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레 시작된 무더위에 머릿속이 또 바빠진다. 이 더위를 핑계로 또 무엇을 사야 할지 즐거이 궁리한다. 다행히 돈 쓸 거리와 장소가 넘쳐나니 그리 깊은 고민도 필요 없다. 5월의 막바지를 채우는 필진의 쇼핑 또한 제각각이다. 바뀌어 가는 계절 준비로 정신없이 흘러간 한 달, 어떤 소비가 우리를 즐겁게 했을지 지금 바로 확인해보시라.
권혁인 / 편집장 – Baker Skateboards Hoodie
새것 같은 빳빳한 회색 후드 티가 입고 싶어서 정말 오래간만에 쇼핑몰을 검색한다. 연중행사처럼 옷을 사다 보니 꼭 이렇게 즉흥적으로 쇼핑몰을 둘러보다 보면 과연 내가 입고 싶은 옷은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난제가 꼬리를 물지만, 생각을 멈추고 좀 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몇 가지 머리에 맴도는 웹사이트를 돌아다니기로 한다.
온갖 자리에 그래픽을 박아 넣는 것이 유행인가 보군. 모자에 적힌 글씨 크기는 갈수록 커지는군. 화려한 옷은 되려 사람을 초라해 보이게 하는 것 같군. 기웃거리다 시선이 멈춘 곳은 베이커 스케이트보드(Baker Skateboards)의 기본 로고 후디. 구매에 이르기까지 하는 로고 단 한 개의 힘. 그것은 그래픽이나 실험적인 옷의 디테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적인 것. 스케이트보드를 타건 말건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거추장스럽다. 결국 그렇게 난 2022년의 첫 후디를 무더운 5월, 15분 만에 사버렸다.
한지은 / 에디터 – ‘Dig Dug Digital Orange’ Vintage T-Shirt
같은 옷을 몇 며칠 돌려 입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진 시점으로부터, 그 옷이 그 옷 같은 중고 티셔츠를 사 모으는 것이 하나의 소비패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구매한 것들은 다 이미 누군가의 손을 탄 제품이었는데… 내가 구제를 사는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이 있었다.
- 경제적인 이유에서
- 후줄근하다는 인상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같은 옷만 주구장창 입는 락스타를 표방하는 걸까…)
- 이미 몇 번 입은 듯한 느낌이라 ‘새 옷 샀다고 맨날 그것만 입고 다니네…’라는 식의 비난을 피할 수 있다
- 가끔 연도나 제조국 같은 걸 확인하며 옷 하나 사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양 거창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이런 매력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생활 속 자투리 쇼핑 시간에는 가지각색의 중고 플랫폼 (구제 숍, 당근마켓과 번개장터, 빈티지의 가치를 잘 알고, 값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큐레이팅 숍들, 그런 것들을 직접 저렴한 가격에 찾아보겠다는 포부로 방문하는 eBay 등)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르기를 한참 해도, 구매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데, 아무래도 결국 쇼핑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타이밍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번 달 내가 구매한 품목은 실컷 구제의 매력을 운운해놓고 자랑하기에는 조금 머쓱한 티셔츠 쪼가리다. ‘Dig Dug Digital Orange’라는 문구와 애플 로고를 닮은 오렌지 그래픽이 인상적이어서, 그리고 내 옷장의 물건들과 전혀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듯해, 큰 고민없이 구매한 이 티셔츠는 알고 보니 전자음악 밴드의 앨범을 홍보하는 티셔츠라고….. 검색해보니 음원은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고 스타일에 ‘하드코어’라고 명시되어있는데… 어떤 곡들일까 궁금하면서도 조금은 알기 두려운 마음.. 그래도 혹여나 이들을 아는 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주시길.
황선웅 / 에디터 – Alex Ho – [Move Through It], Mogwaa – [Del Mar], Various – [Milagros Del Ritmo – Obscure Rhythmic Tunes From 1988 -1991], Careless Hands – [When Dreams Slip Through]
이번 ‘Bought It’에서도 어김없이 구매한 바이닐을 소개한다. 요즘 내 구매처가 이베이(ebay)라 로컬 레코드숍을 잘 돌아보지 않는데, 최근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에 필자 취향의 앰비언트, 뉴에이지 장르 음악, 혹은 발레아릭, 엑조틱 풍의 음반이 꽤 입고되었고 월급을 받은 김에 염탐하여 음반을 몇 장 구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에 구매한 음반을 네 장 소개한다. 순서는 장바구니에 넣은 순서.
Alex Ho – [Move Through It]
작년 11월에 ‘뮤직 프롬 메모리(Music From Memory)’에서 디지털로 선 공개된 후 LP로 발매되길 손꼽아 기다렸던 음반이다. 레이블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프리 오더로 주문을 넣을까 했지만, LP가 발매되면 어째선지 클리크에 입고될 것 같아 그냥 무작정 기다렸는데, 역시나 였다. 감미로운 발레아릭 팝 앨범.
Mogwaa – [Del Mar]
모과(Mogwaa)를 평소 발레아레스 제도와 서울의 정신적 거리를 좁힌 아티스트라 생각하여 믿고 듣는 편이다. 특히 이번 [Del Mar]는 제목과 커버아트 테마에 더욱 구미가 당겼다. 커버아트에서 유추할 수 있듯 발레아릭풍의 훵크와 디스코, 레게 트랙을 만나볼 수 있었던 LP.
Various – [Milagros Del Ritmo – Obscure Rhythmic Tunes From 1988 -1991]
앞서 소개한 알렉스 호와 모과까지가 61,000원이었고 추가로 39,000원을 더 주문하면 무료로 배송된다고 해서 10만 원을 채우려고 고른 음반 중 하나. 흥미로운 커버아트에 관심이 갔는데 다른 음악은 잘 기억에 나지 않고, 유독 “Waves (Espanol Mix De Bibi)”가 귀에 걸렸다.
Careless Hands – [When Dreams Slip Through]
이 음반도 무료 배송을 위해 골라본 음반. 배송비 4,000원을 아끼려고 30,000원짜리 바이닐을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인데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정보를 찾아봤거나 들어봤던 음반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너무 충동적이었나라는 생각에 반성도 하지만, 발레아릭과 오리엔탈리즘, 트로피컬까지 다양한 풍의 음악이 담겨 후회하진 않았다. 당장은 자주 듣지 않겠지만…
오욱석 / 에디터 – POHS-TIHS ‘WRECKPACK’ T-Shirt
5월에는 서울의 편집 스토어 세 곳을 인터뷰하고, 이를 기사로 발행했다. 세 곳 모두 올해 오픈했으며, 주인장들 모두 적지 않은 시간 봐왔던 이들이기에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재미있는 쪽이었다. 전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매장에 홀로, 아니면 최대 두 명의 인원으로 운영된다는 점에 독립 편집 스토어라는 말을 갖다 붙였는데, 적절한지 모르겠다.
요즈음 서울 이곳저곳의 핫플레이스를 따라 우당탕탕 생기는, 원래 그곳의 터줏대감인 양 규모만으로 밀어붙이는 편집숍보다는 이렇게 오너의 취향이 빈틈없이 들어찬 조그마한 공간이 훨씬 재미있다. 심지어 그 장소마저 그들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숍 입구에만 가도 그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그저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떼어와 파는 게 아닌 그들만의 것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점도 흥미롭다. 이 정도면 숍 오너가 아닌 큐레이터 & 콘텐츠 제작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진행은 물론, 편집마저도 즐거웠던 인터뷰를 완성할 수 있어, 내 자신에게도 퍽 흡족한 콘텐츠였다. 이런 콘텐츠라면 수백 번도 더 기획해보고 싶다. 뭔가를 사기 좋아하는 사람이니 쇼핑 나간 마음으로 느긋하게 매장을 구경하며, 또 뭔가를 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포스티스(POHS-TIHS)의 티셔츠로 방문하기 이전부터 눈독 들였던 옷이다. VISLA 매거진에서도 숱하게 소개했던 곽경륜(Wreckpack)이 그래픽을 맡았다. 멋진 숍과 아티스트가 선보이는 옷이니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근래 정말 자주 입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구매 후기가 아닌 편집 후기랄까, 기사 홍보 같은 글이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많이 읽어주고, 많이 방문해주길 바라며, 5월 막바지의 ‘Bought It’을 마친다.
Editor│오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