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Odyssey / 곽경륜

이미 VISLA 매거진에서도 무수히 소개된 곽경륜이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2015년 충격적인 클립으로 가득 찬 스케이트보딩 영상 제작에 이어 이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명칭의 패션 브랜드를 전개 중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Scene) 속 누구보다 활발히 움직이며, 불도저와 같은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제는 또 다른 기로에서 새로운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이전 무수한 스케이트보드 클립으로 가득 찼던 곽경륜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어느덧 수많은 그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터넷뿐 아니라 그의 방 구석구석을 채운 결과물은 그의 무수한 수행을 보란 듯 증명한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작품으로 본인의 공간을 채우는 기분은 어떨지. 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성수동에 위치한 그의 집 현관문을 두들겨 봤다.

스케이터이자 브랜드 디렉터, 일러스트레이터까지,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직함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매번 생각하지만, 스스로 나를 소개하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고 싫다. 이름만 말하겠다. 곽경륜이라고 한다.

필르밍과 브랜딩, 그리고 그림 등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어머니께서 특정한 분야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손재주가 좋으시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봐도 항상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곤 하셨다. 아마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현재 본인이 전개하는 브랜드나 삽화를 바탕으로 국내외 많은 이와 교류하고 있다, 이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 현재 함께 꾸미고 있는 일이 있는지.

나에게 처음 함께 일하자고 손을 건넨 사람은 레이브 뮤직 기반 브랜드 ‘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의 디렉터 임솔이라는 친구였다. 그 당시 과거의 레이브 플라이어 그래픽에 엄청 빠져 있었는데, 내 그림에서 묻어나온 그 느낌을 그 친구가 좋아했던 것 같다. ‘더 인터내셔널’은 태도가 확실했고 국내외, 특히 해외 인지도가 탄탄한 브랜드였기 때문에 내 그림으로 만든 옷이 나오고 나를 사웃-아웃(Shout-Out) 해줬을 때 해외의 여러 아티스트와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교류할 수 있었다.

인지도 하나 없던 나를 그림 몇 장 보고 협업을 제안해준 ‘더 인터내셔널’ 크루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Real recognize real……. 아, 그리고 이와 함께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해외 로컬 브랜드인 미국의 헬월드(Hellworld), 태국의 블루 보이즈 스포츠 클럽(Blue Boyz Sports Club)과 각각 협업을 구상 중이다 많은 기대 부탁한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광진구에 살고 있는데, 지금껏 이 동네에 머무르며 느낀 장점이라면?

편리한 교통과 발달한 상권 등 좋은 인프라 덕분에 집 근방에서만 생활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한강이 가깝다는 거다.

한강이 주는 장점은 무엇인가?

글쎄, 삶에 여유를 주는 것 같다.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 등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좋다.

이 동네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없다.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다면, 어느 나라로 가고 싶은가?

미국이다. 특히 뉴욕, 아무래도 스케이트보드나 그래피티 등 내가 좋아하는 여러 문화가 진하게 녹아있고, 그 분야의 OG들 또한 많으니까. 지금처럼 해외 아티스트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뉴욕에 간다면 엄청 즐거울 것 같다.

방금 말한 것처럼 해외의 아티스트, 브랜드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데, 특히 방금 언급한 블루 보이즈 스포츠 클럽과 흥미로운 걸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블루 보이즈 스포츠 클럽과의 인연도 인터내셔널과의 협업 덕분에 시작됐다. 제품이 나왔을 때 빠르게 샤웃-아웃해주더라고. 디렉터 폴(Paul)이 나를 팔로우해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갔는데, 그림 스타일이 나와 비슷해서 더 흥미가 갔다. 클래식한 요소를 재해석해서 그리는 점도 멋지고. 폴과 더불어 여러 해외 아티스트의 작업을 접한 이후 그림에 대한 생각의 판도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

어떤 점이 바뀌었나?

이전까지는 그림에 대해 꼰대 같은 마인드가 있었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내 스스로 스타일에 틀을 두고 있던 거지. 새로운 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달까. 근데, 그들과 교류하고 나서는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어브러쉬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다.

지금 이 집은 어떻게 구하게 되었는지.

여자친구와 5년째 교제 중인데 4년 정도 원룸에서 함께 살다가 올 초 여자 친구가 열심히 일한 자격으로 넓은 집에 이사 왔다.

이 집을 구하기까지의 여정 또한 궁금하다.

여자 친구가 회사에 다니며, 부동산과 은행 그 외 이사에 관한 많은 일을 홀로 신경 쓰고 해결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나는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도우려 최선을 다했고.

같은 지역구의 집을 떠나 독립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면.

아버지가 자수성가하신 사업가시다. 근면성실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분인데, 장남인 내가 대학 졸업 후 취업에 관심 없이 옷이나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면 정말 답답하셨을 거다. 때문에 아버지와 트러블이 잦았고, 나 하나 때문에 처진 집안 분위기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독립 후 아버지가 권유한 회사 일은 다행히 동생이 맡아 잘하고 있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현재 이 공간을 어떻게 구분해 사용하고 있나.

방이 총 세 개인 집인데, 거실은 휴식 공간으로, 제일 큰 방은 안방처럼 사용하고 있다. 남은 두 방 중 하나는 드레스룸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작업 공간이다. 여자 친구의 배려에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한동안 열정적인 스케이트보드 영상이 당신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웠다면, 지금은 당신이 그리는 그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

어린 시절 꿈이 만화가였다. 대학 전공도 만화 관련 학과를 선택해 졸업했지. 그때 우연히 스케이트보드를 접하고 나서 존나 빠져들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오로지 보드만 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30대가 되어 있더라. 몸 여기저기가 아파져 오고, 돈은 쥐뿔도 없었다. 잠시 회의감에 빠졌고, 다시 펜을 쥐고, 그림만 엄청 그렸다. 그게 불과 1년 전 일이다.

여전히 건대 앞 분수광장에서 자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나?

근처에도 안 간다.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아까 말했던 회의감이다.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탄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스케이터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다. 스케이트보드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문화라고 느꼈고, 브랜드를 시작할 때도 여기에 서포트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Scene)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냥 내 열정이 과했던 거지. 혼자 실망하고, 화내고.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봐도 좀 심했다.

그 스트레스를 그림으로 풀기 시작한 건가?

스케이트보드 말고 몰입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그림이었다. 사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아마 무조건 하루에 한 장씩은 완성해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을 거다. 나에게도 아직 뭔가가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점차 쌓여, 데들리 핸드 진(Deadly Hand Zine)이라는 미니 진을 발표했는데, 그때 외부로부터 조금씩 반응이 왔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부터는 일상도 많이 평온해진 느낌인데.

확실히 그렇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때의 나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이제 마음을 비우니 편안하다.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방법은 타는 것 말고도 많이 있고, 지금도 충분히 스케이트보드를 즐기고 있다.

집에서 보내는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오직 디깅, 드로잉, 근력 운동.

집에 있으면 늘어지기 쉬운데, 필요한 일만 찾아서 딱딱 해나가는 느낌이다. 특히 운동.

스무 살 초반에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건 수술로도 치료가 안 된다고 하더라. 허리가 더 휘지 않게 근육으로 잡아줘야 한다는데, 그러려면 근력 운동 밖에는 답이 없었다. 순전히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거다.

데드맨콜링(Dead Man Calling)이라는 브랜드를 전개 중인데, 브랜드 업무 역시 이곳에서 진행 중인가?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살던 원룸에서부터 지금까지 쭉 그렇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방 하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다 했었는지 신기하다. 여기에 오고 데드맨 콜링의 제품 디자인이나 내 그림이 한층 더 나아지고 새로운 걸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는 점이 매우 만족스럽다. 내년까지 열심히 돈을 벌어 새로운 작업실을 계획하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데드맨 콜링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 정체성이 너무 강해 어떤 디자인을 해도 그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요새는 이게 약간 부담스럽다. 죽음을 테마로 위트 있게 풀어가는 게 브랜드의 기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콘셉트가 식상하더라. 이제데드맨 콜링보다는 조금 더 전방위적인 디자인의 브랜드를 전개하고 싶다.

작업실을 구한다면, 집 주변으로 구할 것인지?

장소까지는 아직 생각을 안 했다. 일단은 넓은 공간이었으면 한다. 큰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거든.

그림 그릴 때 어떤 도구를 자주 사용하나? 각 도구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요즘 자주 쓰는 도구는 에어브러쉬다. 오래전부터 관심 있던 장비였는데, 이제야 작업공간이 생겨 구입해 사용 중이다. 컴프레셔를 작동 시켜 뿜어지는 도료로 그림을 그리는 장비다. 레버를 컨트롤해 선의 굵기나 명암 표현 그 외 에어브러쉬만의 독특한 느낌을 낼 수 있다.

거친 느낌의 독특한 그림체와 더불어 그 소재 또한 범상치 않다. 그 영감의 원천을 이야기해 달라.

유년 시절 미국에 사시는 큰아버지가 한국에 방문해 집에 들를 때면 선물로 그 당시 90년대 미제 장난감이나 장난감을 아카이빙한 책자, 만화책을 사 오시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형형색색의 장난감, 그리고 그 기괴한 주제나 형태가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그런 부류의 옛날 물건을 찾아보곤 한다.

유년 시절부터 이러한 느낌을 추구했나?

그런 것 같다. 유치원 때도 다른 친구들이 산이나 바다 같은 평화로운 풍경을 그릴 때 나는 에일리언처럼 이상한 괴물을 많이 그렸다. 어머니가 걱정 많이 하셨지. 하하.

집 주변 가장 자주 방문하는 장소 다섯 군데를 소개하자면.

다섯 군데까지 안 되는 것 같고, 담배 사러 집 앞 편의점을 가장 자주 가는 것 같다.

이 집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은 무엇인가.

최근에 산 아이패드. 존나 짱이다! 신세계! 너무 늦게 샀다. 이걸 이제야 사다니. 아낀다는 표현보다는 요즘 내 손에 가장 자주 닿는 물건인 것 같다.

수집품으로는?

그동안 모아온 스티커? 지금까지 스티커를 정말 많이 모았다. 스케이트보드나 패션 브랜드에 관련한 스티커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친구들이나 유명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아트워크가 그려진 스티커를 특히 아낀다.

바로 지금 이 공간에 가장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물건보다는 공간을 넓힐 수 있거나 방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최근 가장 흥미로운 일은 무엇인가?

최근 ‘예스 세라믹(Yes Ceramic)’이라는 공방에서 세라믹 재질의 인센스 홀더를 몇 번 만들었는데, 아주 재밌다. 앞으로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해볼 참이라 더욱 기대된다.

당신에게 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인지?

연구소.

만약, 새로운 공간을 얻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꾸미고 싶은가?

가장 먼저 크고 편한 소파 하나와 널찍한 작업 테이블을 두고 싶다. 그다음은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곽경륜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오욱석
Photographer│오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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