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2년 만에 해제됐다. 온화한 날씨와 함께 바깥을 나서는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진 요즘, VISLA 매거진 일원의 4월 한 달간 소비를 되돌아보는 콘텐츠 ‘Bought It’이 돌아왔다. 패션과 음악, 인테리어까지, 만족감 가득한 그들의 쇼핑썰을 만나보자.
오욱석 / 에디터 – RUSTO x Klasse Wrecks ‘LOGO’ Rug
작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뭔가를 많이 샀다. 가구며 생활용품이며, 그간의 한을 풀 듯 잔뜩 샀는데, 그중에서도 거실에 깔아놓을 러그를 오랜 시간 고심했다. 나에겐 오래전부터 염원하던 러그가 있었는데, 일본의 매장에서만 판매한다는 점, 그리고 복잡한 온라인 구매시스템과 그 부피에 따른 배송 절차가 꽤나 까다로워 쉬이 구매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근 2년 동안은 달에 한 번은 재고가 남았을까 매장의 웹숍을 두리번거렸던 것 같은데, 드디어 때가 왔다. 구매를 결심하고는 해당 브랜드 웹스토어에 문의하기도 하고,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돌리는 등 오만 방정을 다 떨었지만, 역시나 배송이 쉽지 않더라. 결국 현지 구매대행 업체를 물색해 꿈에도 그리던 러그를 구매했다.
아, 근데 이거 하나만 사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여러 가지 브랜드가 내놓는 러그가 눈에 들어오더라. 적당한 가격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면서도 매우 실용적이고 가격 또한 합리적인 러그. 사람들의 이러한 니즈가 많은 브랜드에서 앞 다퉈 러그를 제작하는 이유가 아닐지. 그렇게 이번 달에 집에 새로운 러그를 또 하나 들였다.
클라세 렉스(Klasse Wrecks)라는 홍콩의 전자 음악 레이블이자 그에 기반한 몇 가지 굿즈를 판매하는 브랜드인데, 그 이름만큼 강렬한 컬러 조합이 꽤나 멋지다. 여기에 집 어디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은 적절한 사이즈까지. 꽤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쓸 수 있는 좋은 러그를 만나 이번 달에도 꽤 흡족한 소비를……. 아무튼, 이렇게 평소 데면데면했던 클라세 렉스라는 브랜드에 조금 관심이 생겨 새삼 그 웹숍에 들어가 보거나 디렉터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그렇게 또 몇 가지를 배우고, 이런 게 소비의 좋은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돈 쓰는 일에 대한 합리화를.
박진우 / 그래픽 디자이너 – NALLE WINERY ‘NALLE ZIN’ Cap
오늘은 모자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우리 집이 모자 맛집으로 소문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굉장히 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모자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머리가 얼마나 크기에 이런 말을 하냐고 묻는다면 군대에서 전투모 62가 꽉 꼈다.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 거다 62정도 크기는 수백 명이 있는 훈련소에 보통 세 명 미만으로 존재한다. 희소식이 있다면 나는 짱구라 얼굴 앞면의 면적은 약간 큰 정도고 뒤로의 둘레가 긴 스타일이다. 짱구형 외국인 두상의 확대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하여튼 그리하여 다양한 모자를 접하면 살아왔다.
머리가 큰 사람들은 모자를 살 때 항상 긴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모자가 머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대두들은 직접 써볼 수 있는 오프라인 구매를 선호한다. 그리고 머리에 맞는 모자를 만나면 속으로 환호한다. ‘운명의 모자를 만나버렸네’라고. 그래서 대두들이 모자가 많다. 맞는 모자를 만나면 다시는 못 만날까 하는 불안감에 다 사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제 그런 불안감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대충 얹어지면 쓰고 다니기로 했다. 모자 구매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린 대두 상남자가 된 나는 인터넷에서 편하게 구매하는 사람이 되었다.
소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20대 시절 친구들과 소주자리가 마냥 좋진 않았다. ‘친구도 좋고 알콜도 좋지만 소주는 싫어!’의 마음. 그러한 감도를 유지한 채 살다가 몇 년 전 와인에 심취하여 이제는 와인을 종종 마시며 알콜을 채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굿즈?를 파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와이너리 방문한 사람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그런 거. 왠지 멋이 있었다. 포도 양조에 일생을 바치고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오직 와인만을 탐구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어? 우리 와인이 좀 팔리네? 팬들이 생겼네? 굿즈를 원하네? 팬들을 위해 티셔츠나 모자에 로고나 박아 좀 쟁여놓고 주거나 팔자’의 순서가 참 멋지다. 하지만 그런 굿즈를 갖고는 싶으나 와이너리 투어하러 외국까지 갈 정도의 애호가는 아니기 때문에 ‘와이너리 굿즈(모자)가 있으면 하나 갖고 싶다~’정도의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주 자주 가는 빈티지 숍에 모자가 하나 올라왔는데, 전형적인 미국 아저씨 느낌의 투톤 볼캡이었다. 모자에 ‘NALLE ZIN’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쉽게 의미를 유추하기 어려웠다.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날 와이너리(NALLE WINERY)란 곳의 굿즈였다. ‘ZIN’은 그들의 주력 포도 품종인 ‘진판델(Zinfandel)’을 의미했다. 웹사이트를 가보니 직원들이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더라. 바로 구매했고 운이 좋게도 내 큰 머리에 대충? 잘 맞았다. 이렇게 난 또 운명적인 모자를 하나 맞이했다.
권혁인 / 편집장 – New Balance 990v5
친구가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은 내게 몇 가지 기쁨을 선사한다. 첫 번째, 가게에 들러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 두 번째, 그런 김에 한두 가지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사는 재미. 세 번째, 이왕 외출했으니 가게 근처의 동네를 산책해보는 것. 어느 날씨 좋은 일요일, 근 몇 달간 주말 없이 일하던 내게 하루의 소중한 휴일이 주어졌고, 마침 오전부터 김대현과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별 뜻 없이 그가 차린 편집숍, 삼각지에 자리한 차일드후드홈으로 길을 나섰다. 우연한 만남은 역시 즐겁지 않은가. 제주옥이라는 끝내주는 제주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식사하고 난 뒤 우리는 아늑하고 정성이 군데군데 배어있는, 마치 김대현의 온화하고 꼼꼼한 성품을 닮은 가게, 차일드후드홈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조금씩 그 틈새로 장난을 거는 일.
그날은 하이츠를 운영하는 한재훈 대표의 개인 소장품을 판매하는 작은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고, 진열된 제품 사이로 내 발에 꼭 맞는 신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5만 원이라는 가격 딱지를 붙이고 떡하니 햇볕을 쬐고 있던 뉴발란스를 종이백에 담았다. 내 쇼핑은 보통 이런 식이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무언가를 사는 재미. 갖고 싶은 물건을 모니터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유유히 흘러 다니다가 만나는 쪽이 더 매혹적이다. 브랜드의 평판이나 희귀성 같은 내용들은 뒤편으로 제쳐두자. 새 신발보다는 적당히 때가 탄 게 좋다. 그래야 곧바로 열심히 땅을 밟아줄 수 있으니까. 적당한 날씨, 가벼운 나들이에 어울리는 적당한 가격의 쇼핑. 세상살이는 언제쯤 마음 편할 날이 올까 싶지만, 그래도 함께 밥을 먹을 친구가 있으니 가끔씩은 삶도 꽤 즐거운 것이 아닐까 발견하게 되는 또 한 번의 근사한 오후.
황선웅 / 에디터 – “The Legend of Zelda: Ocarina of Time” Bootleg Vinyl
게임 음악을 쫓아 게임 OST 부틀랙 신(Scene) 주변을 기웃거린지 2년. 결국엔 나도 게임 부틀렉 음반을 수납장에 들이기 시작했다. 그냥 돈 주고 구매하면 됐을 것을 왜 기웃거리기나 했냐고? 허가받지 않은 해적판 음반을 납득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언젠가 정식 발매되지 않겠느냐는 존버의 마인드로 버텼다. 설령 납득이 쉬웠더라도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구매를 고려할 수 없었다. 게임 부틀렉 레코드는 일부 선반 커팅을 제외하곤 음질이 대체로 깔끔 좋은 편이고 포장 패키지 구성, 콘셉트 또한 독특한 것이 많다. 그래서 일부 부틀랙 음반은 게임 음악 수집가들이 아주 환장하는 아이템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이번 달 구매하여 자랑(?)할 음반은 바로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OST 부틀랙 바이닐이다. 최근 타이틀인 “야생의 숨결” 이전까지 젤다 시리즈 중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시간의 오카리나” 삽입곡이 세 장의 LP에 걸쳐 수록됐는데 음질과 컨셉 아트 부클릿 등의 구성품에 아주 만족한 LP다.
“시간의 오카리나” 시리즈 삽입곡은 [Hero of Time]이란 앨범에서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혹은 로파이 편곡 버전의 [Zelda Wave]라는 음반에도 일부 담겨 있지만, 근본의 오리지널 삽입곡만을 갈망하는 팬들에겐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부틀랙은 그러한 팬들의 갈증을 해소할 아이템이 아닐까. 비록 부틀랙이지만 링크가 에포나를 타고 달리는 오프닝 테마부터 엔딩, 그리고 마지막 스태프 크레딧에서 흐르는 음악까지 “시간의 오카리나” 타이틀과 관련된 삽입곡을 이 세 장의 LP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으니.
돈지랄을 꽤 했겠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올렸는데 혹자가 어릴 적 닌텐도 게임을 좀 했었냐고 묻더라. 지난 ‘Bought It’에서도 밝혔듯 내 생애 콘솔 게임기는 최근 구매한 닌텐도 스위치가 최초다. 그러나 젤다 시리즈 삽입곡은 전통처럼 꾸준히 계승되었기 때문에 이 음반엔 “야생의 숨결” 정도만 즐겼더라도 공감할 만한 트랙이 꽤 있다. “야생의 숨결”에서 사당 클리어 시 나오는 효과음이나 요정의 샘, 조라 마을 삽입곡 같은 것들 말이다.
Editor│오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