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에 푹 빠진 이들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기획, ‘TOP X Favorites’를 통해 그간 다양한 이들과 물건을 소개해온바.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이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물건을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병국, 인스타그램 계정 @Concept_lee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특정 장르의 물건이 아닌,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전개하는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의 궤적을 오랜 시간 좇았다.
이와 함께 우라하라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베어낸 듯한 스니커 컬렉션과 아이템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 와 다시금 신선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그는 최근 본인이 직접 수집한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 공간, 콘셉트 숍(Concept Shop)을 오픈, 많은 이들이 당대의 아이템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매장을 넘어 뒤편의 창고까지 가득 채워진 컬렉션 중 단 열 가지를 골라내는 일 또한 쉽지 않았을 터. 그가 자신 있게 꺼낸 ‘요망한 번개’가 깃든 아이템을 지금 여기서 공개한다.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광팬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언제부터, 어떻게 수집하기 시작했나.
프라그먼트 디자인을 수집한 지는 올해로 10년 정도 된 것 같다. 20대 초반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는데, 당시 호주 시드니에 있는 서플라이(Supply)라는 숍에서 네이버후드(NEIGHBORHOOD)나 더블탭스(WTAPS), 비즈빔(Visvim) 같은 일본 패션 브랜드를 접했다. 위 브랜드가 프라그먼트 디자인과 자주 협업했기에 자연스레 다양한 협업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일본으로 거처를 옮기니 제품 구매가 더욱 수월해졌고, 그렇게 신제품 발매 때마다 매장을 방문하거나 중고 매장을 돌면서 본격적인 컬렉팅을 시작했다.
현재 운영 중인 콘셉트 숍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사실, 스토어 오픈 이전 이 공간을 꽤 오래전에 계약했다. 2년 전 전 세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불가피하게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이곳에 자리를 마련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때까지의 컬렉션을 모아두는 장소로 활용했지, 이 컬렉션을 판매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튼, 수많은 컬렉션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여오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중복되는 제품이 꽤 많더라. 그런 걸 좀 정리하고, 동시에 내가 모아온 컬렉션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숍을 열었다.
Sophnet x F.C.Real Bristol x Fragment Design x F.I.L x Honeyee 08AW STORM-FIT WARM UP JACKET
제품명만 봐도 알겠지만, 프라그먼트 디자인과 소프넷(Sophnet)과 F.C 레알 브리스톨(F.C. Real Bristol), 허니이(Honeyee)가 협업한 나이키 재킷이다. 2008년에 나온 제품으로 2015년 후지와라 히로시의 라이브 콘서트에서 등판에 사인을 받았다.
오랜 시간 제품을 수집해 온 컬렉터로서 이를 판매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따랐을 것 같다.
물론 많이 아깝지. 그래도 지금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업이 제품을 구하고, 판매하는 일이기에 그런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숍을 잘 운영하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Fragment Design x Nike Sichuan Panda Court Traditions
이 나이키 스니커도 2008년 발매됐다. 중국 쓰촨 대지진이 일어난 해인데, 그 여파로 판다가 정말 많이 죽었다더라. 이를 기리기 위해 후지와라 히로시가 나이키 코트(Nike Court) 모델을 판다의 색인 검은색, 흰색 두 종으로 제작했다. 신발과 함께 판다 버전 베어브릭(BE@RBRICK) 70%를 패키징해 발매했고, 모든 판매 수익을 지진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했다고 들었다. 나이트 마켓에서 후지와라 히로시를 만났을 때 의미가 있는 제품에 사인을 받고 싶어 직접 가져갔다.
숍에서 판매하는 제품, 그리고 소장하는 제품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나눴는지.
우선 후지와라 히로시를 직접 만나 사인을 받은 제품은 당연히 판매 물품에서 제외했다. 하하. 그리고 이제는 구하지 못하는 샘플 제품이나 비매품도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지금도 계속 나오는 제품이나 직접 셀렉한 빈티지 아이템을 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2000년대 우라하라에 관련한 아이템이 많은데, 그 당시를 추억하는 특별한 이유라면?
학창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세 살 터울 형과 같은 학원에 다녔는데, 언젠가 그 형이 리바이스(Levi’s) 엔진 셋업에 나이키 에어 줌 세이즈믹(Nike Air Zoom Seismic)을 신고, 손목에는 세이코 에어 프로(Seiko Air Pro)를 차고 왔다. 당시 그런 신발이나 시계가 있는 줄 상상이나 했겠나. 그렇게 옷이나 신발에 빠지게 되면서 그 형이랑 같이 맨날 일본 패션 잡지 사서 보고 그랬다. 하하. 그러면서 마스터피스(Masterpiece)나 헥틱(Hectic),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 같은 일본 브랜드도 알게 됐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시간이 지났건 말건 아직도 그 옛날의 브랜드, 아이템에 관한 애착이 크다.
Nike Dunk Low x Fragment Design / Polka Dot
이 스니커는 폴카 도트 디자인을 적용한 나이키 덩크 모델로 동일 패턴의 에어 포스 1 모델도 함께 발매됐다. 내가 폴카 도트 패턴을 좋아해서 이것 말고도 새 제품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이 신발에 사인 받을 때 기억이 너무 좋아서 오래도록 추억하기 위해 사인펜과 사진까지 남겨 놨다.
이 정도의 열정이라면, 후지와라 히로시를 대면한 경험 또한 있을 것 같은데.
워낙 프라그먼트 디자인을 좋아했기에, 후지와라 히로시가 라이브하는 콘서트도 매번 갔다. 그 현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지. 워낙 유명인사라서 브랜드 디렉터부터, 셀러브리티 등 정말 많은 사람이 모이더라. 콘서트가 끝나고 그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지와라 히로시에게 인사했다. 그 이후 빠짐 없이 콘서트에 갔던 것 같다. 후지와라 히로시, 그리고 일본 브랜드 디렉터가 주최하는 나이트 마켓에 가서 후지와라 히로시가 직접 출품한 제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UNIFORM EXPERIMENT X LEICA D-LUX 5
이 카메라는 2011년 200개 한정으로 발매된 제품이다. 발매 전부터 너무 사고싶었지만, 당시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 결국 온라인을 통해 구입했다. 현재로써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보다 떨어지는 화질이지만, 라이카와 유니폼 익스페리먼트, 프라그먼트 디자인이 모인 협업 제품이고, 제품 곳곳에 브랜드 각인이 되어있어 보기만 해도 멋진 제품이라 오랫동안 소장할 예정이다.
이전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협업이 스트리트웨어나 스니커를 주축으로 이뤄졌다면, 지금은 루이비통(Louis Vuitton)이나 불가리(Bvlgari) 등의 럭셔리, 하이엔드 패션으로 옮겨지는 추세다. 오랜 시간 프라그먼트 디자인을 수집해 온 입장에서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예전 프라그먼트 디자인이 발산했던 언더그라운드의 감성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돈만 있다면야 팬심으로 모든 협업 제품을 구매하고 싶지만, 정식 발매 가격이 너무 비싸고, 일반인이 살 수 없을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은 아이템도 많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다양한 시도도 좋지만, 너무 트렌디한 인물이나 브랜드와의 협업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Sophnet. x Fragment Design x Honeyee.com Letterman Jacket
꽤 오래전에 발매한 레터맨 재킷으로 소프넷과 프라그먼트 디자인, 허니이닷컴이 공동으로 제작했다. 총 100장만 발매했는데, 그중 두 장을 구했지. 왼쪽 팔뚝 부분을 보면 각각 85번과 95번이 넘버링되어 있다. 이것 역시 구매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과 품을 들여 애착이 간다.
그렇다면, 프라그먼트 디자인과의 협업에서 가장 좋은 시너지를 보이는 브랜드는 무엇인지.
내 눈에 익은 브랜드와의 협업이 아닐까? 이전 언더커버(UNDERCOVER)와의 협업이나 네이버후드, 더블탭스 같은 브랜드. 그런 게 내 취향과도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버튼(Burton)의 이디엄(Idiom)이나 베이스 컨트롤(Base Control) 등 후지와라 히로시가 참여한 특별한 프로젝트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라면?
당장 떠오르는 건 베이스 컨트롤?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에 로고도 굉장히 단순했지만, 그 조합이 정말 좋았다. 여러 브랜드와 많은 협업을 진행했을 때 특히 멋이 나는 브랜드였지. 가격도 합리적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꾸준히 찾고 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구하기가 쉽지 않다.
Supreme x Fragment Design x Nike Air Zoom All Court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인 슈프림(Supreme)과 함께한 나이키 에어 줌 올코트 모델이다. 여기에도 아웃솔에 사인을 받았다. 앞으로 또 이런 스니커가 나올 것 같지 않아 오래도록 소장 중이다.
본인이 느끼는 프라그먼트 디자인 의류의 매력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후지와라 히로시는 프라그먼트 디자인 설립 이전부터 일본 서브컬처 신(Scene)에 무수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의 조언으로 시작된 브랜드도 정말 많은데, 때문에 정말 맣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히, 대부분의 협업 제품을 한정판으로 발매했기에 더욱 광적으로 수집했다. 일본, 그리고 전 세계 내로라하는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또 그 옷을 입고 브랜드 스토어에 갔을 때 알아봐 주는 느낌도 정말 좋았지. 나에게는 그런 복합적인 요소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주로 어떤 방법을 통해 물건을 수집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일본 야후 옥션이나 구매 대행을 통해 주로 구입했다. 일본에서는 오프라인 중고 매장, 그리고 정식 발매 날짜에 직접 스토어에 방문해 구매했지. 병적으로 프라그먼트 디자인을 수집하다 보니까 본토의 마니아와도 교류하고, 그렇게 다양한 방면으로 계속해 수집했다.
Nike HTM 2 Run Boot High Sample
이건 HTM 2 런 부츠 하이 모델로 양산되기 전의 샘플 제품이다. 해외 셀러에게 어렵게 구매했고, 이 제품이 한국에서 만들어져 스니커 내부를 보면 ‘Made in Korea’가 새겨져 있다.
수집품 중 가장 어렵게 구한 아이템이 있다면.
후지와라 히로시,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 마크 파커(Mark Parker)의 프로젝트 ‘HTM’을 통해 발매한 나이키 HTM 런 부츠(Nike HTM Run Boot)다. 내 기억으로는 전 세계 677족 한정으로 발매했는데, 그중에서도 샘플 제품을 구매했다. 엄청 어렵게 구한 아이템이라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 중 이것만큼 희귀한 제품은 없다.
Fujiwara Hiroshi HForce Nike Air Presto figure
이 제품은 2000년대에 후지와라 히로시가 연 이벤트에서 비매품으로 나눠준 제품으로 알고 있다. 히로시가 여러 브랜드를 전개했고, 진행한 협업도 많기에 나에게도 생소한 제품이 수없이 많다. 이 피규어도 마찬가지였다. 잡지와 웹상에서도 정보가 굉장히 한정적이다. 일본 거주 당시 나와 같은 히로시 팬을 알게 되었고, 종종 사적으로 만났는데, 그때 알고 지낸 일본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고, 비매품이라는 점에 충분한 희소성을 느꼈다. 이렇게 또 컬렉션에 후지와라 히로시 관련 물건을 채웠다.
현재 일본 내 후지와라 히로시의 위상은 어떤가?
아무래도 그가 정말 활발히 활동하던 90년대, 2000년대 초반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지금 전 세계에서 패션 브랜드가 쏟아지듯 나오고 있으니까.
sacai x fragment design x Converse Chuck Taylor All Star
사카이(sacai)와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컨버스 척 테일러 올스타 스니커다. 지금은 사라진 파리의 유명 편집 스토어 꼴레뜨(Colette)에서 극소량 발매했고, 덕분에 발매 이후 가격이 높게 뛰었다. 블랙과 화이트, 두 컬러로 나왔는데, 원래는 화이트 컬러를 정말 가지고 싶었다. 해외에서 가끔 매물이 나오지만, 새 제품 그대로 판매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 스니커 역시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계속해 가지고 있으려 한다.
극소량 한정판부터 비매품까지 쉬이 볼 수 없는 아이템이 가득한데, 아직까지 구매하지 못한 꿈의 프라그먼트 디자인 아이템이 있을까.
너무 오랜 시간, 많은 아이템을 선보인 브랜드이기에 아직까지도 구하고 싶은 아이템은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2002년 발매한 나이키 에어 포스 1 HTM(Nike Air Force 1 HTM)이다. 지금은 금액도 만만치 않고, 웬만하면 내 사이즈의 신품을 사고 싶은데, 매물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고.
Visvim Kiefer X KaiKai Kiki X Fragment Design
일본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타카시(Takashi Murakami)의 아트워크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와 프라그먼트 디자인이 협력한 비즈빔 키퍼 하이(Visvim Kiefer Hi) 협업 스니커다. 총 330족을 발매했는데, 이건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스니커, 즉 1번이 넘버링된 모델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작은 사이즈지만, 워낙 소량 발매하기도 했고, 또 넘버링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우리가 또 1번, 7번, 100번 이런 작은 디테일에 미치지 않나. 하하.
마지막으로 콘셉트 숍의 향후 계획을 알려줄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제품, 그리고 새로운 제품을 계속 찾아 매장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 찬 편집숍으로 꾸려가고 싶다. 추후에는 숍 이름으로 티셔츠나 몇 가지 굿즈를 제작해 판매해볼 생각도 있다. 앞으로의 움직임을 기대해 달라.
Editor│오욱석
Photographer│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