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9일 뉴욕 미드타운 소재 브라이언트 파크 아이스링크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스케이트를 즐기던 많은 이들은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공포에 휩싸였고, 평화롭던 아이스링크의 풍경은 이내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스무 살 청년,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14세 소년이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범인은 16세 흑인 소년으로 지역 갱단의 멤버로 밝혀졌다. 그 총격 사건의 원인이 꽤 경악스럽다. 바로 스무 살 청년이 입고 있던 마모트 맘모스 파카(Marmot Mammoth Parka)를 빼앗기 위해 총을 겨눈 것. 도대체 맘모스 파카가 뭐길래 주말 대낮에 이런 끔찍한 사건을 벌였을까.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한 아웃도어 브랜드 마모트는 1982년 맘모스 파카라는 이름의 헤비 아우터를 발매했다. 본래 가혹한 환경의 고산을 오르는 등반가에게 제공되었으나 2009년 일반 소비자에게 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발매와 동시에 뉴욕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높은 방한성과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컬러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는 특히 뉴욕 도심에서 활동하는 갱에게 큰 인기를 끌며, 명품 브랜드의 벨트나 나이키 에어 조던 스니커 등 갱이라면 꼭 훔쳐야 하는 ‘Must Steal List’에 들었다. 원체 넉넉한 사이즈로 나온 재킷이지만, 그들은 XXL부터 XXXL의 커다란 사이즈를 선호했다. 큰 사이즈의 재킷인 만큼 주머니 크기도 커 총이나 흉기 같은 ‘위험한 물건’을 숨기기에 제격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때문에 맘모스 재킷은 별칭 비기(Biggie), 빅보이(Big Boy)라고 불렸으며, 마모트를 뜻하는 멈스(Merms)라는 속어까지 생겨났다. 당시 맘모스 파카의 대표적인 판매처는 뉴욕 유니온 스퀘어 주변의 파라곤 스포츠(Paragon Sports)라는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 전문점이었는데, 맘모스 파카가 있는 매장 2층은 이를 구매하려는 이와 훔치려는 이들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여러 컬러의 맘모스 파카가 있지만, 갱을 상징하는 블루와 레드 컬러를 가장 선호했다고. 이외 옐로우와 그린, 퍼플 컬러 등 다양한 컬러의 파카를 모아 ‘스키틀즈(Skittles)’라고 부르며, 수집한 형형색색의 파카를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게시했다.
잠깐 앞의 이야기로 돌아와 맘모스 파카 총격 사건은 미국 사회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의 영향인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마모트 측은 기온 상승으로 인한 판매 저조로 단종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맘모스 파카의 생산을 중지했다.
허나, 단종 이후에도 스트리트웨어, 아웃도어 패션의 추종자는 계속해 어딘가에 남아있는 맘모스 파카를 수집했는데, 한때 이베이(eBay) 등지에서 2,000달러의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슈프림(Supreme)의 팬이라면, 맘모스 파카가 낯설게 보이지만은 않을 텐데, 시즌 컬렉션마다 그들의 본류인 스케이트보드와 더불어 힙합과 갱 문화에 영감을 얻은 아이템을 제작하는 슈프림은 맘모스 파카와 유사한 디자인과 사양의 700필 다운 파카를 제작, 업타운 파카(Uotown Parka)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맘모스 파카의 위상은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뉴욕의 맘모스 파카 컬렉터는 @marmotmommoth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서로의 파카를 뽐내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추수감사절을 ‘비기 데이(Biggie Day)’로 지정해 매년 맘모스 파카를 입고 타임스퀘어 앞에 모여 그 주위를 행진하는 행사를 벌인다. 그만큼 맘모스 파카에 대한 이들의 프라이드 또한 굉장해 작년 겨울 키스(Kith)가 마모트와 협업한 맘모스 파카를 공개했을 땐 맘모스 파카에 대한 헤리티지를 무시한 채 패션만을 좇은 컬렉션이었다고 비판하며, 보이콧을 펼치기도 했다.
수많은 브랜드가 갖가지 파카와 재킷을 내놓고 있지만, 이만큼의 ‘썰’을 풀 수 있는 아우터는 그리 많지 않을 것. 아쉽게도 2020년 마모트 코리아가 국내 사업을 철수해 맘모스 파카를 구매할 수 없지만, 옆 나라 일본 마모트 재팬에서는 맘모스 파카를 정식 발매하고 있으며, 빔즈(Beams)나 아파트먼트 (The Apartment)와 같은 편집 스토어와의 협업 또한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을 지나 이제는 서브컬처 패션의 한 장르로 정립된 마무트 맘모스 파카. 만약 이 이야기에 마음이 동해 맘모스 파카를 구입할 계획이라면, 무리 지어 타임스퀘어를 거니는 빅보이 군단처럼 자신만의 비기 데이를 정한 후 거리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이미지 출처 | Marmot, @marmotmommoth, The Apartment
