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LA VIDEO ROOM – 2020 싫어

서문을 쓰던 중 ‘2020년 1월 20일, 국내에도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라 썼더니 한글 프로그램이 ‘확진자’에 빨간 밑줄을 긋는다. ‘확진’과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자’가 붙어 있는 것이 영 어색한 모양이다. 아마도 내가 쓰는 프로그램이 구버전이기 때문일 텐데, 아직은 ‘확진자’라는 말을 익숙하게 쓸 일 없는 시대에 머물러 있는 이 프로그램이 부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2020년은, 입과 코를 가린 마스크 밑에 그어져 있던 빨간 밑줄도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여태까지는 2020년을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얘기했다면, 며칠 뒤부터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로 얘깃거리가 옮겨간다. 그 기억엔 자연스레 분노나 짜증이 먼저 달려들 것이다. 또 어디 그렇기만 하겠는가 하며 좋은 것들을 끄집어내보려 해도 어느 틈에 확진, 감염, 발생, 주의 등의 단어들이 빼곡한 문자 메시지가 기억을 뛰어넘어 현재로 도착할 것이다. 끝나버린 2020년이 여전히 기억으로만 존재하길 거부한 채 들러붙는 걸 끊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너무나 나약하게 느껴지는 이번 VISLA VIDEO ROOM의 주제를 되뇌어본다. ‘2020 싫어’…


프로젝트 X(Project X)

안타깝게도 올해는 파티에 갈 수 없었다. 행사가 취소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 스스로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만큼 모든 생활이 조심스러울 정도로 위축된 한 해였다. 뭔가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아주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놀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실현할 수 없기에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뭔가를 찾게 되는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영화였다.

지금 소개하는 작품은, 힘든 2020년 파티를 즐기지 못했거나, 한방에 날려버리고 싶은 이들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바로 “프로젝트 X(Project X)”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조커(Joker)”로 지난해 큰 주목을 받은 토드 필립스(Todd Philips)다. 토드 필립스는 이미 폭음으로 전날 밤을 기억 못 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인 “행오버(Hangover)” 시리즈를 감독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막장으로 치닫는 맥락을 따라간다고 볼 수 있겠다.

학교 내에서 평범한 루저인 고등학생 주인공 ‘쿱’과 그의 괴짜 친구이자 이 작품의 만악의 근원 ‘코스타’와 ‘제이비’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일상을 찍는 ‘댁스’가 ‘쿱’의 생일 파티 즉 ‘프로젝트 X’를 준비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코스타는 이 파티로 자신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고, 총각 딱지를 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파티를 연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정작 학교와 마을에서는 쿱이 누군지도 모르며, 파티를 주관하는 이들을 비웃는다.

그렇게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파티에는 무려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며 점차 ‘개판’이 되어간다. 넘치는 술과 약물, 폭력, 섹스는 물론 고성방가로 조용했던 마을은 시끌벅적해진다. 그러나 점점 파티는 무정부 상태로 변모하고, 방송사의 헬기가 쿱의 집을 생중계하자, 쿱은 지붕 위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며 루저에서 히어로로 거듭난다. 이후 대규모 경찰 병력이 이 미쳐버린 파티를 통제하기 위해 모여든다.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주인공들을 찾아온 한 인물이 화염방사기로 모든 것을 시원하게 날려먹으며 파티는 끝난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코리 워싱턴이라는 소년이 자신의 마이스페이스(Myspace)에 파티를 알리고 나서 500명이 모인 나머지 2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는 실화가 놀랍기만 하다. 만약 당신이 10대이고 주말에 부모님이 집을 비운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느긋하게 휴일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했던 일탈을 시도하려고 발버둥 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일탈을 밀착 취재하며 이 미쳐버린 파티의 모든 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자신의 생일 파티로 인생이 바뀐 주인공 쿱은 자신이 그동안 좋아했던 친구인 커비에게 지난밤 파티에서 자신의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때 The XX의 “Intro”가 흐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비록 자신의 생일 파티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어도 한 소년에게는 또 다른 생일이었을지도 모른다. 2020년 한 해 우리의 삶이 그야말로 날려 먹은 느낌이 들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시작을 모두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 다 필요 없고, 정신없는 파티가 끝나고 오는 아침의 공허함마저 그립기까지 하다.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최승원(Contributing Editor)


소공녀

거짓말같이 사라진 2020년, 전례 없는 팬데믹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냈다. 그런 올해를 돌이켜보며 나는 왜 문득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를 떠올렸을까. ‘취향과 생존 사이의 갈등’과 같은 평소의 고민과, 녹록지 않은 현실이 작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

주인공 ‘미소(이솜)’는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 한솔(안재홍)만 있다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다. 가사 도우미 일당은 그대로지만 담뱃값과 위스키 값만 올라버렸다. 좋아하는 것의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집을 포기했다. 집도 없이 급한 건 그때마다 해결하는 자유로운 영혼. 하루하루 잘 곳을 옛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옮겨 다닌다. 친구들은 집이 있어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영화는 남일 같지 않다. 가사 노동에 무시만 당하는 현정, 대기업을 다니지만 팔에 주사 바늘까지 꽂으며 점심시간을 포기하는 미정, 아내와 이혼하고 집세를 20년 동안이나 더 내야 하는 대용, 남편의 말 한 마디에도 움츠러드는 정미 언니. 대다수는 그들처럼 살고 있기에 오히려 미소는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기에 마땅하다. 영화는 미소와 친구들을 대비하여 보여주지만 어느 한 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취향과 생존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갈등마저 허락되지 못한 재난 같은 상황이 닥치니 현실에 대한 불편함과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현 상황에서 보기 어려운 미소의 삶. 집이나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도 최소한의 인간의 품격은 버리지 않는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취향을 택하고 사는 미소의 모습에서 묘한 위로를 받기 때문일지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아도 힘들겠지만 취향이 아예 없는 것도 꽤나 서글픈 일. 이쯤 되면 담담하게 넘기게 되는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강다솔(Contributing Editor)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는 어딘가로 향하기 마련이다. 대게 그 여정은 험난하고, 목적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에, 여정의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스크린을 통해 이 여정을 따라가는 관객은 자연스레 이들의 무사한 도착을 바라게 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쾌감은 불분명했던 목적지가 분명해지고, 관객이 가슴 졸이며 바라던 도착의 성공이 찾아올 때 완성되는데, 나는 같은 이유로 인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를 볼 때면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그 목적지가 현실에선 더욱더 불분명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기차 밖으로 나오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차 밖이 있는가? 묻는다면 입은 벌려지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형식을 띠는데, 인류가 새롭게 자리 잡을 행성을 찾아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장 명쾌한 결말이긴 하나, 아직은 과학적 가설에 기댄 상상으로만 여겨진다. 즉 현실에선 실체가 없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선으로 그어보면 직선일 것이다. 시작점이 있고, 분명한 도착점이 있는 직선. 하지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는 끝나야 할 도착점에서 회진하는 곡선이 생성되는 영화다. 유보됐던 도착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완성된다. 이점이 “매드맥스”를 특별하게 만든다.

또 하나 “매드맥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전진과 회진 과정에서 폭발하는 엔진, 속도에 있다. 알다시피 “매드맥스”는 끊임없이 달리는 영화다. 사람도 차도 계속해서 달린다, 엄청난 속도로. 대게의 영화에서 속도, 특히나 직선의 속도는 권력이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용도로 사용되는데, “매드맥스”의 직선과 속도는 암담해 보이는 현실을 엄청난 속도로 찢어 발겨내 해체하는 힘이다. 이 힘이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도르래를 돌려 ‘퓨리오사’와 그 일행을 끌어 올리고, “매드맥스”에서 근원의 상징이 되는 물을 쏟아 내린다.

꼬박 일 년의 시간 동안 이 땅에 엄청난 분노가 쌓였고, 터지기 직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노는 어디론가 향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방향을 정하는 일에 “매드맥스”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매드맥스”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문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최직경(Contributing Editor)


에디터 │ 최직경
이미지 출처 ㅣ Netflix,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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