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안과를 줄기차게 들락거렸던 필자는 한쪽 눈을 질끈 감고 반대쪽으로 눈으로 바라보던 들판 위 빨간 집을 꽤나 좋아했다. 윈도우 XP에서나 볼법한 푸른 벌판 위에서 흐릿하게 흔들리던 빨간 집이 선명해질 때 들던 왠지 모를 쾌감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분이 참 묘했는데, 따뜻하면서도 불안한 것이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야 위어드코어[1]라는 단어로 그때의 추억을 압축할 수 있게 됐다. 올해의 마지막 ‘Visla Very Smalltalk’에서 다룰 이야기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최근 해외 그리고 일부 국내 게임 방송 유저들에게 간간이 화제가 됐던 꺼림칙한 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이름하여 ‘오분가(Obunga)’. 2013년 한 4chan 유저가 일본 만화 테라포마스(Terra Formars)의 외계 바퀴벌레 캐릭터 테라포머(Terraformar)의 얼굴에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를 합성한 뒤 이를 ’오분가’라 칭하며 탄생한 해당 이미지는 2016년을 기점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인기가 급속도로 식어가며 기억 속으로 잊혀져 가는 듯했으나, 2022년 게임 게리 모드(Garry’s Mod)를 통해 넥스트봇[2]으로 부활하며 다시금 디지털 세상을 누비는 중이다.
게임 규칙은 일반적인 ‘술래잡기’와 비슷하다. 게임을 시작해 맵을 탐색하는 유저는 곧 퀭한 눈의 오분가 캐릭터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미칠듯한 추격전이 시작된다. 오분가와 몸이 닿는 즉시 그대로 게임오버. 아무리 총을 난사하고 꼬챙이로 후려친들 오분가를 막을 순 없다. 오직 도망치는 것만이 살 길.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데 쫓아오는 오분가의 속도가 상당히 빠를뿐더러, 점프를 해도 그대로 따라 뛰어오르니(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넘을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말 미칠 노릇이다. 게임 리뷰 영상의 제목들만 훑어보더라도 “you cant hide”, “We can run … but we can’t hide from Obunga”, “Obunga is Everywhere” 등 오분가에게서 도망치지 못한 플레이어들의 절규가 느껴진다.
일차원적 술래잡기 게임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위어드코어를 바탕으로 하는 오분가의 섬뜩함은 선홍빛 피가 사방팔방 난무하는 여느 잔혹 시뮬레이션 게임 못지않다. 여기에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언짢아지는 오분가의 비주얼과 위어드코어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맵이 크게 한몫하는데, 인적 하나 없는 허허벌판과 밤거리 그리고 텅빈 호텔과 사무실 등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공간에서 벌이는 추격전이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혓바닥을 강하게 강타하는 짜릿한 맛보다 슴슴하게 올라오는 구수한 맛을 더 오래 즐기게 되는 것처럼, 플레이어를 잔혹하게 살해하지 않고 단순 터치로만 게임오버시키는 점 또한 오분가의 인기 요인 중 하나.
이쯤 되면 실제 오분가의 플레이 영상이 꽤나 궁금해졌을 터. 하단에 첨부한 영상을 통해 플레이어들의 절규를 직접 느껴보자. 오분가는 게리 모드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다.
[1] 위어드코어(Weirdcore): 혼란, 방향 감각 상실, 어지러움, 공포, 고립감, 노스탤지어를 유발하는 저품질의 디지털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 미학
[2] 넥스트봇(NextBot): 게임 게리모드에서 맵의 경로를 파악해 작동하는 NPC를 부르는 용어
이미지 출처 | Know Your M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