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인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속속들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공간이 있다. 오늘 소개할 ‘안철순(ACS)’ 역시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에 불현듯 충무로역 인근 지하에 등장한 문화공간으로 어언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거리두기라는 불운 속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사실은 꾸준히 개최한 공연과 파티가 증명한다. ‘이 시국’에도 발을 빠르게 구르는 ACS, 그들의 원천과 원동력이 무엇일지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ACS의 두 운영자 안도(Ahndo)와 안순철에게 공간 ACS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안도: ACS을 운영하는 안도라고 한다.
안순철: 안도와 함께 ACS을 운영하는 안순철이다.
먼저 공간의 이름이 ACS인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이유가 있나?
안도: 우리 둘 다 성이 안씨다. 그래서 그냥 순철의 가명인 안철순, ACS으로 짓게 됐다.
안순철: 예전부터 이름의 앞뒤를 거꾸로 바꾸어 안철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DJ 시봉새(cbs)로 활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안철순의 초성을 딴 ACS는 ‘아드레날린 쿠팡 서비스’라는 의미의 약자로 변경하여 우리 팀 이름으로 사용 중이다.
또 순철은 새로운 DJ 네임도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조금 언급해줄 수 있나?
안순철: 일단 후보군을 많이 만들었다. 첫 번째는 ‘DJ 그밖에(etc)’라는 이름을 고민했다. 그리고 ‘DJ 박봉곤(가출사건)’. 이것은 괄호 치고 가출사건을 반드시 적어주는 것이 포인트. 또 ‘DJ 쉬리’, ‘DJ 키싱구라미’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
ACS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면?
안도: 일단 우리 둘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와의 교류, 공유, 또 우리가 직접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만난 계기도 궁금하다. 안순철은 이전에 감각의 제국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역시 두 사람이 함께 운영했던 것인가?
안순철: 아니다. 그때는 내가 사장이었고 안도는 알바였다.
안도는 어떻게 감각의 제국에서 일하게 됐나?
안도: 감각의 제국 단골이었다가 스태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했다.
안순철: 매일 같은 청자켓 입고 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순철은 안도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동업까지 하게 됐나?
안순철: 꾸밈이 없어서, 나와 같은 바닥이라는 데 동질감을 느꼈다. 같이 올라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나보다 더 궁핍한 것 같아 함께할 때 큰 에너지가 생길 것 같았다.
안도와 안순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이 있다면?
안도: 인류애와 정신력, 문화에 관한 영향 등 다방면에 영향을 받고 있다.
안순철: 가난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똑같은 위치에서 만나 함께 꿈꾸고 그것을 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다 보니 가난하지만 힘이 되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한 적은 없었나?
안순철: 의견이 맞지 않은 적은 감사하게도 없다. 사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고마움을 느낀다. 또한 우린 장사치가 아니라서 충돌이 없는 것 같다. 사업적인 면보다는 그저 여기서 뜻을 함께 해보려고 생각하니까 의견 충돌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드레날린 쿠팡 서비스’의 디제잉도 유별나더라. 그래서 평소 두 사람은 어떤 음악을 평소에 즐겨 듣는지 궁금했다.
안도: 딱히 음악을 가려듣는 편은 아니다. 요즘은 90년대 뉴에이지를 즐겨 듣고 있다.
안순철: 나는 브베의 음악을 듣는다. 각성이 필요하다 싶으면 인도네시아 게버라던가 하드베이스의 태국 음악을 듣기도 한다. 이상한 음악을 가리지 않고 챙겨 듣는 편. 누군가 남길 괴상하다는 피드백과 별점 테러 등의 악평도 각오하고 그런 음악을 찾아 선곡한다.
인도네시아 게버, 태국의 하드베이스는 국내 언더그라운드 마니아에게도 다소 생소할 음악이다. 이러한 경향을 디깅하는 방법 또한 궁금한데.
안순철: 직접 발품 파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 유튜브에 잘 올라온 덕에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으로 찾아 듣는 편. 또 좋아하는 DJ의 믹스셋을 듣다 보면 내 취향의 곡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ACS에서 열리는 공연과 파티는 어떤 기획 과정을 통해 열리는지?
안도: 아티스트와 DJ를 찾아보고 키워드나 장르를 묶어 행사를 진행한다.
안순철: 또한 행사를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집단이 우리 주변에 많다. 여기서 즐겁게 일 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지향점이 맞아서 함께 일을 벌이고 있다.
ACS의 지향점이라면?
안순철: ‘변태성’이 우리가 주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약간 변태적으로 하드한 음악을 주로 트는 파티나 DJ들. 이를테면 DJ 다영(dayoung)과 DJ 널포(Nullptr)가 함께 진행했던 ‘웨어하드(Wear Hard)’라는 파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변태성을 기준으로 파티를 위한 공간을 대여하기도 하고 우리 역시 그것을 지향하여 아티스트를 찾고 공연을 기획하는 중이다.
안도: 실험적인 시도나 예상치도 못한 선곡을 보이는 뮤지션과 DJ들에게 변태성이 있다고 본다.
안도가 뉴에이지 음악을 즐겨 듣는 것이 의외다. 평소 플레이하는 음악과 정반대라고 생각되는데 혹시 뉴에이지나 앰비언트를 키워드로 행사를 계획한 적도 있나?
안도: 아직은 없다. 다만 뉴에이지 혹은 댄스 음악이 아닌 행사를 개최할 가능성은 있다. 뉴에이지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 음악나 다양한 키워드에 변태성을 지닌 뮤지션과 아티스트가 있다면 언제나 열린 입장이다.
또한 안도는 자작곡도 제작한다. 때마침 오늘 “ILSOO DALDON”이라는 곡이 올라왔다.
안도: 아직 많은 피드백을 받지 않아서 딱히 말할 것이 없다. 그저 항상 진심을 다해서 음악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자전적인 음악들.
두 명이 추는 춤도 봤다. 즉흥적인 막춤이지만 이 또한 창작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작곡과 춤 등 영감을 얻는 원천이 있나?
안순철: 인생의 굴곡에서 모든 것들이 배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는 근래에 만났던 뮤지션, 예를 들면 한받 같은 뮤지션에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또 각자가 향유했던 문화, 커뮤니티에서 스멀스멀 표출된 것이 아닐까.
안도: 순철과 동일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때그때표출하고 싶은 것들 역시 춤이나 내 자작곡에 표현되는 편이다.
감각의 제국 당시의 경험이 지금의 공간 ACS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안순철: 이전 공간을 운영하면서는 큰 갈증을 느꼈다. 그 당시에 나름 선방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대중문화와 언더그라운드를 잘 섞고 싶었는데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갈증을 많이 느꼈고 그 갈증이 지금의 ACS의 동기가 된 것 같다.
이전 사업장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뭔가 지어지다 만 듯한 실내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이전에는 어떤 공간이었나?
안순철: 할머니가 혼자 운영하는 다방이었다.
공간에 그려진 벽화와 입구에 간판이 독특한데 누가 작업했나?
안순철: 벽의 경우는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 서울 컬트(Seoul Cult)에게 의뢰해서 채웠다. 간판은 김윤기 작가가 순수한 마음으로, 여성 분들이 많이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안도: 윤기는 ACS에서 몇 번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마다 남자만 온다고 여자가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의 간판을 만들어줬다.
ACS은 항시 오픈이 아니다. 운영되는 방식에 관해 알려줄 수 있나?
안도: 간단하다. 보통 행사가 있는 주말에 영업한다. 주말에도 행사가 없거나 외부 일정이 있으면 문을 닫는다.
행사가 열리지 않는 평일은 무얼 하나?
안도: 따로 영업하지 않는 평일에는 뮤지션 합주를 위해 열어주고 있다.
각자 다른 일이나 부업이 있는지?
안도: 서로 부업과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중이다. 동대문 사입 관련 일과 택배 물류센터에서 상하차까지 했는데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몸을 덜 쓰는 일을 찾아보고 요양 중이다.
안순철: 나는 망원 무대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또 ‘칼국수 닷컴’이라는 곳에서 면도 삶았다.
‘칼국수 닷컴’은 진짜 칼국수 가게였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고 티셔츠를 제작하는 곳인 줄 알았다.
안순철: 티셔츠를 찍다가 쫓겨났다. 사실 나도 그냥 간판만 보고 들어가서 가게 일부를 조금 쓰겠다며 티셔츠를 제작했던 것이다. 하하.
ACS을 주로 찾는 관객층은 어떠한가?
안순철: 주로 어린 친구들이 자주 오지만 나이로 콕 집어 이야기하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할 줄 아는 친구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심지어 전유성 선생님도 방문해서 즐겁게 놀다 가셨다.
이전 공간인 감각의 제국에서는 케이팝을 주로 틀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ACS이 전개하는 음악과 베이스는 다르지만 두 운영자의 코드를 좋아하는 팬층이 꾸준하게 이어져 ACS을 찾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안순철: 물론 그런 손님들도 있다. 비록 발현된 모습은 다르지만 공통된 코드를 애정해서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ACS의 변태적인 코드를 가볍게 생각했거나 보다 대중적인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마니아적 코드를 어려워 하는 것인가?
안순철: 어렵다기보다는 별로 감흥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다. 이것저것 많이 접하고 자기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는 경험을 해봐야 할 텐데… 그런 것에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
3년 동안 운영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안순철: 코로나가 한창 창궐 중이던 지지난 연말 ‘채널 1969’ 분들께서 진행한 언더그라운드 아카이브라는 서울 소재 문화공간과 함께하는 기획에 참여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기에 한껏 끓어오른 상태에서 기획에 참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전유성 선생님 방문하던 날.
마지막으로 ACS의 향후의 행보를 알려달라.
안순철: ‘퓨처 관광 메들리’라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박사, 타이거 디스코(Tiger Disco), 씨씨(Seasee) 그리고 시장 각설이 분들을 모셔서 진행하는 행사다.
역시 독특한 기획력이다.
안순철: 그래서 돈을 못 버는 것 같다. 하하.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순환이 더 많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ditor│황선웅
Photographer│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