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주는 아름다움이 과연 존재할까. ‘잔인함’과 동일시되는 단어 ‘고어(Gore)’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1. 뿔로 들이받는 것과 2. (외부의 충격에 의해 흘러나온) 짙은 피로 정의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어는 관객을 점진적으로 공포로 몰아넣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는 뒤로한 채 썰고, 자르고, 뜯고, 맛보는 극한의 폭력성을 앞세운 하드코어 장르라 할 수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보던 ‘쏘우(Saw, 2004)’를 떠올려 보라.
이제는 꽤 유명한 짤이 돼 버린 고어 영화 등급표다. 보다시피 ‘쏘우’는 진성 고어 팬들 앞에서 애교 수준의 초보 고어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극악무도한 작품이 수두룩하다는 말이다. 검열과 국민 정서라는 울타리에 가로막힌 국내 영화 시장은 여태 고어가 대중 사이로 침투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 흥행 보증 수표 ‘공포’에서 눈을 돌려 신체 절단, 타부, 토 나올 듯한 성적 취미를 건드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래서인지 한국판 고어는 감독이 사비를 털어 만드는 초저예산 영화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공포가 코미디의 탈을 쓰고 조잡함을 선보일 수밖에 없는 한국판 고어의 웃픈 실상이라 하겠다. 한때는 고어가 ‘부서진 마네킹’으로 번역되던 대한민국에서 고어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걷는 일일지도.
사실 바다 건너에는 고어 성애를 정신질환 혹은 단순 신경적 요인이라 보는 견해가 있지만, 어느 쪽도 고어 팬들에게 문화적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 뜨문뜨문하게나마 들려오던 고어 영화 제작 소식도 어느새 뚝 끊겨버린 한국 고어 영화계의 현주소를 되짚으며, 고어 불모지에 꽃핀 ‘한국 고어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도살자(The Butcher, 2007)
사채를 갚지 못한 젊은 부부가 도살장으로 끌려온다. 빚을 지고 음침한 창고로 끌려오는 설정. 너무 익숙한 영화 속 장면 아닌가? 하지만 진짜 공포는 여기서부터다. 가볍게는 손가락 절단부터 강간, 배 가르기 심지어는 눈알 파내기까지. 해외로 스너프 필름(실제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영상)을 팔아넘기는 돼지머리 도살자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고문 행위를 즐기는 사이코패스 중의 사이코패스다. 희생자를 마치 정육점 돼지고기를 다루듯 하는 도살자의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인간성이라고는 저 멀리 날려버린 도살자의 행위에 불편함을 더하는 건 극한으로 치달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그의 장난스러운 질문이다. 10분 간 고문을 버티면 아내와 남편 둘 모두를 살려주겠다는 제안이나 아내를 기발하게 살해할 방법을 이야기하면 살려주겠다는 되도 않는 물음은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에 신빙성을 더하는 것만 같다.
사실 ‘도살자’의 진정한 묘미는 관객과 희생자 부부를 하나로 엮는 카메라 구도에 있다. 희생자 머리와 도살자의 목 그리고 도살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전하는 생생함은 관객을 한층 더 불편한 세계로 인도한다. 귀청을 강타하는 비명은 물론 구역질나는 냄새를 전할 듯 피, 배설물로 가득한 화면은 이것이 진정한 4D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 비록 영화 제작자는 ‘도살자’가 그다지 잔인한 편이 아니라는 말을 남겼지만, ‘수위 조절’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는 한국 영화계에서 진정한 한국판 고어 영화의 탄생을 알렸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2. 씨어터 – 살육극장(The Theater, 2000)
‘도살자’가 한국 고어계의 이단아라면 ’씨어터’는 말썽꾸러기라고나 할까. 박재범 감독이 사비를 털어 제작한 ’씨어터’는 황무지 같은 한국 고어 시장에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씁쓸함을 반영한 초저예산 고어 영화다. 영화 ‘스크림(Scream)’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을 영화관 건물에 가두고 무자비하게 살육한다는 막 나가는 설정으로 스크린에도 오르지 못한 ‘씨어터’는 비디오 버전에서도 무려 20분이 잘려 나간 채 공개됐다. 영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 20분이다. 그렇다고 고어 영화 특유의 무자비함 또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형광등으로 목을 찌르고 그 구멍을 손가락으로 후벼파는 장면이나 목구멍 안으로 소화기를 분출하는 장면 그리고 가장 압권이었던 내장으로 줄넘기하는 장면까지. 비록 눈에 띄게 티 나는 특수 효과일지라도 갖출 건 다 갖춘 한국판 사지절단형 고어물이라 하겠다.
물론, 삼류 비디오 게임을 차용한 장면이나 슬래셔(Slasher) 장르를 쌍팔년도 코미디로 둔갑시킨 어설픈 설정 탓에 아쉬운 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팬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 그러나 부천 국제 영화제 ‘금지구역’ 섹션에서 개봉할 만큼 한국 고어 신(scene)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씨어터’다. 이에 더해 누구나 예상해 볼 법한 유치한 반전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한여름 밤 킬링타임용으로 이보다 제격일 수 있을까.
3.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새 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2000년에는 ‘찍히면 죽는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가위’ 같은 폭력성 짙은 한국 영화가 대거 등장했다. 여러 굵직한 작품들이 앞다투어 네가 낫다 내가 낫다 하는 사이에도 유독 시선을 빼앗는 타이틀이 있었으니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가 바로 그 주인공. 매춘과 토막 살해. 세상 불쾌한 두 단어가 완성한 타이틀이 관람조차 망설이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장르만 따지고 보면 고어라기보다는 오히려 판타지 호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담임 선생의 아이를 임신해 토막 난 여고생이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의 신들린 재봉술 덕에 킬링 머신으로 부활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서사를 세상 진지하게 풀어간다. 담임의 사탄 같은 외모나 흥부가 박타기를 하듯 소녀를 톱질하는 담임 일당의 모습이 고어물 특유의 긴장감을 늦추지만, 오히려 현실성을 완전히 배제한 이러한 구성이 고어라는 생소한 장르와 미묘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기계로 환생한 소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거대한 총은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같은 호러 판타지물에서만 볼 수 있는 마니아적 재미 요소다.
아직도 고어로 향하는 발걸음이 망설여지는가? 그렇다면 떨어지는 현실 감각과 함께 공포의 무게까지 줄어드는 이 영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와 함께 고어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
4. 텔미썸딩(Tell Me Something, 1999)
1999년, 스스로를 하드고어 스릴러라 칭한 패기 넘치는 작품이 한국 영화계에 등장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으며 열악함을 다투던 그간의 고어물과는 달리 한석규, 심은하라는 간판스타를 내세워 흥행까지 거머쥐려한 한국판 상업형 고어물, ‘텔 미 썸딩’. 비록 관객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는 상업 영화의 필연적 운명 탓에 고어 애호가는 받아들이기 힘든 건전한 수위를 택한 것도 사실이지만, 잘려 나간 사체와 흥건한 피로 마지막까지 고어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20세기 마지막 고어물이 ‘텔 미 썸딩’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장윤현 감독은 스릴러와 고어 사이의 애매한 포지션을 뒷받침할 비장의 무기로 탄탄한 서사를 택했다. 의문의 연쇄 토막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와 죽은 이들 모두의 연인이었던 한 여성. 고어 영화 특유의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파고든 ‘텔 미 썸딩’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롤러코스터식 전개로 기존 고어 영화의 처참한 별점 수준을 한참 웃도는 8점(다음 영화 기준)을 기록했다. 제라드 다비드(Gerard David)의 ‘캄비세스 왕의 재판’과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아’ 같은 예술품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아는 이들만 알아챌 수 있는 영화적 장치를 마련한 점 또한 ‘텔 미 썸딩’의 높은 완성도를 증명하고 있다. 억지스럽게 ‘하드고어’를 내건 포스터가 고어 팬들의 심기를 건드리고는 있지만, 어찌 됐든 간에 고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 자체가 고어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철저하게 현실과 타협한 고어물 ‘텔 미 썸딩’은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유료로 시청할 수 있다.
5. 하피(Harpy, 2000)
2000년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나름 기념비적인 해다.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의 흥행에 힘입어 한국형 슬래셔 무비가 태동한 시기 바로 2000년이기 때문. 앞서 언급한 ‘가위’, ‘찍히면 죽는다’도 모두 당시 작품이다. 공포를 힘겹게 욱여넣은 상업형 고어물 사이에서 단연 극악의 평을 독차지한 작품이 있었으니, 라호범 감독의 ‘하피’가 그 영광을 차지했다.
영화동아리에서 삼각관계로 얽힌 인물들과 그 사이에서 자라난 질투심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단순한 전개를 가지지만 코미디인지, 컬트인지, 고어인지 헷갈리게 하는 독특한 내레이션과 음향효과 탓에 좀처럼 긴장감을 유지할 수 없는 어리둥절한 영화가 바로 ‘하피’다. 특히, 담배를 태우는 장면에서 들려오는 “담배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것은 소품일 뿐이다.”라든지, 쇠사슬로 목이 졸리는 장면에서 난데없이 흘러나오는 “이 줄은 사실 플라스틱이다. 따라서 임산부나 노약자가 놀랄 필요는 없지만 이 여자의 연기를 흉내 낼 필요도 없다.”는 내레이션은 ‘하피’가 블랙코미디였나 하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 라호범 감독이 ‘하피’ 이후로 다시는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거나, 배우들이 시사회장을 민망함에 뛰쳐나갔다는 우스갯소리가 돈 점도 십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당시 정점의 미모를 뽐내던 김래원, 이정현을 데리고도 이러한 평이 나왔으니 이쯤 되면 오히려 영화가 궁금해질 지경.
‘하피’가 개봉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흘렀다. ‘병맛’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즘 시대에 ‘하피’를 다시 돌이켜 보면 “경쾌하고 감각적인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영화”라는 포스터 설명이 정말 맞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고어를 컬트로 겨냥한 희대의 오발탄 ‘하피’. 2000년대 한국 고어 영화판의 씁쓸함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를 되새기며, 언젠가 도래할 고어 전성시대를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 ‘하피’는 현재 유튜브(YouTube)를 통해 유로로 감상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