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피스톨즈의 전기를 다룬 TV 시리즈 “Pistol” 이모저모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전기를 다룬 TV 시리즈 “피스톨(Pistol)”이 미국과 영국 몇몇 국가에서 디즈니 플러스(Disney+)와 훌루(Hulu)를 통해 공개되었다. 

“피스톨”은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과 “28일 후 (28 days later)”를 연출한 유명 영화감독 대니 보일(Danny Boyle)이 연출을 맡았고,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기타리스트였던 스티브 존스(Steve Jones)가 집필한 ‘Lonely Boy: Tales From a Sex Pistol’이란 책을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언론 대상 프리미어 시사회 때부터 영국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디즈니+를 통해 공개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최근 디즈니+가 성인용 콘텐츠에도 크게 심취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난해 극장에서 개봉한 빌런 무비 “크루엘라 (Cruella)”에서 영국 펑크록을 상징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를 연상시킬 만큼 디즈니가 ‘너티(Naughty)’한 부분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직 한국 디즈니+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막 작업이 절반 이상은 끝난 상태,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 음악계와 서브컬쳐에 반향을 일으켰던 섹스 피스톨즈의 이야기를 담은 “피스톨”은 충동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술, 담배, 마약, 섹스 등이 얽히고 섥힌 그야말로 ‘펑크’ 그 자체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알아두면 더 재밌을 몇 가지를 짚어보자.


1. 70년대 영국 서브 컬처의 시작

영국 경제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70년대, 노동자 계급 가정의 몰락은 당시 젊은 청년 세대들에게 “미래가 없다(No Future)”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그들의 분노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의 라이프 스타일과 반항적인 거리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패션일 터. 신사의 나라 영국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그야말로 ‘거지’ 같고, 외설적인 패션이 바람이 런던 킹스로드에서부터 불기 시작한다.


2. 펑크의 제왕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과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섹스 피스톨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섹스 피스톨즈의 결성부터 그들의 전성기에는 이들의 손길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피스톨”을 보기 전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 패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명품의 반열에 오른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녀가 지향하고 있는 ‘D.I.Y (Do It Yourself)’ 정신은 ‘펑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요소다. 주류 패션에 반항하고 파격적인 스타일을 주도하며 ‘펑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패션 스타일을 확립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펑크의 대모’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펑크룩이 전부가 아니라, 패션을 통해서 보수적인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가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디자이너로서 패션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바로 말콤 맥라렌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1971년 첼시의 킹스로드에 있던 ‘Let it Rock’이라는 가게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당시의 청년들에게 유명세를 타는 베뉴로 자리 잡는다. 이후 1974년 ‘Sex’로 가게 이름을 바꾸고 포르노그래피 티셔츠, 너덜너덜한 바지, 본디지 룩을 팔며 본격적으로 펑크룩을 알리게 되었다. “피스톨”에서 말콤과 비비안이 섹스 피스톨즈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를 만나는 장소가 그들의 가게 ‘Sex’이며, 스티브 존스가 옷을 훔치다가 말콤에 눈에 띄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말콤 맥라렌은 직접 미국에서 뉴욕 돌스 (New York Dolls)의 매니저와 패션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로서 활동하는데, 섹스 피스톨즈의 투어와 앨범 작업에 걸쳐 관여했고, 1978년 해체하기전까지 섹스 피스톨즈를 이끈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피스톨”에서는 섹스 피스톨즈의 분열은 물론, 이기적이고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예술가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 같으나, 초반부에서 스티브 존스를 위해 재판정에서 대변하는 모습과, 펑크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3.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피스톨”은 결국 뮤지션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들의 음악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의 몇 안 되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는 그들의 히트곡 “Anarchy In The UK”,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조롱하는 문제의 곡 “God Save The Queen” 등이 수록된 앨범이다. “피스톨”에서 에피소드 3과 에피소트 4의 제목은 곡명에서 따오기도 했으며,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려내기도 했다.


4. 실화에 기반하다

당대 최고의 밴드였던 퀸(Queen)을 대신해 ‘빌 그런디 쇼’ 생방송에 출연한 그들은 영국 방송 사상 최초로 ‘Fuck’이라는 단어를 쓰며 큰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리고 템즈강 유람선 공연, 버킹엄 궁전앞에서의 계약서 작성, 미국 투어 등 실제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각색하여 담았다. 당시 TV에서 방영되었던 화면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이것이 다큐멘터리인지 극작품인지 혼란스럽기도한데, 섹스 피스톨즈와 펑크가 갖고 있는 ‘혼돈’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특히 섹스 피스톨즈와 펑크록을 대표하는 인물 시드 비셔스(Sid Vicious)가 존 시나트라(John Sinatra)의 “My Way”를 비꼰 자신만의 버전을 발표한 이야기 그리고 아직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그의 연인 낸시(Nancy)의 죽음까지 다루고 있다. 시드와 낸시에 대해서는 1986년 게리 올드먼(Gary Oldman) 주연의 “시드와 낸시(Sid and Nancy)”에서 다루기도 했던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피스톨”에서는 에피소드 후반부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시드 비셔스의 죽음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그려내지 않고 있다. 


5. 늙지 않는 대니보일

1997년 개봉한 대니보일 감독의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감각적인 화면과 멋진 사운드트랙까지, 지금까지도 젊은 층을 매료시키에 부족함이 없다. 20년 만에 공개된 후속작 “T2:트레인스포팅2” 역시 감각적인 화면과 색채,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은 화면과 사운드 트랙까지 세월이 무색할만큼 감각적이었다. “피스톨”은 “트레인스포팅2”에서 어느 정도 확립된 감각적인 촬영 스타일의 연장선 또는 업그레이드된 대니보일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먼저 화면비율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70년대 당시 텔레비전의 4:3 비율을 이번 작품에서 활용했다. 당시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화면비율이지만, 인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좁은 비율이라는 점에서 몰입도를 높인다.

당시 시대를 표현하기 위한 화면비율 외에도 완벽에 가까운 재현 역시 꼽을 수 있다. 등장인물이 실제로 입었던 옷과 헤어스타일, 지저분한 영국 뒷골목 등 미술적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또 당시에 유행하던 벽지의 패턴과 스티브 존스의 지저분한 아지트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대니보일의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카메라구도는 그의 작품세계 전반적으로 드러나지만, 영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그것이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필름 카메라 질감과 화려한 색채를 보면, 미술적인면을 정말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덧붙여 마약에 찌든 정키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정평이 난 대니보일인 만큼, “피스톨”에서도 자신의 특기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6. 새로운 페르소나

“피스톨”의 주인공 스티브 존스를 맡은 배우 토비 월레스(Toby Wallace)는 2019년 “베이비티스(Babyteeth)”로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상(Marcello Mastroianni Award)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아직까지 큰 역할을 맡지 않은 신인배우인 그는 “피스톨”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해낸다. 섹스 피스톨즈의 프론트맨 쟈니 로튼(Johny Rotton)을 그대로 옮겨놓은 연기를 펼친 배우  앤슨 분(Anson Boon)은 고작 2000년생의 젊은 배우이지만, “피스톨”을 촬영하며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치아를 잃거나, 넘어져 골절을 당했다. 무엇보다 쟈니로튼의 구부정한 자세를 흉내내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웅크린 탓에 지금도 요통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시드 비셔스의 재림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선보인 배우 루이 패트리지(Louis Partridge) 등 이번 “피스톨”에서 대니보일이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굴했다고 볼 수 있다. 말콤 맥라렌을 연기한 토머스 브로디 생스터(Thomas Brodie Sangste)는 기존의 아역의 이미지를 이번 작품을 통해서 벗을 수 있었고,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얼굴을 알린 메이지 윌리엄스(Maisie Williams) 역시 기존의 아역의 느낌을 벗어던지고 펑크 패션의 선두주자였던 조던 무니(Jordan Mooney)를 연기했다. “인셉션(Inception)”, “웨스트월드(Westworld)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했던 배우 탈룰라 라일리(Talulah Riley)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과의 재혼으로 더 알려져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젊은 시절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연기하며 그녀의 배우 커리어 중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7. 그래서 “피스톨”은 뭐?

“피스톨”은 펑크록을 대표하는 섹스 피스톨즈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영화이만, 펑크와 그들을 미화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져감에 따라 영향 받는 젊은 세대들이 자칫 무질서하고 방탕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섹스 피스톨즈라는 밴드의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짧은 활동기간과 멤버들 간의 불화, 형편없는 연주실력, 절도와 마약, 폭력 그리고 시드 비셔스의 죽음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펑크’라는 문화가 지금까지도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의 주류 문화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이 아닐까. 펑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피스톨” 한국 공개 일정을 놓치지 말자.

Pistol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Miya Mizuno (FX), Times Newspapers Ltd, Alamy, Shutterstock, HBO, 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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