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표시 #2 – Baile Funk

“우리들이 싸우는 그것이 끔찍하다고 할지라도, 투사가 되기 위해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 미셸 푸코


O meu Brasil é um país tropical

A terra do funk, a terra do carnaval

o meu Rio de Janeiro é um cartão postal

Mas eu vou falar de um problema nacional

나의 브라질은 열대 국가지.

훵크의 나라, 카니발의 나라.

나의 리우데자네이루는 엽서지,

근데 나는 국가적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어.

– 주니어 에 레오나르도의 “Rap das Armas” 중

이어서 찐득한 된소리에 버무려져 연사되는 훅은 포르투갈어를 몰라도 기관총 소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한 맺힌 도입부와 총소리를 듣는다면 “Rap das Armas”는 총에 관한 민중가요라 단정할 법하다. 그렇다면 곧 울릴 마이애미 베이스(Miami Bass) 드럼은 당신이 얼마나 섣불리 판단했는지 보여줄 거다. 신나는 드럼과 비통한 코러스의 존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뮤직비디오는 한술 더 떠 시체와 트월킹하는 엉덩이를 교차 편집한다. 아무리 안성기의 후원 독촉과 UK 드릴이 고발하는 폭력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강렬한 감정에 무뎌졌더라도, 상반되는 감정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균형을 잡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Rap das Armas”가 이렇게 뒤얽힌 감정들을 동시에 내세우는 이유가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가파른 언덕에 널린 빈민촌 파벨라(Favela)가 세상으로 수출한 장르이자 문화인 바일레 훵크(Baile Funk)는 수많은 모순을 앉고 컸다. 바일레 훵크는 카르텔의 평화와 정부의 폭력 사이에 낀 지역, 파벨라가 느끼는 현기증을 댄스플로어에서 증언한다.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동시에 상류층이 용납할 수 없는 브라질을 표방한다. 집에서는 숭고한 대상이지만 밖에서는 검열의 대상이고, 바일레 훵크가 울려 퍼지는 파벨라의 동네 축제는 무장 경찰이 투입해서 억제하며,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고향에서는 개천의 용일지라도 법 앞에서는 무정부주의를 선동하는 흉악범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바일레 훵크는 수출이 아닌 유출된 문화다. 인터넷과 믹스테잎을 통해 각국의 클럽으로 망명한 바일레 훵크는 이국적인 클럽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타지에서 얻은 성공과 안전의 대가로 파벨라의 증인이 되길 포기했다. 파벨라의 폐쇄적인 문화와 포르투갈어라는 언어 장벽은 바일레 훵크의 문화적 알맹이를 제한했지만, 오늘은 지구 반대편에서 웹진 작가 따위가 감히 브라질의 진흙 속에서 핀 꽃을 둘러싼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예수상이 등진 브라질에서 가장 큰 파벨라

네이버에 리우데자네이루를 검색하면 산 정상에 놓인 거대 예수상이 제일 많이 나올 거다. 예수상이 양팔 벌려 살펴보는 코파카바나의 장대한 부촌과 근사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는 엽서에 나오는 장관에 충실하다. 그런데 네이버에 등재된 리우는 예수상 앞의 경치만 있고, 그 뒤에 자리한 리우는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상이 등진 리우에는 도시에서 가장 큰 파벨라인 호시냐(Rocinha)가 험한 산을 덮는다.

파벨라를 빈민촌으로 번역한 글이 많은데, 무허가 산동네 집성촌이 그나마 정확한 해석이다. 파벨라는 19세기부터 연금 대책 없는 군인, 해방된 노예, 그리고 20세기에 브라질의 산업화에 뛰어들기 위해 도시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시내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고 산에다 직접 주거지를 마련하면서 집결된 빈민촌이다. 무단으로 산에 뚜껑을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없거나 심각하게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도와 하수도는 찾기 힘들고, 동네 전체가 전봇대 하나를 숙주로 삼아 전력을 끌어 쓰는 일이 잦으며, 오토바이조차 들어갈 수 없는 비탈길이 주소지 없는 집들 사이로 퍼져 난맥을 이룬다. 북한산에 구룡마을을 얹힌 듯한 이 동네는 리우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리우에만 파벨라가 1,000개가 넘으며, 리우 시민 5명 중 1명이 파벨라에 사는 심각한 수준이다. 당연히 또렷한 해결책은 없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방치 상태에 놓여 산을 따라 흐르는 집만 매년 늘어 법은 그만큼 멀어졌다.

대로변에서 마약을 정리하고 소총을 들고 있는 CV 카르텔

하지만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공권력의 부재로 파벨라에는 카르텔이 들어와 장악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그들의 지붕 아래에서 살면 괜찮은 케이스다. 카르텔은 최소한의 민심을 유지하기 위해 복지 정책을 내놓고 일자리 창출(?)은 보장해서 실질적으로 파벨라에서 정부보다 하는 일이 많다는 평가다. 카르텔이 장악하지 못한 파벨라에 산다면 특수부대와 카르텔의 시가전이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카르텔’이라는 말에서 ‘갱스터’를 떠올렸다면 큰 오산이다. WIIIC City BD는 최소한 후드 속에 권총을 숨기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CV(Comando Vermelho) 형들은 밀반입한 소총을 들고 대로변에서 릴스를 찍는다. GD를 잡으러 간 미국 경찰은 국도를 타고 사건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해 갱과 싸워 이기지만, ADA(Amigos Dos Amigos)를 잡으러 가는 장갑차는 식용유가 뿌려진 파벨라의 입구에서 미끄러지기만 한다. 갱의 수장이 죽으면 스토리와 트위터에 애도를 표하는 게 전부지만, 카르텔의 보스가 죽으면 도시 하나가 불에 휩싸인다. 갱은 한 도시에서 권총과 필로폰을 움직인다면 카르텔은 FARC에게 바주카포를 공급하고 유럽에 코카인을 컨테이너로 보낸다.

갱이 동네 양아치면 카르텔은 바주카포를 든 강해상이다. 브라질은 그렇다고 카르텔을 잡을 마동석도 없다. 부정부패에 찌든 현지 경찰은 오히려 뒷돈을 받는다. 카르텔과 한패가 되는 유사 경찰은 카르텔과 맞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저 카르텔이 파벨라에서 행사하는 권력을 존중하고 파벨라에 함부로 출동하지 않는 일이 막장 대책처럼 보여도 실은 모두에게 제일 안전한 길이다.


열악한 환경에 산다고 즐거움을 모르겠는가. 파벨라 특성상 시내의 클럽에 쉽게 가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와 흑인(대부분 둘 다 해당)이 모여서 그런지 금요일 밤은 대체로 파벨라 안에서 해결한다. 브라질의 현대 파티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70년대에는 당연히 훵크(Funk)가 최고의 장르였다. 당시에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은 세계적으로 큰 편으로 이례적으로 미국 마이애미와 연결된 노선이 있었다.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라는 문화권을 공유해 정서적으로도 얼추 맞는 마이애미 음악은 브라질에서 반응이 좋았다. 이렇게 들여온 마이애미의 훵크와 소울 음반들은 디제이들의 손에 들어오면서 파벨라에는 훵크 음악이 나오는 댄스 파티, ‘바일레 훵크(Baile Funk)’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7년에 존 트라볼타의 디스코 춤이 세계적으로 대박을 치면서 부자들은 훵크가 아닌 디스코 음반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근데 이미 파벨라에서는 바일레 훵크라는 말이 붙어서 어떤 장르가 나오던 모든 파티를 바일레 훵크라고 불렀다. 훵크라는 말은 그렇게 ‘양놈들의 파티 음악’ 정도가 되었고, 바일레 훵크는 ‘양놈의 파티 음악이 나오는 댄스 파티’를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바일레 훵크가 ‘양놈들의 파티 음악이 나오는 댄스 파티’라는 정의로 굳어진 시대

나아가기 전에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바일레 훵크라는 장르는 없다. 바일레 훵크를 직역하면 ‘훵크 음악이 나오는 파티’정도로 볼 수 있다. 바일레 훵크라는 말은 2000년대 초중반에 파벨라 음악이 독일의 맨 레코딩(Man Recordings)에서 발표한 [Rio Baile Funk Breaks]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의 영향으로, 해외에서 통용되는 오역이다. 브라질에서는 ‘Funk’라 표기하며 ‘훵끼’라 발음하고, 지명과 서브 장르를 따와 앞뒤에 수식어를 붙이는 게 정석이다. 근데 이걸 고치겠다고 필자가 똥고집을 부려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브라질 밖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로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하 해당 장르는 그냥 ‘바일레 훵크’라고 부르고 바일레 훵크가 나오는 로컬 파티는 ‘바일레’라고 부르겠다.


마이애미 베이스의 첫 글로벌 히트곡이자 바일레 훵크의 음악적 뼈대를 다 갖춘 2 Live Crew의 “Throw the D”.

디스코의 화려함은 주로 부촌의 클럽에서 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80년대에 마이애미에서 뜨끈뜨끈하게 갓 구워진 마이애미 베이스 음반들이 브라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강렬한 킥 드럼에 정신을 잃은 파벨라는 마이애미 베이스를 적극 수용하면서 80년대 중반부터 모든 바일레에서 마이애미 베이스는 빠지지 않았다. 스티브 B(Steve B), 트리네어(Trinere), 토니 가르시아(Tony Garcia)의 노래는 바일레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몇 년간 정의를 잃은 훵크와 바일레 훵크라는 용어는 다시 구체적인 장르를 지칭하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둥지를 튼 마이애미 베이스는 첫 난관에 봉착한다. 바로 2 라이브 크루(2 Live Crew)나 티 라 락(T La Rock)와 같은 미국 MC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현지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 디제이들의 해결책은 파벨라가 좋아하는 비트는 유지하되 로컬 MC를 섭외해 포르투갈어 가사를 얹혀 언어장벽을 극복했다. DJ 바테리 브레인(Dj Battery Brain)의 ”808 volt”와 하산(Hassan)의 “Pump Up the Party”처럼 가사가 적거나 없는 트랙을 집중적으로 선곡해 파벨라의 MC들이 노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파벨라에서는 “Volt Mix”로 알려진 바일레 훵크의 선조 “808 Volt”

관객 또한 방관하지 않고 역으로 가사가 없는 구간에 떼창을 하면서 노래에 기여했다. 강남 클럽에서 비트에 맞춰 “아 씨 발 뭐 라 고? 씨 발 섹 스”라고 외치듯 파벨라의 주민들이 가장 좋아한 프리스타일 떼창 소재는 역시 섹스였다. 섹스를 필두로 다른 19금 소재가 모국어로 도마 위에 오르자 바일레 훵크는 파벨라가 포르투갈어로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갖추게 된다.


마이애미 베이스가 현지화되면서 갈팡질팡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젊은 DJ 말보로(DJ Marlboro)라는 청년이 지켜보게 된다. 말보로는 파벨라와 거리가 먼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백인 청년이다. 근데 그는 파벨라에 대한 선입견 없이 미국에서 가져온 마이애미 베이스와 뉴욕 프리스타일(Freestyle) 음반을 들고 파벨라를 들락거리며 베이스 디제이로서 명성을 쌓았다. 사실 마이애미 베이스를 파벨라에 노출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찌라시에 의하면 말보로는 미국에서 600장에서 1,000장 사이의 마이애미 베이스 음반을 브라질로 가져왔다.

바일레 훵크 신(Scene)에서 DJ 말보로의 입지는 레이브(Rave) 문화에서 폴 오컨폴드(Paul Oakenfold)의 입지와 비슷할 정도로 장르의 단군신화를 홀로 썼다고 봐도 무관하다. 솔직히 1세대 바일레 훵크만 궁금하다면 말보로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봐도 충분할 정도의 먼치킨 인물이다.

자신이 가져온 음악을 사랑한 파벨라와 로컬 MC들의 가능성을 확인한 말보로는 마이애미 베이스 레코드를 대거 사와 포르투갈어로 재녹음하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부촌과 파벨라에 모두 발을 걸치던 말보로는 파벨라에서 좋아하는 선정적인 가사는 제거해야 한다는 비즈니스적인 판단을 내리고 전체 이용가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노래들만 뽑았다. 그렇게 DJ 말보로는 1989년에 수년간 훵크로 퉁치던 양키들의 파티 음악 앞에 당당하게 브라질의 이름을 걸고 [Funk Brasil]를 발매한다. 그렇게 브라질만의 훵크, 바일레 훵크가 자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첫 바일레 훵크 앨범으로 인정되는 DJ Marlboro의 1989년 앨범 [Funk Brasil]의 수록곡 “Melô Do Bêbado”

예상대로 [Funk Brasil]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50,000장이 팔릴 정도의 인기. 포르투갈어가 들리는 완제품 마이애미 베이스를 들은 파벨라는 한동안 [Funk Brasil]에 푹 빠졌다. ESTJ 사업가 말보로는 곧장 [Funk Brasil]을 시리즈로 제작해 처음에 소개한 주니어 에 레오나르도 (Júnior e Leonardo), 시디뇨 에 도카 (Cidinho e Doca)와 같은 1세대 MC들을 음반에 담았다. 90년대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바일레 훵크의 역사가 시작한다.

파벨라의 허니패밀리 Cidinho e Doca의 “Rap de Felicidade”

동시대에 다른 ESTJ 사업가들은 [Funk Brasil]가 파벨라에 불어온 열풍을 느낀 뒤 사업 아이디어를 고안한다. 70년대부터 바일레에 사운드 시스템을 대여하며 돈을 쓸어 담은 과라니 2000(Guarani 2000)의 질베르토 과라니(Gilberto Guarani) 대표와 솜 2000(Som 2000)의 호물로 코스타(Rômulo Costa) 대표가 만나 두 사운스 시스템 팀을 합병하기로 의결했다. 당시에 가장 큰 사운드 시스템 팀이였던 두 팀을 합쳐 만든 팀은 바로 전설적인 푸라싸오 2000(Furacão 2000)이다.

푸라싸오 2000은 단지 사운드 시스템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레이블이자 페스티벌이자 파티이면서 공중파 프로그램이면서 이 모든 걸 비디오로 녹화해서 VHS와 DVD로 파는 대기업이다. 훵크 카리오카의 삼성이 되겠다는 포부를 독점으로 보여준 푸라싸오 2000은 과라니 2000과 솜 2000의 음향 시스템을 융합하고 흰색으로 도배한 뒤 브라질의 첫 ‘벽’, 포르투갈어로 빠레다오(Paredão)를 쌓았다. 자본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파티와 방송을 돌리던 푸라싸오 2000은 어느덧 리우 전체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삼바가 파벨라를 벗어나 브라질로 향했던 것처럼, 역사는 또다시 반복됐다.

모든 프로모터의 꿈. 0:28쯤에 Furacão 2000을 대표하는 Paredão가 잠깐 보인다

리우 청년들의 관심을 끌어 파벨라 밖에서 성공을 맛본 훵크 카리오카는 리우 꼰대들의 관심도 끌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꼰대라면 60~80년대 군사 독재정권을 그리워하는 부유한(우리랑 비슷하네?) 백인들. 훵크 MC들이 노래하는 소재를 듣고 경악한 꼰대들은 리우가 슬럼화되는 걸 우려해 곧바로 리우시 측에 훵크 카리오카에 강력히 대응하기를 요구했다. 90년대부터 리우시와 대중매체에서 바일레를 우범지대로 밀어붙였고, 바일레 훵크에 종사하는 훵케이로(Funkeiro)를 범죄자 취급하기 시작했다.

푸라싸오 2000의 삐까뻔쩍한 파티와 다르게 파벨라 주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동네에서 열리는 바일레를 즐겼다. MC들은 자신을 키워주고 데뷔 전부터 챙겨준 파벨라를 잊지 않고 90년대에 유행하던 꼬레도레스(Corredores) 바일레에서 정기적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모슁도 펑크(Punk)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싸운다고 생각하듯, 맞짱과 라인 댄스를 섞은 꼬레도레스를 본 꼰대들은 얼마나 경악했을까? 설상가상으로 앞에서 파벨라 주민들이 섹스와 관련된 가사를 떼창하고 MC는 기관총 소리를 흉내 내는데, 꼰대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할 법하다.

리우의 꼰대들이 보고 경악한 하드코어 라인 댄스

파벨라에서 춤추는 흑인을 보고 ‘야만인의 습격’이라 보도하기 시작한 리우 뉴스를 본 정치인들은 이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경찰을 훵케이로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바일레 훵크가 노래하는 가사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리우시는 1995년에 발표된 “Rap das Armas”를 듣고 총에 관한 언급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Rap das Armas”를 금지했다. 법으로 금지된 첫 바일레 훵크 노래인 “Rap das Armas”는 성과 범죄와 같은 금기된 소재를 다루는 바일레 훵크의 서브 장르, 프로이비다오(Proibidão)의 시발점이 됐다.

리우시와 바일레 훵크 신의 마찰이 가속되면서 1999년에 리우시는 바일레 훵크와 훵케이로들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1년간 청문회는 바일레를 범죄소굴로 그렸다. 청문회의 끝은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제정된 파벨라에게 치명적인 리우시 조례. 2000년부터 모든 바일레는 헌병대가 경호하고,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시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바일레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신에게 가장 치명적인 내용은 바로 ‘범죄를 장려하는’ 바일레 훵크의 금지령.

각국의 빈민촌 모두 비슷하지만, 파벨라의 삶은 유독 호락호락하지 않다. MC들은 이런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노래에 반영하는 것이 바일레 훵크 그리고 새로 생긴 프로이비다오에게는 필수적이다. 톰 조빔(Tom Jobim)이 노래하는 이파네마에서 온 여자는 파벨라에 없다. 이파네마에 흑인은 없다. 파벨라에서 사는 게 방관죄고 파벨라의 삶을 노래하는 게 범죄를 장려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마디로 리우의 상류층은 파벨라가 닥치기를 원했고 정부는 그들의 편을 들었다. 그런데도 파벨라는 닥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성난, 더 시끄러운 바일레 훵크로 돌아온다.


리우시가 바일레 훵크를 잡는 데 분주한 90년대를 보냈다면 파벨라의 로컬 MC와 DJ들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잠시 잃었던 본질을 탈환하고 다시 파벨라로 바일레 훵크의 주도권을 반환하기 위해 파벨라의 바일레 훵크는 두 가지 변화를 겪는다. 우선, 음악이 더 소란스럽고 복잡해진 구조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드럼머신과 샘플러의 보급으로 파티에서 드럼머신으로 비트를 까는 MPC 뮤지션, 삐뽀(Pipo)가 등장하면서 마이애미 베이스를 룹(Loop)으로만 틀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열렸다. 삐뽀들은 다양한 장르에서 샘플을 들고 바일레 훵크의 정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장르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대표적으로 테크노, 테크노 브레가(Techno Brega), 팝, 힙합 정도로 파벨라 밖에서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끌어왔다. 하지만 [Funk Brasil]이후로 장르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샘플은 반대로 파벨라 토종 사운드다.

그 시절 영상은 아니지만, 삐뽀가 기깔나게 바일레 훵크 비트를 연주하는 모습.

서아프리카에서 혈통이 시작되는 아타바크(Atabaque)는 일종의 카포에라 댄스인 마쿨렐레(Maculelê)에서 장단을 깔아주는 북이다. 아래 영상에서 들리는'”쿵-짝짝-쿵쿵짝-쿠쿵-짝-짝-쿵쿵-짝’이 마쿨렐레에서 가장 기본적인 장단이다. 브라질의 흑인 노예들의 후예가 파벨라에 정착하면서 비교적 고립된 환경 속에서 꾸준히 선조들의 유산을 계승할 수 있던 것이다. 파벨라에 산다면 저 아타바크 북소리를 들어봤을 테고, 생각보다 흔한 저 마쿨렐레 장단을 누군가는 샘플할 생각을 했을 거다. 최소한 DJ 루시아노(DJ Luciano)는 그렇게 했다.

오늘날 바일레 훵크에서 들리는 ‘쿵-짝짝-쿵쿵-짝’ 샘플의 시초가 되는 Maculelê 장단

리우 내 모든 파벨라에 있는 디제가 전부 [Funk Brasil]의 성공을 재연하려고 노력할 때 DJ 루시아노는 마쿨렐레에서 영감을 얻어 드럼머신으로 비트를 하나 찍는다. 쿵-따라-짝-짝짝짝. 드라이한 톰톰(Tom-Tom) 샘플로 구성된 굉장히 간단하지만 독특한 드럼 패턴이다. 오늘날 모든 바일레 훵크곡에 등장하며, 들으면 틀림없이 바일레 훵크를 듣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이 룹(Loop)의 이름은 탐보르사오(Tamborzão)다.

DJ Luciano의 Tamborzão 비트가 쓰이는 “Tire a Camisa”. Maculelê 냄새가 진하지?

탐보르사오의 반응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단순한 드럼 패턴인지라 지난 10년간 꽉 찬 하이, 미드, 로우로 바일레를 담당한 선배 “Volt Mix”와 놓고 보면 빈약해 보였다. 사운드 시스템으로 들으면 소리가 너무 얇은 탐보르사오는 셀렉션에서 밀려 파티에서도 자주 듣지 못했다. 루시아노는 낙심하지 않고 꿋꿋하게 탐보르사오 비트를 틀었다. 다른 디제이가 탐보르사오의 역동성에 흥미를 느끼게 되며, DJ와 삐뽀끼리 비트를 돌리면서 각자 이것저것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했다. 루시아노의 고집 끝에 2000년대에 접어들어 거의 모든 바일레 훵크 곡은 DJ 말보로가 10년 전 깔았던 마이애미 베이스 비트에 808 베이스가 추가된 탐보르사오를 받아들였다.

MC Colibri는 2004년에 “아가리 열고 내 사탕 받아, 받아, 받아”를 노래하는 “Bolete” 혹은 “Quer Bolete?”를 발매하고 2006년에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됐다. 의심쩍게 노래의 인기가 좀 식고 증거불충분으로 풀렸다.

탐보르사오로 더 강력해지고, 다양한 샘플로 채도가 높아진 바일레 훵크에 걸맞게 더욱 성난 메시지가 뒤따랐다. 파벨라에 사는 게 원래부터 빡치고 혼란스러웠던 MC들이 2000년대부터는 갑자기 우리가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정부의 탄압으로 더 빡쳤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한 거다. 기왕 불법인 거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뽑은 뜨거운 공연을 선보이고 당당히 학교에 들어가겠다는 힙합 정신을 무장할 것. 아쉽지만 이런 무대 영상과 음원은 법의 레이더망을 피해야 했던 상황이라 오늘날 남은 자료는 거의 없다. 남겨질 증거물이 없던 만큼, MC들은 더 빠꾸없었다고 한다. MC 콜리브리(MC Colibri)의 “Bolete”에서 듣는 “내 사탕(?) 받아, 받아, 받아” 훅부터 그냥 대놓고 카르텔 코만도 베르멜로를 옹호하는 음악까지 바일레 훵크는 이제 파벨라의 삶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일상에 물든 성(Sex)과 폭력을 담는 가사가 이제 포비즘(Fauvism)에 가까운 색채를 뿜었다. 그렇게 경찰이 이런 화난 음악을 노래하는 MC를 잡아갈 때마다 하층민의 적은 정부라는 것이 확고해졌고, 파벨라의 세상을 향한 적대감은 더욱더 분노한 음악을 장려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원체 브라질 전체를 대변할 보편성이 부족했던 바일레 훵크는 이렇게 파벨라만을 위한 강렬한 호소로 전락했다. 2008년에 리우시에서 UPP(Unidade de Polícia Pacificadora)라는 경찰 조직을 설치하면서부터 더욱 악화된다. UPP는 카르텔이 점령하는 파벨라를 되찾기 위한 좋은 취지로 설립되어 SWAT와 육군 사이에 있는 장비를 보급 받았다. 평시에는 UPP를 돌리고, 더 강한 카르텔은 따로 BOPE(Batalhão de Operações Policiais Especiais)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어서 대응했다. 파벨라의 순찰은 중무장한 UPP가 돌고, 신고가 접수되면 대테러부대 BOPE가 나서는 상황이다.

마린처럼 생긴 파벨라의 동네 경찰…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베란다를 터트리겠다는 논리를 따른 UPP와 BOPE는 완전군장을 한 특전사들을 파벨라로 보냈다. 당신이 파벨라의 주민이라고 상상해보자. 집 앞에서 카르텔과 UPP가 아침부터 시가전을 펼친다? 카르텔은 대낮에 AK를 들고 다니지만 최소한 당신의 가족에게 일자리(?)를 주고 주민들에게 이것저것 뿌리면서 잘해준다. 반면에 마린처럼 무장한 UPP와 BOPE는 파벨라에 지분이 1도 없는 그저 총만 쏘는 미치광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벨라는 누구에게 더 화났을까? 설상가상으로 교전 중 아무런 죄가 없는 주민들이 UPP의 손에 죽자 파벨라의 분노는 막을 수 없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물론 카르텔은 바일레와 몇몇 훵케이로들을 후원하고 파벨라에 터를 잡은 게 맞지만, 그래도 파벨라에는 카르텔 조직원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을 리우시가 간과했다. 카르텔이 주는 푼돈을 받고 잡일을 하는 꼬마도 조직원인가? UPP와 BOPE가 파벨라에 들어오면 빨치산 잡듯 밥만 먹여줘도 일단 시민이 아닌 범죄자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을 패는 지팡이지. 중동에서 군사작전을 펼친 미국을 생각해보자. 중동에서 이슬람국가(ISIS)를 좋아하는 주민도 있고 싫어하는 주민도 있지만, 그 누구도 미국이 자기 마을을 드론으로 융단폭격하는 건 싫을 것이다. 파벨라도 마찬가지로, 카르텔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던 간에 파벨라에 들어와 기관총과 탱크로 주민들을 살인하고 겁주는 UPP와 BOPE는 반갑지 않았다. 보렐(Borel) 파벨라에 거주하는 MC 디도(MC Dido)가 파벨라의 입장을 간단명료하게 노래했다. “UPP filha da puta. saí, saí , saí do Borel”. 번역하면…

“UPP 씨발 새끼들아. 보렐에서 나가, 나가, 나가.”

장르도 이제 슬슬 생존의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리우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한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터넷망이 깔리면서 바일레 훵크가 렌선을 타고 망명한 첫 도시는 상파울루다. 지난 몇 년간 신흥 경제 중심지로 떠오른 상파울루에는 이미 돈 냄새가 풀풀 나고 있었다. 여기다 인터넷으로 미국 래퍼들의 호화로운 플랙스를 접하게 된 상파울루 파벨라의 청년들은 리우에서 온 바일레 훵크를 듣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한다. 리우의 전쟁터와는 거리가 먼 상파울루는 MTV 크립스(MTV Cribs)의 블링을 접목해 디스토피아가 아닌 과잉적 유토피아를 노래하는 바일레 훵크를 기획한다. MC 귐(MC Guime)의 Plaque de 100에서 노래하는 시트로엥에 앉아 100을 세는 꿈에서 엿볼 수 있듯이, 훵크를 부촌으로 유입할 수 없다면 부촌을 훵크에 유입하겠다는 포부다. 외제 차와 금발미녀들을 앞세운 ‘허세 훵크’, 훵크 오스텐타사오(Funk ostentação)라는 또다른 중요한 서브 장르가 리우 밖에서 나타났다.

첫 Funk Ostentação 곡으로 인정되는 MC Backdi 와 MC Bio G3의 2008년 싱글 “Bonde da Juju”

오스텐타사오는 곧 인터넷을 타고 상파울루의 파벨라뿐만 아니라 브라질 전국에 널린 파벨라 전체에 울리기 시작한 거다. 매일 현실을 직시하는 바일레 훵크를 접하다 신선한 망상을 선사하는 오스텐타사오는 새로웠고 상파울루에 대한 기대 또한 그만큼 높았다. 무장 경찰과 싸우는 데 에너지 소모가 컸던 리우의 MC들이 신경 쓰지 못한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상파울루 신의 훵케이로들은 더 치밀하게 볼 수 있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터넷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한 신세대는 이제 푸라싸오 2000과 같은 대형 기업을 거치지 않고도 인디 아티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됐다.

이때 브라질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전국의 파벨라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MC 빈라덴(MC Bin Laden)은 2014년에 “Bololo Haha”를 발표했다. 치프키프(Chief Keef)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차트에서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유튜브를 보는 청소년들은 모두 그를 알았다. 곡의 첫 시작은 “내가 악당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 머리는 타운 앤 컨츄리(Town & Country)”. 빈 라덴도 곡의 만화적인 속성을 의식해서 그런지 본인의 텐타시온머리를 럭셔리 잡지에 비유한 걸까? 파벨라의 친구이면서도 모두 함께 떼창하는 오토바이 소리와 웃음소리는 리우가 노래하던 폭력과는 결이 달랐다. 삶을 위한 폭력이 아닌 허세가 섞인 과시를 위한 폭력. 시카고가 애틀란타를 잠깐 넘었듯이, “Bololo Haha”로 상파울루는 리우를 넘었다.

전설적인 브라질의 “Love Sosa”

MC 빈 라덴을 평행세계 치프키프로 소개한 건 상당히 괜찮은 비유 같다. 둘 다 빈민촌에서 자라 어린 나이에 1집으로 신을 도시 밖으로 알렸고, 스타일로도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요즘은 본업으로 게임 방송을 가꾸며 거리에 희생한 유년기를 늦게나마 즐기는 스타들이다. 여담으로 MC 빈 라덴은 근 몇 년간 케이팝에 푹 빠져서 개인 유튜브에 아이돌 뮤비 리액션 영상을 꽤 올린다. 작년에는 블랙핑크의 리사에 빠져 그녀를 위한 구애가 “Lisa”를 공개해 갱스터도 덕질할 수 있다는 걸 밝혔다.

그렇다고 음악을 개그처럼 했던 아티스트들은 절대 아니다. 치프키프나 빈 라덴도 스타일적으로 슬하에 수많은 MC들을 양성했고, 오늘날까지 그들 덕분에 후드, 혹은 파벨라를 대표하고 싶은 꿈나무들은 그들의 스타일을 최소한 한 번쯤은 연구해본다. 상파울루의 경우에는 빈 라덴 이후에 수많은 성공 사례가 있었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MC 조아오(MC João)의 “Baile de Favela”이다. 상파울루 각지에 퍼진 파벨라를 하나하나 호명하며, 뮤비도 노래도 DMX의 “Where the Hood At?”의 에너지를 풍긴다. 파벨라의 존재를 노래하던 바일레 훵크를 수년간 부정한 리우 정부도 비슷한 시기에 바일레 훵크 금지령을 폐지한 것을 알고 들으니, “Baile de Favela”는 파벨라의 존재가 드디어 인정받는 승전곡처럼 들린다. 상류층과 정부가 그들을 부정할지라도, 유튜브에서 “Baile de Favela”를 본 2억 3700만 명은 파벨라를 일일이 호명하는 것을 들었다는 중요한 증언이다.

파벨라가 다시 보인 순간, “Baile de Favela”

유튜브가 아니였다면 바일레 훵크가 국내외에서 이렇게까지 잘 됐을지 의문이다. 상파울루에서 인터넷을 만난 바일레 훵크는 유통과 마케팅 구조만 바뀐 게 아니라 장르의 현재를 정립하는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계기가 된다. 좀 식상한 말인데 컴퓨터와 인터넷을 끼고 자란 바일레 훵크 3세대는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사운드를 하나씩 음악에 접목하며 실험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본 각국의 파티 음악부터 윈도우 메신저 알림음까지 비트에 넣기 시작하면서 바일레 훵크의 장르적 경계는 확장했다. 고립된 파벨라에 끝없는 샘플의 파도가 들어오면서 MC들과 프로듀서들은 정형화된 바일레 훵크를 벗어날 수 있는 탈주선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눈높이에서 촬영된 홈비디오, 에코 코뿔소 빅로고, 윈도우 알람음, 신명나는 무비메이커 특수효과…. 2000년대 향수가 가득한 MC Bill e Bolinho의 “Buffalo Bill”

새로운 자극제를 만난 바일레 훵크 산하에 생긴 서브 장르 중 요즘 강세를 이어가는 대표적인 장르를 뽑자면 라베 훵크(Rave Funk)다. 유럽의 레이브 음악에서 들리는 강렬한 신스에서 영감을 얻어 탐보르사오를 신스로 재해석한 라베 훵크는 파벨라와 부촌의 바일레에서 둘 다 들을 수 있는 순수 파티용 바일레 훵크다. 레이브에서 영감을 받고 훵크곡의 기반이 되는 탐보르사오가 신스로 쓰이면서 4/4박 드럼로 비트를 대신하는 등 장르를 가장 창의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진한 Rave Funk 냄새를 풍기는 MC Madan의 “Baile Funk Virou Rave”

인터넷에서 만든 서브 장르는 사실 디스코드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누군가가 만들었다 싶으면 만들어지는 번식력을 지녀 하나의 글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걸 하이퍼팝(Hyperpop)처럼 모조리 다 묶어서 네오 바일레(Neo Baile)라고 부르는 팬들도 있지만, 제각각의 사운드를 추진하는 아티스트와 컬렉티브마다 확연한 차이가 있다. 붜르(VHOOR)가 이끄는 위어드 바일레(Weird Baile)부터 네일라월드(Neilaworld)와 연을 맺은 트위키페디아(Twikipedia)처럼 현재 바일레 훵크는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작년에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대박을 친 Twikipedia와 Ericdoa의 Senta

해외에서도 디플로를 필두로 바일레 훵크의 변화에 가담한다. 바일레 훵크에서 영감을 받은 디플로의 남미음악 수출 사업부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의 “Rave de Favela”부터 원조 바일레 훵크와 하이퍼팝을 반반 섞어서 만든 애런 카티에(Aaron Cartier)가 만든 [MELHOR CACHORRO]처럼 다양한 시도로 바일레 훵크의 정의를 확장하고 있다.

아직은 영미권처럼 바일레 훵크를 접목한 곡들은 많지는 않지만, 펀치넬로가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한 “imnotgoodatmixing”와 신인 걸그룹 블링블링이 발표한 “G.G.B”를 보아하니 국내 프로듀서들이 바일레 훵크를 알긴 아는 것 같다.

케이팝 기계가 흡수한 바일레 훵크

바일레 훵크의 현시점

국내외로 잘 성장하는 바일레 훵크에 아직 중요한 문제 하나가 남았다. 인터넷을 통해 수면 위로 떠 오른 바일레 훵크는 음악과 함께 수반되는 파벨라의 현실에 대한 해답도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치외법권에 위치한 파벨라는 여전히 쇼타(Xota)라는 강간 문화, 이상화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카르텔과의 애매한 밀월 관계, 어린아이들의 마약 접촉 등 상당히 많다. 바일레 훵크가 일상으로 제시한 문제들을 단순화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솔직히 방금 꺼낸 네 가지 예시 중 단 하나도 당장 논문 하나에 풀기 벅찰 정도로 그 규모가 암담하다. 만약에 파벨라의 문제를 음악에 탓한다면 2000년도 리우 정부와 같은 논리다. 바일레 훵크 문화가 이런 문제들을 미화하고 가속화했을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거리의 폭력은 늘 존재했고, 바일레 훵크는 이런 현실에 대한 증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범죄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바일레 훵크.

파벨라의 어지러운 현실을 읊기 위해 바일레 훵크라는 어지러운 서사가 요구된 것처럼, 어렵게 얽힌 현실을 이제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파벨라의 미래를 구술하는 비전이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한 것 같다. 그걸 일개 피처 작가 따위가 혼자 해결책을 찾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파벨라도 또 이런 문제들을 서서히 잘 풀어나갈 거라는 확신이 조금은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파벨라의 거리와 주민들은 그 어떠한 난관에 맞서도 늘 남녀노소 뭉쳤고 바일레 훵크는 이 단결력에 대한 증인이다. 단지 이번에는 적은 밖이 아닌 안에 있을 뿐, 파벨라는 다시 적을 극복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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