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쾌감을 선사하는 빈티지 편집숍, Chemical Sports

천정부지 치솟는 물가에 우리네 주머니 사정이 야속한 허영심을 미처 좇아오지 못할 때, 그때만큼 서글플 수 있을까. 현시점 이 미묘한 기류를 가장 잘 파악한 시장이 있다면 단연 ‘프리미엄 빈티지’일 것이다. 어느 해부터인가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 이세이미야케(Issey Miyake)를 중심으로 한 일본풍의 무채색 프리미엄 빈티지가 물밀듯 들어오더니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도쿄의 어느 거리에서나 볼법한 은둔형 멋쟁이 스타일이 소위 ‘힙스터’의 표본으로 굳어지던 2019년, 또 하나의 프리미엄 빈티지 숍 ‘케미컬 스포츠(Chemical Sports)’는 스포티-캐주얼 스타일을 표방하며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구상 존재하는 온갖 스포츠 팀의 유니폼만큼이나 형형색색 발칙한 셀렉션은 분명 화학적 ‘High’의 쾌감을 선물하는 듯하다. 거리에서 약 대신 빈티지를 판매하는 케미컬 스포츠의 운영자 “Internet Freaky Dealers” 이해석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전문은 하단에서 확인해 보자.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한다.

김상원과 함께 케미컬 스포츠, 키무상가스(kimusangas)를 운영하는 이해석이다.

케미컬 스포츠가 어떤 숍인지 소개해달라.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조합한 이름의 의미도 궁금한데. 

처음에는 ‘High&Sports’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하이(High) 브랜드와 웨어러블한(Sporty) 의류를 선보이겠다는 의미였지. 그러다 러시아가 올림픽에서 어떻게 도핑을 시도했는지에 관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카로스(Icarus)”를 보게 됐는데, 여기서 화학적인(Chemical) ‘High’를 떠올린 거다.

“Internet Freaky Dealers”라고 본인들을 칭하고 있다. 이 이상한 숍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상원이를 처음 만났다. 둘 다 옷을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꼭 브랜드든 뭐든 같이 해보자고 항상 얘기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사진학과, 상원이는 간호학과에 다니게 됐는데 내가 먼저 자퇴하고 상원이도 꼬셨다. 귀가 얇은 친구인데도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막상 브랜드를 시작하려니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세컨드핸드 숍부터 시작하게 됐다.

프로필에는 원래 “Chemical Sports / High & Sports / Reasonable Freaky Dealers”라고 적어뒀다. 넷플릭스 시리즈 “탑 보이(Top Boy)”에 나오는 마약상들을 보면서 케미컬 스포츠의 콘셉트를 떠올렸는데, 길거리에서 약을 파는 마약상들과 빈티지 의류를 파는 우리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느끼하지 않고 쿨한 느낌이 좋았다.

두 사람이 각각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사실 내가 군대에서 만난 동생 한 명을 더 데려와서 세 명이서 한 팀으로 움직인다. 케미컬 스포츠와 별개로 키무상가스도 시작했다. 포지션 분류를 하자면 내가 큰 방향을 짜고 셋의 결속을 다지는 반면, 상원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디자인을 담당한다. 동생은 실무를 아주 잘하는 실장님 느낌?


케미컬 스포츠를 처음 시작한 2019년, 당시는 꼼데가르송, 이세이미야케, Y-3 등 차분한 일본 풍의 프리미엄 빈티지가 열풍이었고 그래서인지 케미컬 스포츠의 컬러가 더 눈에 띄었다. 화려한 컬러를 바탕으로 한 스포티한 스타일을 지향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체대 입시 출신이라 학창 시절에는 매일 축구만 하고 살았다. 그때부터 스포티한 옷을 너무 좋아했고 이걸 어떻게 멋있게 입을 수 없을까 항상 고민했다. 케미컬 스포츠를 시작하기 전부터 빈티지 쇼핑을 즐겨 했는데, 돈이 없으니 빈티지가 최고더라. 그래서 빈티지 숍들을 광적으로 많이 탐색했다.

물론, 2019년 당시 빈티지 트렌드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세컨드핸드 숍이 몇 개 없기도 했고, 내 사업 구상을 주변에 얘기하면 우리 스타일이 사업적으로 되겠냐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번개장나 중고나라를 통해 독특하고 상태 좋은 중고 상품을 구하려는 수요가 분명 있었고, 그래서 유니크한 빈티지 아이템을 찾는 젊은 층이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세계적으로 환경적 이슈도 대두되는 만큼 초반에 잘 자리만 잡는다면 세컨드핸드 시장 자체가 오래갈 것 같기도 했고.

사실 스포티한 의류를 계속해서 많이 팔고 싶었지만 숍을 운영하다보니 여성 고객들이 많아져 그 수요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포티한 의류를 줄이는 대신 톡톡 튀는 케미컬 스포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케미컬 스포츠가 제품을 셀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케미컬 스포츠스러운가’를 중점에 두고 요즘 트렌드를 살핀다. 예를 들어, 뉴진스가 하입됐을 때 뉴진스 의상 중에 케미컬스러운 아이템을 가져오는 식이다.

최근에는 03~06년도 아디다스 제품들을 셀렉해오고 있다. 특히 모자에 퍼가 달린 숏패딩은 지금 Y2K 트렌드랑도 맞고 케미컬 스포츠에 섞여도 자연스러운 느낌인 것 같다.

화려한 색감, 디테일의 옷에 비해 오직 누끼 사진으로만 업로드하는 인스타그램 피드나 제품명에 브랜드 이름만을 명시한 걸 보면 ‘깔끔함’에 굉장한 공을 들이는 것 같다. 실제 두 운영자의 스타일은 어떤가.

누구나 처음 시작이 그렇듯, 자본과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 그래서 그 상황에서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게 뭘지 고민하던 중에 ‘깔끔하게 만들고 비워내는 것’은 돈, 경험이 없어도 가능한 일 같더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깨끗한 공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셀렉하는 옷 자체가 색상이나 디자인 면에서 튀는 편이라 배경은 최대한 깔끔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딱 눈에 걸릴 것 같았거든. 우리 스타일이 녹아다기보다 경험을 통해 깔끔하게 보여주는 걸 더 선호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또 몇 년을 진행해 보니 고객분들도 질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더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케미컬 스포츠에서 자체 제작한 상품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지금까지도 유머를 바탕으로 제작한 머천다이즈를 판매하고 있고, 특히 처음 발매한 ‘Dr. Mary Jane’ 쿠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애초에 내 브랜드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무언가 만들어서 팔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티셔츠를 만들었는데 막상 완성하고 나니 ‘빈티지 숍에서 파는 티셔츠를 누가 살까’ 싶더라. 개연성도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디자인도 너무 유치해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친한 형한테 가서 고민을 털어놓으니 정말 냉정하게 우리가 만든 티셔츠는 아무 메리트가 없다고 하더라. 대신 지나가는 말로 “티셔츠에 솜을 넣어 쿠션을 만든다든가, 좀 더 재밌는 생각을 해봐”라고 해줬다. 여기에 꽂힌 거다. 그래서 다음날 정말 솜을 사서 쿠션을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괜찮더라. 최소한 사람들 기억에는 남겠다 싶었지. 이렇게 ‘Dr. Mary Jane’ 쿠션이 탄생했다. 그 형한테는 정말 감사하다.

빈티지 숍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이런 아이템을 제작하는 동기는 뭔지.

케미컬스포츠라고 하면 연상되는 특유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빈티지 숍 자체를 브랜딩해보고 싶었던 거지.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템을 제작하게 됐는데 역시 쉬운 게 하나 없었다. 아이디어를 실물화시키는 데 항상 난관이 따른다. 요즘 브랜드나 숍을 정말 잘 운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오프라인 숍을 열 생각도 있나.

내년에 한남동 근방에 오프라인 숍을 오픈할 계획이다. 우리 2, 30대 대부분이 아직은 지갑 사정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지 않나. 옷을 정말 좋아하지만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걸 안다. 그런 대다수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싶다. 말 그대로 건질 게 많은 오프라인 숍인 거지. 빈티지를 쇼핑하는 고객 입장에서 최고의 카타르시스는 “건졌다!” 아닌가. 근처를 지날 때 건질 물건이 있나 둘러보게 되는 그런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실제 스포츠를 즐기는지, 좋아하는 팀이 있다면?

실제로 축구 광이다. 15년째 FC바르셀로나(FC Barcelona)의 팬이기도 하다.

곧 월드컵이 열린다. 무엇을 입고 한국 팀을 응원할 예정인가.

케미컬 스포츠의 겨울 아우터를 골라 입고 한국을 응원해 보련다.

Chemical Sports 인스타그램 계정
Chemical Sports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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