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빈티지의 랜드마크 동묘, 광장시장, 홍대부터 각종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까지, 2022년 대한민국 패션 시장은 세컨드 핸즈라는 큰 흐름에 몸을 맡겼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옷 바람으로 모르는 이의 착장을 확인해가며 물건을 넘겨줄 정도로 빈티지 거래가 쉬워진 요즘이지만, 최저가 혹은 국내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희귀 아이템을 영접하기 위해 빈티지 마니아들이 여전히 몸담는 곳이 있다면 단연 온라인 구제 쇼핑의 메카, 이베이(ebay)가 아닐까.
월드컵 개막이라는 좋은 구실도 생겼겠다, 이베이 속 숨은 보물을 탐구하는 ‘ebay everyday’가 4년하고도 10개월 만에 돌아왔다. 다소 부리나케 복귀한 감이 없지 않지만, 현 한국 축구에 신물이 난 사람일지라도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 시즌에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법이니 만큼 그간 이베이를 떠돌며 수집한 유쾌한 월드컵 아이템을 소개하려 한다. 맥도날드(McDonald’s)와 함께한 1994 미국 월드컵부터 다시 한번 속는 셈 치고 “대한민국”을 외칠 이들을 위한 2002년 영광의 아이템까지. 각설하고 지금 바로 만나보자.
1986 Mexico World Cup Radio Cap
스포티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면 바로 ‘착모’가 아닐까. 응원 문화에서 모자는 단순 스타일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엠블럼을 통한 로열티를 증명함과 동시에 같은 색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관중들 속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하니 말이다. 월드컵 같은 큰 규모의 대회일 수록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는 유쾌한 모자들이 난무하지 않나.
가장 먼저 소개할 아이템 역시 그중 하나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기념해 출시된 ‘Radio Cap’이다. 멕시코 월드컵의 대표 엠블럼이기도 한 축구공 양쪽에 지구본 자수를 새긴 사각 패치 옆으로 라디오 전파 수신기를 부착하고, 챙 양쪽 끝으로 알 수 없는 구멍을 낸 독특한 실루엣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각 패치가 라디오 몸체라고 상상해 보면 모자에 붙여진 이름도 그다지 수상해 보이지 않는다. 불행히도 해당 캡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는 점이 아쉽지만, 사각 패널과 패치 그리고 전파 수신기가 이루어내는 어이없이 귀여운 비주얼이 모든 걸 설득하는 녀석.
1994 USA World Cup McDonald’s Team Ireland Cap / Pinstripe Cap / Championship Happy Meal & Recalled Bag England
캡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기 전에 시간을 거슬러 94년 월드컵으로 되돌아가 보자.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월드컵을 열심히 챙겨 본 축구팬이라면 단연 독일전 벼락같이 터진 홍명보의 중거리 골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진성 빈티지 헌터라면 당시 월드컵 개최국이 미국이란 사실에 조금 더 구미가 당길 터. ‘풋볼(Football)’이 축구가 아닌 미식축구로 통용되는 나라에서의 월드컵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 맥도날드와 코카콜라(Coca-Cola)가 발 벗고 나섰으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한껏 담은 모자 컬렉션 역시 연이어 발매됐다. 한정판 캡 컬렉터들에게는 분명 천금같은 기회. 짙은 녹색과 맥도날드의 샛노란 로고가 미친 조화를 이루는 아일랜드 팀 캡부터 맥도날드 직원 유니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핀 스트라이프 캡, 번외로 축구공 모양의 비치볼, 물통과 집게, 미니 파우치로 구성된 해피밀 세트까지. 94년 월드컵은 분명 맥도날드 머천다이즈의 황금기라 할 수 있겠다(해피밀 세트 패키징이 단연 압권).
물론 코카콜라 역시 월드컵 굿즈 판매 대열에 빠지지 않았는데, 미국 월드컵 엠블럼과 강아지 마스코트 스트라이커(Striker)에 집중한 다채로운 캡을 발매했다. 무엇보다 코카콜라 특유의 붉은색이 성조기의 색 조합과 어우러지며 다분히 ‘미국적’인 캡이 탄생했다. 보다 다양한 코카콜라 관련 굿즈에 관심이 간다면 이베이 검색창에 ‘world cup coca cola cap‘을 입력해 보자.
1996-97 Korea Away Myung Bo Hong Player Issued Jersey
축구에 보다 진심인 이들이라면 캡, 머플러 같은 액세서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니폼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준비한 아이템, ’96/97 시즌 어웨이 홍명보 저지’. 이번 월드컵 수비의 기대주가 김민재라면, 그 이전 대한민국의 뒷문을 굳건히 잠그던 이가 바로 홍명보 아닌가. 현재 449달러라는 사악한 가격에 판매 중이지만 레트로 느낌 물씬 나는 디자인과 대한민국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친필 사인이 포함된 점 그리고 선수 지급용 킷으로 제작된 점을 고려해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한다. 물론 ‘국뽕’을 거하게 들이켜야 가능한 일일지도…
사실 해당 어웨이 유니폼에 대한 한국 축구의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이 유니폼을 입고 치러진 경기가 많지는 않지만, 개중에는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지우고 싶은 ‘96년 아시안컵 이란전 대패’가 포함되어 있기에 영광을 곱씹으며 구매 버튼을 누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97년 한국에서 열린 코리아컵까지 최영일, 홍명보, 이민성으로 이어지는 수비라인과 함께 최용수, 서정원 등 추억의 스타들 역시 함께했으니 과거 설레는 마음으로 브라운관 앞에 앉았던 이들이라면 충분히 마음이 혹할 것.
2002 David Beckham / Ronaldo Signed Jersey
2002년 한/일 월드컵, 삼바군단 브라질과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맞붙은 8강 경기는 당대 최고의 몸값을 구가하던 스타들이 총출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작 전부터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외모도, 실력도 초 전성기를 달리던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과 부상에서 복귀한 깻잎 머리 호돈신, 호나우두(Ronaldo)의 대결구도는 당시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토너먼트식 대회의 특성상 두 사나이 중 한 명은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다. 치열했던 공방전은 외계인 호나우지뉴(Ronaldinho)가 그 별칭에 걸맞은 프리킥을 꽂아 넣으며 끝이 났는데, 경기 전후 호나우두와 마주한 베컴의 표정이 왠지 서글프다. 월드컵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두 사나이의 뜨거운 추억이 담긴 사인 저지, 이베이 매물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나.
Coca-Cola x LEGO World Cup 2002 soccer field
2002년으로 귀환한 김에 당시 발매된 기발한 아이템을 조금 더 만나보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동시 개최된 월드컵이니 만큼 관련 굿즈도 다양하게 발매됐다. 앙증맞은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은 코카콜라와 레고(LEGO)의 합작품 역시 그렇다. 거대한 월드컵 스타디움이 아닌 미니 구장 느낌의 제품이지만 11 대 11로 구색을 맞춘 선수 구성은 물론 심판 캐릭터까지, 기념품을 넘어 전술판 역할 역시 가능할 듯한 알짜배기 아이템.
Nintendo GameCube 2002 FIFA World Cup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간혹 그라운드 위 뜨거운 열정에 덩달아 피가 끓을 때가 있다. 하지만 멤버 모으랴, 장비 챙기랴 요즘 세상이 어디 공 한번 차기 쉬운 세상인가. 그렇다고 대안이 영 없는 건 아니다. 1cm 남짓한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콘솔 게임이 있지 않나. 이번 카타르 월드컵이 겨울에 개최되는 만큼 수많은 방구석 메시, 호날두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02년의 빛나는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이 아이템 ‘Nintendo Gamecube 2002 FIFA World Cup’를 주목해 보자. 닌텐도(Nintendo)가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발매한 해당 게임팩은 비록 (벌써) 20년 전 하찮은 그래픽을 기반으로 디자인됐지만, 한국과 일본의 20여 개 구장을 모두 구현함은 물론, 우주 공간에 살고 있는 가상 종족을 모티브로 한 마스코트 ‘아토’, ‘니크’, ‘캐즈’도 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레이저, 색종이, 깃발, 국가별 응원가 등 디테일한 관중 설정까지 더해져 월드컵의 축제 분위기에 한껏 힘을 실은 모습이다. 맹목적으로 ‘사실적’인 그래픽 구현에 점철된 시대 기류에 역행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베이로 출동해 볼 것.
2002 FIFA World Cup Soundtrack CD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제곡은 미국 팝스타 아나스타샤(Anastacia)가 부른 “Boom”이지만 그보다 우리를 가슴 뛰게 했던 멜로디는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Vangelis)의 “Anthem”이 아닌가.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러운 구석이 없는 리듬에 일본의 퍼커션 그룹 코도(Kodo)와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한국과 일본의 동양적 요소 역시 다분히 녹여내며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호평을 이어온 곡 “Anthem”. 해당 곡을 필두로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Let’s Get Loud” 등 세계 각국 최정상의 뮤지션이 모여 완성한 월드컵 공식 음원은 경기장 밖에서도 페스티벌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월드컵 묘미다. 한국에서는 GOD가 “True East Side”로 참여했으니 하단에 첨부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당시 한국을 들썩였던 분위기에 잠시 젖어보자.
2002 FIFA World Cup FUJIFILM Super Eye 800
2002 월드컵을 맞아 옆 나라 일본 역시 머천다이즈 생산에 열을 올렸다. 일본의 대표 필름, 카메라 기업 후지 필름(Fuji Film)도 그중 하나로, 대표 모델 인스탁스를 필두로 일본 각 지방을 형상화한 뱃지 세트, 볼펜, 축구공 등 다채로운 아이템을 선보였다. 그중 단연 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일회용 필름 카메라, ‘FUJIFILM Super Eye 800’. 물론 이 역시 ‘월드컵’을 이용한 뻔하디 뻔한 상술에 불과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추억의 2002년 트로피 로고와 볼 경합 프린팅이 카메라 바디를 감싸는 것만으로도 구매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 절대 개봉하지 않고 고이 모셔두고 싶은 패키징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 가뜩이나 비싸진 필름값을 생각하면 그리 억울한 가격도 아니니 독보적 레트로 카메라를 찾고 있다면 이 녀석을 주목해 보자.
1982 FIFA World Cup Fuji Film Play Premium Magnet Field
후지 필름 얘기가 나온 김에 끼워 넣어 본 1982 스페인 월드컵 마그넷 풋볼 게임. 사실 말이 축구지 알까기에 가까운 고전 보드게임이다. 월드컵으로 흥분한 조카와 놀아주기에 제격.
2002 FIFA World Cup 500 World Limited Ferragamo Soccer Balls
다시 2002년으로 돌아와 보자. 당시 학교에서 축구 꽤나 했던 이들이라면 운동장을 가르던 공의 절반 이상이 황금색 피버노바(FEVERNOVA)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테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불꽃무늬가 대한민국을 휩쓸던 시절에도 시대에 역행하며 ‘근본’의 미학을 뽐낸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가 그렇다. 가죽 구두에 대한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설립된 브랜드답게 페라가모는 2002년 월드컵에도 500개 한정 가죽 축구공을 선보이며 그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보다시피 월드컵 초기에 쓰이던 축구공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인데, 수술 봉합 자국 같은 디테일이 12개의 오각형과 20개의 육각형으로 굳어진 축구공의 전형을 파괴한다. 500달러를 웃도는 가격에 고개가 갸우뚱할 만도 하지만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패션 하우스의 월드컵 공식 굿즈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을 것.
2022 Qatar World Cup México Turbante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카타르 월드컵. 콘셉트에 죽고 못 사는 이들을 위해 이슬람 터번을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총알로 준비했다. 다소 과한 비주얼임은 인정하는 바이나, 머리부터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무지막지한 크기로 비니, 목도리, 담요를 아우르는 일석삼조의 실용성을 갖췄다. 다시금 거리 응원이 자유로워진 지금, 찬바람에 대적할 최고의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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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소개하지 못한 보물을 하단에 첨부하니 막 돌아온 월드컵과 함께 광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면 발굴에 박차를 가해보자. 꿈☆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