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ght It! / 2022. Feb

나를 위해 뭔가를 구매하는 일, 쇼핑은 비견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소비를 구경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 시즌 오프 세일부터 설빔까지, 도처에서 손을 내미는 쇼핑의 유혹 속에서 VISLA 매거진의 에디터들은 어떤 물건으로 욕망을 채웠을지. 지금 당장 아래의 글을 통해 확인해보자.


황선웅 / 에디터 – sunwasherer EP [Sun Was Here] Vinyl

포스트록, 혹은 로파이 계열의 인디록에 이따금 등장하는 포근한 멜로디가 요즘의 내 취향. 사무실 등유 난로와 더불어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도록 돕는 필수요소며 내가 최근 다시 모던, 인디록 밴드의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몰린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바이닐 최초공개반으로 소개된 썬워즈히어(sunwasherer)의 EP [Sun Was Here]. 이는 남은 겨울을 위한 최고의 음반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Sun Was Here]의 바이닐 구매를 놓쳤고 이를 구하기 위해 정말 몸부림을 쳤다.

공교롭게도 행사 당일은 엄마의 환갑이었다. 나는 군침만 삼킨 채 고향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최초공개반을 온/오프라인에 분할하여 물량을 푼다는 소식에 안일한 생각도 가졌다. 레코드페어 몇 번 왔다 갔다 해보니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재고가 남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번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다. 안일함에 뒤늦게 확인했을 때는 오프라인과 ‘쎄 프로젝트(Sse Project)’ 스마트 스토어의 재고가 모두 바닥난 상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쎄 프로젝트의 밴드캠프를 확인하니 아직 다섯 개의 재고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밴드캠프 구매는 해외 구매자 전용으로 오직 페이팔로만 지불이 가능했으니 다시 낙담했다(페이팔은 해외 결제 대금만 이용이 가능하다).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이 음반을 더욱 열망하게 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으니, 바로 ‘중고로운 평화나라’다. 때마침 누군가 원가에서 만 원을 더한 가격에 주소 변경을 조건으로 판매하고 있더라. 이를 거래하며 나는 썬워즈히어의 음반을 손에 넣었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과열된 바이닐 시장, 예상치도 못한 프리미엄이 각종 음반에 붙고, 늦을수록 더욱 얄짤 없이 오르는 것이 가격이다. 오히려 만 원을 추가 지불한 것에 만족하며 날마다 디지털로 음반을 곱씹는 중. 훗날 풀릴 물량을 기다리며 더는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한지은 / 에디터 – T&C Surf Designs Yin Yang Zip Up Hoodie

가격 대비 맥도날드만큼 행복한 한 끼도 없다며 월급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잊고 지내던 빈티지 숍의 세일 문자가 도착했다. 구경이나 해볼까 하며 들어간 사이트엔 일본발 브랜드 떼기들이 꽤 합리적인 세일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파격적인 세일 폭에 세일가가 사실 원가가 아닐까? 하는 궁색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도 잠시, 품절된 물품이 별로 없는 걸 보니 내가 사이트에 꽤 일찍 방문한 손님인 듯 했다. 그러나 가격 대비 나쁘지 않은 정도의 상품들을 스캔하고 있던 그 시각 통장 잔고는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었고.. 나도 딱히 물건을 살 생각으로 둘러보던 차가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싱겁게 구경을 마쳤다. 며칠 뒤 나는 사이트를 다시 방문해 후드 집업을 하나 구매했다. 충동구매가 늘 한순간의 충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구매한 아이템을 자랑하는 이 자리에서 이 후드가 누구나 원할 멋진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나조차도 직감적으로 이 녀석을 과연 밖에 입고 나갈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샀냐고? 이 후드를 구매한 이유의 7할은 후드 전면을 차지한 음양 심볼이다. 60년대 히피 운동과 90년대 그런지 문화의 일부였다는 위키백과식 부연 설명만 읊어도 근본과 가까운 느낌에 일단 호감이 가는 음양 심볼은 삶의 균형과 조화라는 철학적 의미가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도 딱 들어맞아서인지 최근 패션의 흐름에서도 자주 발견되곤 한다. 그 동향을 충실히 따라 눈길 한 번 더 준 것이 끝내, 허접한 지갑 사정을 뒤로한 채 구매로 이어지고야 말았다.

아무튼 이 눈길을 끄는 음양 심볼 그래픽은 집 앞 동묘 산보에서 이미 서너 번 접한 바 있었다. 그땐 ‘궁금하네’하고 말았는데 빈티지 숍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때에야 편리한 구글 검색을 통해 나는 이 브랜드의 명칭이 ‘T&C Surf Designs’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1971년 하와이에 설립된 서핑 브랜드라는데 브랜드 웹사이트에 나온 소개글 한번 정감 간다. 한글 번역을 그대로 읽어보자면 창립자 크레이그 스기하라(Craig Sugihara)가 하와이에 지역 숍을 하나 냈는데 브랜드의 시작이 크레이그만큼이나 겸손했고, 시간이 흘러 다국적 서핑 회사로 발전해나갔다고 한다.

2021년 이들은 브랜드 50주년 아카이브 북을 펴냈고, 1988년엔 회사와 서핑을 주제로 한 닌텐도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까지의 얕은 지식을 습득한 후에는 이 후드의 구매 이유인 나머지 3할이 충족되었다. 이렇게 풀어 써놓고 나니 이거 충동구매가 아닌 꽤 치밀한 구매였던 걸지도.. 우연히 눈에 띈 것치고 알고 보니 꽤 호감이 가는 옷이었고 지금 당장 자주 입진 않더라도, 먼 훗날 이국적인 바다를 배경으로 입고 뙤약볕을 피하면 참 멋지지 않을까 상상해보며……. 그날을 기대하며 구매한 후드다.


박진우 / 그래픽 디자이너 – Carhartt Vintage Jacket

브랜드가 주는 매력이라면 브랜드의 스타일이나 태도에 팬이 되거나. 경제력, 럭셔리함 과시, 유니크함 과시 혹은 그걸 갖거나 입으면서 오는 자기만족이나 스타일, 가오, 느낌, 그런 것들이지 않을까.

불과 10년전만 해도 다양한 스타일에 관한 정의, 정보도 더 적었고, 이 세상 수많은 브랜드에 대한 정보도 적었다. 그래서 좋은 걸 안다는 것은 유니크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아는 것은 너무 쉬워졌고, 브랜드의 나열이 아닌 그 이상의 무드를 갖고 있어야 유니크한 냄새가 난다. 브랜드 자체로는 멋짐 전투력을 갖는 것도 빡세다. 이제 님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안다. 몰라도 알려면 안다. 조금만 검색하면 멋진 브랜드의 근본을 참 재미도 없고 멋도 없게 줄줄이 K-블로그식 정보로 얼마든지 습득 가능하다. 자칫하면 어색한 신상 옷걸이맨이 되고 만다. 예전에는 좀 깊이 있는 정보는 영어 검색을 하거나, 기를 쓰고 찾아야 조금씩 알 수 있었는데 요새는 어지간하면 한글로 된 정보가 다 있고, 국내 발 빠른 숍들에서 다 판매 중이다. 나만 아는 개멋진 브랜드라고 생각했던 걸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녀석이 멋지다고 걸치고 오면 왠지 열 받게 되면서… 오만하고 쪼다 같지만 실제로 그런 마음이라 어쩔 수가 없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지면서 이런 사례가 늘어왔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보기 힘든 도회적인 느낌의 아크테릭스. 멋있는 거 나도 알고 님도 알고 다 안다. 멋지고 편하지만 입기엔 왠지 꺼려진다. 내가 희귀함에 무게를 두고 있나 보다. 돈 있으면 다 사니까. 요새 사람들 씀씀이도 커져서 쉽게 쉽게 산다. 백만 원 돈 주고 잠바 사서 입고 나들이 갔는데, 같은 잠바 서너 명 보면 열 받지. 남 좋은 일만 신나게 하는 느낌. 열 안 받는다면 멋진 마음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면 거기서 오는 스타일이 또 생기더라.

누가 보면 패션마니아인 것처럼 말이 많았다. 패션 피플이 아니더라도 생각은 많이 할 수 있는 거니까 이해를 부탁한다. 사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빈티지숍에서 잠바를 하나 샀다. 칼하트의 오래된 재킷인데, 상태는 사실상 걸레 직전이지만 물 빠진 색이 예쁘다. 걸레 직전인 것 치고 비싸지만 또 이런 인연이 잦지 않으니 기분 좋게 구매했고 입어보니 잘 맞는다. 입던 옷 같아서 좋고, 안 겹쳐서 좋다. 하지만 새 옷도 기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내 편집숍 세일 카테고리를 눌러 설빔을 골라보며 글을 마친다.


오욱석 / 에디터 – Easy Go NYC “EZGO Corp” Suede 6 Panel Hat

연 중 모자를 쓰지 않는 날이 얼마나 될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매일같이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이런 날이 길어지니 옷장에 적잖은 모자가 쌓였다. 당연히 그 선택의 폭도 넓어졌으나 역시나 손이 자주 가는 모자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모자. 그 특징을 몇 가지 정리해보자면, 우선 비에 젖어도 쉬이 젖지 않는 나일론 소재가 좋다. 오랜 시간 착용하는 아이템이기에 통풍 역시 중요하다. 스트랩은 스냅 형식이 아닌 것. 특히 플라스틱 버클이 달린 나일론 스트랩을 선호한다. 그리고 너무 깊지 않은 모양새랄까.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에서도 모자를 제작하기에, 멋지다고 생각하는 브랜드가 위 조건에 걸맞은 모자를 내놓으면 별 고민 없이 구입하는 편인데, 근래 눈에 띄는 브랜드가 나타났다. 이지고 뉴욕(EasyGo Athletics)라는 브랜드가 그것으로 모자와 양말 단 두 제품만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아웃도어 재킷이나 떼기를 아카이브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지고 역시 클래식한 아웃도어와 스트리트웨어를 적절히 조합한 쿨한 스타일링을 보여준다. 국내 판매처가 없기에 인스타그램, 웹샵을 구경하며 입맛만 다시다 근래 용기 내어 주문했고, 소규모 브랜드답잖게 빠르게 배송해주어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받아볼 수 있었다.

스웨이드 캡 한 종을 구매했는데, 그 깊이감이나 형태가 썩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브랜드가 중시하는 ‘품질’에 대한 철학을 모자 챙 위 자수로 새겨 놓은 점 또한 훌륭한 포인트. 아무튼, 간만에 좋은 모자가 생겨 여러모로 기분 좋은 쇼핑이었다…


Editor│오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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