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ght It / 2022. Mar

점차 따스해지는 날씨, 많은 패션 브랜드, 편집 스토어가 시즌에 맞춰 다양한 의류를 선보이고 있지만, VISLA 매거진의 편집부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계절감과 상관없이 본인의 취향을 잔뜩 드러낸 ‘Bought It’의 3월호를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권혁인 / 편집장 Satya Money Matrix Incense Sticks

집에서 담배를 피우면 좁은 거실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찬다. 이내 퍼져나가는 불쾌한 냄새를 덮기 위해 다시 향을 피운다. 해로우면서도 끊어내기 힘든 담배를 연거푸 피우고, 그 흔적을 지우는 번거로운 악순환. 언젠가부터 과거는 곱씹기에 비효율적이고 미래는 막연한 심연 같아 지금 나를 찾아오는 몇 분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가족, 연인, 친구에게 행한 과오.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부끄럽고 고된 것. 자신 또한 상처받았으니 ‘그럴 만하다’라는 위안으로 적당히 덮어둔 채 지나간 시간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것이라 떠들어댔던 교만. 과거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가는데, 나는 내 입맛에 맞는 것만 남겨두고 마음껏 잘라낸 게 아닌가. 그렇게 남은 건 징그러운 이기심과 외로움. 이것은 또 무엇으로 덮어야 한단 말인가? 오랫동안 기피했던, 다시 처음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텁텁한 연기가 자욱한 내 방에 필요한 향이 아닐지.


황선웅 / 에디터 – Game [MOTHER 2] Vinyl

간간이 비디오 게임 관련 바이닐 레코드를 모았다. 게임 레코드 신(Scene)에 인기가 많은 것들은 대부분 90년대 인기가 많았던 타이틀의 삽입곡들로 과거의 향수를 기반하여 소비 심리가 일어난다. 그런데 난 딱히 비디오 콘솔 게임에 추억과 향수가 없다. 아마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와 내 또래 대부분은 콘솔보다는 PC로 온라인 게임을 주로 즐겼을 거다. 한국에 비디오 게임 음악 레코드를 유통하는 숍이 극히 드문 이유 역시 콘솔 게임과 삽입곡에 공감할 만한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8비트, 16비트라는 제한적인 환경에서 탄생한 당시의 게임 음악은 오늘날 우리를 향수에 젖게 하는 요소다. 90년대 스퀘어 소프트의 우에마쓰 노부오(Nobuo Uematsu), 닌텐도의 콘도 코지(Koji Kondo), 그리고 아직도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미츠다 야스노리(Yasunori Mitsuda), 코시로 유조(Yuzo Koshiro) 등 일본 게임 음악가의 행보는 꽤나 흥미로워 음악적으로도 간과할 수 없다. 적재적소 배경에 사용된 사운드트랙인지는 확인하지 못하기에 그들의 사운드 철학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단순히 음악은 좋을 수 있는 거다. JRPG에 이따금 등장하는 어딘가 아련한 곡과 혹은, 오버월드에 삽입될 법한 켈틱한 멜로디에 끌린 필자는 음악에 이어 게임 스토리에 관한 글과 스트리머들의 플레이 영상을 찾아보며 게임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연대까지 꿰었다. 난생처음 게임 콘솔로 닌텐도 스위치를 구매한 이유가 게임을 글로 배운 게 어불성설인 것 같아서니 말 다했다.

아무튼 이달에 구매한 LP는 게임 “마더2″의 사운드트랙이다. 닌텐도 슈퍼 패미컴에 이식된 RPG인 “마더2”, 북미에서는 “Earthbound”라는 타이틀로 더욱 친숙한 게임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 뭔 듣보잡이냐 싶겠지만, 당시엔 세계관과 전투 시스템이 나름 혁신이었다고, “포켓몬스터”와 “언더테일” 등의 인디 게임에도 영향을 준, 그들의 어머니쯤 되는 게임이다.

“마더2″의 사운드트랙은 당시 닌텐도 소속의 사운드 디자이너 타나카 히로카즈(Hirokazu Tanaka)와 뮤지션 스즈키 케이이치(Keiichi Suzuki) 합작으로 제작됐다. 패미컴에 이식된 다수의 게임과 대표적으로 “메트로이드” 시리즈 등을 맡았던 타나카 특유의 미지스럽고 괴기한 사운드트랙은 “마더2″를 모르고 듣는다면 공포 게임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리고 스즈키가 담당한 평화롭고 일상적인 곡들이 잘 배합된 사운드트랙 앨범이다.

더불어 해당 레코드는 닌텐도 프랜차이즈 중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공식 LP 릴리즈라는 것이 큰 가치다.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등의 닌텐도의 전통 퍼스트 파티 게임은 물론이고 “포켓몬스터”, “커비” 시리즈 등 닌텐도 계열의 세컨 파티 게임들까지 과거 야마우치 히로시(Hiroshi Yamauchi)가 내세운 회사 철칙과 전통에 따라 음반 사업에 진출할 생각이 없는 듯. 때문에 닌텐도는 대부분 오케스트라 편곡과 재연주(커버)까지 허용하여 발매되고 공식 사운드트랙을 수록한 것은 대부분 언오피셜 부틀랙이다. 그러한 사례에서 “마더 2″는 예외적으로 오리지널 버전을 수록하여 가치가 큰 셈. 작년 소니에서 재발매한 검정 버전이 알라딘에서 판매됐고, 해외 음반 세일 행사를 진행한 덕에 저렴한 가격에 GET! 참고로 올해 ‘Ship To Shore Phonograph Co.’에서 3년 만에 재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오욱석 / 에디터 – YMCL KY BDU Pants

언젠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을 때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의류업에 종사하거나, 속했던 이들이었는데,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무슨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자연스레 주제가 ‘옷’으로 흘러간다. 그날도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다 ‘빈티지’라는 단어가 화두에 올랐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멋진 빈티지를 찾는 재미’랄까.

모두가 좋은 빈티지가 있는 곳, 찾는 방법 등에 빈티지에 관해 전투적인 토론을 이어가던 그때, 내가 취중 선언으로 산통을 깼다. “근데, 난 새 옷이 좋더라”. 그러자 옆의 한 친구도 슬그머니 자기도 새것이 좋다며 고백 아닌 고백을 하더라.

그렇다.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한다. 몇 순수주의자들의 원성을 각오하고 말해보자면, 빈티지도 빈티지 나름이지. 대부분 최대한 상태가 좋은 것을 선호하지 않나. 웹 브라우저에 빈티지 쇼핑몰 수십 개를 즐겨찾기로 갈무리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지만, 정작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다. 호기심이 동해 사더라도 두어 번 입어본 뒤 옷장 깊숙이 처박아 버려 놓기 일쑤다.

빈티지를 입어도 그릇의 문제인지 별로 멋이 나지 않는다. ‘멋진 빈티지’에 대한 동경심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빈티지스러운 새 옷을 사는 것 같다. 집에 있는 ‘BDU 팬츠’가 어림짐작 일곱 벌 정도 되면서도 줄기차게 바지를 산다. BDU라는 게 본래 군복이니 현행이 아니라면, 대부분 낡은 옷이다. 예전에는 오리지널을 따지면서 오래전 진짜 사나이들이 입었던 BDU 팬츠를 쑤시고 다녔지만, 요즘은 그냥 복각을 산다. 디자인과 소재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오리지널 정신과 근본을 제외한다면, 새 제품을 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본의 나름 유서 깊은? 밀리터리 복각 브랜드 ‘YMCL KY’에서 내놓은 바지를 두 벌째 샀는데, 꽤 마음에 든다. 이것도 동양인 체형에 맞췄는지 시티보이 룩으로 훌쩍 떠버린 미군납 브랜드 프로퍼(Proper)보다 더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베이지 컬러를 사봤다(매번 우드랜드 카모플라쥬나 블랙, 네이비 컬러를 샀다). 오랫동안 새것처럼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지은 / 에디터 – Civilist Card Holder

옷이야 신체에 필히 걸치고 다니니 잃어버릴 일이 흔치 않지만, 매번 다른 옷에 수납하고 다녀야 하는 지갑은? (나의 경우)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좋은 지갑을 사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개똥철학으로 값비싼 지갑은 거들떠본 적도 없다. 그러다 보니 카드 몇 장과 신분증만 단출하게 들어 있는 지갑은 늘 부메랑처럼 주인 곁으로 돌아왔다. 자연히 다른 물건은 몰라도 지갑은 오래 쓰는 습관을 들였다. 그런데 아직도 그 지갑을 쓰냐는 주변 참견이 들려오던 때쯤, 그런 말들을 조금은 의식한 이유에선지 지갑을 구매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래 쓴 물건의 미학? 따위의 말을 갖다 붙이기도 뭣할 만큼 지갑이 해져있더라.

결심 이후, 긴 시간 나와 함께할 짝꿍이기에 어떤 구매를 할지 꽤 오랫동안 고심했다. 잃어버려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평소 스타일과 달라 너무 뜬금없는 풍의 디자인은 아니면서도, 또 저렴한 가격대에 적당히 힘준 브랜드를 찾다 보니 우선순위로 포터(Yoshida Porter)가 물망에 올랐다. 포터는 단연 어느 복장에나 쉽게 어울리는 브랜드다. 드라마 러브제너레이션에서는 기무라 타쿠야가 맨날 정장에 포터의 브리프케이스를 매고 다니는데, 그걸 보고 나면 누구라도 착장의 제한이 없이 스며드는 포터의 매력을 실감할 것이다.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너무 흔하다는 점이었다. 20, 30대 패션 도감을 만든다면 스트리트 웨어, 아메카지, 시티 보이 스타일을 사랑하는 이들의 풀 착장 세트에 스테레오 타입으로 포함될 것만 같은 이미지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끝내 깜빡이를 켜 둔 채 또 다른 물건은 없을까 기웃거리면서, 틈나면 다시 포터를 들여다보며 고민하기를 수댓번…

결국 쟁쟁한 경쟁자로 꼽히던 포터를 가뿐히 제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 이 시빌리스트(Civilist)의 카드홀더다. 브랜드 로고가 과하지 않고,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고 이런 브랜드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평범한 인상일 거라 예상한다. 내가 가진 옷 중 어떤 걸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느낌이고, 잃어버려도 돌아올 가능성이 크고(실제로 산 지 얼마 안 되어 증명해냈다), 그간의 고민이 무색하게 오랜만에 들린 웝트 숍 온라인 스토어에서 발견하자마자 첫눈에 구매했으니 이건 꽤 만족스러운 구매겠지.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지갑을 구매하기까지보다 고민하는 과정이 길었듯이, 정작 구매한 제품의 소개보다 사족이 길었던 구매기다.


박진우 / 그래픽 디자이너 – 대서울의 길

몇 년 전 알게 된 도시문헌학자이자, 서울답사가인 김시덕 박사의 글을 재밌게 보다가 최근 그가 쓴 책을 또 샀다.

고려에서 조선을 거쳐 일제식민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이 서울은 점점 거대해졌고, 우리는 그 중간의 어떤 시점(비교적 최근)부터 각자의 생활반경에 대한 기억이 있다. 개개인에 따라 그저 별것 아닌 기억일수도 대단한 추억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이전부터 빠르게 개발되고 있던, 남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빠른 서울의 타임라인을 잠깐 살고 있을 뿐이더라.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개발되는 과정에서 김시덕 박사는 과거의 서울을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단서들을 찾아 나선다. 재개발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오래된 가옥과 건물. 간혹 길가의 비석이 주는 과거로부터의 정보, 토지 관련 문서, 오래된 지도 등등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어떻게 변해왔고, 왜 변해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김시덕 박사의 서울 선언 시리즈(?), 서울 선언, 갈등 도시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제목이 대서울의 길이라, 서울에 관련된 이야기뿐일까 오해할 수 있지만, 경기도로 이어지는 이야기도 많이 있다. 그래서 대서울의 길이다.

서울의 영역이 넓어지는 과정에서 강남의 개발과정, 식민지시대 서울의 개발 계획부터 지금, 신도시 관련 비화, 현재 지명의 유래 등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읽고 나면, 매일 걷고, 버스 타고, 차 타는 일상적인 이 ‘길’들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Editor│오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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