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귀여운 야만성’이라는 생경한 콘셉트와 콥스 페인팅[1], 갸루, 프로 레슬러를 한데 뭉친 다소 괴상한 비주얼을 앞세워 혜성같이 등장한 파티, ‘콥스 갸루 프로레슬링(CORPSE GYARU PRO WRESTLING, 이하 CGPW)’이 지난 14일 합정동 익스트림에스 체육관에서 그 두 번째 파티를 개최했다. ACS에서 첫 시작을 알린 지난 파티가 ‘여성적 야만성’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남성 디제이와 여성 디제이의 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춰 보다 파격적인 비주얼과 재치 있는 스토리로 돌아왔다.
요란스럽게 단장한 체육관의 모습을 보면 정초부터 누가 저런 미친 파티에 가나 싶겠지만, 300여 명에 달하는 관객이 찾은 현장의 에너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불과 2회 만에 언더그라운드라는 허들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유의미한 문화적 움직임으로 거듭난 이색 파티 CGPW. 두 파티 주최자 미허, 통조림과의 짧은 담화와 함께 그 유별났던 현장 분위기를 VISLA가 함께했으니 하단을 통해 직접 감상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미허: 현재 패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미허라고 한다. 작년부터 통조림과 CGPW을 진행했고, 지난 토요일 두 번째 파티를 열었다.
통조림: 세컨드핸즈숍 러브캔드후르츠(LOVECANNEDFRUIT) 운영과 그래픽 디자인을 겸하고 있는 통조림이다. 현재 미허와 같이 CGPW을 기획하고 있다.
바로 지난 토요일 합정 익스트림에스 체육관에서 CGPW, 그 두 번째 파티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에너지가 엄청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소감이 어떤지.
미허: 비가 조금 오는 날씨기도 했고,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공감하고 재밌을 거라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280명에서 300명 가까이 우리 파티를 찾아주었다.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다.
통조림: 1회를 진행할 때는 콘셉트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기대했던 만큼 관객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파티는 무조건 성공시켜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는데 그걸 그대로 보상받은 기분이라 너무 기뻤다.
통조림과 미허, 두 사람이 어떻게 CGPW을 주최하게 됐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 볼 수 있을까.
통조림: 작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ACS에서 ‘킨더호어(Kinderwhore)’라는 콘셉트로 파티를 진행했다. 거기서 미허랑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미허가 콥스 페인팅을 하고 로리타 드레스를 입은 콘셉트의 파티를 열어줬으면 하더라.
관련해서 레퍼런스를 찾던 도중에 미허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정말 멋진 사람을 발견했다. 그게 바로 지금 파티의 영감이 된 일본의 프로 레슬러 체어맨 라무(Ram Kaicho)다. 그 이후로 우리가 좋아하는 콥스 페인팅, 갸루, 프로 레슬링이 모두를 함께 버무려 완성한 게 CGPW라 할 수 있다.
확실히 ACS에서 진행했던 첫 파티는 ‘언더그라운드’의 색이 강했던 것 같은데 이번 파티는 갸루나 프로 레슬링 같은 서브컬처를 좋아하지 않아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 행사로 느껴졌다. 이번 파티에 특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통조림: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지의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우리 파티의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최대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로 정했다. 처음에는 수유나 창동 근방이 베뉴도 넓고 대관비도 저렴해 그곳으로 정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더라. 그러던 중에 미허가 디깅 끝에 합정 익스트림에스 체육관을 찾아냈다.
미허: 베뉴를 찾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산책하는데 가는 길에 복싱장이 보이더라. 혹시나 해서 내려가 봤더니 조명도 예쁘고 공간 구성도 좋아서 바로 통조림을 데려와 보여줬다.
복싱장을 고집했던 이유가 있을까.
통조림: 우리 파티와 다른 파티의 가장 큰 차별점이 바로 직접 제작한 링이다. 이번 파티 역시 1회와 마찬가지로 DIY로 링을 만들었다. 링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자니 복싱장이 딱이더라. 아무래도 레슬링장은 좀처럼 보기 힘드니까.
복싱, 크로스핏이 행해지는 체육관과 CGPW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다. 파티 콘셉트를 보고 쉽게 대관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미허: 대관 당시 음악 관련 행사라는 이야기만 흘리고 모든 걸 공개하진 않았다. 그런데 관장님이 생각보다 쿨한 분이셔서 당일 현장에 와서도 별말씀은 안 하시더라.
방금 언급했던 DIY 링부터 시작해서 일본 프로레슬링 영상까지, 체육관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각자 이번 파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진행했나.
미허: 역할을 정확히 나누지는 않았다. 할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으니까 모든 일을 함께해야 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서로 보완되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통조림: 각자 다른 분야에서 발이 넓어서 셀러 라인업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었고, 아이디어도 서로 스스럼없이 냈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공각기동대” BGM부터 마이케미컬로맨스(My Chemical Romance)의 이모 록 그리고 뉴진스까지, 파티 콘센트에 딱 맞는 선곡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파티를 기획할 때 음악적인 부분의 디렉션도 있었나.
통조림: 라운드 별 콘셉트가 정해져 있긴 했지만 디제이 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야쿠자끼리의 싸움’이 테마였던 1라운드에는 ‘용과 같이’라는 일본 야쿠자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게임 BGM을 믹스셋에 요청했다.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에는 무조건 메탈을 틀고 싶어서 노이와 핫팟에게 강렬한 사운드를 부탁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플레이에 방해되거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디제이 코스튬 역시 두 사람이 기획한 부분인가.
미허: 둘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했는데 여기서 재밌는 콘셉트가 많이 오갔다. 한 예로, 옥시두머 같은 경우는 본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외계인 콘셉트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항하는 넷갈라를 옥시두머를 납치한 미친 과학자를 생각하고 꾸몄다.
평소에도 갸루 문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지. 일본 프로 레슬링 경기를 챙겨보는지도 궁금하다.
미허: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경기 그 자체보다는 호러, 기믹이 곁들여진 레슬러들의 캐릭터를 더 좋아했다. 언더테이커(Undertaker)나 더 핀드(The Fiend)처럼. 코스튬이나 스타일링적인 부분이 특히 관심이 가더라.
개인적으로는 파티 전에 제작한 플라이어, 티저 영상 콘텐츠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느껴졌다. 콥스 페인팅, 갸루, 프로 레슬링이라는 문화를 사람들에게 최대한 알리려고 노력한 결과인 것 같은데.
미허: 우리 파티와 관련된 콘텐츠가 최대한 많이 돌아다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그대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코스튬을 한 디제이도 디제이였지만 참가자들 복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다면?
통조림: 몸이 엄청나게 두꺼운 남성분이 웃통을 벗고 레슬러 마스크만 쓰고 계시더라.
이번 파티에서 아쉬운 점이 있나.
미허: 우리 둘 다 이렇게 큰 파티를 여는 게 처음이라 입장 관리라든지, 화장실에 휴지를 채우는 등의 기본적인 부분에서 미숙했던 것 같다. 하지만 CGPW이라는 콘셉트를 표현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은 없다.
2023년의 첫 파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CGPW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더 보여주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둘의 개인적 소망도 궁금하다.
통조림: 좀 전에 언급했듯이 CGPW의 가장 큰 목적이 우리가 좋아하는 걸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CGPW를 점점 더 크게 키우고 매번 유쾌한 콘셉트로 찾아뵙고 싶다. “이 사람들 똑같은 것만 하네?”라는 생각이 안 들게 재밌는 이미지로 말이다.
CGPW을 통해서 기획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CGPW을 떠나 개인적으로는 빈티지 셀러들을 모아 페어를 열어보고 싶다. 또 이번 파티를 준비하면서 ‘철권’을 해보니 너무 재밌더라. 게임 쪽으로 관심이 가기도 한다. 올해는 최대한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할 계획이다.
미허: 이번 파티가 남성 디제이와 여성 디제이의 싸움이었다면 3회에는 더 새로운 파티 콘셉트를 선보이고 싶다. 물론 구체적인 콘셉트는 아직 비밀이다. 개인적으로는 계획을 따로 세우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올해에는 기획자로서 조금 더 성장하는 해를 맞이하고 싶다.
Corpse Gyaru Pro Wrestling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 조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