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Nothing, [The Great Dismal]을 통해 고립과 소멸을 이야기하다

필라델피아 슈게이징(Shoegaze) 밴드 낫띵(Nothing)이 지난 11월 [The Great Dismal]이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 풀렝스(Full-length) 앨범을 발매했다. 이전 앨범에서 선사한 아름다운 멜로디 안에 내재한 어두움은 더욱 심화해 특정한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형태의 것으로 나타났다. 결성된 지 10년이 넘어가는 낫띵에서 멤버들이 교체되는 시기, 더 나아가 밴드의 구심점이자 기타와 보컬 파트를 맡고 있는 도미닉 팔레르모(Domenic Palermo)가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 밴드로 그들의 신(Scene)에서 활동하면서 가중폭행과 살인미수 혐의로 감옥에 2년 동안 수감되었고, 이후 다시 시작한 밴드 생활을 통해 그간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낫띵의 앨범에 간간히 녹아들었다. 음악 안팎에서 냉소적이고 날 선 이미지가 드러나지만, 진실의 눈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도미닉의 태도는 [The Great Dismal]을 이전 앨범들과 달리 한 단계 높은 레벨의 완성도를 갖춘 결과물로 만들었다. 포브스(Forbes), 피치포크(Pitchfork), 빌보드(Billboard), NME 등 유명 매체에서 주목한 [The Great Dismal]을 만든 도미닉 팔레르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Interview

낫띵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해달라.

내 이름은 도미닉 팔레르모다. 밴드 낫띵을 결성하고, 보컬 및 기타로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낫띵은 최근에 4번째 풀렝스 앨범 [The Great Dismal]을 발매했다. 앨범은 꽤 오래전부터 준비되었고, 공교롭게도 준비 기간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겹쳤다.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큰 어려움을 겪거나 특별히 생활에 미친 영향이 있었는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닥쳐온 건 사실이다. 우리의 새 앨범의 녹음을 담당했던 윌 입(Will Yip)이 지난 3월 미국에 코로나19가 유행하자마자 감염되어 치료의 시기를 거쳤다. 물론 그와 함께 있던 우리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고 30일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자가격리의 시간을 보냈다. 디자인과 영상물에 관한 작업은 이미 영국에 있던 조던 헤밍웨이(Jordan Hemingway)가 완성하고 있었다. 앨범 발매를 위한 준비 과정은 무난히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앨범 발매까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몇 가지 까다로운 문제가 발생했고 꽤 안간힘을 썼다. 미국 전역에서 격리가 지속된 기간 동안 앨범을 발매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The Great Dismal]을 전체 공개하기 전에 일부 수록된 “Say Less”와 “Bernie Sanders”를 싱글로 발매했다. 이 두 곡을 들으며 이전의 낫띵이 발매한 앨범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악기와 멜로디를 사용한 흔적도 보이는데 이번 앨범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나는 상당 기간 동안 과거에 발매한 앨범에 안주했다. 그래서 작곡할 때 나 자신을 좀 더 밀어붙이면서 변화를 주려고 했다. 작업하며 이전 앨범들과 차별성을 가진 결과물을 상상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되돌아보며 자신에게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상태에서 한 번 다른 방면으로 작곡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매우 흥분해서 기존에 사용하던 악기 말고도 다른 악기를 써보곤 했다. 가끔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한다 싶으면서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와 겹치면서 [The Great Dismal]이 담고 있는 내용이 결과적으로 현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고립과 소멸 그리고 인간의 습성으로 이어지는 의식을 담고 있는데 이 주제에 관해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볼 수 있을까?

이 앨범이 담고 있는 것은 내가 짐처럼 지니고 있던 10년의 이야기이다. 인간으로서, 세상 속 존재로서 내가 생각하는 여러 형태의 고립과 철학을 채워 넣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이 자신에게 솔직한 태도를 견지하는가에 관한 것이며 그 대안은 그것을 완벽하게 실행하려고 노력하는가에 달렸다. 나 스스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것은 내면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솔직해지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 앨범에 관한 이야기는 짧은 시간에 채워졌고 나는 세상이 현재 어떤 상황에 직면해있는지 인식했다. 나는 사람들이 사실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상보다는 세상의 큰 움직임에 집중하려고 하는 상황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Say Less”와 “Bernie Sanders” 뮤직비디오는 조던 헤밍웨이라는 인물이 제작했다. 그는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과 구찌(Gucci)의 영상물을 제작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그가 두 뮤직비디오를 맡았는지 알고 싶다.

조던은 굉장히 능력 있고 멋진 사람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우리 미술 감독이었던 월터 피어스(Walter Pearce)가 그를 제작에 참여시킨 때였고 항상 혼자 모든 것을 해내는 태도와 독창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 또한 그가 작업한 구찌와 꼼 데 가르송 작업물에 감명을 받았지만, 특히 그가 입스 튜머(Yves Tumor)와 함께 제작한 작업물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만들어낸 시각적 요소들은 이번 앨범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충분했고 앨범을 준비하며 단순히 예술적인 접근으로써가 아니라 새 앨범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낫띵은 슈게이징 밴드이지만 멤버들은 하드코어 펑크 신에서 밴드 커리어를 출발했고 지금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낫띵을 특이하게 보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대체로 하드코어 펑크 신에 있는 사람들은 낫띵 같은 밴드를 접하며 슈게이징과 뉴웨이브, 앰비언트 등의 장르로 음악적 취향을 넓혀가는 시기를 거친다. 펑크와 다른 인디 음악의 연관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우리가 어디서 영향받았고 무엇을 입고 다니는지가 자신의 독창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것 없이는 절대로 변화할 수 없고, 진화하거나 소멸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앞서 말한 것이 결국에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 개성과 관련한 것들이 하드코어 펑크에 속해있고 이것을 유지한 지가 20년이 넘어가는데 가끔은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혼란을 주기도 한다. 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연결선이 있다. 우리가 보기엔 다른 종류로 존재하지만 비슷한 것끼리 돌아가며 연동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음악적으로 비슷했든지, 음악을 만들면서 어딘가에 영감 받은 것이든지 간에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받고 연결성을 보이며 형성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헤잇브리드(Hatebreed)아메리칸 나잇메어(American Nightmare), 콜드 케이브(Cold Cave)와 함께한 엑스오 스켈레톤스(XO Skeletons)나 몇 가지 다른 밴드 활동을 이어간 적이 있는데 역시 호러 쇼(Horror Show)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오래 활동한 밴드이면서 나름 2000년대 초반엔 브릿지나인(Bridge9)이나 데스위시(Deathwish) 레코즈에서 공연이나 음반을 내기도 했고 필라델피아 하드코어 신에 꽤 언급되는 밴드이다. 2018년까지 공연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도 활동 계획이 있는지.

하하. 그건 좀 어렵다. 호러 쇼는 전혀 다른 시간이었고 그때의 생활과 잘 맞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그런 생각으로 EP 앨범을 하나 정도 더 만들어볼까 싶어서 재미 삼아 생각을 나누곤 했는데 호러 쇼의 모든 곡을 만든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였는데 호러 쇼를 생각해보면 그를 바로 떠올리게 되고 그가 없으면 안 된다고 느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와 함께했기에 낫띵을 만들 수 있었던 거 같다.

낫띵은 2019년 9월에 내한공연을 진행했다. 낫띵의 아시아 투어 이전에도 한국을 들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을 여행하며 좋은 기억이 있는가.

내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4번 있는데 그중 낫띵 공연으로 두 번 방문했다. 여행을 다녀봤던 나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서울에서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니 이 도시를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음식은 세계 어디를 가든 최고였다(다만 내 이탈리아인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

[The Great Dismal]을 발매하기 전에 그라인드코어 밴드인 풀 오브 헬(Full of Hell)과 온라인 스트리밍 쇼를 진행했다. 공연 자체는 이미 녹화해두었던 것이지만 자료 화면과 다른 영상 효과를 덧붙여 색다른 스트리밍 쇼를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데 낫띵의 향후 계획이라면.

스트리밍 쇼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펜더(Fender), 반스(Vans), 킥스타터 뮤직(Kickstarter Music), 슬레인 위스키(Slane Whiskey)에서 스폰서로 공연을 지원해줬고 머천다이즈도 거의 다 팔렸다. 특히 펜더 사에서 우리와 함께 커스텀 기타를 4개를 제작했고 티켓을 산 사람에 한하여 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30명의 스태프와 함께 이번 스트리밍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장소로 쓰인 뉴욕의 세인트 비터스(Saint Vitus)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게 정말 중요한 장소다. 많은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공연했고 에너지가 넘쳤던 장소인데 그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우리의 일정에 앨범 발매와 스트리밍 라이브라는 큰 산을 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정은 확정된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지닌 삶의 생명력을 보여주기 위해 낫띵은 계속해서 여행을 준비할 것이고 고군분투할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꼭 소주 한 잔 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Nothing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Relapse Records 인스타그램 계정


에디터 │여창욱
사진 출처│Domenic Paler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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