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두려움도 굶주림도 모르고 오직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생각, 세상의 끝을 찾겠다는 생각, 세상의 끝을 찾을 때까지 걷고 또 걷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젠가는 세상의 끝을 분명 찾게 될 거라고 아이는 생각했다. ‘가장 마지막에, 가장 마지막에는 끝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아이는 생각했다. 아이의 생각이 옳았던 것일까? 궁금해도 잠시만 기다려달라. 아이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알게 될 테니.
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처음에 아이는 세상의 끝이 높은 담일 거라고 상상했으나 곧 아득한 심연일 거라고 상상했고, 그 상상은 나중에는 아름다운 푸른 초원으로 바뀌었고, 다시 호수로, 물방울 무늬 천으로, 그 다음에는 드넓게 퍼진 뻑뻑한 죽으로 바뀌었다가, 그냥 순수한 공기로, 그 다음에는 희고 깨끗한 평원으로, 그 다음에는 갈색의 길로,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것도 아닌 것 혹은 아이 자신이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로베르트 발저
김하민: 해 질 무렵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박이주: 눈이 잘 내리지 않은 영국에 눈이 왔고 락다운에 지친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눈썰매를 들고 공원에 나왔다.
Contributors│강태원 오욱석 박재한 최성권 허경회 이혜수 권혁인 최권욱 박이주 Mag 정윤정 문형리 임대용 김하민 윤태영 신동일 송현준 윤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