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LA VIDEO ROOM – 루머

‘유언비어’는 인류 전쟁사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인 전략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용하는 이유는 적은 노력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가성비가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벌써 2021년 1분기가 끝난 지금, 최근 한국에는 학폭과 관련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루머의 루머가 양산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인지, 아니면 자극적인 논란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따라서 이번 비즐라 비디오 룸에서는 루머를 주제로 두 편의 영화를 준비했다.


더 포스트 (The Post)

수많은 보도가 쏟아지고, 매체의 보도만큼 영향력이 강한 각종 커뮤니티발 정보들이 소셜 미디어를 도배한다. 정보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취사선택하기란 넘쳐나는 정보량 탓에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나름의 기준을 세워 골라 낸 정보조차 얼마 못 가 사실 여부가 뒤집히기 일쑤다. 이 정보들을 ‘루머’라 적으면 어쩐지 가벼운 해프닝의 원인 정도로 한가롭게 읽히고, ‘의혹’이라 적으면 사실 관계를 따지는 데 당장 부정적인 시선으로 읽힌다. 어떻게 읽느냐는 대체로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얘기다.

언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언론도 이제는 믿을 수가 없다. SNS의 인기와 함께 유사 언론이 개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기성 언론의 태도는 어땠나. 뒷짐 지고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온라인 광장의 여론을 주도하는 건 유사 언론이 됐고, 이들 사이에서 “우리 아직 건재해!”라고 외치며 유사 언론의 프로세스를 반복하는 것이 현재 기성 언론의 모습이다. 쏟아지는 루머 또는 의혹의 진위여부는 당연히 중요한 것이지만, 이를 판가름하는 데 귀를 기댈 수 있는 언론이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더 포스트(The Post)”를 지금에 와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까닭은 이 영화가 취한 형식의 완전무결함 때문이다. 다시 말해 “더 포스트”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영화문법의 교과서에 적혀 있는 A-Z까지의 기본을 따라 묵묵히 쇼트를 이어나갈 뿐이다. 그 쇼트 안에선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톰 행크스(Tom Hanks) 등 스필버그만큼이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아무런 기교도 부리지 말라는 거장의 지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때때로 아니 거의 모든 영화에서의 형식은 그 영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욱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더 포스트”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간단하고도 엄정한 진실에 다가간 뒤 끝내 움켜쥐는 영화다. 애석하게도 최근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전문가는 없고, 알맹이 없는 화려함뿐이기에 진실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이럴 때 마다 영화를 찾는 것이 비겁한 도피는 아닐까 자문하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비겁한 도피에 대한 비겁한 변명이란 마음으로, “더 포스트”를 권한다.

최직경(Contributing Editor)


어톤먼트 (ATONEMENT)

유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콘텐츠 중 일명 ‘사이버 렉카’라고 하는 채널은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이슈를 퍼나르는 것뿐 아니라, 자극적인 내용으로 재가공해서 조회수를 공략한다. 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 특히 평판이 중요한 연예인의 경우 대중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콘텐츠는 연예인들에게 치명적이다. 확인도 되지 않는 이슈가 오해가 되고, 그것이 잘못된 믿음으로 뇌리에 남게 되면 그것은 어느새 사실이 되어버린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이 바로 잘못된 믿음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톤먼트”다.

1935년, 영국 13세의 소녀 브라이오니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대저택에서 성장하며 소설가를 꿈꾼다. 어느 날 자신의 언니 세실리아가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가 분수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다. 평소 로비를 짝사랑하던 브라이오니는, 언니 세실리아가 옷을 벗고 분수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다른 의미로 오해한다. 그러나 오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로비와 세실리아는 서툰 방식으로 다가가다 보니 종종 다투기도 했다. 사과하고자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썼던 로비는 농담처럼 쓴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담긴 편지를 브라이오니를 통해 잘못 전달하고, 내용을 먼저 읽어본 브라이오니는 큰 충격에 빠진다.

이후 저녁 식사에 초대된 로비는 자신의 실수를 세실리아에게 사죄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그것을 브라이오니가 목격하고 강간으로 오해한다. 저녁 식사 때 브라이오니의 사촌 쌍둥이 형제가 실종되어 수색하던 도중 한 남자가 로라를 강간하고 도망치는 것을 목격한다. 브라이오니는 로비가 강간범이라고 단정 짓고 그를 고발한다. 4년 후 2차 세계 대전 중 로비는 군 입대를 조건으로 출소하고 부대에서 이탈해 덩케르크로 향한다. 세실리아 역시 간호사로 복무하고, 브라이오니는 역시 세실리아가 있는 간호 부대에 가기로 결심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달은 브라이오니는 과연 ‘속죄’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언 매큐언(Ian McEwan) 소설 ‘속죄’가 원작으로, 유려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국 영화다. “오만과 편견 (Pride & Prejudice)”,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 등으로 널리 알려진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그의 필모에서 확인할 수 있듯 화려한 영상미와 섬세한 미장센 그리고 타자기 소리로 긴장감을 극대화한 사운드 트랙 등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영화에서 세실리아와 로비의 인생이 무너지는 원인이었던 강간 장면은 베네딕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와 주노 템플 (Juno Temple)이 연기했는데, 이 신(Scene)을 연기할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꽤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아주 잠시 나오는 장면임에도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관객의 뇌리에 남은 이 장면은 극의 진행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했다. 어찌됐건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화 속 인물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주인공 브라이오니가 무고한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그들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고,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한편 끊임없이 영화 속에서 울리는 타자기 소리는, 소설을 집필하는 브라이오니의 불안한 심리와 자신의 필연적인 속죄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인생 말미의 마지막 작품에 이르러서야 속죄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왜 먼저 그들에게 속죄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유명인사를 향한 폭로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떤 것은 사실이었고 결국 당사자가 사과하며 자숙에 이르는 한편, 악의적으로 써내려간 ‘픽션’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갉아 먹고 있다. 앞서 타자기 소리가 브라이오니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했는데, 연이어 터지는 온라인상에서의 폭로 또는 근거 없는 루머를 써내려가는 공격으로 들리기도 했다. 글로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무섭고, 신중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최승원(Contributing Editor)


에디터 │ 최승원, 최직경
이미지 출처 ㅣ Nav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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