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 / SAN SAN GEAR

다양한 패션 브랜드는 그들의 독창성을 담아낸 컬렉션을 선보이느라 바쁘다. 나 또한 여러 브랜드의 움직임을 꾸준히 관찰하며, 그들이 어디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들어보고, 유추해보는 일을 즐기곤 한다. 매 시즌 독특한 콘셉트로 흥미를 끄는 브랜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산산 기어(SAN SAN GEAR)는 타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과는 다른 궤로 눈길을 끈다.

디스토피아 설정을 더한 가까운 미래, 경비원의 야간순찰이나 넷상에서 시작된 어반 판타지 SCP 재단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패션으로 실체화하는 산산 기어는 패션 브랜드보다는 실험실, 각 분야의 괴짜로 구성된 오타쿠 집단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알면 알수록 호기심을 더하는 산산 기어, 그리고 이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 셋을 만나 그들의 엉뚱한 상상에 관해 들어보았다.

산산기어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상엽: 보통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고 소개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 산산기어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걸 보여주는 브랜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상현: 처음에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는 타이틀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결국 우리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옷을 만들고 있더라.

셋이 함께 브랜드를 꾸려가고 있는데, 각자 어떤 일을 맡고 있나.

이상엽: 디자인 같은, 브랜드를 움직이는 큰 업무는 셋이 함께 공유한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난 시즌 구상이나 기획, 마케팅을 담당 중이다. 상현이는 자금, 회계 등 전체적인 경영을 관리한다. 세훈이는 디자인과 함께 이러한 일들을 빈틈없이 메꾸는 일을 하고 있다.

모두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점이 흥미로운데.

이상엽: 우리 셋이 패션 디자인학과 선후배로 이어진 관계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부터 산산기어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건가.

이상엽: 그건 아니다. 내가 산산기어 이전 다른 패션 브랜드를 진행하고 있을 때 학교에 복학했다. 그때 상현이라는 친구를 처음 만났지. 당시 무신사에서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학생에게 공유 오피스를 지원하는 사업을 했었는데, 상현이가 그곳에 입주해 있었고,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 내가 브랜드를 종료하고 새롭게 뭘 해볼지 고민하던 시기에 상현이가 같이 브랜드를 전개해보자고 제안했다.

김상현: 옆에서 계속 각을 재다가 단숨에 꼬셨다. 하하.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스트리트웨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오히려 테크웨어에 가까운 옷을 선보이고 있는데, 어떤 콘셉트를 지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상엽: 특별한 콘셉트랄 게 없다. 다만, 우리는 항상 옷을 제작할 때 착용하는 사람이 직접 변형할 수 있는 요소를 더한다. 이런 게 콘셉트라면 콘셉트일까? 우리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을 진행하면서 우리 옷을 찾는 사람이 어떤 이들인지 조금은 알 것 같더라.

김상현: 디자이너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의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이상엽: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고 하면 어느 정도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지 않나. 나는 스트리트웨어를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옵션을 제안하고 싶었다.

어떤 이들이 산산기어의 옷을 소비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이상엽: 소위 말하는 고프코어(Gorpcore) 패션을 선호하는 이들인 것 같다. 우리가 자주 하는 것 중 하나가 중고마켓에 산산기어를 검색해보는 일이다. 하하. 산산기어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가 뜨는데, 아크테릭스(Arc’teryx)나 살로몬(Salomon) 같은 브랜드가 주를 이룬다. 아마도 그런 브랜드와 결이 맞는 게 아닐까. 우리 역시 그런 브랜드를 좋아하니까.

김상현: 산산기어 룩북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산산기어를 스타일링하는 사람도 있다. 신선할 따름이다.

컬렉션 내 품목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각 제품마다 패턴이나 절개 등 디테일에 상당 부분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상엽: 그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산산기어만의 차별성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기획을 할 때 ‘야마’ 없는 디자인을 피하려고 한다.

김상현: 난 상엽이 형보다는 순한 맛으로 디자인한다. 하하. 형이 처음 내놓는 초안을 보면 굉장히 빡세다. 그래픽만 봐도 ‘과연 이걸 사람들이 살까?’ 싶은 이미지가 많다. 난 이런 디자인에서 힘을 좀 빼는 역할을 자처한다.

이상엽: 이렇게 서로 타협하는 과정에서 옷이 만들어진다. 우선 꽉 채운 디자인을 내놓고 하나둘씩 빼는 거지.

김상현: 아직은 스스로 신생 브랜드라고 느끼고 있어서 소극적으로 전개하는 부분이 있지만, 소재나 디테일에서 다른 스트리트웨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세훈: 자본이 한정되다 보니 다수의 품목을 선보이기 힘들다. 일단, 보여주고 싶은 걸 다 넣어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컬렉션을 꾸리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면,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쉬울 것 같은데.

이상엽: 의견 충돌은 항상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제작하는 옷은 긴 타협 끝에 완성되는 옷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김상현: 내가 브랜드의 경영을 맡고 있다 보니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상엽이 형은 기획이나 마케팅 쪽에 더 신경 쓰다 보니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를 던진다. 물론, 멋진 아이디어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하기 힘든 게 많아 언쟁을 벌일 때가 종종 있다.

이상엽: 내가 뭘 제안해도 상현이가 적당히 자르니 오히려 더 질러보기도 한다. 하하.

티셔츠, 후디에 비해 제작하기 번거로운 옷을 만들고 있는데, 힘에 부칠 때가 있지 않나.

이상엽: 다들 티셔츠, 후디와 같은 소위 다이마루 장사가 최고라고는 하는데, 이상하게 우리 옷을 사는 사람은 재킷, 셔츠 등 직기류를 더 많이 산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옷에 계속 도전하는 거다. 사실 다이마루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아직 못 먹어봐서 모르겠다. 하하.

김세훈: 산산기어는 현재 하이츠(Heights)라는 편집 스토어에서도 판매 중이다. 한 번씩 가보면 후디나 티셔츠를 선보이는 패션 브랜드는 많지만, 직기류에 집중한 브랜드는 드물다. 다이마루는 우리보다 잘하는 곳이 많으니 우리는 우리가 지닌 장점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좋은 방향인 것 같다.

신생 브랜드로서는 위험 부담도 적지 않을 텐데.

이상엽: 우선 샘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첫 샘플은 직접 우리 손으로 제작해본다. 이렇게 해도 공장에서 자주 실수가 발생한다. 우리도 어서 프로모션 업체를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하고 싶다. 생산 과정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김세훈: 우리가 처음 생각한 옷이 한 번에 나오는 경우는 절대 없다. 하하.

제품뿐 아니라 룩북이나 프로모션 영상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들이고 있는데, 주로 어디서 많은 영감을 얻는지.

이상엽: 내가 퓨처, 디스토피아 콘셉트를 좋아한다. 산산기어의 모든 시즌에는 디스토피아적인 주제가 담겨있다. 첫 시즌은 과거 사람이 상상하는 미래의 옷을 콘셉트 삼았고, 두 번 시즌은 보건, 의료 분야에서 영감을 얻어 전염병이 창궐한 뒤의 세상을 그려봤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등장하기 전에 컬렉션을 구상했는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버려서 정말 놀랐다. 이번 시즌은 모두가 갇혀있는 지금,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갈망을 주제로 컬렉션 룩북을 완성했다.

이번 시즌 룩북 또한 꽤나 신경 쓴 티가 난다. 이를 비주얼로 구현한 과정 또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세훈: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기다가 우연히 한 전시회 사진을 보게 되었다. 바로 전시회에 방문해 작품을 보고 형들에게 이번 시즌 비주얼에 관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알고 보니 그 작가의 전시 포스터를 제작한 사람이 산산기어의 로고를 만들어준 사람이더라. 그렇게 작가의 연락처를 구해 빠르게 미팅을 진행하고 시기적절하게 룩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런 독특한 비주얼을 제작하는 만큼, 평소 어떤 걸 보거나 듣는지도 궁금하다.

이상엽: 세 번째 시즌을 진행할 때 넷플릭스(Netflix)에서 공개한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 푹 빠져있었다. 영상과 음악이 너무 감명 깊었는데,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할 정도로 재밌게 봤다.

김세훈: 최근 상엽이 형이 추천해줬던 “미드소마”. 음악은 장르에 상관없이 여러 카테고리를 떠돌며 듣는 편이다. 지금의 트렌드를 빠르게 체크하는 걸 즐긴다. 좋은 건 죄다 챙겨 보려고 하는 성격이라 취향에 큰 대중이 없다.

김상현: 우주에 관심이 많아 유튜브(Youtube)로 천체, 천문에 관한 과학 채널을 자주 본다. 다들 이렇게 폼을 재며 말하지만, 다들 가장 자주 보는 건 침착맨의 유튜브 채널이다. 하하.

상엽의 경우는 과거 두 개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데, 지금 산산기어를 전개하는 입장에서 업무나 환경 등 이전과 비교되는 점이 있는지.

이상엽: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이전 스트리트웨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직접 해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기반하는 문화가 있어야 브랜드 또한 지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제품만으로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만, 문화를 함께 가져가면 할 수 있는 게 그만큼 늘어나는 거니까.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실패를 겪은 제품은 무엇인가,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피스나.

이상엽: 우리의 숙업이 하나 있다. 멋진 패딩을 하나 완성하는 건데, 저번 겨울에도 무려 네 번이나 샘플을 제작했다. 알고 있겠지만, 패딩 샘플이 정말 비싸다. 근데 마음에 드는 게 나오지 않아 결국 제작하지 못했다. 이번 겨울에는 기필코 패딩을 완성하고 싶다.

김상현: 이번 시즌부터는 판매 외적인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했다.

이상엽: 지금까지는 항상 전부 꽉 채워진 디자인에서 빼기만 했으니까 처음 구상한 걸 그대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상현: 그러려고 했는데, 본 시즌을 준비하다 보니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결국 만들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산산기어에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산산기어는 여타 브랜드가 흔히 차용하는 대중문화나 현대미술이 아닌 보건/의료, SCP 재단, 코스믹 호러 등 독특한 분야에서 파생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김상현: 상엽이 형이 기획할 때 신박한 아이디어를 많이 던진다. 기본적으로 이 형이 되게 변태다. 그 아이디어 중 거르고 거른 주제가 지금까지의 산산기어 컬렉션이다. 또 망상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컬렉션 이전 시나리오를 한 편 쓴다. 전 시즌 디자인 기획은 SCP 재단에 침투하는 주인공 무리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으며, 재단을 관리하는 경비원의 모습, 연구원의 외형 등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이미지를 옷으로 구현해보는 거다.

김세훈: 상엽이 형이 제안하는 테마가 너무 마니악해 우리는 컬렉션 전개 전 그 주제에 관해 미리 공부해야 할 정도다. 하하.

이상엽: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이렇게 작업할 때 몰입이 잘 된다. 항상 시즌 콘셉트에 관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하.

다음 시즌은 어떤 주제로 컬렉션을 진행할 예정인가, 살짝 힌트를 주자면.

이상엽: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원래 이번 시즌 주제가 ‘미래 식량’이었다. 미래 식량으로 스토리를 짰던 게 곤충을 먹는 ‘충식’이었다. 미래에 식량난이 생기고, 그 기근 속의 빈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미지를 완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조금 미뤄두고 있다.

혹, 예정된 협업이 있는지.

이상엽: 뮤지션 수민의 앨범 발매에 맞춰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라키나토(Lacinato)라는 아프리카 식물 관련 브랜드와 몇 개의 아이디어를 나눈 적은 있다. 이제 조금씩 정리를 해봐야지.

에센스 타이완(ESSENCE Taiwan)이라는 대만의 편집 스토어에 입점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

이상엽: 우리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되게 골 때리는 곳이다. 다짜고짜 ‘Bro~’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왔다. 하하. 그렇게 알 수 없는 브라더십을 느끼고 지금까지 거래하고 있다.

산산기어가 주목하는 동시대의 신인왕은?

이상엽: 실크 밸리 프레스(Silk Valley Press)라고 최민석이라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김포 로컬을 다루는 잡지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살짝 들여다보니 기획도 잘했고, 내용 또한 충실해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지카진(AZIKAZIN)이라는 서울의 예술 창작 집단도 꾸준히 관심이 간다. 기회가 된다면 협업해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김상현: 작년 봄 국민대 패션디자인학과 졸업 전시에 가서 굉장히 충격받은 컬렉션이 있다. 지금 그 디자이너는 혜인서(Hyein Seo)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lxeewon이라는 것만 안다. 하하. 서로 연고도 없지만, 조용히 팔로우하고 응원하고 있다.

김세훈: 현재 사무실을 같이 쓰는 블랜디드노이즈(blendednoise)라는 브랜드를 응원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무실을 공유하니까 서로의 작업을 꾸준히 지켜봐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번 시즌이 브랜드의 첫 시작인데 기대해줬으면 좋겠다.

산산기어의 예정된 행보는 무엇인가?

이상엽: FW 시즌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 하하. 매번 늦어져서 불안한데, 빨리 테마를 정해 미리 준비하고 싶다. 그 사이 여력이 된다면 캡슐 컬렉션을 진행해보고 싶기도 하다.

SAN SAN GEAR 공식 웹사이트


에디터 │오욱석
포토그래퍼 │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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