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반 스포츠 브랜드의 정식 매장, 혹은 국내에 유통되지 않았던 의류나 운동화를 병행 수입, 판매하던 소위 ‘멀티숍’이라는 의류 매장이 압구정과 신촌, 이대에 등장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2000년대 중반에는 해외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본격적인 인기와 더불어 이를 정식으로 수입하고 유통하는 매장이 생겨남과 동시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국내 여러 편집 스토어의 개념을 세웠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편집 스토어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이전까지의 편집 스토어가 많은 이가 원하는 브랜드나 아이템을 발 빠르게 들여오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근래의 또 다른 흐름은 숍 오너의 취향을 한껏 반영한 소규모 브랜드 그리고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PB 제품을 선보이는, 독립적인 브랜딩을 기반으로 한 편집 스토어가 속속 문을 여는 중이다.
이번 코너를 빌어 소개하는 가스스테이션(GASSTATION), 차일드후드 홈(The Childhood Home), 포스디스(POHS-TIHS)가 바로 그곳으로 이 세 곳의 숍 모두 그들의 감각과 흥미에 맞춘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소개하며, 거리의 색을 더욱 다채롭게 하고 있다. 조금은 지루해진 지금의 패션 마켓에 신선함을 더하고 있는 세 곳의 숍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신용산역 인근 건물 2층에 위치한 작지만 내실 있는 편집 스토어 차일드 후드 홈(The Childhood Home)의 오너 김대현과 함께 그가 운영 중인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차일드후드 홈은 어떤 숍인가?
리빙 제품부터 책, 의류 및 잡화 등을 다루는 라이프 스타일 편집 매장이다.
차일드후드 홈이라는 숍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직역을 하자면 ‘어린 시절의 집’인데, 어린 시절 집안 곳곳에 부모님과 형제의 애정 있던 물건들이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아빠가 좋아하던 식물들, 엄마가 좋아하던 그릇과 컵이라든지, 형들이나 내가 좋아하던 옷과 장난감, 책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물건이 집에 있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다. 이런 추억이 모티브가 되어 매장 이름을 차일드후드 홈으로 지었다.
긴 시간 패션 MD로 일하다 돌연 편집숍을 오픈했다. 매장을 열게 된 계기라면?
군대 전역 후, 11년간 두 회사를 거치며 MD와 바이어 업무를 했다. 사실, MD를 시작한 것도 결국에는 본인의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11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고, 결혼도 했다. 불현듯 정말 하고 싶은 걸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문화에 대한 애정 없이 이러한 숍을 열고, 운영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위문화, 패션에 빠져든 순간을 기억하나.
중학교부터 20대 초반까지 뉴욕에서 지냈는데, 중학생 때 브레이킹 댄스와 팝핀에 빠져 방과 후 연습실에서 친구들과 춤을 추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거기서 뻗어 나온 문화,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숍을 기획하고 구상하는 데 어디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지.
여러 해외 잡지, 서적 및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일본 편집 매장 빔즈(Beams)의 시작도 처음에는 미국의 대학생 방처럼 꾸민 것이 그 시작이었고,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역시 집에 모아둔 빈티지 가구를 전시한 플리마켓을 시작으로 숍까지 운영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우리 집을 봤을 때 이를 그대로 옮겨 매장처럼 꾸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편집 스토어라면, 대부분 특정 장르의 의류를 소개하는 숍으로 알려졌는데, 이제는 그 범위가 많이 넓어진 것 같다. 이런 변화도 하나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소셜미디어가 활발히 운영되고, 소비자 역시 단순한 제품 구매보다는 그 안에 담긴 스토리나 콘텐츠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의 소비는 많이 변화하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인테리어나 삶의 질에 더 신경을 쓰고, 그만큼 소비도 늘어났다. 지금의 상황 속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않을까.
숍에서 취급하는 브랜드, 제품을 소개해달라.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푸에브코(Puebco), 다양한 문구류를 소개하는 펜코(Penco), 국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롬버스 랩(Rhombus Lab), 서적은 VISLA 매거진(VISLA Magazine)를 시작으로 BGM, 이넨 북스(Innen Books), 나이브즈(Nieves)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아웃도어 브랜드 와일드 띵스(Wild Things), 올맨스라이트(Allmansright), 하이커 워크숍(Hiker Workshop). 국내 패션 브랜드로는 그린 신드롬(Green Syndrome), 스페이스바이백(Spacebybaik), 맨프롬이스트(Manfromeast), 믹마일드(Meekmild), 보이롱페이스(Boylongface), 35센트 멥(35 Scent, meb), 랏츠오브피시즈(lotsofpiecesss), 스페이스 & 컴포지션(Space & Composition)이 있으며, 제니아 탈러(Xenia Taler)와 파플라나(Faplana), 캠트레이(Camtray)와 같은 식기 브랜드도 입점해있다.
숍의 로고나 이벤트 포스터, 숍 PB 제품 등 각종 그래픽이 인상적이다. 직접 디자인을 하는가?
PB 브랜드나 이벤트 포스터 경우, 자체적으로 디자인도 하고 그래픽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스토어 로고는 태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브라이트사이드(Brightside)와 국내 그래픽 디자이너 레어버스(Rarebirth)가 도움을 줬다.
다소 작은 입구, 원목을 중심으로 한 집기 등 숍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공간을 구성할 때 어떤 점에 많은 신경을 썼는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매장 가운데에 위치한 원형 테이블이다. 원형 테이블은 집이라는 콘셉트를 표현하기에도, 팝업이나 제품을 소개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신경 썼던 건 내가 긴 시간을 보낼 캐셔 및 작업 공간. 매장 평수의 반이 내 개인공간으로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하루에 반을 상주하는 곳이라 너무 좁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오픈 후 문을 닫기까지, 차일드후드 홈의 일과를 말해 달라.
우선 숍에 출근해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다. 밥을 먹은 뒤 밤새 들어온 온라인 주문을 확인하고 택배를 발송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오픈 전까지의 일정이다. 숍을 오픈하고 나서는 업체 메일링과 신규 상품의 온라인 업데이트, 제품 생산에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진다. 숍 내 제품 디스플레이도 조금씩 바꿔보고, 은근히 할 일이 많다.
본인의 집, 직장과 익숙했던 홍대나 압구정을 벗어난 지역에서 가게 문을 열었다. 숍의 위치로 신용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삼각지와 신용산 부근을 자주 가기도 했었고, 갈 때마다 가볍게 들러 구경할만한 숍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 중앙에 위치해 성수나 혹은 홍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편집 스토어는 보통 1층에 자리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일드후드 홈은 호기롭게 2층에 문을 열었는데.
결국 돈 때문이다. 하하. 근데, 가게를 알아보러 여기저기를 다닐 때 일본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더라. 일본에는 도저히 숍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맨션 구석구석에 숍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숨어있는 가게를 찾아가는 걸 즐기는 이들도 많은 것 같고. 우선 층수보다는 이 지역에 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랜 시간 MD로 일한 경험이 숍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고 있나.
실제로 매우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주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한 회사의 직원과 숍의 주인,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했다. 삶 전반에 생긴 변화라면.
제일 큰 차이는 24시간 뭘 하든 일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숍을 연 이후로 쉰 적이 거의 없다. 퇴근 후 집에 와도 뭘 해야 할지 계속해 고민한다. 밀린 공부를 하는 느낌이랄까.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 외에도 세금 관련 업무 등 사업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일을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 회사는 각자 업무를 진행하는 협업의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전부 담당해야 하니까. 소상공인으로서 많이 배웠다.
숍을 열고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니 비교할 수 있는 표본이 없었던 것? 인테리어 업체에서 비용을 받았을 때도 이게 합당한 금액인지도 모르고. 하하.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잘 넘어갔다. 오히려 숍을 열기로 결정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선택이었으니까. 회사에서 괜찮은 연봉을 받고 쭉 일할 수도 있었는데, 숍을 열면 지금까지의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해야 하지 않나. 당장 들어오는 돈이 끊기고, 오히려 돈을 엄청 써야하는 상황으로 뛰어 들어가는 거였으니 스스로의 결정을 감내해야 했지.
숍을 열기로 결심하고, 오픈하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퇴사한 건 작년 11월 말이다. 회사에는 이미 5개월 전쯤 퇴사를 보고했다. 장소를 알아본 것도 11월쯤이었고, 1월 14일에 차일드후드 홈을 오픈했다. 두 달 만에 부동산 계약과 인테리어를 끝낸 거다. 엄청 빠른 전개라고 볼 수 있지만, 2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고, 나름 계속 개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큰 도움을 줬다.
판매하는 브랜드를 선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이랄 게 있을까?
내가 직접 잘 사용할 것 같은 제품을 위주로 선정하는 편이다. 국내 및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는 신규 브랜드들도 소개하며, 가격적인 면이나 제품으로써 고객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상품을 들여오려 한다.
주로 어떤 이들이 차일드후드 홈을 찾고 있나.
정말 다양한 이들이 방문한다. 커플도 많이 오고, 특히 여성 고객 비중이 남성 고객에 비해 높은 편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이 같이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각자 다른 카테고리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사려는 손님이 많다.
다른 편집 스토어와는 다른, 차일드후드 홈만의 차별점이라면.
진입 장벽을 낮춘 편안한 접근성인 것 같다. 매장에 들어왔을 때 너무 코어한 분위기보다는 일상에서 쉽게 입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더불어 조금은 낯선 브랜드를 제안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편집 스토어가 이미 뭔가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이들만의 놀이터가 되는 게 좀 아쉬웠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러한 문화를 차차 알아갈 수 있는 숍을 완성하고 싶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나, 그간 사무직에서 오래 일한 만큼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글쎄, 사실 MD를 하기 전 1년 정도 세일즈 업무를 했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재밌는 쪽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걸 고객에게 설명할 때 그 반응을 보는 것도 즐겁고, 제품에 관한 피드백을 즉각 받을 수 있어 좋다.
숍 오픈 후 몇 차례의 이벤트를 진행했다. 진행 중인 이벤트가 계획하는 것들이 있다면 알려 달라.
가장 최근에 진행한 에센셜 마켓(Essential Market)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그의 취향이 드러나는 제품들을 판매하는 이벤트로, 첫 번째 판매자로 하이츠 스토어의 한재훈 대표를 초대했다. 주위 반응도 좋았고 차일드후드 홈으로는 새로운 시도였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해보려고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카테고리의 브랜드 팝업 및 북 페어를 해보고 싶다.
차일드후드 홈이 자리한 삼각지, 신용산 부근에 추천할 만한 장소가 또 있다면?
지금 우리 매장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고어 플랜트(Gore Plant). 숍 부근 아프리카 식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음식점으로는 정선 칼국수가 있다. 칼국수도 맛있고, 수육도 잘해서 친구들과 가볍게 한잔 마시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생선구이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대원식당. 할머니가 직접 생선을 구워주시는데, 메뉴가 생선구이 백반과 두루치기 딱 두 개밖에 없다. 집밥을 먹고 싶을 때 제격이다.
앞으로 차일드후드 홈의 행보에 관해 몇 마디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해외에서 온 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꼭 들르고 싶은 매장으로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숍을 오픈하려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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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오욱석
Photographer│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