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힙합 위에 피어난 자동차 문화 : SLAB

Slab Culture의 탄생

서두르지 않는다. 묵직하게 잠식한다. 신경 쓰지 않아도 강렬하다. 휴스턴 힙합 사운드와 슬랩스(Slabs)가 시야에서 교차된다. 이들에게서 최상위 포식자의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거대한 악어가 콘크리트 강을 타고 유유히 내려가는 모습’. 카 페스티벌에 등장하는 슬랩 퍼레이드(Slab Parade)의 첫인상은 과연 압도적이었다. 가슴 울리는 베이스를 등에 업고 도로를 S자로 유영하듯 천천히 행진하는 크로울린 다운(Crawlin Down). “Slow Loud & Banging”을 뜻하는 슬랩(SLAB)은 휴스턴의 독특한 개성을 표출하는 자동차 문화다.

슬랩은 19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핌프 컬처(Pimp culture :자동차를 커스텀 하여 화려하게 꾸미는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오일쇼크로 일자리를 잃은 휴스턴의 흑인 노동자들은 80년대 초반, 크랙 코카인(Crack Cocain)을 판매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성공과 예술적 창의성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슬랩스를 활용한 것이다. 따라서 캐딜락, 링컨, 뷰익 등 고급 브랜드의 대형 세단이 슬랩스로 개조되었으며 이 중 특히, 1971년부터 1985년까지 생산된 캐딜락의 7, 8세대 엘도라도 컨버터블 모델은 초기 슬랩 신을 지배하며 문화 확산을 이끌었다.

마이애미의 ‘동크스(Donks: 초대형 휠을 자유롭게 커스텀 한 차량)’ 또는 캘리포니아의 ‘로라이더 하이드로릭(Low-Rider Hydraulic: 서스펜션 공기압을 이용해 차체를 튕기는 퍼포먼스)’과 비교해 슬랩스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엘보 휠(Elbow wheel)이다. 스왕가스(Swangas)라고도 알려진 이 원뿔 형태의 휠은 슬랩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창문에 운전자의 한쪽 팔이 반쯤 걸친 모습 즉, 팔꿈치가 창밖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모습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1983년, 미국의 제조사 ‘크래거 휠스(Cragar Wheels)’는 로마시대 전차 바퀴를 닮은 이 스포크 림을 캐딜락에 처음 선보였는데, 출시 직후 해당 모델의 인기가 휴스턴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슬랩 확산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크래거는 내구성 결함과 도로에서의 안전 문제로 엘보 휠을 1984년까지 총 2년 동안만 제작하게 되었고, 그 희소성 때문에 90년대에 이르러 가치가 10,000달러까지 치솟으며 ‘83s와 ‘84s는 슬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은 “Dead Man’s Wheels”라고 불렸는데 텍사스 하이웨이(TEXAS highways)에 따르면 ‘83s, 84’s를 소유하기 위해 살인, 절도 등의 행위도 불사를 정도의 인기였다고. 이러한 과열 현상은 2005년, ‘Texan Wire Wheels’가 복제품 생산을 시작하면서 차츰 사그라들었다.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엘보를 구하게 되면서 휴스턴에는 레드라인(Red Line), 슬랩 킹즈(Slab Kingz)와 같은 카 클럽들이 여럿 탄생했고, 슬랩 문화가 대중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의 슬랩은 이 스왕가스를 포함해 다음 4가지 항목에 의거하여 정의된다.

  • Elbows – 30-spoke, con-like rims
  • Fifth wheel – 후면 범퍼의 장식용 spare wheel
  • Candy paint – Kool aid(청량음료 분말) color
  • POP Trunk – Explosive stereo system

SLAB, 휴스턴 힙합의 상징이 되다

슬랩 문화는 휴스턴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년간 심미적 요소만을 위해 개조되어 온 슬랩스가 90년대 초반부터 휴스턴 지역의 랩 문화에 융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DJ Screw’와 ‘S.U.C(Screwed Up Click)’의 멤버들은 “chopped-and-screwed”라는 음악 스타일을 선도하며 90년대 휴스턴 힙합 신을 확립시켜 나갔고, 트렁크에 거대한 앰프와 스피커, 네온사인이 삽입된 슬랩스가 도로에 등장했다. 슬랩 문화가 초기 흑인 노동자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현되었던 것처럼, 휴스턴 래퍼들이 그들의 성공과 개성을 표출하기에 엘보 휠과 화려한 색감 그리고 묵직한 베이스의 슬랩스는 제격이었다.

한편, 힙합 문화의 성장과 맞물려 휴스턴 내에서는 남북 간 지역 갈등이 심화되었다. 앞서 언급된 남부 출신 ‘DJ Screw’의 믹스테이프 [Screw Tapes]가 전국적인 히트를 치면서 함께 참여했던 ‘Fat Pat’, ‘Lil Keke’와 같은 남부 출신 래퍼들이 모두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테이프의 수록곡을 포함해 남부 음악으로 무장한 슬랩스가 휴스턴의 도로를 장악하면서 방아쇠를 당겼고 이에 질세라 북부도 그들을 대표할 수 있고, ‘DJ Screw’에 대적할 수 있는 래퍼 ‘Michael 5000 Watts’를 내세우며 맞대응했다. 두 지역의 대립은 양측의 도난, 차량 파손 등의 불법적인 양상으로까지 번졌으며 슬랩의 화려함으로도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는데, 남부는 캔디 레드(Candy Red), 북부는 캔디 블루(Candy Blue)로 칠해진 슬랩을 탔고, 이는 곧 두 지역의 랩 색깔로 치환되었다.

Paul Wall & Lil’ KeKe – “Ridin 5” (Official Music Video 중)

휴스턴 내 지역감정은 결과적으로 ‘Lil Keke’, ‘Slim Thug’, ‘Paul Wall(DJ Michael이 1997년에 설립한 레이블 Swishahouse의 멤버)’ 등의 래퍼들이 노력한 덕분에 치유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Still Tippin”, “Sittin Sideways”, “Rolling on swangas” 등의 곡이 미국 전역에 스왕가스를 알리는 역할을 했고 슬랩 문화는 휴스턴 힙합의 시각적 요소를 담당하며 직관적인 상징성을 부여했다.

성숙한 시민 문화로 존중받기까지

휴스턴에는 MLK 데이(MLK Day), 슬랩 홀리데이(Slab Holiday)와 같이 크고 작은 카 쇼(Car show)가 매년 열리고 있다. 휴스턴의 이러한 행사는 더는 슬랩을 소유하고 있는 구성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역 사회를 넘어 전국에서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다. 80년대부터 야외 주차장에 모여 서로의 차를 뽐내고, 커뮤니티를 기념해온 슬랩 문화의 관습이 계승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가 처음부터 휴스턴 시민들에게 인정받고 건강한 지역 문화로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마약과 소음, 폭력 등으로 점철되는 8,90년대 슬랩 문화는 경찰의 탄압과 시민들의 반감에 저항하며 방황했다. 그 당시 힙합과 결합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저항의식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그 탓에 이 문화는 지역 사회에서 배척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을 음지의 영역에 그대로 남겨두기에 휴스턴에는 자동차를 사랑하고, 힙합을 사랑하고, 휴스턴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동시에 슬랩 문화 속 구성원들은 인식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실천하기 시작했고 예술적 관점에서 이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며 슬랩 문화는 조금씩 밝아질 수 있었다.

2003년, 슬랩스 오너들이 개설한 rollin84z.com이라는 슬랩 컬처 전용 웹사이트를 시작으로 슬랩 라이다즈 매거진(Slab Ridaz Magazine, 2009) 창간, 텍사스 주 차량 규제(너비 약 2.6m 초과 금지) 내에서의 합법적 튜닝, 카 밋(Car Meet) 후 환경미화 활동 등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구성원들의 노력이 슬랩 문화를 위해 뒷받침되었다. 2013년에는 HMAAC(Houston Museum of African American Culture)의 주도 하에 ‘Houston Slab Parade and Family Festival’이 개최되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의 기틀을 마련했고 나아가 휴스턴의 지역 문화로 성장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뉴욕의 힙합퍼 사이에서 활발했던 그래피티가 그러하듯, 자기표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형성된 이 문화는 진화할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고 줄기를 멀리 뻗는다. 매력적인 문화를 영위하고자 하는 자가 겸비해야 할 자세를 빠짐없이 갖춰가는 듯한 인상. 슬랩에 올라타 천천히 그들의 행진 속으로 흡수되고 싶은 건 나뿐이겠는가.


이미지 출처 | Youtube, Texas Folk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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