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버티고개역 근방. 시원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유리창과 철재 외벽이 볕을 받아 일렁이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색감의 벽과 목재 가구 곳곳에 안착한 경쾌한 디자인의 음반과 굿즈들이 반긴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다운템포지만 발랄한 애시드 사운드와 묵직한 베이스 리듬이 심장박동을 가속한다. 햇수로 5년이 된, 소문이 무성한 브랜드 테크노포브(Technophobe)가 올해 드디어 온, 오프라인숍을 열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테크노포브의 디렉터 박성용과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테크노포브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배경 그리고 브랜드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2017년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강가에 앉아있을 때 ‘Technophobe’라는 이름을 갑작스럽게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디제이 마지코(Magico)의 유럽 투어에 동행했을 때다. 당시 함께 놀던 유럽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착안해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빠른 변화에 지쳐있던 것 같다. 커다란 금융 도시에 살면서도 그 친구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에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테크노포브라는 이름으로 티셔츠를 만들었다. 현재 클럽 링의 디렉터이자 디제이인 안트워크(Antwork)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의 의견을 통해 힘을 얻고 2018년에 사업자를 낸 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를 통해 국내외 하우스와 테크노 신(Scene)을 서포트하고 싶었다. 그러다 결국 올해 3월 이곳에 오프라인 숍을 오픈했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베뉴에서 꾸준히 이벤트를 기획해왔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초대된 아티스트에게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것들을 판매하는지 더 뚜렷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브랜드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레코드와 레코드 수납 가방, 국내외 레코드 레이블과 관련된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다. 신을 이끌어가는 디제이들과 리스너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구상한다.
Ph. vinpress
바이닐을 취급하는 샵이나 음악을 매개로 브랜딩을 전개하는 곳들이 많아졌다. 테크노포브의 개성과 고유함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더불어 취급하는 음반들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전반적으로 하우스와 테크노 음반들을 취급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하우스다, 테크노다, 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두 가지가 절묘하게 섞인 음악들을 듣는다. 그 중심에서 개성과 고유함을 가진 프로듀서들의 음반을 계속 찾고 있다. 디제이들이 디깅하듯 우리도 매일 디깅을 하고 있다. 굳이 장르를 나열하자면 테크노, 하우스, 애시드하우스, UK 개러지, 다운템포 위주의 음악들이다.
영국, 독일, 우루과이 그리고 미국에 있는 레이블들의 음반을 수입한다. 특히 유럽에 자리한 레코드 디스트리뷰션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곧 요야쿠(Yoyaku), 바 둠 티시(Ba Dum Tish), 디비에이치(DBH), 원-아이-위트니스(One-Eye-Witness)의 멋진 음악들로 온/오프라인 숍을 채울 예정이다. 해외 디제이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아 그들이 소장하던 중고 레코드도 가져온다.
바이닐스포츠(Vinyl Sports)라는 사운드클라우드 팟캐스트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명인 ‘Technophobesport’도 그렇고 이름이 신선하다. 하필 스포츠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스포츠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우리가 따로 하는 운동이 거의 없다. 그나마 매일 하는 스포츠가 디제이 데크 앞에서 음악 들으며 몇 시간 움직이는 게 다라서 그렇게 지어봤다. 주변의 디제이나 리스너들은 잘 이해할 거다.
한국에 초대하고 싶은 디제이나 프로듀서가 있는가?
정말 많다. 그중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기반으로 한 블랭크 스테이트(Blank State)라는 레이블을 운영 중인 막스 베스트(Max Best)를 초대할 예정이다. 7월 16일 홍대의 모데시(MODECi)에서 그의 라이브를 들어볼 수 있을 거다.
최근 재미있게 들어 추천할 만한 트랙이나 주목하는 레이블이 있는가?
오-웰스(O-Wells)와 그의 레이블 디 오라클(Die Orakel)을 소개하고 싶다. 이 레이블도 프랑크푸르트 기반이다. 올리버 하펜바우어(Oliver Hafenbauer)라는 유능한 디렉터가 운영하는 곳이다. 올리버는 오랜 시간 로버트 존슨 클럽(Robert Johnson Club)의 총괄 디렉터로 일했고 지금은 라디오 팟캐스트인 이오에스 라디오(EOS RADIO)와 디 오라클을 총괄 기획하고 있다. 디 오라클은 전통적인 댄스 레코드를 발매해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에는 늘 실험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들어가 있다. 고유함을 유지하면서 매번 새롭고 독특하고 소장가치 있는 앨범들을 발매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레이블에 속한 아티스트도 모두 댄스 플로어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렙턴트(Reptant), 폴리 체인(Poly Chain), 에드워드(Edward), 로만 플뤼겔(Roman Flügel), 업새미(upsammy) 등 훌륭한 이들이 있지만 최근 가장 눈길이 가는 오-웰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유년시절 애시드 하우스에 심취해서 디제이, 프로듀싱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장르를 넘어서 디트로이트 테크노와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테크노를 절묘하게 조합하는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노력하며 발전해 나가는 젊은 아티스트다. 추천하는 앨범으로는 [Orakel X-File(OAKL-X-99)]과 오손 웰스(Orson Wells)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Pneumatics]가 있다. 조만간 7월 22일에는 디 오라클에서 네 번째로 함께하는 [Moldoom]이 발매된다. 행복감을 주는 몽롱한 일렉트로 트랙으로 주로 구성되고, 섬세하고 애시드한 베이스라인, 러쉬 패드, 온화하게 절제된 디트로이트스러운 코드와 함께 진행되는 트랙도 있다. 물론 우리도 이 음반을 취급할 예정이라 상당히 기대된다.
평소 지향하거나 지양하는 음악 스타일이 궁금하다.
지향하는 음악은 따로 없다.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듣는다. 한 장르만 듣다 보면 귀가 지루해진다. 그래도 주로 하우시한 음악들과 다운템포의 음악들을 많이 듣곤 한다.
온라인숍에서 개인 간 음반거래가 가능하고 각종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다. 이런 게시판 커뮤니티 형태의 기획을 하게 된 동기가 있는지?
다른 장르의 음반들은 중고 거래가 당근마켓에서까지도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장르의 음반들은 아무리 찾아봐도 국내에서 중고 거래가 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이 없다. 또 음반 하나가 큰 금액도 아닌데 해외 간 거래를 해야 해서 귀찮기도 하다. 일단 나와 우리 직원들이 이런 온라인 게시판을 필요로 했다. 나도 이 바이앤셀 게시판에서 구매도 여러번 했다. 이용자가 많아지면 더 흥미로운 공간이 될 것 같다.
미디어 게시판도 단순히 우리가 필요해서 만들어놨다. 그동안 디제이들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짧은 영상도 올리고, 우리가 수입하는 음반들을 미리 공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회원들이 업로드한 몇 곡은 찾아내서 수입하기도 한다.
턴테이블 기어와 가방 등 디제이들을 위한 용품들이 샵에 구비되어 있다. 디제잉을 직접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방문하는가? 주로 어떤 사람들이 가게에 방문하는가?
디제이와 리스너 반반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션에도 관심이 높은 것 같다. 굿즈나 의류를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도 클럽에서 한두 번 마주쳤던 사람들이 많다. 고등학생 친구들도 온다. Y.T.S.T에게 레슨을 받고 있는 친구도 있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구도 있다.
인테리어가 흥미롭다. 밖에서 보면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도넛이라도 내어줄 것 같이 느껴진다. 디제이 테이블을 창 방향으로 배치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지? 또 인테리어할 때 특히 신경 쓴 부분에 대해 소개해달라.
무거운 분위기는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손님들이 편하게 있을 만한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레코드 바와 비스트로를 참고했다. 벽 컬러에 신경을 좀 썼는데, 처음에는 연한 그레이 컬러였다가 연한 그린 컬러와 크림 컬러로 바꿨다. 목표로 했던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더해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사실 인테리어보다는 스피커와 스피커 위치 그리고 턴테이블 데크에 신경을 가장 많이 썼다. 지금 사용하는 스피커도 우리 공간에 비해 출력이 다소 커서 위치를 잡는 게 중요했다. 앰프가 내장된 요크빌(Yorkville)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다. 제대로 볼륨을 키우면 엄청난 바디감을 뽐낸다. 매달 진행하는 인스토어 세션에 오면 이 바디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턴테이블 데크는 원목 소재로 만들었다. 디테일 하나 빼먹지 않으려고 디자인과 제작 일정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써드핸드(Third Hand)라는 회사를 통해 제작했다. 이 회사의 대표님이 하우스 디제이를 오래하신 분이라 이해도도 빠르고 마음 편히 제작을 맡길 수 있었다.
브랜드 디자인 시에는 어떤 이미지를 지향하는가?
의류 같은 경우는 클럽에서 춤추러 놀러 오는 친구들과 디제이들만 생각하고 제작한다. 착용했을 때 편하고 춤추고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게끔. 그래서 오버사이즈 핏의 의류들과 실용적인 굿즈들이 대부분이다.
테크노포브에서 앞으로 예정되어 있거나 계획 중인 이벤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디제이들의 바이닐 셋을 들어볼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체로 달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 이뤄지고 회원들에게는 무료로 음료를 제공한다.
또 테크노포브의 이름을 내건 정식 파티가 아까 이야기했던 7월 16일 모데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브랜드의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될 거다. 지금까지도 몇 번의 파티를 거쳐오긴 했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꾸준히 파티를 기획했지만 국내 신을 소개하는 위주로만 이루어졌다. 이번 파티는 국내 신뿐 아니라 해외 신을 내비치기 위한 공식적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내 디제이로는 아까 이야기했던 독일의 막스 베스트를 메인으로 파티를 꾸밀 예정이다. 낮에는 타코도 먹고 맥주도 마실 수 있는 스몰 카니발 형식을 희망하고 있고 다음날 새벽까지 음악이 이어질 예정이다.
유년시절 음악과 관련해서 영향을 크게 받았던 사건이 있는가? 어떤 계기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가?
어린 시절부터 삼촌과 살면서 많은 음악을 접하고 좋아했다. 그래도 이 자리에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조PD의 1집을 들었을 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스물세네 살쯤에 만든 힙합 앨범이다. 언더그라운드 앨범이었기에 녹음이 다소 거칠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나 소리가 정말 멋있었다. 당시 깊게 매료되어 모든 수록곡의 가사를 다 외웠다.
그때가 몇 살이었는지? 디제이 마지코, 안트워크와 유년시절부터 친분이 있다고 했는데 그 당시부터 함께 음악을 공유하고 어울렸는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전곡이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아 어머니께서 대신 음반을 사다 줬던 기억이 있다. 청소년을 대변하는 가사들이 있고 거친 욕설도 등장했다. 당시 마지코, 안트워크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조PD도 같이 들었던 것 같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멋진 해외 아티스트 이름을 댈 수도 있겠지만. 하하… 어쨌든 내가 전자음악을 즐기게 된 계기는 조PD의 1집이다.
파티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어느 때인가? 또 클럽이나 파티와 관련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예전에는 금요일에 퇴근하고 집에서 자다가 새벽 두세 시쯤 깨서 클럽에 갔다. 알람도 안 맞췄지만 그때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쭉 둘러보다가 갈 곳을 정하면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시간대는 세시 정도인 것 같다. 그때가 마음이 가장 편하다.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러 온 친구들이 그 시간에 가장 많이 모여있다. 그러다가 해 뜨는 걸 보고 해장하고 집 돌아간다. 그러고는 토요일 새벽 두세 시쯤 깨서 다시 클럽으로 향했다. 클럽 미스틱(Mystik)이 있을 때 특히 그런 생활을 반복적으로 했다.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미스틱은 정말 세련된 공간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금 존재하는 그 어떤 클럽보다도 멋진 곳이다. 인테리어가 러프했지만 공간은 컴팩트하고 사운드는 단연코 최고였다.
기억에 남는 클럽 에피소드는 대체로 해외에서 발생했다.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계속 클럽 안에만 있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들어주는 클럽의 컨디션이 뒷받침한다. 우리 또한 손님들이 왔을 때 그들이 꼼짝 못하고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파티를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서울의 디제이들과 클럽 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더불어 본인은 신에서 어떤 태도와 역할을 지향하는가?
체력이 다할 때까지 디제이들과 이 신을 서포팅하고 싶다. 요즘도 매주 어느 베뉴에 가서 누구 음악을 제대로 한번 들어볼까 하며 고민한다. 테크노포브가 모두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공간이면 좋겠다. 아까 이야기했던 고등학생 친구들이 행사 때마다 와서 앉아서 놀다 가고 한다. 이런 친구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또 이들에게 필요한 경험들을 친절하게 제공하는 즐거운 공간이 됐으면 한다. 아, 참고로 그 친구들에게 술은 절대 안 준다.
Technophobe 공식 웹사이트
Technophobe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조아란
사진 │ 강지훈
이미지 제공 │Vin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