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뮤지션들

우스갯소리로 쓰이는 밈부터 예술의 소재까지, 가면만큼 인간의 속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 있을까?

마스크가 제2의 얼굴이 되어버린 시대에 발맞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7월 31일까지 전시회 ‘가면무도회(Masquerade)’를 선보인다. 원형의 가면무도회장에서 다양한 작가의 탐구와 사유를 담은 총 41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물리적 의미의 가면부터 상징적 의미의 정체성까지, 전시는 ‘가면 vs. 민낯’, ‘이종교배’, ‘그림자’, ‘저항의 가면’ 총 네 가지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가면을 쓰는 것은 장르를 막론하고 뮤지션 사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면에는 특별한 힘이 있기에. 얼굴을 숨기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아티스트의 얼터 에고(Alter Ego)를 만들고, 팬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에도 쓰인다.


버킷헤드 (Buckethead)

아드모어 뮤직 홀(Ardmore Music Hall) 라이브

버킷헤드는 뉴 건즈 앤 로지스(G’N’R)의 기타리스트. 그는 닭에게 길러진 콘셉트의 얼터 에고(Alterego), ‘브리아(Bria)’를 내세운다. 그의 기괴한 모습은 비인간적인 기타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어느날 치킨을 먹고서 버킷을 머리 위에 뒤집어 써 보았다가 ‘버킷헤드’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동료 기타리스트가 그 아이디어를 응원해주어 그 이후로는 버킷과 흰 가면을 착용한다. 이는 공연의 불안감을 없애준다고 한다.


다프트 펑크 (Daft Punk)

롤라팔루자(Lollapalooza) 공연

다프트펑크는 프랑스의 전자음악 듀오로, 얼굴을 가린 디제이를 떠올렸을 때 곧바로 댈 수 있는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1993년부터 대중음악에 큰 족적을 남긴 두 로봇은 2021년 홀연히 해체했다.

그들은 1집 [Homework(1997)]에서는 쓰레기 봉투와 할로윈 마스크 등으로 어설프게 얼굴을 가리다가 2집 [Discovery(2001)]부터는 헬멧을 쓰기 시작했다. “1999년 9월 9일, 프로듀서들이 레코딩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샘플러가 폭발했다. 이 폭발은 그들의 몸에 큰 손상을 입혔고, 결국 그들은 재건 수술을 하여 완전한 로봇으로 거듭난다”라는 스토리텔링과 함께 점점 구체적인 설정을 더해갔다.

‘파 아웃(Far Out)’ 매거진에 따르면 다프트펑크가 28년간 헬멧을 고집한 이유는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Celebrityhood)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대중이 온전히 자신들의 음악에만 초점을 맞추기를 바란 것.


보리스 브레챠 (Boris Brejcha)

서클(Cercle) 셋

보리스 브레챠는 독일의 미니멀 테크노 디제이다.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베네치아의 조커 마스크는 그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그로토(Grotto)’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가면을 쓰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별것 없다고. 200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첫 공연에서 마침 카니발 시즌이어서 가면을 쓰게 되었다는 것.

그는 무대 위에서 가면이 자아내는 특별한 힘에 빠졌다고 한다. 파리의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진행한 서클(Cercle) 영상을 보면 팬들이 똑같은 가면을 얼굴에 쓰거나 손에 쥐고 흔들면서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집회에 참석한 것처럼, 똑같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동질감과 유대감을 준다.


아이 헤이트 모델 (I HATE MODELS)

무관중으로 진행한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의 셋

아이 헤이트 모델은 깡마른 체구로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프랑스의 하드 테크노 디제이다. 그의 이름에 들어가는 ‘Models’는 패션 모델이 아닌 ‘규범(Norms)’을 가리키는 것.

평소 반다나로 코와 입을 가리고 플레잉하는 그는 평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에도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가리는 등, 신상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그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티스트로서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파티보이69 (Partiboi69)

파티보이69는 확고한 콘셉트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호주의 디제이다. 스스로를 ‘디제이, 프로듀서, 케타민[1] 감정사, 패션 구루, 섹스 아이콘’으로 소개하는 그의 정체성은 비뚤어진 선글라스를 쓰고 그린 스크린 앞에서 플레잉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I love Ketamine”이라는 가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의 트랙 “Ketamine Dreams”처럼 언뜻 보면 모든 것이 장난 같지만, 그는 게토 하우스, 마이애미 베이스, 일렉트로, 디트로이트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빠른 비트 안에 잘 녹여낸다.

지나치게 진지한 테크노 신(Scene)의 안티테제로 순수하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파티보이의 페르소나를 만들었다는 파티보이69. 선글라스는 그에게 캐릭터 뒤의 자아를 숨겨주고 둘을 구분해주는 수단이다.


머큐리 200 (Mercury 200)

호어(Hör) 베를린 셋

머큐리 200은 강도 복면을 쓰고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제이 및 프로듀서 듀오다. 2018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완성된 라이브 실력으로 빠르게 팬층을 확보했다. 힙합에 베이스를 둔 날카롭고 야생적인 게토 테크노를 선보이는 그들의 플레잉 영상은 호어(Hör) 베를린 채널에서 조회수 7위를 차지할 정도.

그들은 익명성의 힘을 잘 알고 활용한다. 복면을 쓰는 것은 선입견을 피하고 음악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들고자 하는 실용적인 이유. 물론 갱(Gang) 콘셉트에 맞게 인터폴(Interpol)의 수색영장을 피하기 위함도 있다.


스팅레이 313 (Stingray 313)

보일러룸 쾰른 셋

스팅레이 313은 전설적인 일렉트로 듀오 ‘Drexciya’의 설립자이자 디트로이트 테크노 디제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 항상 바라클라바를 쓴다. 그 너머로 우리는 그의 쌍커풀이 짙게 진 눈만을 볼 수 있을 뿐.

인터뷰에서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며 철저히 익명성을 지키는 스팅레이 313은 신비성(Mystique)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면을 쓴다고 한다. 얼굴이 가려지면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고. 그의 대답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가면무도회’ 전시회의 소개글과도 연결된다.

가면은 이중적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떨어지게 하는 동시에 그 한 겹 막 뒤에 숨음으로써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가면은 이미지다. 철저히 연출된 가짜. 그렇기에 그 뒤에 숨겨진 것은 언제나 궁금하다. 가리지 않았다면 정작 관심도 없었을 맨얼굴. 그러나 숨었기에 찾고 싶은 모습.

‘가면무도회’ 전시회 소개글 중
[1] 본래는 말이나 사람의 마취제로 쓰이나 환각제로 오용되는 마약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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