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Artists’는 VISLA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시각예술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6인의 아티스트를 선별,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리즈다. 세 달에 한번 계간지로 펴내는 페이퍼 매거진에 포스터 형식으로 부착할 수 있도록 제공되던 작품과 그들의 배경을 살펴보는 짧은 질의응답은 이들이 더 많은 독자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뜻으로, 이제부터는 VISLA웹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6 Artists’의 주인공은 그들이 나고 자란 도시 김포를 주제로 독립 진(Zine)을 선보인 김포향우회 실크밸리프레스(Silkvalleypress)다. 그간 서울의 위성도시 정도로 인식되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김포시. 그들은 쉬이 지나칠 수 있는 그들의 로컬을 ‘스윗스팟’이라 칭하며, 새로운 시각의 콘텐츠를 완성했다. 과연 실크밸리프레스가 끄집어낸 김포의 매력은 무엇일지 아래의 대화를 통해 확인해보자.
실크밸리프레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더불어 어떤 이유로 본인의 로컬 김포를 조명하게 되었나? 그중에서도 북변동을 주제로 삼은 이유라면?
실크밸리프레스는 경기도 김포시의 모 아파트인 실크밸리아파트에서 지내며 긴 시간을 함께해온 친구들이 모여 의기투합한 크루다. 알친구라는 표현이 가장 직관적이면서 알맞겠다.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최민석(@cross4ire)을 필두로 사진을 공부하는 조선규(@joesunkyu), 음악을 공부하는 손호권(@son.co.kr), 현재는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김하람(@manofgoatt)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18년째 친구 관계를 이어오고 있기도 하고 여전히 실크밸리에 거주 중이다.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 김포에게 느껴지는 오묘한 애착에 대한 대담을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간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의 김포 비하 발언이 트리거가 되어 후드(Hood)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로컬 신(Scene)에 덤벼들게 됐다. 무엇보다 주변의 친구들이 김포에 대해 알아볼 겨를도 없이 고리타분하고 떠나고픈 도시라고 말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애향심을 강요하기보다는 실크밸리프레스가 소개하는 이야기를 마주해본 뒤 좋고 그름을 한번 곱씹어주길 원하는 마음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북변동은 실크밸리아파트의 이웃 동네이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한 동네였기에, 소개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였다. 솔직해지자면 북변동을 무대로 삼는 지금의 투자처로부터 제작비 지원을 전제로 뛰어들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재개발 이슈로 많은 곳이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것대로 실크밸리프레스의 행보에 의미를 더하겠노라 하는 자기 위안 거리로 삼고 있다.
진을 제작하며, 김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너무나도 많기에 한 가지를 집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스윗스팟에는 중심적으로 실리지 않았지만, 간판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북변동에는 몇몇 터줏대감 격의 점포들이 존재한다. 실크밸리프레스를 몇 년 동안이나 궁금하게 만들었던 간판이 있는데, ‘김일체육사’라는 오래된 체육사로, 실제로 중학교 명찰을 달기도 했던 추억이 서린 장소다. 이곳을 오갈 때마다 ‘김일’이라는 인물의 정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왔는데, 비로소 파헤쳐 볼 기회가 온 시점이었다. 어렵사리 준비한 음료를 권하며 주인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 끝의 결론은 ‘김일’이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박치기왕으로 알려진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와는 더욱 관련이 없고, ‘김포 제일’을 줄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김포제일의 체육사였던 화려한 과거가 있었기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점포로는 ‘88마트’가 있다. 88마트는 88년도부터 운영해왔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으나 놀랍게도 88마트는 88년도보다 이전인 1970년대부터 운영해왔고, 88년도에 간판을 새로이 달면서 88마트가 됐을 뿐이라는 사실. 현재는 2000년쯤 김포로 전입하며 가게를 인수한 모녀가 운영하고 있다. 끝으로 ‘성심 한복 부동산’이라는 미스터리한 종목의 점포인데, 외진 골목에 위치하며, 한복을 입은 마네킹이 어쩐지 으슥한 분위기를 조성해 취재에 애를 먹은 장소다. 한복집인지 부동산인지 궁금하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간판을 내걸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둘 다 할 줄 아니까” 실제로 한복 기능사 겸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와 플랫폼으로 인해 물리적 거리의 한계가 희미해진 지금, 실크밸리프레스가 추구하는 로컬의 의미는 무엇인가?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만나도 묘한 소속감 혹은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감정. 결국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 그런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여러 경험에서 김포는 현재 그런 감정을 만들어낼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실크밸리프레스는 ‘그런 감정’을 들게 하는 풍토를 다져나가고자 한다.
국내에서 진 문화는 극소수만이 즐기는 문화인데,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
로컬 신과 진 문화는 무척 이질적이라고 느꼈다. 늘 착해야 하고 바른말만 해야 하고 예쁜 것만 보여줘야 하는 현시대의 로컬에서 필진이 하고픈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진이라는 다소 투박한 매체는 신선한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실크밸리프레스의 타겟층으로 생각하는 10~20대는 절대적으로 거친 것에 이끌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 찍어내는 듯한 로컬 매거진이 나왔다면, 실크밸리프레스의 커리어는 거기서 끝이었을 거다. 실제로도 스윗스팟의 프로토타입 버전은 외부 영향도 많이 받았고, 다소 편향된 느낌이 들었다. 이를 싹 걷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하하.
총 네 명의 구성원이 진을 제작했다고 들었다. 팀, 그리고 각자가 맡은 분야를 소개해달라.
워낙에 적은 일손 탓에 전반적인 원고의 작성과 취재는 모두 평등하게 참여하였고, 진의 형식에서도 보이듯 실크밸리프레스 필진 네 명의 각자의 시선을 담고자 했다. 여러 방면에서 실무적인 경험이 있는 최민석이 전반적인 디렉팅과 디자인 전반을 맡았고, 실크밸리프레스의 프로젝트와 함께 사진 공부를 시작한 조선규가 사진을, 그 외의 부수적인 매니지먼트 및 사운드를 손호권이 맡아줬다. 현재는 영국에서 유학 중인 김하람 역시 서브 디자이너의 역할과 영상 작업을 맡아줬다. 실크밸리프레스가 민주적이고 배려적인 팀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북변동의 ‘스윗스팟’은 어디인가?
이건 팀원 모두가 동의할 텐데, ‘늘봄 치킨’이다. ‘늘봄 닭집’에서 시작해 잘못 단 간판으로 늘봄 치킨이 되어버린 이곳은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부터 주말에 친구 따라서 간 교회에서까지 먹어오던 닭강정 집이다. 하림의 생닭만을 사용하며, 일반적인 고추장 베이스의 닭강정이 아닌 간장과 물엿, 꽈리고추와 시나몬을 베이스로 한 시장식 닭강정이다. 현재는 물가 폭등으로 인해 16,000원(2022.02 기준)까지 가격이 올랐지만, 불과 작년까지 12,000원이면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지역 주민에겐 없어져선 안 될 스윗스팟이라고 생각한다.
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스윗스팟은 야구, 테니스와 같은 구기 종목에서 공이 도구에 맞았을 때 가장 쉽게 멀리 뻗는 지점을 말하는 단어인데, 실크밸리프레스가 도시의 한 지점을 소개하는 부분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말장난을 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고. 네이버에 검색 시 동명의 보이즈러브(BL) 소설이 상단에 나오는데, 이 부분을 간과했다. 실크밸리프레스의 스윗스팟이 더 상단에 노출될 수 있도록 많은 검색 부탁한다. 그리고 스윗스팟에 실린 아트워크는 모두 각 목차를 상징하는 그래픽이다. 각 목차는 줄임말, 언어유희를 섞어 뜯어보는 재미가 있게 설정했다. 이를 시각언어로 나타내어 보통의 로컬 매거진에서 보기 힘든 느낌을 주고자했지.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포맷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기도 했다.
실크밸리프레스의 다음 행보는?
한 가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건, 스윗스팟의 다음 이슈는 텀을 두고 나올 예정이다. 실크밸리프레스의 결성 단계부터 다짐해온 부분이다. 실크밸리프레스는 단지 진을 꾸준히 내고, 출판을 업으로 삼는 팀으로 남고 싶지 않다. 진은 실크밸리프레스의 생각과 출발의 이야기를 담는 첫 번째 그릇이었고, 앞으로 있을 프로젝트는 또 다른 다양한 형태일 것이다. 이는 도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브랜딩 프로젝트일 수도, 지역 행사를 기획하는 형태일 수도 있다. 아직 정해진 부분은 없지만, 지난 2월에 있었던 오프라인 행사에서 흥미로운 교감이 오갔기에, 다음 행보를 기대해주길 부탁한다.
Editor│오욱석
Image│Silkvalleypress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19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