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거의 노래 : 타이거 디스코 ‘한국 소울 음악 5선’

주말이면 집 근처 레코드 숍에서 미지의 바이닐을 한 장씩 사는게 유일한 낙인 요즘, 레코드 숍에서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Tiger Disco)를 우연히 자주 만났다. 집중해서 진열대를 디깅하고,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등의 행동은 플로어에서 보여준 유쾌한 그루브와 상반되는 모습. 그 엄중함에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그가 구매할 판은 어떤 음반일까?

타이거 디스코는 작년 8월, 을지로 3가 인근에 바이닐 펍 ‘타이거 디스코’를 개업하여 사업가로 열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난 그의 업장을 찾아 근황과 수납장 일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펍을 통해 댄스, 비 댄스 장르 가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면 뭐든 소개하고 싶다는 그는 이번 ‘디거의 노래’를 통해서 한국 대중음악사에 주요한 70년대 소울 음반을 다섯 장 소개했다.

소문에 의하면 다섯 장 모두 헤비 셀렉터라 자부하는 이들조차 실물로 접하지 못한 바이닐, 음반 박물관에도 없을 희귀한 레코드다. 따라서 유튜브나 음원 플랫폼은 물론이고 웹에 데이터가 전무하다. 타이거 디스코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 웹상에 조금이나마 데이터가 남길 바랐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지금은 거의 바 활동에만 집중하고 있다.

작년 8월 자신의 디제이 네임을 따서 바이닐 펍을 차렸다. 오늘 인터뷰 장소이기도 한데, 이 공간을 직접 마련한 된 계기를 알려줄 수 있나?

사실 자영업은 지금이 세 번째다. 6년전까지 호텔에서 요리하다가 퇴사했고, 신촌에서 동업으로 술집을 운영했다. 그 이후에는 광화문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했는데 말아먹고, 작년 8월에 이곳을 오픈했다. 바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댄스 음악과 재즈, 클래식 등의 비 댄스 장르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자유롭게 들려주고 싶어서다.

처음 디제잉을 시작할 때도 재즈나 클래식을 플레이할 공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나?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장르 음악을 플레잉할 공간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

을지로에 터를 잡은 이유 또한 궁금하다.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을지로에 자리를 잡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금전적인 상황이 맞아서 자리잡은 것뿐이다.

3인 이상 단체 거절, 떼창금지 등 바 내부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이를 정한 이유 또한 알려줄 수 있나?

음악 감상이 첫 번째 목적이 되는 공간이기에 옆자리에 앉아있는 타인에게 실례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손님이 대화를 나누거나, 떼창을 하면 다른 장소로 옮기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수다와 떼창은 음악 감상을 즐기는 손님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며, 가게의 질을 떨어지게 하는 큰 요소다. 그러한 분위기가 쌓이면 바의 수준이 밑바닥으로 격하되는 것은 자명하다.

술과 음식을 직접 제조하면서 음악도 플레이한다. 일손이 모자라지 않나?

여전히 바쁘다.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매일 준비하는 주제가 있던데, 장르나 주제 선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편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튼다. 

이제 음반을 한 장씩 소개받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바이닐은?

에드포의 [비속의 여인]을 소개하고 싶다. 반세기 전에 발매된 앨범으로 “비속의 여인”이라는 희대의 명곡이 들어 있는 앨범. 그러나 오늘 소개하고 싶은 곡은 신중현 선생님의 사운드가 아닌 b면에 수록된 이동기 선생님의 곡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마지막 재판 버전만 그 이전의 오리지널 버전과 수록곡이 다르다. 이전의 앨범에는 에드포의 음악으로만 채워진 것에 반해 여섯 번째 재발매 버전의 b면에는 이동기 선생님의 재즈곡이 포함되어있다.

에드포 – [비속의 여인] 12″
에드포 – “비속의 여인”

이동기 선생님의 재즈 곡을 온라인으로 들어볼 수 없어서 아쉽다. 한편 에드포는 비틀즈의 이미지를 벤치마킹했지만, 소리는 한국적인 트로트의 색채가 묻어난다고 느꼈다.

접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음반은?

뷰티걸즈의 앨범이다.

뷰티걸즈 – [사랑의 언약, 신밀양아리랑] 12″

사실 이 음반 또한 사전에 정보를 찾아보려 했지만, 데이터가 전혀 없더라.

뷰티걸즈 앨범에 관한 자료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브레이크 사운드가 담긴 가요를 좋아하는 디거라면, 수록곡 “신밀양아리랑”에 미칠 수밖에 없다. 난 예전에 “신밀양아리랑”을 우연히 접하고, 내가 찾던 사운드임을 직감했다. 이 앨범은 그 뒤로 어렵사리 찾아다니다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또한 해당 곡은 얼마 전 비트볼(Beatball)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Funky Coup]에 수록되기도 했다. 혹시 그 컴필레이션은 아는지?

성수 에크루(Ecru) 매장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Funky Coup]의 커버를 본 기억이이 있다. 그러나 음악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들어볼 수 없었다. 오히려 궁금하다. 이런 음반들은 어떻게 알고 구하나?

데이터가 전무한 앨범은 직접 가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 발로 뛰어서 찾아내지. 주변 디제이들에게 음악을 추천받고, 서울과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수소문 끝에 찾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확인한 이미지만 가지고, 바이닐을 쫓아다닌 경우도 많았다.

“신밀양아리랑”을 듣자 마자 자신이 찾던 사운드라 직감했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직감했나?

70년대 한국적인 질감과 훵키하고 드럼이 부각되는 사운드를 좋아하는데 이 앨범은 그러한 부분을 모두 갖춘 데다가 가요, 민요를 재해석했다는 부분까지 너무나도 완벽했다.

다음 음반 소개를 부탁한다.

피너스씨스터즈를 소개한다. 피너스씨스터즈는 1966년에 결성된 것으로 안다. 작곡가로는 맹원식 선생님이 참여한 앨범. 맹원식 선생님은 당연히 한국 재즈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인이다. 원래는 ‘비너스씨스터즈’라고 지으려고 했는데, 당시 비너스가 좋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비슷한 어감을 지닌 피너스씨스터즈로 짓게 됐다는 자료를 본 기억이 있다. 그마저도 발음이 어렵다고 땅콩 자매라 불렀다고 한다. 이 앨범엔 다양한 번안곡과 “천안삼거리” 등의 민요가 맹원식 선생님 스타일로 편곡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이 앨범 또한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구하기가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피너스씨스터즈 – [메밀꽃 피는 계절, 누구에게 줄까요] 12″

이 앨범 역시 정보가 거의 없었지만, 맹원식 선생님이 작, 편곡으로 참여했다는 정보를 들고 그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찾아낸 정보를 통해 스케일이 큰 스윙 재즈에 한국 70년대 기성 가요다운 트로트적인 편곡을 짐작했는데, 경쾌한 스윙 재즈라 놀랐다.

맹원식 선생님이 그 당시 재즈 악단을 운영하고 있어서 스윙감 있는 미국 본토 재즈 느낌을 잘 구현한 게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미국의 재즈를 구현했다. 한국의 도회적인 스윙 재즈가 놀라운 부분이다.

한국 재즈도 역사로 따지면 1930년부터 역사가 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재즈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맹원식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줄 수 있나?

맹원식 선생님은 1970년대 홍난파 선생님의 “성불사의 밤”을 재즈로 편곡해서 경음악 경연대회에서 입상했고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악단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피너스씨스터즈는 1966년도에 결성되었고 오늘 소개한 건 1973년 앨범이다. 맹원식 선생님의 음반이라면 70년대에 발표했던 곡들을 모아 [맹원식 & his Jazz band-성불사의 밤]이라는 앨범을 1990년에 공개했다. 이는 몇 년 전 비트볼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었으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고산타령”을 추천한다.

다음 소개할 앨범은?

넷소리의 [걸작 1집]. [걸작 1집] 프로듀서는 김준규 선생님으로 아까 소개된 뷰티걸즈의 앨범과 같은 프로듀서다. 그래서 얼추 비슷하면서도 좀 더 락킹한 사운드가 특징. 그러나 그루브는 여전하다. 또한 속도감 있는 연주에 구수하게 퍼지는 민요가 인상 깊다. 이 앨범에는 한국의 전설적인 5인조 밴드 피닉스가 참여하기도 했다. 피닉스의 앨범 또한 접하기 힘든 편이나, 다행히 [걸작 1집]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확인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확인해보길 권한다.

넷소리 – [걸작 1집] 12″

마지막으로 소개할 바이닐은?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사운드 트랙 [영자의 전성시대 주제곡]이다. 70년대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을 모아 클래식이라 칭송하는 앨범으로, 정성조 선생님이 작곡했다. 정성조 선생님은 나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그의 프로듀싱과 최병걸 선생님의 소울 넘치는 보이스와 더불어 영화의 대사 및 장면마다 흐르는 곡을 수록한, 한국 영화음악 역사상 최고의 사운드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을 좋아하게 된다면 앨범 [겨울여자]와 [어제 내린 비]도 추천한다.

정성조 – [영자의 전성시대 주제곡] 12″

엄선된 다섯 음반들은 한국이라는 지역성 외 어떠한 공통된 주제를 지니고 있을까?

한국의 소울 그리고 그 시절의 흥과 얼이 담겨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VISLA와 인터뷰에서 삼촌이 일본에서 가지고 오던 야마시타 타츠로(Tatsuro Yamashita) 등의 J-Funk CD가 디제잉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또한 부모님이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비지스(Bee Gees),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등의 뮤직비디오를 자주 틀어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오늘 소개한 음악은 한국의 60, 70년대 가요. 이 앨범들은 타이거 디스코가 후일에 스스로 직접 찾아들었던 것이라 예상한다. 정확히 어떤 계기로 한국 가요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어릴 적 듣던 가요에 늘 애정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근래 가요까지 플레이하는 디제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80년대 이전 시대의 음악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나름 디깅하고 노력했다. 근데 이때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그 훗날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님의 [The Sound Of Seoul]과 후니지(Huni’G)님의 [당신이 찾는 브레이-크 가요의 모든 것], 그리고 자말 더 헤비라이트J(amal the Heavylight)님의 작업물에 심한 충격을 받고 그 뒤부터 진중한 자세로 디깅에 임하게 됐다.

또한 디제이를 막 시작할 시절엔 디스코를 플레이할 공간이 없었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자칭 ‘비운’이라는 사족을 잘 붙이던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피지컬과 디스코를 위한 공간이나 자리가 다양하게 마련되지 않았나? 디스코와 레코드 문화가 여전히 일부 마니아의 영역이나, 과거에 비해 형편이 괜찮아진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근 몇 년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옛 음악을 찾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보이기도. 이러한 음악 시장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감히 이야기하자면, 이제는 다양성이 인정받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획일화된 모습보다는 다양한 이벤트 및 공간들이 생겨나는 듯하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타이거 디스코를 생각하면 레트로한 컨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늘 선곡 또한 70년대 가요였고. 그래서 궁금한 것인데 혹시 미래를 상상해본 적 있나? 있다면 어떤 시대를 살 것 같나?

미래엔 뭐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재미는 없을 것 같다. 디제잉이든 음악이든 손 하나 까딱하면 모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니까. 지구에 대재앙이 오지 않는 이상 인류는 나날이 발전할 텐데, 편해지는 것은 좋지만, 막상 재미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알약 하나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그러한 빛나는 과학 시대를 고대하고 있긴 하다.

오프라인 바이닐숍을 자주 이용하는 것 같았다. 바이닐숍엔 수많은 음반이 있는데, 그중 수납장으로 모셔가는 건 어떻게 엄선하는 편인가?

일단 들어보고 내 취향에 맞다고 느끼면 구매하는 편이다.

전국을 직접 발로 뛰며 바이닐숍에서 음반을 찾는 일이 참 경이롭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까 편한 게 좋을 때도 있다. 다만 레코드 디깅은 어쩔 수 없다. 직접 뛰어다니며 레코드를 보고 만지며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디깅도 계속하면 재미있다. 습관의 재미라고 할까?

마지막 질문이다. 타이거 디스코에게 디깅이란?

디제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필수적인 요소다. 디제이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재료를 들고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찾아다니며, 들어봐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난 아직도 멀었다. 더 듣고 더 찾아봐야 한다.

Tiger Disco 인스타그램 계정


에디터 │ 황선웅
포토그래퍼 │김용식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종이잡지 15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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