidden NY’가 자신의 계정을 통해 여러 차례 샤라웃한 바로 그 부틀렉 스니커즈다. 자신의 독자적인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는 워렌 로타스(Warren Lotas)는 나이키 스니커즈에 “제이슨(Jason)”의 얼굴을 새겨넣어 브랜드 특유의 펑크적인 무드를 더한다. 최근에는 제프 스테이플(Jeff Staple)과의 협업 소식을 전하기도.


Ineverheardofyou- Fuck Off

워렌 로타스 못지않게 빡센 무드를 풍기는 브랜드가 하나 더 있다. ‘Ineverheardofyou’는 중지를 치켜들고 있는 형태의 스우시를 제작한다. 기존의 에어 조던 1이 자신의 반항적인 무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들이라면 ‘Ineverheardofyou’의 부틀렉 스니커즈를 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Raygmiah- 스우시 안에 미국을 담아내다

좀 더 젠틀하고, 세련된 무드를 뽐내고 싶다면 ‘Raygmiah’의 스니커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지난 6월 공개한 에어 조던 1은 무려 자유의 여신상의 실루엣을 담아냈다. 그는 해당 제품으로 뉴욕시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 이 정도면 단순한 부틀렉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Jimivain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Warrenlota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ineverheardofyou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Raygmiah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Donnyisback.com
dunksrnice / Instagram
NSS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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